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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 NH 농협이 ‘장기은행’?
[서울] 조수연 marigold_@hanmail.net
“한 가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오상진 아나운서, 서현진 아나운서, 손정은 아나운서
외 2명에게 두 개의 병을 줬습니다. 병에 밥풀을 넣고 그
표면에, 한 병에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다른 병에는 ‘짜증나,
나쁜 놈, 죽여버릴거야’라고 쓰인 종이를 붙였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모두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한 병에서는 누룩 냄새가 났고, 한 병에서는 시큼한 악취가
났습니다.”
말과 글에 힘이 있다는 한글 홍보대사인 최재혁 아나운서의 말이었다. 그는 이어
말이 왜 중요한지, 올바른 말을 왜 사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최재혁 아나운서의 강연에 열중하는 사람들. |
“해리포터가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봐야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마법을 부릴
수 없지요.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글에 엄청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의
힘을 믿은 고대인들은 글을 몸에 지니며 힘을 얻고자 했고, 저주할 때도 글을 상대방의
몸에 붙였습니다. 올바른 소통이 되었을 때 말은 비로소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합니다.
세종이 문자를 만들고자 했던 보다 깊은 뜻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글
쓰고 있는 한국인은 행복한 사람”
10월
8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의 앞마당에, 10월 6일부터 12일까지인 한글주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최로
한글공간전이 열렸다.
한글공간전 개막식 모습. |
이
행사 중 하나로 ‘명사들의 한글 이야기’가 열렸다. 매일 다양한
분야에서 한글을 알려온 명사들이 나와 한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데, 이날 첫 강사로
나선 최재혁 아나운서는 ‘세종과 올바른 한글 사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선
시대에서 지식은 힘이었습니다. 지식을 가진 자만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죠. 그러나 서민들은 글을 잘 몰랐고, 양반이 내민
문서에 도장을 찍어 영문도 모른 채 죄인이 되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세종은 어렸을 때부터 옥사에
드나들며 죄인의 이야기를 듣곤 했기에 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현실에 안타까워했고 그들에게 연민을 가져, 정보의 소통이 될 수 있는 쉬운 문자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신하들은 반대했지만,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글은 한동안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다. 창제 당시부터 양반들은 무시했고, 일제 땐 핍박받았으며 해방 후엔 한자에 밀렸다.
지금은 외래어와 알 수 없는 신조어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렇지만 한글은
창제 원리와 과학적인 면모 등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그 우수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 여기저기에 한글 학교가 생기고, 세계 학자들은
한글을 연구하며 칭찬하고 있다. 최 아나운서도 한글은 세계에서
인류가 만든 가장 훌륭한 음성문자 표기체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한글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미국에서
만난 사람이 저에게 ‘당신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더군요. ‘20세기에 들어서 세계음성학자들이
겨우 생각해낸 음성적 변별력을, 문자의 자질에 넣어서 만든 놀라운 문자를 쓰고
있는 한국인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앞으로 가면 한글의 위대함은 더욱더 놀랍게 펼쳐질 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농협, 외국인에겐 ‘장기은행’
최 아나운서는 이어 우리의 한글사용 실태를 지적했다.
“그렇게
말하는데 문득 정작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NH 들어보셨죠? 농협을 NH라 부르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거기에 Human body
Human bank라 쓰여 있던데, 외국인들은 장기은행인 줄 알아요. 그리고 미소지움,
푸르지움도 말이죠. 사실 이 단어 자체는 뜻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글로 하면 재미없으니까
영어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죠. 요즘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죠. 영어처럼 해야 더 그럴
듯 해보이고 더 멋있어 보여서, 뜻에 상관없이 영어처럼 하려고 하는 것이죠.”
최재혁 아나운서의 강연은 한글 사용의 문제점과 올바른 사용의 중요성을 일러줬다. 강연 내용에 공감했다는 시각디자인과 학생인 유요한씨(21·남)는 “불필요한
영어 남용은 좋지 않게 생각했다”며 “외국인이 알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영어보다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오한주씨(22·남)는 “한글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문자이고, 정확한 역사를 지닌 가치 있는 글”이라며 “초·중·고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 한글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글공간전을 둘러보던 정모씨(30·여)는 “예전만 해도 방송에 맞춤법에 맞지
않는 자막 때문에 거슬렸는데,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이어 그녀는
“대학생들이
정체성 없는 말을 쓰곤 해서 걱정스러웠는데, 오늘 행사에서처럼
한울 등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학생을 보고 좋았다”고 말했다.
한글의
새로운 가치 발견, 한글공간전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
11일까지 닷새간에 걸쳐 한글공간전을 진행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한글의 멋을 담은
한글 간판 사진전, 한글의 창제원리 등을 다룬 전시, 시민이 발견한 아름다운 한글의
모습 등을 담은 한글상상 UCC 공모전 수상작 상영, 한글 영상작가전 등이다.
전시물을 유심히 보는 사람들. |
타이포그라피로 한글을 알리고 있는 11개 학교의
연합동아리 ‘한울’은 한글로 꾸민 티셔츠와
한글 자음을 이용해 만든 캐릭터 ‘수세미’가 그려진 가방, 카드지갑 등을
선보였다.
한글을 이용해 만든 티셔츠 및 캐릭터 상품. |
한울의 이진욱씨(26·남)는 “평생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영어보다 좀 더 한국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잘 써봐야겠다고 생각해 활동을 시작했다”며 “영어와
달리 조합자라 연구할 소지가 많은 한글의 근본을 살리면서, 정보 전달을 잘하기
위한 방향으로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 김다솜씨(20·여)는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을 디자인이든 예술이든 어떤 방법이라도 전 세계에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12달의 순우리말. |
오한주씨는
“한글날이 하루뿐이지만, 이렇게 긴 기간에 걸쳐 행사를 개최해 전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더 한글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 의미가 깊다”고 했다. 그리고
“이 행사에 참여해서 한글의 예술적인 면, 독창적인 면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내일 한글이 사라진다면?
우리 고유의 글, 한글이 올해로 563돌을 맞이했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해왔던
한글, 우리들은 매일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내일
한글이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자. 영어로는 나타낼 수 없는 말이 많지 않은가. 한글이
아니라면, 자신이 정작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세종이 만든 한글. 한글의
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한다.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글을 소중하게 여기고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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