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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걸어야만 잘 걷는다는 소리 들을까
게의 또 다른 이름은 ‘무장공자(無腸公子)’다. ‘무장’은 창자가 없다는 얘기다. 게의 껍질을 벗겨보면 내장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다. 거의 텅 비어있다. 겉보기는 용맹한 무사와 빼닮았는데 막상 속을 까보면 창자가 없어, 이를테면 ‘배알 빠진 떠꺼머리’ 꼴이다. 창자가 빠지면 실없는 꼬락서니가 될까. 천만에, 오히려 남부러운 성정도 생긴다. 단장(斷腸)의 슬픔, 곧 창자가 끊어지는 서러움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미물에게 ‘공자’라는 점잖은 신분을 안겨준 연유다. 한말의 유학자 윤희구는 그래서 ‘공자는 창자가 없으니 진정 부럽구려/ 평생 단장의 아픔을 모를 터이니’라고 읊었다. 근대 화가들이 이별하고 눈물짓는 이를 달래려고 게 그림을 선물로 건넨 것도 다 그런 까닭이 있어서다.
옛 화가들이 게를 그릴 때 맨 먼저 작심하는 뜻은 ‘과거(科擧)’다. 이유는 뻔하다. 게는 등딱지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특성이다. 하여 껍질 ‘갑(甲)’으로 뜻이 전용될 수 있고, ‘갑’은 또 ‘일등’이나 ‘장원’과 통한다. 게야말로 ‘장원 급제’를 기원하는 그림 소재가 되기에 딱 알맞다 하겠다. 이 작품을 보라. 단원 김홍도가 그려놓은 게 그림이다.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집게발로 꽉 붙들고 있다. 여기에 무슨 뜻이 들어있을까. 게는 앞서 말한 그대로 ‘장원’을 상징한다. 갈대는 한자로 ‘로(蘆)’라고 쓴다. 이 글자와 비슷한 발음에 ‘려(月+盧)’자가 있다. 화가는 겉으로 갈대를 그려놓고 속으로는 ‘려’자가 가진 의미를 꿈꾼다. ‘려’는 윗사람의 말을 아랫사람에게 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말에 ‘여전(月+盧傳)’이라고 하면,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호명한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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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게와 갈대’, 18세기, 종이에 담채, 23.1×27.5㎝, 간송미술관 소장 |
게 그림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속내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과거에 장원 급제해서 임금이 너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동시에 알현하는 영광도 누리기를 바란다.’ 게 그림 하나로도 이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옛 그림을 읽는 쏠쏠한 재미이기도 하다. 단원은 게를 두 마리 그렸다. 한 마리를 그린 것과는 좀 다른 요구가 있을까. 당연히 있을 테다. 두 마리를 그리면 소과뿐만 아니라 대과까지 연이어 급제하란 주문이다. 그림 속에 써놓은 글도 눈길을 끈다. 여기서 단원은 소과 대과 장원을 넘어 한술 더 뜬다. 해석부터 해보자. ‘바다의 용왕이 있는 곳에서도 옆걸음질 친다(海龍王處也橫行).’ 이 구절은 출전이 따로 있다. 당나라 시인 피일휴가 쓴 ‘영해(詠蟹)’, 즉 ‘게에 대해 읊다’라는 시의 마지막에 나오는 말이다. 시의 전문을 다 읽어보면 이렇다. ‘푸른 바다에 다다르지 않아도 일찍이 그 이름 알려졌지/ 뼈대가 도리어 살점을 뚫고 튀어나왔다네/ 속이 없다고 우레와 번개 무서워한다 말하지 마라/ 바다의 용왕이 있는 곳에서도 옆걸음질 친다’
게의 용맹성이 무릇 그러하다. 오죽하면 게의 영광스런, 또 다른 하나의 별명이 ‘횡행개사(橫行介士)’이겠는가. 게는 게걸음을 할 따름이다. 그런 게의 본성을 존중한 사람들은 ‘옆걸음질 치면서 절개 있는 선비’라고 불러준다. 게가 사람들 눈에 강골의 이단아로 비쳤던 까닭이겠다. 옛 이야기 하나 덧붙인다. 광해군 시절, 고향에 은거하던 정영방이란 문인이 있었다. 그는 이름난 정치가인 정경세의 제자였다. 인조반정 이후에 판서 벼슬을 지내던 스승 정경세가 정영방을 조정에 천거했다. 뒤늦게 알게 된 제자가 스승에게 선물 꾸러미를 보냈다. 스승이 풀어보니 게 한 마리가 옆걸음하며 나왔다. 스승은 제자의 뜻을 알아차리고 다시는 벼슬을 권하지 않았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혼자 말하는 야무짐이 벼슬하는 자의 기개다. 백성은 게걸음 할 줄 아는 관리에게 박수를 쳤다.
◆ 손철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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