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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혼잣말

[공직 단상] 도서관 목록 카드, 우체통, 입관료…도서관이 기억하는 추억들

2025.01.09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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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도서관만은 또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도서관을 찾는 이유는, 사라질 것들에 매달리는 집착이나 애착 때문일 테니까.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숨 가쁘게 달려왔던 2024년도 과거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 페이지를 다시 넘겨 2025년도를 맞이한다.

책이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언제든지 지난 페이지를 되돌려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기술의 혁신과 매체의 발전 속에서도 책이라는 아날로그 감성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매력이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집착이고 좋게 이야기하자면 애착인 그 매달림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도서관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이따금 그 풍경을 괜스레 들춰본다.

기억이 나지 않는 내용을, 혹은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문구를 찾아보기 위해 페이지를 들추는 이용자가 되어본다.

국립중앙도서관은 2025년 올해로 80주년을 맞이하였다.
 
1945년 10월 15일 개관 이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용 서비스를 실시하였다.

개관 초기에는 조선총독부 도서관이 설치 운영하던 열람실을 존속시켜 운영하였으나, 선진 도서관 사상을 바르게 도입하여 기존의 열람실을 폐지하였다.

긴 세월이 걸리기는 하였지만, 공부방으로 대변되는 도서관의 이미지를 벗고 자료 이용 중심의 정보센터로 꾸준히 추진하여 1996년에 도서관의 공부방 문제가 해결되었다.

개관 당시 열람 요금은 20전이었다가 1972년에 10원으로 인상되었고 1983년에 전면 폐지되었다.

입관료 폐지는 평생교육과 문화보급의 산실인 도서관의 중요한 기능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국민에 대한 서비스 향상을 위하여 이용자 여론 조사를 최초로 실시한 해는 1969년, 그 결과에 따라 서비스 개선을 추진하여 폐지된 제도가 하족장(下足場) 제도였다.

이용자가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지하 1층에 있는 하족장에서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하는 제도였다.

이용자를 번거롭게 하고 여럿이 갈아 신는 슬리퍼의 위생과 관리 문제 등 불편한 점으로 폐지하고, 이용자가 1층의 현관을 통하여 도서관으로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전시에서나 볼법한 도서관 카드 목록함을 떠올려본다.

이용자의 손때만큼 사서의 손때도 가득했던 물건이다.

도서관에서 사라지고 있는 목록함은 어디에 있을까?

사서의 주된 업무 중 목록 카드를 정리하는 것이다.

도서관 책 분류가 끝나고 카드를 출력하고 나면 목록 카드를 000, 100, 200~900 두부판에서 자른 두부처럼 나누어 한 모씩 받아 들고 목록함에 가서 목록함에 있는 봉을 빼고 청구기호에 따라 목록 카드를 꽂았다.

그 서랍을 닫을 때면 언제 다시 그 추억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추억의 한 켠에 머물러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도서관 목록함.
국립중앙도서관 2층 문화마루에 전시되어 있는 목록함.

언제부터인가 도서관 정문 계단 옆에 자리하고 있던 빨간 우체통도 사라졌다.

세월의 수상함을 느꼈다.

더 이상 페이지를 들추게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하였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도서관만은 또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도서관을 찾는 이유는, 사라질 것들에 매달리는 집착이나 애착 때문일 테니까.


우체통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생각했지

그때의 시간은 사라질 것이라고

머뭇거림이나 설렘이나 기다림도

펜과 종이, 종이와 봉투, 봉투와 우표

그리고 손과 손 사이에 만들어 내는

공간,

숨이 턱에 담을 즈음이면 잠시 몸을

누이던 틈새도 이제 사라질 것이라고

다시 만난 우체통 하나

우체통 앞에 달린 어수룩한 말

느린 우체통만큼이나 늘어진 서체를

1년이 지나서야 편지가 도착한다고 했었지

느린 편지를 넣으려고 멈춘 자리에서

우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했지

겨울이 가려 하는지


빨간 우체통과 등대가 만들어 낸 태없는 풍경이

그리움조차 말이 없어질 무렵

편지가 도착하겠지

멈추는 법을 잊을 즈음

그 겨울 바다가 일러 주겠지

등대의 불빛과 우체통의 소식

나그네처럼 떠나버린 그 이야기,

시간을 돌아 돌아오겠지

-  한숙희 詩 ‘우체통 하나를 보았지’

집으로 가는 길에 촬영한 빨간 우체통. 사라진 도서관 앞 우체통을 떠올리게 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촬영한 빨간 우체통. 도서관에서 사라진 우체통을 떠올리게 한다.


한숙희

◆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국립중앙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 근무, 2021년 공직문학상 시 부문 은상 수상, 같은 해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모두가 행복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출근하는 35년 차 사서이자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시로 구현해내는 시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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