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나에겐 도서관이 책을 읽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작업실이기도 하다. 외부활동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러다 보니 매주 1, 2회 도서관에 들른다. 반나절 이상 도서관에 머물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쓴다. 그러면서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행사도 살펴본다. 도서관 출입문 옆 디지털 스크린에는 도서관의 주요 행사를 알리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도서관도 진화하고 있다. 쾌적하고 산뜻한 인테리어는 기본인 듯하다. 그래서 도서관에 자꾸만 드나들고 싶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교육 등도 양질의 프로그램이어서 시간을 내어서 참여해 볼 만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별칭답게 지난 10~11월에는 유난히 도서관, 책과 관련한 행사가 많았다. ‘2024 제61회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10.16.~10.18.)’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전국도서관대회는 매년 가을, 전국의 한국도서관협회 회원 도서관과 도서관인(사서), 그 밖의 도서관 관계기관, 단체, 업계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도서관계 축제로 국내외 도서관 정보와 정책 등을 공유하는 학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제61회 전국도서관대회 개회식에서 2024년 도서관 운영 및 서비스 발전에 기여한 우수도서관을 선정했다. 전국적으로 48곳이 있다. 서울에도 서울도서관, 선유도서관, 강서도서관, 고척도서관 등이 선정되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선정한 우수도서관은 운영 및 서비스 측면에서 선정한 거라서 도서관의 외양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우수도서관 목록에 든 48곳의 도서관이 어떻게 도서관을 운영하고 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올해의 우수도서관 목록에서 춘천을 주목했다. 춘천에 소재한 도서관 두 곳이 우수도서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먼저 올해 처음 신설된 작은도서관에 춘천의 스무숲도서관(https://cafe.naver.com/evervill2008)이 있다. 검색해보니 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에 입주해 있는 그야말로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다. 최근 재건축한 아파트엔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이 많다. 그중 도서관이나 북카페 등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민에게 허용된 공간이어서 외부인들은 이용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스무숲도서관이 달리 보였다.
또 춘천시립도서관(https://library.chuncheon.go.kr/)이 있다. 춘천시립도서관을 검색해보니 도서관 내 장난감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책을 읽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최근에 도서관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도서관에 북카페가 입주하고, 공연, 전시, 교육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가 어린아이와 함께 도서관 나들이하는 게 쉽지 않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어린이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으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시간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또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갈 수 있다면 어린아이가 자연스레 도서관 나들이가 즐거워질 것이다. 도서관 내 장난감도서관이야말로 신선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문불여일견(白文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직접 가서 봐야겠다. 그래서 춘천으로 나들이했다. 먼저 도착한 곳이 춘천시립도서관이다. 남춘천역에서 춘천시립도서관으로 가는 버스 편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춘천시립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춘천국민체육센터가 있다. 그러고 보니 춘천시립도서관을 중심으로 어린이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석사유아숲체험장, 춘천국민체육센터가 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문학, 문화예술, 체육 등을 통합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 가족이 모두 손잡고 이곳으로 나들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춘천시립도서관 출입구 바깥 벽면에도 그림책을 북큐레션하고 있었다. ‘겨울 낭만 가득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라는 문구 앞에 발길이 머물렀다. 어떤 그림책이 있을까? ‘씽씽, 쌩쌩 겨울이에요!’, ‘겨울이 궁금해’부터 ‘눈이 들려주는 10가지 소리’, ‘안녕, 겨울’ 등 그림책의 겉표지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도서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게 정면에 있는 계단이었다. 도서관 중앙이 뚫려 있는 구조다. 계단 곳곳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계단은 평상시에 휴식공간이자 독서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서관에서 공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가 열릴 때면 이 계단이 공연장의 객석으로 바뀐다. 시민과 함께하는 도서관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2023년부터 시작한 공연 프로그램으로, 도서관이 시민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등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1층에 장난감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이 마주 보고 있다. 장난감도서관이 있어서 어린아이들의 방문이 많다. 아이를 동반한 보호자가 같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벽면에 장난감이 가득하다. 나무로 만든 장난감이다. 바닥에는 디딤바닥 콘텐츠가 있어서 아이들이 뜀을 뛰면서 게임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뛰면 층간소음이 생길 텐데 하는 우려도 잠시, 이곳은 1층이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아도 좋다. 벽면에 조립할 수 있는 레고도 있다. 아이들이 벽면에 대고 레고블록을 끼우면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린이도서관에는 별도의 유아자료실이 있다. 그곳에선 아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줄 수도 있다. 장난감도서관에서 놀고 유아자료실에 와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신나게 놀았으니 이제 책을 읽자”라는 부모의 말에 아이는 기쁘게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1층 장난감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 사이 로비에 그림책이 북큐레이션되어 있다. 이곳에선 그림책에 활동지가 있어서 아이들이 즉석에서 체험할 수 있다. ‘나만의 마법 핫초코와 컵을 만들어보세요’라는 안내문과 활동지가 있었다.
