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밤늦게 혼자 택시를 타다니 당할 만도 하지
.” “사람이 밤늦게 혼자 택시를 타다니 당할 만도 하지
.” 차이가 느껴지는가
? “여자가
”라는 표현 대신
“사람이
”라는 표현을 넣어서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성차별적 발언이다
. 한 트위터리안의 발언으로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던 이야기이다
.
오늘은 UN이 공식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해 제정한 날로 한국에서도 1985년부터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 여성 인권의 현주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고자 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흔히 여성을 포함시킨다. 숫자상 소수여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더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남녀평등성에 있어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사회적 지표 몇 개만으로도 드러난다. 통계청의 2016년 3월 기준 성별 근로형태 통계에서 여성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40.3%를 차지한다. 이는 남성 평균 25.3%와 비교하여 현저하게 낮은 수치이다. 전년 대비 남성은 비정규직 비율이 0.3% 감소했지만 도리어 여성은 0.3%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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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2016년 3월 기준 성별 근로형태 통계에서 여성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40.3%를 차지한다. 이는 남성 평균 25.3%와 비교하여 현저하게 낮은 수치이다. |
1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 월평균 임금은 2015년 178만1천 원으로 남성 임금의 62.8% 수준이며 남성 대비 여성의 시간당 임금수준은 68%를 기록했다. OECD국가 중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과거와 같은 남녀 차별적인 교육 수준 때문일까? 답은 아니다. 2000년 남녀학생 대학진학률은 5% 격차를 보였지만 점점 차이가 줄어 2009년부터는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질렀고 2015년 기준 여학생 74.6%가 대학을 진학하고 있으며 남학생(67.3%)에 비해 7.4%나 앞섰다.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이 높은 것을 보면 교육은 경제적인 면에서 남녀격차의 원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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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임금수준은 2015년 기준 남성의 68%를 기록했다. 수치의 %는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수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성 월평균 임금은 2015년 기준 남성의 68%를 기록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
여성, 남성 모두 여성 취업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육아부담’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관행’을 꼽았다. 맞벌이여도 육아와 가사는 여성의 몫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주변의 20, 30대 여성들은 성토한다. 맞벌이의 경우 남편의 ‘도와준다’라는 개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육아와 가사가 여성의 주요 책임으로 인식될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남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업은 점점 여성 고용과 재취업을 꺼리게 되고 맞벌이 가정은 외벌이로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높은 집값과 교육비를 남편 혼자 감당하기는 버거운 일이다.
자녀가 있는 30대 기혼 여성의 경우, 출산과 육아로 자연스레 경력단절에 이른다. 출산과 육아의 부담을 이겨내려면 그 누구보다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오롯이 여성 개인의 능력으로 가정과 사회의 문제점을 이겨내게 하는 굴레나 다름없다. 여성의 고위직 승진이 막힌 ‘유리천장’이란 사회용어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1979년인데 여전히 이 개념은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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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재취업을 위해 수업을 듣고 있는 수강생들의 모습. |
어릴 땐 여자로 태어났다고 하여 특별히 싫을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사회에 발을 디디며 조심하고 두려워해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것들이 많아졌다. ‘안전성’의 측면에서도 현재 우리사회를 돌아보면 남성보다는 여성으로 살아내는데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2주간의 배낭여행을 떠나며 부모님보다 주변 어른들의 걱정이 더 컸다. 아들만 둔 교수님은 “너희 부모님은 여자 혼자 여행가는 걸 허락하셨어? 나 같으면 너 안 보낸다. 가서 꼭 연락해라.”는 말을 두어 번 반복하셨다.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말임은 물론 알고 있다.
우리사회는 주로 피해자가 되는 ‘여자’가 먼저 선제적으로 조심할 것을 강조한다. ‘가해자’를 만들어내지 않고, 가해자를 줄이려는 ‘가해자 중심’의 캠페인과 교육은 왜 병행되거나 앞서지 못하는 것인지 항상 의아했다. 마치 저급한 섹슈얼 저널리즘처럼 범죄보도에서도 ‘피해자’ 여성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왜 가해자가 아니라 ‘여교사 성폭행’, ‘여조교 성희롱’이란 명명으로 여성 피해자만을 부각하는가?
2014년 성폭력 상담 건수는 2000건이 넘고, 2012년 통계에서 성폭력 범죄 건수는 2만 건을 넘었다. 성폭력이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지는 모든 신체적, 언어적, 심리적 폭력’임을 주지한다면 실제 통계에 잡히지 않은 범죄 건수는 훨씬 높다.
여학교를 맴도는 바바리맨 한번 마주치지 않고 졸업하면 굉장한 행운아로 일컬어졌다. 외모를 평가당하거나 언어적 심리적 폭력을 당하는 일 또한 비교적 흔하다. 이것이 비상식적이고 옳지 않은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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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예방 주간을 맞아 울산해바라기센터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사진=울산해바라기센터) |
주요 강력범죄 피해에 있어서 10명 중 9명은 여성이었으며 이는 그 어느 국가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라고 한다. 그 어느 곳보다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야할 가정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여성이 많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가정폭력 사건은 61만5천607건으로 하루 평균 562건에 달하는 수치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가정폭력 행위자 상담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행위자의 82.4%는 남성이라고 한다.
여성과 남성의 편을 가르고 여성이 ‘일방적 피해자다’ 라고 규정하려 이 많은 통계자료를 살펴본 것이 아니다. ‘여자’ 대신 ‘인간’의 관점으로 너무나 당연한 평등성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던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의 투표권은 당연스레 배제되었다. 여성의 선거권을 기본권으로 파악하는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여성을 사유물로 여겼던 고대 그리스의 관점은 지극히 무지몽매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현재의 우리사회에서 남녀차별을 느끼는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남자형제 뒷바라지 하느라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할머니, 어머니 세대에 흔한 이야기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지 않던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남녀차별을 근원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이 당연하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을 생각해보는 것,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나누고픈 화두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진윤지 ardentmithr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