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에 형형색색 각양각색 연등이 불을 밝히고 행렬했다. 202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연등회’의 꽃, 연등행렬이 찬란하게 펼쳐졌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한 주 앞두고 지난 5월 20일 열린 연등행렬은 흥인지문에서 종각까지 이어졌다. 종로 일대에는 이른 시간부터 시민들이 행렬을 기다렸다.
연등행렬을 위해 종로1가부터 흥인지문까지 총 10곳의 중앙 버스정류소가 도로 양옆으로 이동했다. 넓은 도로에서 연등회 글로벌 서포터즈 청년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탑골공원 앞에서는 흥인지문에서 출발하는 행렬을 기다리며 공연이 이어졌다. 연등회 프랜즈의 플래시몹 공연에 많은 시민들이 함께 박수치며 호응했다. 봉은사 연희단과 마하무용단의 부채산조와 춤이 이어지자 외국인들의 반응이 더 뜨거웠다.
시간이 되자 드디어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등회 깃발을 선두로 취타대가 이어지고, 사천왕등을 비롯한 장엄등이 행렬을 이끌었다.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에 작은 정성들을 더한 축제였다. 조계사를 비롯한 조계종의 큰 사찰만이 아니라 천태종과 태고종, 그리고 크고 작은 관련 단체들과 학생들도 저마다 정성들여 만든 등에 불을 밝히고 뒤를 이었다.
어린이들과 청년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하고, 태국과 베트남, 네팔과 미얀마, 스리랑카 등 동남아 불교 신자들도 이국에서나마 부처님 오신 날을 기뻐하며 등을 들고 함께하는 축제였다.
범패에 맞춰 바라춤을 추는 스님들의 행렬도 지나갔다. 차로 이동하느라 왁자지껄한 가운데 잠시 스칠 뿐이어서 아쉬웠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범패와 스님들의 바라춤은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다양한 연등이 등장했다. 어둠 속에 불을 밝힌 등이 참 아름다웠다. 그 옛날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기도할 때도 많은 사람이 등을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등이 다 꺼져도 한 가난한 여인이 정성으로 밝힌 등불은 끝까지 밝게 타올랐다. 부처님은 지극한 마음으로 등을 밝힌 여인에게 ‘등불 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라며 칭찬하였다고 한다.
‘가난한 여인의 정성’은 그리스도교의 성경에도 등장한다. 예수님도 가난한 여인의 아주 작은 헌금을 칭찬했다. 보잘것없어 보여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은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연등회의 기원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연등행렬에서는 참 많이들 웃었다. 행렬하는 사람들은 웃으며 인사를 전하고, 행렬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박수로 격려하였다. 웃음과 박수로 함께하는 건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종로 거리에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연등회는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지난 202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전통적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나누는 축제이지만 사회가 힘들고 지쳤을 때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의 경우에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열리면서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으로’라는 주제로 축제가 이어졌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연등회가 ‘시대를 지나며 바뀌어온 포용성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점’, ‘기쁨을 나누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제 연등회는 온 세상 사람 모두와 함께 나누고 누리는 축제가 되었다.
올해부터는 부처님 오신 날도 대체공휴일이 적용된다. 자비를 생각하고 사랑을 나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라고 요청한다. 고달픈 인생길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고해(苦海)를 헤쳐 나가야 한다. 연민과 자비로 서로가 서로에게 어둠을 밝히는 등이 되어주면 좋겠다. 모처럼 휴식을 취하며 마음을 나누는 자비의 봄축제, 부처님 오신 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