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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
[신영철의 마음읽기] 정신건강은 삶과 직결된 문제…낙인 줄이고 편견 없애야
얼마 전 세계은행의 임원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보건복지부와 함께 ‘글로벌 정신건강위기’라는 제목으로 정신건강증진 포럼을 개최했다.
필자는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의 방향과 향후 과제에 대해 간단히 발표하고 한 프로그램의 좌장을 맡았다.
이번 포럼은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심을 높이고 각국의 경험을 통해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은행? 아니 세계은행은 저개발 국가나 개발도상국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기관이 아닌가.
왜 이들이 전 세계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인가?
무식한 소리지만 필자의 기억에 있는 세계은행은 IMF 시절, 우리나라의 돈줄을 쥐고 있었던 막강한 국제단체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었다.
세계은행 측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포럼을 함께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계은행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와 같은 세계인의 보건을 해치는 전염성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이 운동을 확장하여 정신건강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가 우리 모두에게 득이라는 사실을 경험과 연구를 통해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는 기업의 생산성 저하를 비롯해 여러 경제적인 요인과도 큰 연관이 있고 정신적인 건강은 사회안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신건강의 악화는 사회적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교육의 기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빈곤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신건강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이라는 그들의 목표와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단순한 건강의 영역을 넘어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고 경제적인 문제와도 상호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낮고, 자살율은 몇 년째 OECD 최상위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서 이번 포럼은 왜 우리가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관심을 두고 투자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귀한 시간이었다.
포럼의 시작은 런던에 있는 킹스 칼리지에 근무하는 정신과의사, 그레이엄 토니크로프트 경의 기조 강연이었다.
그는 정신질환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암과 당뇨, 만성 호흡기 질환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크다는 놀라운 주장을 했다.
단순한 자기 생각이 아니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근거를 가지고 하는 주장이었다. 놀라운 결과다.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상관없이 인구의 약 25%는 정신건강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경제적 선진국의 경우 22%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만 후진국의 경우 4%만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수치만 보자면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에 가깝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다. 질병과 치료 사이의 갭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포럼 2부의 기조연설은 켈 마그네 본데빅, 노르웨이의 총리를 역임한 분이었다.
그의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국정 운영 중 겪었던 자신의 우울증, 이를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병가 후 치료를 받기 시작했던 과정들, 회복 후 3년 만에 재선에 성공했던 이야기들.
엄청난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나라의 총리가 자신이 겪고 있는 우울증에 대해 솔직하게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치료를 통해 회복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회, 그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사회인지,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필자가 맡았던 프로그램 또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정신건강 문제를 앓고 있는 당사자, 현재도 꾸준히 치료받고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세상에 숨김없이 드러내고, 더 나아가 다른 아픈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세 분의 당사자들을 모시고 그들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와 조울병을 앓고 있는 케냐의 회계사, 역시 조울병을 앓고 있지만 심리학자가 되고자 준비 중인 덴마크의 젊은 여성, 그리고 또 한 명은 ‘멘탈헬스코리아’를 운영 중인 최연우 대표.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심각한 정신질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정신건강의 문제를 단지 자신만의 문제로 한정시키지 않고 작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케냐에서 온 당사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동료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 단체의 책임자로 있다.
덴마크의 당사자는 낙인 방지 프로그램인 ‘one of us’ 에서 훈련 받고 정신건강 전도사로 강연과 낙인 방지 활동을 하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 최연우대표 또한 자신이 겪었던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극복하며 청년들이 질병을 극복하며 세상의 낙인과 편견에 저항하고 꿋꿋이 살 수 있도록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감동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일상에 충실하면서 다른 분들과 함께했던 것이 자신의 회복에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세 분에게 농담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지금 당신 정부의 정신건강 정책 책임자라면 무엇부터 시작하겠습니까?’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낙인을 줄이고 편견을 없애는 것’.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신체적인 질병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질병임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아무런 불이익이나 사회적 제약 없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치료적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선진국의 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단순한 비용 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문화의 문제다.
정신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낙인과 차별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적절한 치료를 통해 멋진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경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0여 년간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진료, 방송,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24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민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