중앙의 계단 측면에도 북큐레이션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계단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다가 문득 책이 눈에 들어오면 책을 꺼내 읽을 수 있게 했다. 계단이 끝나는 2층 입구에도 그림책 한 권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도서관 바깥 벽면에도, 1, 2층 로비에도 그림책이 있어서 오가는 아이들의 시선을 붙들어두고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여러 곳에 알록달록한 그림책을 전시해뒀으니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겠다.
2층 자료실로 가니 테이블이 눈에 띈다. 창가에는 1인 좌석이, 입구 쪽으로 2인, 4인 테이블이 있다. 좌석마다 독서등이 설치되어 있다. 실내가 환한데도 개인 독서등이 있어서 원하는 사람은 독서등을 켜 둔 채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노트북 등을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 다목적실이 있다.
자료실에 따로 북큐레이션을 해둔 코너가 있었다. ‘춘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 코너가 눈에 띈다. 춘천하면 단연코 춘천 출신의 소설가 김유정이 연상된다. 경춘선의 김유정역은 우리나라에서 철도역 이름을 인물명으로 한 첫 번째 사례다. 그런데 춘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김유정의 ‘동백꽃’ 외에도 많다. 신경숙의 ‘외딴 방’, 한수산의 ‘안개 시정거리’, 오정희의 ‘불꽃놀이’ 등등이 있었다. 춘천학연구소에서 발간한 향토자료도 갖춰져 있었다. 춘천에 거주하거나 춘천을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중국,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하고 다문화가정도 늘어난 만큼 다문화코너도 있다. 여기엔 중국 책, 일본 책이 있다.
장애인 열람석도 있고, 탁상용 독서확대기, 장애인용 PC 등이 갖춰져 있었다. 장애인 열람석이 별도의 공간에 있지 않은 게 좋았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이용하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춘천시립도서관이 치매 극복 선도도서관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리면서 치매 관련 도서를 찾기 쉽게 별도의 서가에 진열해두고 있었다.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된 춘천시립도서관, 어떤 강점이 있을까? 춘천시립도서관 도서관진흥팀장은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상호대차 서비스다. 지난 2023부터 상호대차 서비스를 시행하여 올해 10월 말 기준으로 12,744권의 도서를 이용하는 결과를 내는 등 시민의 이용 및 만족도가 높았다. 팀장의 안내로 상호대차 공간을 둘러봤다. 춘천시립도서관이 상호대차 서비스를 하는 춘천시 관내 도서관들에 보낼 책들을 모아두고 있었다. 거기엔 스무숲도서관에 보낼 책들도 있었다. 상호대차 서비스의 시행으로 굳이 춘천시립도서관에 오지 않아도 춘천 시내 곳곳에서 춘천시립도서관의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도서관 직원들의 발품은 늘어났지만, 아직은 도서관 직원이 오가면서 책을 전해주고 있다.
둘째, 시끄러운 도서관이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독서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춘천시립도서관은 시끄러운 도서관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길 거리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1층에 조성한 장난감도서관도 있고 또 시민과 함께하는 도서관 콘서트가 열리고, 인문학 강좌, 부모성장 교육, 어린이문학창작교실, 태몽 그림책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1층 북카페는 환경교육장을 겸하고 있었다. 다회용 컵 반납함, 무인 페트병 수거함, 세제 리필스테이션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을 이용하고, 페트병을 수거하면서 은연중에 자원순환을 배울 수 있으리라.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릴 적부터 길러야 할 습관으로 독서도 포함된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춘천시립도서관은 시설과 프로그램 모두 아이와 함께 나들이하는 가족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춘천시립도서관에 방문하면서 인근에 있는 체육센터, 유아숲체험장, 박물관 등도 다녀갈 수 있으니 온종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도 즐거울 것 같다.
