제9회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지인 중국 헤이룽장성의 하얼빈 현장에서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출국을 준비하며 현지 정보를 정리하던 중 흥미로운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하얼빈에서 꼭 방문해야 할 명소 중 한 곳에서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이름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얼빈이라는 지명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학창 시절 역사 교육시간 독립운동을 다룰 때 많이 이야기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하얼빈 동계 올림픽이 폐막하는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일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해 여러 가지로 하얼빈은 우리에게 특별한 지역으로 다가온다.
동계 아시안게임의 현장 응원을 위해 하얼빈을 방문하기로 계획한 만큼 현지 체류 기간 독립운동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현장들을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제9회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중국 하얼빈. 거리는 축제분위기로 대회의 슬로건와 마스코트로 가득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33도였던 지난 주말, 동계 아시안게임의 슬로건인 '겨울의 꿈, 아시아의 사랑(Dream of winter, Love among Asia)'이라는 문구가 펼쳐진 축제의 거리를 지나 첫 번째 목적지인 하얼빈역으로 향했다.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인 하얼빈역,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곳에 나의 첫 번째 목적지가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하얼빈역. 역사 내부 리모델링 과정 중 안중근 기념관이 잠시 이전되어있다 다시 재개관했다.
◆ "당신을 기억합니다" 하얼빈역 도보 1분 거리 '안중근의사기념관'
역 중앙 출입구에서 도보로 1분 거리, 출입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 코너를 돌면 바로 마주할 수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義士記念館)에는 아침 일찍부터 기념관을 찾은 사람들이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기념관은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마지막 입장 오후 4시)까지 운영되고 있었으며 입장료는 무료였다.
하얼빈역 왼편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 내가 방문하기 전에도, 방문한 후에도 이곳을 찾는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보안검사를 마쳐야 했고, 본인 확인 및 관람객 기록을 위해 여권을 보여줘야 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안중근 의사의 동상, 결연한 표정과 앞에 놓인 하얀 국화를 보니 왠지 모르게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의 내부. 교과서에서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사용한 권총과 총알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더욱 생생했다.
동상 앞에서 가벼운 묵념을 가진 후 본격적인 기념관 관람을 시작했다.
안중근 의사의 출생과 성장 과정, 구국 계몽운동은 물론 의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법정투쟁, 주변 인물들의 평가까지 일생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의거 당시 사용했던 권총과 총알까지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관의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분명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정보보다 더 자세하고 다양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토히로부미의 저격거리를 알 수 있는 바닥표식과 플랫폼이 보이는 유리가 있었다. 현재는 기념관에서 플랫폼 내부를 볼 수 없게 불투명 테이프로 가려져 있다.
인상적인 것은 내부 설명들이 중국어와 한국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인데 하얼빈에서 한국어를 가장 많이 봤던 장소로 기억된다.
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거리를 바닥 표식으로 확인할 수 있던 부분 역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다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기념관에서 저격이 벌어진 플랫폼을 창문 너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투명 테이프로 가려져 지금은 기념관 내부에서 역사의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전시관의 직원에게 내부를 보지 못하게 된 이유를 묻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할 수 있던 안중근 의사의 동상. 하얀 국화꽃과 차가운 동상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기념관 내부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평소 방문하는 인원과 중국에서 안중근 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하루 평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면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침략에 맞서 중국은 물론 아시아에 큰 울림을 준 사람"이라며 앞으로도 안중근 의사의 업적과 이야기를 알려 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같은 시각 내부에서 함께 기념관을 둘러본 최수열(26, 대학생) 씨는 "작년 부모님과 뮤지컬 영웅을 관람한 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존경심을 강하게 느꼈고,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봤었다"라며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는 만큼 대회를 전후로 많은 아시아인이 이곳을 둘러봤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으로 알려진 글을 기념관 끝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방명록으로나마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본인이 죽은 후에 하얼빈 공원 곁에 잠시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달라던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아직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사형 집행 이후 시신을 암매장하였고,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 역사학자들이 유해 발굴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독립 의지와 일본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러시아의 영향력에 있던 머나먼 타국 땅으로 떠났던 안중근 의사. 하얼빈역에서 당당히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그를 기억하며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 진열관 현지 관람
먹먹한 울림을 뒤로한 채 다음 목적인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 진열관'으로 향했다.
