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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3000원 받고 3만 원 물어서야 되겠어?
취재기자를 하다보면 일반인들이 느끼기엔 어떻게 하면 형식에 맞게 기사를 쓰나 싶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런지 모르겠으나 기자 자신은 그날그날의 사건기사만 쓰다보니 그 깊이가 없고 단순화되며 매일 마감에 쫓겨 시간이 없다보면 한계에 부딪치는 짧은 지식이 머리 속을 허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어 가면 갈수록 내가 왜 기사를 써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거나 회의할 때도 많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취재기자 생활이 어느덧 여느 직장인처럼 지시하는 일만 하고 창조성이 없어지는 그저 다달이 나오는 월급만을 기다리게 되는 신세가 되기 일쑤다.
취재한 한 꼭지의 기사 속에는 사람이 들어가고 그 사람들이 만든 사건이 주된 내용이므로 기사를 읽는 일반인들은 제목과 대충의 내용만으로도 훌쩍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관심 있는 내용이라면 끝까지 읽기도 하지만 그 기사를 쓴 기자라는 '종족'은 하루하루 기사내용 속에만 파묻혀 세상을 모를 때가 부지기수다.
기자생활하는 동안 내부에서 지시하는 취재건만 해도 오늘 하루가 다가는 상황에서의 현직 기자 지식 쌓기는 요원하고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는 세상의 흐름과도 괴리되기 쉽다. 이런 점이 기사를 써야만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측면이 다분해 나는 미련없이 기자를 박차고 뉴스 바깥 실생활을 몸으로 노동으로 느껴보기 위해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다.
첫 날부터 날이 거듭될수록 주유보다는 세차쪽으로의 활동비중이 더 높아져 갔다. 10년이 넘은 일본제 주유기도 낡아 모터를 돌리는 레버를 올릴 때 걸핏하면 모터가 돌아가지 않고 그 옆 주유기로 하려고 보면 금액 표시된 곳의 액정이 깨져 있어 주유기에서 찍은 금액이 안보이는 그런 주유기가 고생을 시키더니만 세차기로 가보니 주유기보다 더 늙어보였다. 물어보니 15년 됐다고 한다.
돌아갈까 궁금했는데 잘도 돌아간다. 그곳에서 '진정한 세차의 정수'를 배웠다. 세차기가 두 번 왕복 후 건조기가 내려와 건조할 때 걸레로 뒷 트렁크부터 물기 제거하고 주유기 다룰 때는 레버를 손으로 올려야만 하고 바닥에 기름이 떨어졌을 땐 부직포로 흡수하면 되고….
이러한 생활을 거의 쉬지 않고 2년간 하다보니 오른손목이 버티지를 못하고 기름이 쏟아지는 역할을 하는 3단 주유기의 1단조차도 올리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르바이트를 한 2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관련한 참으로 많은 '눈물의 비화'가 직·간접적으로 내 귀에 들려왔다.
혼유(경유차에 휘발유를 넣는 주유사고)를 해 해당 차 엔진을 교체했던 몇 백만 원의 돈을 갚기 위해 몇 달 동안 무보수로 일해야만 했던 여자 알바, 주유소에 딸린 세차장에서 세차기를 돌리다가 원통형 플라스틱 솜털기둥이 차지붕을 덮치는 사고로 한 달 알바비를 받지 못한 알바, 주유 중 차 주유구에서 기름을 토해내 손님에게 호되게 꾸중 듣고 주유소 사장에게도 욕 섞인 말들을 들어야 하는 아르바이트 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시간당 2500원 내지 3000원을 주면서 주유소 내에서 사고가 났다 싶으면 사장이 알바에게 그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것과 시제(주유소에서 정한 특정 시간대의 매출 마감 정산)를 맞추고 나서 판매한 기름양보다 들어온 돈이 적으면 '삥땅'으로 알고 해당하는 돈을 알바에게 물게 하는 것은 주유소 사장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알바에게 덧씌우는 꼴밖에는 안되는 행위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젊은 휴학생 또는 고등학교 자퇴생, 고졸 사회 초년병들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주유소가 직영인지 아닌지(직영이면 자영주유소와 시급이 동일하면서 하는 일은 정확한 서비스정신 무장교육 탓에 그 이상 '빡세다'), 시급은 노동부에서 제시하는 최저 생계비 시급 3100원인지 아닌지, 세차장이 딸려 있는 곳인지 아닌지, 혹 시제마감 시 들어온 돈이 부족할 때 그 돈을 알바가 전적으로 물어야 하는지, 주유소 내의 사고가 100% 실수로 일어나는 사고일진대 그럼에도 그 사고를 낸 알바가 사고비를 물어야 하는지 아닌지 등을 알바를 하기 전에 물어보고 일해야 한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가서 사장과 얘기하다보면 내 경험상 거의 90% 이상은 첫 인상과 고분고분함으로 알바를 뽑기 마련이다. 이것 저것 물어보면 신경쓰이는 사람으로 생각해 안뽑게 되고 그전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안온다.
생활정보지 주유소 아르바이트 광고안에서는 시급이 나오지 않지만 알바를 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은 시급을 궁금해 하면서도 물어보지 못하고 들어와서 기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일하며 하는 말교환으로 이곳이 일하기 괜찮은 곳인지 아닌지를 어렴풋이 판단하기 마련이다.
내가 일한 주유소는 지긋지긋한 세차장만 빼면 일했던 아르바이트생 모두가 가족같이 일하던 곳이었다. 사고가 나더라도 어린 아르바이트생과 똑같이 비용을 받으면서 소장 역할을 했던 내가 무마를 했고 기타 모든 일들은 사장을 거치지 않고 우리들끼리 처리했다.
우리끼리의 처리방식이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이뤄지게 하고 일하면서 생각해둔 고충과 쉬어야 되는 개인적인 일 등이 술술 풀리게 하는 힘이 됐다.
그러나 주유소 내 사고에 있어서는 모든 주유소가 발생하고 발생할 여지가 다분한데 사고란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지라 사고낸 알바생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사장들 스스로가 책임회피를 하기 위해 만든 '덫'일 뿐 사고가 안나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한 측면이 많다.
세상이 다 그렇지 않느냐 어느 가게에서 알바를 하든 직원으로 있든 들어온 돈이 틀리면 내부자들은 모두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하지 않느냐고 말을 하지만 주유소 알바처럼 틀린 돈을 알바 자신들의 돈으로 메꾸게 하는 곳은 흔치 않다. 시급 2500 내지 3000원으로 하루 10시간 해도 2만5000원에서 3만 원을 받는데 몇 만 원의 돈이 부족할 때 그 돈을 메꾸게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국정넷포터 권재현(azdad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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