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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스포츠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2022.12.20 남상우 충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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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우 충남대학교 교수
남상우 충남대학교 교수

“생활스포츠에 너무 많은 예산을 뺏겨 국제스포츠경기대회에서의 엘리트스포츠 성적이 안 좋아졌다는 불만들이 많던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업 준비 중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에서 한 기자가 물은 질문이었다. 덧붙여 최근 엘리트스포츠계 몇몇 분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데, 과연 이와 같은 주장이 타당한건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 중이라 했다.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하기 어려울 땐 되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가 먼저 물었으니 네가 먼저 답해야지’가 느껴졌던 짧은 침묵 끝에 나왔던 기자의 대답은, “재정 문제로만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였다. 그 당시에는 그 분께 충분히 설명해 드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에 충분한 설명을 담아본다.

엘리트스포츠 성공은 사회적 현상

엘리트스포츠 성공으로 대표되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의 성적을 단 하나의 요소로 평가할 수는 없다.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정책 기조를 손쉽게 부정하려는 의도 차원이라면 재정지원이 부족해 성적이 안 좋아졌다는 의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원한다면, 문제의 원인이 다차원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단순한 진단과 처방은 속을 시원하게 만들지는 모르겠으나, 개선을 위한 정확한 해결책으로 이어지긴 어렵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엘리트스포츠는 몇몇 요소만으로 구성된 단순한 세계가 아니다.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우사인 볼트도 최고의 경기력을 위해 복잡다단한 ‘시스템’에 의존했다.

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성적을 거둔 우리나라 양궁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기업의 재정지원 덕분이었을까?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쟁시스템, 코칭 역량, 양궁 문화, 시설, 과학지원, 선수 선발시스템, 국민적 열망, 급기야 ‘운’도 필요하다. 게다가 선수 개인의 역량과 같은 미시적 요소에서 정책이나 지원시스템과 사회문화적 분위기라는 거시적 요소까지, 양궁의 올림픽 메달 획득은 복잡다단한 요소가 적시에 그 합이 맞춰졌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사회적 현상’, 즉 ‘한 개인의 동기 수준에서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떠받치는 9개의 기둥

무엇이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이끄는가? 이 중요한 질문에 답하고자 지금껏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나온 명료한 결론 하나가 도출되었다. “국제스포츠경기대회에서의 경쟁은 이제 ‘시스템’ 간의 경쟁이 되었다.” 이는 매우 상식적이면서도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결론이다. 많은 이들이 국제스포츠경기대회에서 보는 건 탁월한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 개인이나 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뛰어난 선수 개인과 팀 뒤에는 한 나라의 스포츠정책으로 구성된 시스템이 자리한다. 그 시스템이 엘리트스포츠를 성공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은 무엇으로 구성되었을까? 이 질문은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 교수인 베를 드 보스처(Veerle de Bosscher)의 모델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엘리트스포츠의 성공 요인을 밝히는 연구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그녀는 이와 관련한 여러 연구를 종합하며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떠받치는 9개의 기둥을 제시하였다. 다음 <그림 1>이 바로 그 9개의 요소다.

위 모델에 따르면, 첫 번째 기둥은 ‘재정적인 지원’이다. 여기에는 국내·외 훈련 비용, 시설 유지 비용(트레이닝센터 및 경기장 등), 엘리트스포츠 관련 조직 운영 비용, 기타 비용 등이 포함된다. 재정적 지원 없이는 엘리트스포츠가 유지되기 힘들다. 왜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엘리트스포츠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할까? 이유는 명료하다. 세계 무대에 나가 자국을 홍보하는 차원에서다. 그것이 국력을 상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상대의 맨 꼭대기에 자국의 깃발을 올리기를 바라는 것이지, 선수 개인의 자기 계발을 돕겠다고 재정을 투입하지는 않는다.

재정만큼 중요한 두 번째 기둥은 ‘엘리트스포츠 관련 정책’이다. 정책이란 국가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우는 전략이다. 국가가 엘리트스포츠 제도를 이용해 달성하려는 목표는 국가를 대신하여 자국의 역량을 뽐낼 ‘우수선수’ 양성이다. 이를 위해 정책을 만든다. 이 정책의 방향성은 ‘경기력 향상’과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의 지속성’ 확보다. 어떻게 우수선수를 선발하여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길러낼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우수선수 육성시스템을 정책화하는 것이다. 육성시스템에서 나온 후, 즉 선수 은퇴 후의 안정적인 삶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선수 복지 관련 시스템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 두 방향이 함께 정책적으로 고려되어야 엘리트스포츠의 지속성이 확보된다.

