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과 캐나다 간 2024-2025 상호 문화교류의 해가 개막했다. 2023년 수교 60주년을 맞은 양국은 오랜 시간 전략적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2022년 9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2024-2025 상호 문화교류의 해’를 지정하고 문화예술, 문화유산 등 ‘문화’를 기반으로 한 교류 확대와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했다.
한국과 캐나다의 인연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한영사전을 펴내고 한국 및 서양 고전을 번역, 발간한 한국 최초의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1888년 입국), 제중원 운영,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설립을 통해 한국 교육과 의학 발전의 토대를 세운 에비슨 선교사 등이 있다. 또한 한국 전쟁 당시 캐나다는 미국, 영국에 이어 참전국 중 3번째로 많은 규모의 군인을 파병했다. 전쟁이 끝나고 1963년 1월 14일 국교를 수립한 양국의 협력 관계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캐나다 오타와에서의 전통공연을 시작으로 2024년과 2025년 한국과 캐나다에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최근에는(11.27.~12.1.) 캐나다 몬트리올 도서전 내 K-북 전시관에서 문학으로 양국을 잇기도 했다. 얼마 전 읽은 <2024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9종도 전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전통공연,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애니메이션, 미술, 시각예술, 공연예술, 콘텐츠, 체육, 관광 등 실로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가 준비되었다.
현재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캐나다 상호 문화교류의 해를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캐나다국립영상위원회가 공동준비한 <순간이동>전이 그 주인공이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웹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과 매체를 활용해 특별한 시공간과 그 속의 인물에 대해 몰입하는 경험을 하는 전시로 2025년 2월 16일까지 열린다.
가상현실 영화가 대부분이고 기기 수와 이용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전시를 풍부하게 즐기려면 사전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가상현실 기기로 관람한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 일본계 캐나다인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캐나다 작가 랜달 오키타의 <거리의 책>과 <소설과 구보 씨의 일일>에 영감을 받은 한국 작가 권하윤의 <구보, 경성 방랑>이다. 둘 다 손에 잡힐 듯한 현실적이고 생생한 애니메이션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구보, 경성 방랑>은 전시실 한쪽 넓은 공간에서 체험을 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1934년 경성으로 안내된 관람객은 화면의 포인트를 따라 직접 걸어간다. 그 지점에 도착하면 다음 장면이 펼쳐진다. 관람객은 경성 시대의 전차도 타고 다방과 경성 역도 들어가면서 1934년의 경성과 완전히 동화된다. 귀에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들린다.
권하윤 작가는 당시 유행했던 ‘만문만화’ 캐릭터를 차용해 1930년대 경성을 구현했다. 만문만화는 일제강점기 이슈를 은유적으로 풍자하면서 신문과 잡지에 연재되었던 만화이다. 신문물이 도입되면서 허영과 유행을 좇는 모던걸, 모던보이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사회 문제라는 공통점을 포착하고 구보 씨의 냉소적인 시선과 함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만들어냈다.
나는 가상현실보다 실제로 작품을 보고 실제로 유산을 방문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가상현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이 지점이야말로 가상현실 세계가 가장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랜달 오키타 작가 또한 ‘우리에게서 너무나 쉽게 멀어질 수 있는 과거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할아버지가 상상만 하셨을 이야기의 새 장을 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증강현실 게임 형식으로 제작된 <록키 산맥의 동쪽>.
디지털 영상이라는 동일한 도구, ‘순간이동’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니. 한국과 캐나다라는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나라, 그리고 그것을 넘어 각 개인이 걸어온 현실이 투영된 작품의 향연이자 그동안 몰랐던 역사를 알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런 문화적 다양성과 공감이야말로 ‘상호 문화교류의 해’의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문화’를 기반으로 더 깊어질 양국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