첫 번째 목적지였던 하얼빈역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 진열관(이하 731부대 진열관)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생체 실험 부대인 731부대의 잔존 건물 등이 남아있는 곳으로 중국인에게도 하얼빈에서 꼭 방문해야 할 명소로 알려져 있다.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 진열관 부지의 입구. 진열관의 메인 전시관을 포함해 꽤 광활한 부지에 다양한 건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도보로 약 5분을 이동하자 731부대 진열관의 입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주변에 몇몇 건물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하얀 눈밭 위, 도심에서 떨어져 부대 방문할 목적이 없다면 이곳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 만큼 외진 곳에 있었다.
일본군은 전쟁이 끝나기 며칠 전부터 731부대를 계획적으로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의 '전시국제법'이 정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헤이그 평화회의와 세 차례의 제네바 회의를 통해 전쟁 포로와 민간인에 대한 보호 필요성과 전쟁범죄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세계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일본으로서는 각종 실험이 진행된 731부대를 그대로 두긴 힘들었을 것이다.
경비소를 지나 마주할 수 있는 건물이자 다양한 정보와 모형이 있는 '전시관'이 눈에 들어왔다.
진열관 측은 메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전시관 관람을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데, 예약과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기 힘들어 간단히 소개한다.
웨이신(위챗) 731검색 후 예약을 진행할 수 있는 화면. 사진과 같이 메시지 보내기의 하단 세번째 탭 가장 윗쪽 버튼을 누르면 예약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예약페이지부터는 번역기능을 통해 보다 쉽게 예약이 가능하다.
중국에서 대부분의 관람지 예약은 '웨이신(위챗, Wechat)' 앱으로 진행된다.
하단 세 번째 탭에서 '731'을 검색하면 가장 첫 번째로 뜨는 것이 731 진열관의 페이지다. 해당 페이지를 팔로우한 후 메시지 보내기에서 세 번째 탭, 가장 위쪽을 누르면 전시관의 예약 페이지로 이동하게 된다.
예약 페이지부터는 번역이 가능해 방문 계획에 맞춰 예약을 진행하면 되는데, 우리 시간으로 오후 9:00부터 선착순 예약이니 진열관에 방문할 계획이라면 참고하면 좋겠다.
주의할 점은 해당 장소가 현지인에게도 굉장히 인기가 많아 보통 3일 전 예약이 풀리면 10분 내외의 짧은 시간 안에 전체 인원이 마감된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국인은 제한적으로 현장 입장을 시켜주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온라인 예약이 되지 않으면 입장을 철저하게 제한하는 편이라고 하니 전시관을 관람할 계획이라면 반드시 예약하자.
부대 철수 당시 건물 대부분을 폭파했지만, 사진과 같은 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불과 100여년 전 실험장소였다는 사실을 믿고싶지 않았다.
만약 예약하지 못했더라도 볼거리가 적지는 않다.
전시관을 돌아나가 옛 731부대의 터와 구조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고, 부대에 대한 정보를 담은 디스플레이 영상과 모형도도 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우리 국민 김주영(30대, 직장인) 씨는 "친구와 함께 아시안게임을 응원할 겸 이곳에 들러봤는데 중국인뿐만 아니라 무명의 우리 독립군과 투사는 물론 그 가족과 일본을 피해 이주해 살고 있던 우리 국민까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희생됐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수많은 애국지사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제 치하 한걸음 뒤에서 자유를 꿈꾸고 독립을 지원해 온 이름 없는 사람들의 희생 역시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 태극전사들의 투지와 독립운동의 투혼을 함께 느낀 하얼빈 현지
마음 아픈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던 중국의 하얼빈.
지난 역사는 상처가 가득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속의 강국으로 우뚝 서 있고, 제9회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역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동계 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열리는 오늘, 다양한 분야에서 메달을 딴 우리나라는 최초 목표였던 대회 종합 2위 달성을 확정지었다.
2025년, 올해는 광복을 맞이한 지 딱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동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며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무대였던 하얼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응원한다'라며 광복 80주년과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했고, 다수의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도 메달 인터뷰를 통해 우리 역사를 함께 기억해주고 있다.
뜨거웠던 8일간의 동계 아시안게임은 이제 막을 내린다.
아시아의 축제는 비록 끝나지만, 하얼빈에 남겨진 우리 역사의 현장과 독립을 꿈꾸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겨냈던 우리 국민은 앞으로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