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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집배원, 닭장을 나간 닭들을 잡다
“몇 년 전 이맘때 일입니다. 당시 저는 시외구역을 담당하고 있어서 오토바이 주행거리가 제법 되는 편이었고, 그날은 평소보다 배달 물량도 많아 꽤 지쳐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야 오토바이에 싣고 나온 우편물이 끝을 보이기 시작했고 초조했던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얼른 일을 마무리 짓고 우체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제 집배구역의 마지막 집에 들어섰습니다. 외딴곳에 따로 떨어져 있는 시골집이었죠.
마당에는 제 어머니 연배의 여성분이 잔뜩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 뛰어다니며 달아나는 닭들을 잡고 있었습니다. 바깥양반이 며칠 전 병원에 입원하는 통에 집에 혼자 있는데, 산짐승이 닭장을 습격해서 닭들이 도망치는 바람에 너무 곤란하게 되었다고, 울상이 되어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묻는 아주머니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대부분은 비교적 잡기 쉬운 위치에 있었지만, 몇몇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밭 사이에 들어가 있어서 닭을 잡으려면 풀을 온통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주머니를 도와드리면 우체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질 테고, 업무 마감 시간 또한 늦어질 게 뻔했습니다.
순간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아주머니의 상황이 안타까워 두 손을 걷고 닭 잡는 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도망친 닭들을 모두 잡아드리고 우체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이후 그 집으로 배달을 가면 아주머니께서 전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시곤 하는데, 그때마다 집배원으로서의 보람이 느껴지곤 합니다.”
이 일화는 강원도의 한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 집배원’의 실제 경험담이다. ‘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 휘하 조직에서 우편물을 수집, 구분, 배달하는 업무를 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의 공무원이다. 집배원의 주된 업무는 고객에게 우편물을 전해주는 일이지만, 실제로 집배원은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우편물이 있는 곳이라면, 도심과 시골, 도서·산간벽지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니, 전국 방방곡곡 그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우편물-주로 등기-을 직접 대면하여 전달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지역 주민들과 접촉할 일이 잦으니, 그야말로 ‘국민의 곁에 있는’ 공무원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국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하는 집배원은 본래의 역할인 메신저 역할 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위의 일화에서 소개한 것처럼 작게는 곤란에 처한 주민을 돕는 일에서부터 크게는 위험에 빠진 주민을 구하거나,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 등의 일을 해내기도 한다.
‘탈진해 쓰러져 있던 80대 독거노인 구조한 21년 차 베테랑 집배원’, ‘충북 oo우체국 박oo 집배원, 길 잃은 치매 어르신 안전하게 가족에 인계’, ‘택배 수거하러 약국 갔다가 쓰러진 아이 구한 집배원’, ‘우편물 배달 중 화재 초동 진압한 집배원’ 등…. 인터넷 창에 ‘집배원’을 검색하면 집배원의 선행사례 기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집배원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든든한 파수꾼으로 존재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의 ‘인적 네트워크’와 ‘지킴이 역할’을 체계적으로 활용한 ‘복지등기 우편서비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복지등기 우편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복지 사각지대 의심 가구를 선정해 복지정보가 담긴 등기 우편물을 발송하면, 집배원이 직접 배달하며, 해당 가구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 결과를 지자체에 전달하여, 지자체에서 지원이 필요한 가구를 발굴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으로 운영되는 서비스이다.
2022년 7월, 부산 영도우체국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한 ‘복지등기 우편서비스’는 이제 전국 72개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위기가정을 발굴해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처음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11만여 가구에 복지등기 우편이 전달되었고, 이 중 2만여 곳이 위기가구로 파악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과 차상위계층 신청, 소득·돌봄·의료상담 등의 지원을 받았다. 이렇듯 ‘국민과 함께 새롭게 거듭나는 대한민국 우정’이라는 경영 비전처럼 기존의 메신저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조직의 일원이라는 점이 오늘도 나를 더욱 자랑스럽게 한다.
앞으로 기고를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신저로서의 집배원이 아닌, 행복을 전하는 메신저이자 국민 곁의 든든한 파수꾼, 우리 곁의 든든한 지킴이로서인 집배원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강원지방우정청 회계정보과 소속으로 2022년 공직문학상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우체국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동화로 옮겨내 수상의 기쁨을 얻었다. 우체통과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우체국에는 온갖 이야기를 담은 우편물과 택배가 가득하다. 이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동화로 옮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