도서관 입구에 스마트도서관도 있었다. 춘천시립도서관이 일 년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게 아니다. 도서관이 문을 닫았을 때 스마트도서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과 남춘천역에도 스마트도서관이 있다. 서울로 되돌아갈 적에 남춘천역에 있는 스마트도서관에 들렀다. 남춘천역 1층에 조성된 스마트도서관은 밀폐된 공간에 마련되어 있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동안 잠시 추위나 더위를 피할 수 있다. 특히 남춘천역에 있는 스마트도서관은 남춘천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책을 빌려서 기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 서울 지하철 역사에 스마트도서관이 있는 것과 같다. “기차 안에서 독서!” 캠페인을 벌여도 좋을 것 같다.
춘천시립도서관을 둘러본 뒤 스무숲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스무숲도서관은 춘천시립도서관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다. 퇴계농공로 교차로에서 멀리 스무숲솔빛공원이 보였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가는 공원의 풍경 끝에 스무숲도서관이 있다. 현진에버빌 1차 아파트 입구의 관리동 2층에 스무숲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1층엔 늘봄어린이집이 있다. 관리사무소와 마주 보는 공간에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는 셈이다.
스무숲도서관은 15주년을 맞이했다. 처음엔 관리사무소 옆 좁은 공간에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책을 읽어주면서 출발했단다. 도서관의 공간이 협소하지만, 사방에 책이 꽂혀 있고, 안에 또 별도의 공간이 있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스무숲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에 놀랐다. 작은 도서관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1층에 늘봄어린이집이 있어서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이곳에 들르는 엄마들이 많았다. 스무숲도서관의 강점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어서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아파트를 드나드는 아이부터 성인, 어르신까지 이곳에 들러서 책을 읽다가 간다. 또 커피 등의 음료도 마실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하나둘씩 동네 사랑방처럼 오가다 들르고 있었다. 북큐레이션한 책들을 살펴보다가 책을 빌리기도 했다.
스무숲도서관은 지속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1월 하순에도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외에 초등학생 대상으로 생활과학교실, 어르신 대상으로 스마트폰 활용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스무숲도서관은 어르신 일자리도 창출하고 있었다. 춘천시청이 춘천지혜의숲과 협의해서 어르신을 작은 도서관에 파견하고 있다. 안미자 어르신(66세)은 과거 도서관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퇴직한 뒤 다시 일자리를 찾은 게 도서관이다. 안미자 어르신은 “보다시피 60대 중반이어도 체력적으로 뒤처지지 않아요.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은퇴하고 집에 있으려니 답답했어요. 도서관이 디지털화하면서 대출 및 반납 업무도 컴퓨터로 처리해야 해서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책을 좋아하니깐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사회적협동조합희망리본에서 2명, 춘천지혜의숲에서 2명이 나와서 교대하면서 활동가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문체부는 도서관 운영 우수사례를 발굴하고 확산해 국민에게 양질의 독서 문화생활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매년 우수도서관을 선정, 정부포상 등을 수여하여 격려하고 있다. ‘2024년 도서관 운영 유공’ 포상은 ▲도서관 경영 ▲인적자원 ▲정보자원 ▲시설환경 ▲도서관서비스 5개 영역에서 평가가 이뤄졌다. 올해는 17개 시·도와 시·도 교육청, 교육부, 국방부, 한국전문도서관협의회 등에서 우수도서관 후보를 추천받아 전문가 심사위원회의 및 문체부와 교육부 공적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우수도서관을 선정했다. 특히 올해는 작은도서관 활성화 기반 조성을 위하여 ‘작은도서관’ 부문을 새롭게 신설했다. 내가 방문했던 춘천시립도서관, 스무숲도서관은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된 곳이다. 두 도서관은 규모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과연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이용자가 자꾸만 다시 방문하고 싶고 이용하고 싶은 도서관이라는 점에서 우수도서관으로 꼽을 만했다.
집 주변에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이 많아질수록 국민이 시설을 이용하기 쉬워진다. 최근에 집 근처에 크고 작은 규모의 도서관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 그런 도서관이 단순히 서고만 갖춰둔 공간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와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서 도서관 이용자로서 무척 반갑다. 내년엔 또 어떤 우수도서관이 탄생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