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산업단지 내에서 근무하는 남편이 얼마 전 행사 포스터 한 장을 보여줬습니다. 군산국가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에서 주말 가족들과 함께하는 업싸이클 체험이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키링 만들기 체험인데, 재료는 일상 속에서 배출되는 커피 찌꺼기였습니다. 산업단지 내 복합문화센터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거니와 산단인을 위한 문화예술사업도 열린다기에 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행사 포스터를 자세히 살펴보니 상단에 굵은 글씨로 ‘2024 예술로 어울림’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2024 예술로 어울림’은 문화취약지역(산업단지·농산어촌·기타 도심) 거주 주민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 참여 기회를 높이고, 수도권과의 문화예술 향유 격차를 줄여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자 도입된 정책 사업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선정된 기관(단체 및 시설 등)이 주관하며 사업 유형에 따라 산업단지형과 문화취약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산업단지형은 기업과 청년이 모이는 문화가 있는 산업단지 조성, 문화취약형은 문화예술교육 향유 기획 확대 및 삶의 활력 제고로 정주여건 개선이 각각 목적입니다.
특히 산업단지형은 2024년 국가산단이 있는 25개 기초 지역 중 15개 지역이 선정되는데, 제가 사는 지역(군산시)도 해당된 것입니다. 10년 넘게 산단에서 근무한 남편에게도 근거리에서 문화예술, 생활편의시설을 향유할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남편이 근무하는 군산국가산단은 1990년 착공돼 30여 년이 지난 탓에 그간 노후화, 문화·편의 기반시설의 부족 등으로 청년 노동자들의 유출과 취업 기피로 인한 구인난이 심화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7월부터 산단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난 7월 군산국가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가 설립됐기 때문입니다. 산단 특성상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문화, 체육, 편의시설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는데, 그 기능을 한 번에 해결할 거점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복합문화센터에서는 산단민원처리시설과 평생학습센터, 작은도서관, 체력단련장, 다목적구장 등 근로자 및 지역주민이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과 휴식 공간이 자리하게 됐습니다. 남편이 근무하는 곳과도 차로 5분 거리에 자리해 있어 접근성 또한 좋았습니다.
복합문화센터가 건립되고 하나둘씩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시작됐는데요. 참여 대상은 산업단지 근로자 가족이었습니다. 지난 11월 30일 주말에 열리는 업싸이클 체험에 참여했습니다. 지역에서 나오는 일상의 쓰레기로 문화예술을 접하는 것인데요. 평소 키링 만들기를 좋아하는 자녀는 오랜만에 문화예술 체험에 설레는 마음으로 교육장으로 향했습니다. 부모 역시 자녀가 좋아하니 주말의 쉼을 잠시 밀어두고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커피 찌꺼기의 키링 변신이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먼저 교육 강사는 커피 찌꺼기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이 나오지부터 설명했습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약 15g의 원두가 사용되는데, 이 중 99.8%의 원두는 커피 찌꺼기가 되어 버려진다고 합니다.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성분이 함유돼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 시킨다고 합니다. 이러한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가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작업은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문화예술작업인데요.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키링 만들기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자녀와 함께 저도 참여해 봤는데요. 점토 형태로 바뀐 커피 찌꺼기의 촉감이 은근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치대고 밀대로 밀면서 다양한 형태의 키링을 제작해 봤습니다. 만지는 내내 커피 향도 솔솔 퍼져 후각도 자극합니다. 다양한 모양틀로 꾹 눌러 다듬은 후 캔 따개 역시 재활용해 키링 고리로 재탄생했습니다. 단순한 문화 체험이 아닌 환경을 생각하는 체험이라 그 의미와 가치도 남달랐습니다.
이젠 산업단지 근로자도 근거리에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산단 근로자들에게 앞으로도 문화예술의 봄날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