세 번째 기둥에서 다섯 번째 기둥까지는 스포츠 참여 및 저변(기둥 3), 선발-육성(기둥 4), 은퇴 후 지원(기둥 5)으로 구성된다. 이 3개의 기둥은 인간의 척추와 같다. 엘리트스포츠의 부흥은 무엇보다 먼저 그 토대를 이루는 ‘생활스포츠’ 참여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생활스포츠 참여 인구가 늘어나면 엘리트스포츠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물론 이 명제가 언제나 들어맞지는 않는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동네스포츠클럽(grassroots sport club)’ 체계를 구축하며 엘리트스포츠의 자원 풀을 확보하려는 이유다. 여기서 뛰어난 자질을 지닌 아이가 나오면 그 아이는 선발 과정을 거쳐 우수선수 육성시스템에 올라타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뽑을지다. 지도자의 ‘감’에 의존할 것인가, 유전자 검사와 같은 과학적 방식을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두 방식을 조합한 새로운 방식을 고안할 것인가? 더 중요한 건 선수생활을 마치고 난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마련해줄 것인가의 문제다. 생각해보라.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하고 난 후의 삶이 좋지 않다면 누가 엘리트스포츠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겠는가? 2022년 8월 11일부터 시행된 「체육인 복지법」과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섯 번째 기둥부터 아홉 번째 기둥까지는 앞의 5개의 기둥에 비해 다소 미시적인 것들이다. 즉, 진천 선수촌과 같은 선진화된 훈련 시설(기둥 6)이 잘 갖춰져야 하고, 그곳에서 매우 뛰어난 지도자(코치)의 지도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기둥 7). 국제/국내대회(경쟁)에 참여하여 경기력을 확인하고 업데이트할 일종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기둥 8), 선수나 팀의 경기력 증진에 도움이 될 여러 과학적 연구의 지원도 받아야 한다(기둥 9). 이 4개의 기둥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코칭시스템(기둥 7)’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유전적으로 훌륭한 선수가 선발되었어도 질 낮은 지도자를 만나면 좋은 경기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생각해 볼 점은 우리나라 코칭 관련 시스템이 충분히 선진화되었는가의 문제다. 지도자 다수가 선수 시절 경험에 의존하여 지도하기 때문에 선진화된 코칭기술 습득이나 과학적 지원에 대해서 소극적이지 않은지 따져보자는 뜻이다. 향후 엘리트스포츠의 성공과 관련하여 가장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주제다.

엘리트스포츠의 성공과 붉은 여왕 효과

그렇다면 이들 9개의 기둥만 튼튼하게 만들면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으로 이어질까? 여기에 덧붙여 두 가지를 더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는 엘리트스포츠를 둘러싼 국가 분위기, 더 정확하게는 ‘문화’다. 현재 우리나라에 형성된 엘리트스포츠 문화는 어떨까? 과거에는 국가적으로 매우 칭송하는 분위기였다. 새벽에 열리는 레슬링 결승전을 보려고 온 가족이 밤을 지새웠고, 2시간 넘게 달리는 마라톤경기도 뜬 눈으로 지켜보며 환호했다. 국가대표선수의 경기에 일희일비하던 문화였다. 당연히 이런 문화 속에서 엘리트스포츠는 부흥한다. 정책적으로도 튼튼한 뒷받침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실제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신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이런 문화가 많이 사그라졌다. 국민적 관심에서도 많이 벗어난 상태다. 왜 그럴까? 해당 이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생각해봐야 할 또 다른 요소는 ‘붉은 여왕 효과’다. 엘리트스포츠계는 가만히 서 있으면, 즉 이전에 했던 방식대로 하면 도태되는 세계다. 붉은 여왕 효과란 세계가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현상 유지를 위해선 최소한 걷고, 조금 앞서려면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경쟁 환경을 설명한 이론이다. 양궁을 보라. 이미 우리나라 출신의 선수들이 다른 나라의 지도자로 많이 진출했고, 그 결과 경기력이 거의 평준화되었다. 어떤 나라는 시스템까지 모방하여 시행한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뛰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양궁뿐만 아니라 배드민턴, 쇼트트랙, 태권도 등 전통적으로 우리나라가 강했던 종목에도 해당하는 문제다.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취약점 중 하나는 꾸준히 메달을 따던 종목에서만 계속 메달을 따며 그것을 시스템의 승리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들 종목에서의 국내 경쟁이 포화상태가 되어 우수 지도자들이 다른 나라로 진출하였고, 그곳을 다시 해당 종목의 강국으로 만들어버린 상황이다. 배드민턴, 탁구, 쇼트트랙, 태권도 등에서 꾸준히 메달을 땄던 우리였으나 이제는 그러한 종목에서 우리가 메달을 따기가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역설적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재정 문제일 수 있겠지만, 잘 살펴보면 시스템의 문제다.

결론: 우리에게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은 무엇인가?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기자가 물었던 ‘엘리트스포츠의 위축이 재정 문제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타당하다. 재정적 기반은 엘리트스포츠 성공의 핵심이다. 이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이 무엇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었는가?’라는 질문이다. 더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다. 질문한 기자가 행여 당황할까봐 묻지는 못했으나, 나는 이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과연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올림픽 메달 개수인가? 월드컵 16강 진출? 전국체육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이 계속 경신되는 것? 프로야구에서의 늘어난 관중 수? 아니라면, 은퇴 이후의 선수 삶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상태일까? 또 다른 질문과 관련, 우리는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그동안 어떻게 만들어 왔을까? 순리대로 해왔을까, 아니면 다소 기형적으로 그 성공을 추구해 왔을까? 우리나라 인구, 생활스포츠 참여 인구, 재정, 시설 여건 등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엘리트스포츠 성적은 정당한 것일까? 행여, 지금의 성적이 마치 마른 수건을 쥐어짜 물을 모으는 것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노력의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기자가 물었던 성적 하락은 오히려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가 제자리로 향하는 긍정적 징조가 아닐까?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왜 중요하게 여겨야 하냐는 것이다. 국위 선양? 국민적 자부심 고양? 국민 여가 제공? 국민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일? 생활스포츠 참여율 증진? 과연 무엇일까? 엘리트스포츠가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기에 그들의 은퇴 후 삶까지 국가가 나서 책임져야 한다는 제도까지 고안되었을까? 또 다른 손흥민, 또 다른 김하성, 또 다른 김연아를 만드는 일의 사회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을 말하는 일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던져줄까? 비록 이 글은 엘리트스포츠의 성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다뤘으나, 어쩌면 더 중요한 이슈는 ‘신에 의해 선택된’이란 뜻의 ‘엘리트(elite)’가 스포츠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건네줄 가치와 의미를 고민하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기고문 입니다.

*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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