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우리 문화재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일제는 민족정기를 끊고자 경복궁을 헐어내 조선총독부를 지었고, 종묘와 창덕궁을 연결하는 길을 차단하고 도로를 지었습니다. 왕실 여인의 공간이자 효(孝)의 상징인 창덕궁은 놀이기구와 동물을 구경하는 창경원으로 격하시켰습니다. 덕수궁도 석조전을 이왕가미술관으로 바꾸는 등 악의적으로 문화재를 훼손했죠.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전국의 문화재를 제멋대로 복원하거나 콘크리트를 부어 훼손시키곤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문화재도 일제강점기 때 콘크리트 복원의 희생물이 됐습니다. 바로, 미륵사지 석탑인데요. 미륵사지 석탑은 해체 후 복원이라는 과정을 거쳐 지난 2019년 4월부터 국민에게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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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미륵사지 관광지. 미륵사지 석탑, 국립익산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
현재는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미륵사지 일원을 관광지로 조성해 지난 8월 공식 개장했는데요. 전통문화체험관, 광장, 관광안내소, 자연지형녹지 등의 다양한 관광·편의시설도 있고, 국립익산박물관에선 백제 시대의 문화와 미륵사지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 공사만 18년, 미륵사지 관광지 조성 공사만 16년이 걸린 백제 시대 불교 문화의 상징이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 우리의 찬란한 불교 문화와 문화재 복원 기술이 집약된 미륵사지 석탑과 국립익산박물관을 둘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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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 조감도. |
먼저, 미륵사와 미륵사지 석탑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국립익산박물관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미륵사와 미륵사지 석탑을 누가 지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습니다.
2009년, 미륵사지 석탑 복원을 위해 서탑을 해체하던 중 미륵사 창건에 관한 기록을 새긴 ‘사리봉영기’를 통해 미륵사가 백제 무왕 재위 기해년(639년)에 창건됐다는 구체적인 역사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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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 창건 과정의 열쇠, 사리봉영기. |
미륵사지 석탑은 서탑과 동탑, 총 2개가 있습니다. 동탑의 경우, 사진과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근현대에는 이미 땅에 묻힌 기단부를 제외하고 완전히 소실된 뒤였고, 탑의 부재만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서탑은 반쪽이나마 탑의 형체는 유지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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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제사리봉영기(金制舍利奉迎記) 원문. 여기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미륵사의 역사가 알려지게 됩니다. |
구체적인 기록은 1915년에 나타납니다. 벼락에 의해 탑이 파괴됐기 때문이죠. 이때 탑의 상태는 붕괴 직전이었고, 일제는 콘크리트로 급히 미륵사지 서탑을 덮어버립니다. 탑이 붕괴되지는 않았지만, 서탑은 콘크리트 범벅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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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에 의해 파괴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출처=문화재청) |
동탑과 서탑 중 먼저 복원된 쪽은 동탑입니다. 하지만 동탑은 2년 만에 복원돼 졸속 복원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허망과 허상의 복원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미륵사지 동탑은 하얀 화강암을 기계로 깎아내어 탑을 쌓아 기존의 서탑과 부조화가 심하고, 표면 질감이 너무 매끈하여 상당히 부담스러운 건축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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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동탑이 보입니다. |
미륵사지 서탑 복원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됐습니다. 동양 최대의 석탑이라는 점과 국보 제11호라는 점, 그리고 맞은편 동탑이 졸속 복원됐다는 점에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2001년 10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본격적인 해체 보수 정비를 추진하며 미륵사지 서탑 복원 작업이 시작됩니다.
미륵사지 서탑 복원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일제가 사용했던 콘크리트 185톤에 대한 제거 작업. 석탑에 사용된 원석과 붙어있는 콘크리트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치과용 드릴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미세한 콘크리트까지 모두 제거하겠다는 복원 의지가 드러났죠.
무려 18년의 기다림 끝에 2019년 4월에 복원 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현재 우리가 ‘미륵사지 석탑’이라고 부르는 미륵사지 서탑은 그렇게 세상에 다시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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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딛고 18년 만에 복원한 국보 11호 백제 미륵사지 석탑. |
2022년 10월의 미륵사지는 어떤 모습일까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전라북도, 익산시는 미륵사지 석탑 복원과 함께 미륵사 일대를 문화 관광자원으로 삼아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먼저, 익산에서 꽃피운 백제 문화와 미륵사의 문화를 상세히 알려주는 국립익산박물관을 이관했고, 미륵사지 석탑까지의 길을 재정비했습니다.
특히, 미륵산을 배경으로 동탑과 서탑, 미륵사지 터가 한눈에 펼쳐지는 광장은 기존 지형과 자연을 최대한 보존했습니다. 교통약자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어 접근성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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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보물입니다. |
익산 미륵사지는 문화재 복원에서 ‘아픔’과 ‘환희’를 모두 겪었습니다. 과거의 졸속 문화재 복원을 반성하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정교한 문화재 복원을 이뤄냈죠. 백제의 불교 문화와 함께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의 좋은 사례이기도 한 미륵사지 석탑. 찬란한 백제 문화의 숨결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