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광복절 하루 전날인 8월 14일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국가기념일이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역사적인 날로, 정부는 201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내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우연히 들른 대구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을 방문하면서부터다. ‘위안부’ 피해자의 과거, 현재, 미래란 주제로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한 피해자 증언 전시는 그동안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라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좀 더 자세히 역사관을 둘러보고 싶어 다시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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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에 위치한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1920년대 일본식 2층 목조건물에 마련됐다. |
대구 중구에 위치한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1920년대 일본식 2층 목조건물에 마련됐다. 역사관은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던 고(故) 김순악 할머니의 기탁금과 대구시민들의 성금, 여성가족부와 대구시 등의 노력으로 2015년 문을 열었다.
‘희움’이란 뜻은 희망을 모아 꽃피운다는 뜻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꽃을 함께 피우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1층 역사의 벽에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관련 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비롯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사건을 중심으로 전시돼 있었다. 특히 피해자의 법적 제도를 비롯해 명예 회복과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한 시민단체와 할머니들의 노력들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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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증언의 벽에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
‘묻는 사람은 그냥 묻지만, 그 얘기만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평생 상처가 너무 커요. 그래도 해야지요.’
커튼을 열고 들어간 증언의 벽에서는 이용수 할머니의 피해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가장 아팠던 80년 전 그날의 사건을 용기 있게 한자리에 풀어 놓은 공간이었다. 6개 주제로 풀어놓은 할머니들의 활동과 증언은 관심 있게 보고 함께 듣는 것만으로도 할머니에게 큰 힘이 된다는 말에 대화를 나누듯 빔프로젝트가 놓인 의자에 앉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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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입구에는 희움스토어도 마련돼 의식팔찌를 비롯해 다양한 굿즈도 구매 가능하다. |
일제강점기 시절 어려운 형편 속에 대부분 일자리가 있다는 꾐에 속아 먼 타국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던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을 때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라는 생각에 함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역사의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할머니들의 아픔과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증언이 정말 중요한 역사적 자료라는 생각도 들었다.
1층 테라스에 ‘노래를 사랑한 할머니들’이란 전시도 인상 깊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은 딱딱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로만 전해져 있지만 때로는 노래가 간접적인 증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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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테라스에 마련된 전시 코너에서는 90년 된 라일락 나무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
‘중국의 밤 중국의 밤이여. 아, 잊을 수 없는 호궁소리, 중국의 밤 꿈의 밤’
북만주 동안성에서 16세 무렵 피해 할머니의 기억 속 ‘중국의 밤’ 노래가 적혀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로 피해 할머니는 지금도 완곡을 다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때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같은 시대를 살았던 90년 된 라일락 나무도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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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을 올라가는 계단에는 10여 개국 ‘위안부’ 피해자와 그들의 활동 및 다양한 후원자들의 얼굴을 담은 400여 장의 사진이 벽면에 배치돼 있다. |
전쟁에 대한 상흔은 점점 지워지고 있지만 역사관 곳곳에는 그 시대 피해자들의 시공간과 증언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기획된 점이 눈길을 끌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얼굴의 계단’이란 전시가 마련돼 있었다. 10여 개국 ‘위안부’ 피해자와 그들의 활동 및 다양한 후원자들의 얼굴을 담은 400여 장의 사진이 벽면에 배치돼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장소는 다르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란 목표를 위해 함께 힘써온 동지애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2층 입구에는 아담하게 영상관도 마련돼 있었다.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보유한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과 함께 힘겹게 병마와 싸우는 할머니들을 모셔온 자원봉사자들의 간병일지 등 영상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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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할머니 방’은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귀한 공간이었다. |
2층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현재를 담은 ‘할머니의 방’이었다. 현재 생존해 계신 11명의 할머니들 방 일부가 조심스럽게 공개돼 있었다. 푸른색의 낡은 여행가방과 함께 할머니들의 사진첩과 가구 등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귀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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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의 벽2 코너에서는 경상매일 창간호부터 소개된 총 8편의 문옥주 할머니 인터뷰 내용이 전시됐다. |
그런가 하면, 시간과 공간 코너에서는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아 구성돼 있었다. 일부 할머니의 증언에 소개된 희미한 연결고리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기록을 촘촘히 엮으면서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더욱 힘이 실리도록 마련된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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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관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VR 기술을 활용해 할머니들의 역사적 공간도 체험해볼 수 있었다. |
특히 VR 기술로 할머니들의 흔적을 체험해보는 코너도 마련돼 있었다. VR 헤드셋을 착용하니 할머니들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보냈던 동네와 귀국 후 현재 살고 계시는 공간 등 할머니들이 거쳐 간 역사적 장소들을 체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증언의 벽2 코너에서는 1992년 12월 11일, 경상매일 창간호부터 소개된 총 8편의 문옥주 할머니 인터뷰로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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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벽면에는 피해 할머니들의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관람객들의 메시지로 가득 채워져 있다. |
1920년대 태어난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계속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