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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 추상미술의 강자는?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칸딘스키 VS 몬드리안

2014.12.24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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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피트 몬드리안(Piet Monrian, 1872~1944).

두 사람은 500년 동안 형태가 주도해온 미술사에 의문을 던지며 형태가 없는 그림도 감상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화가들이다.

세잔과 고흐, 마티스와 블라맹크, 피카소와 브라크 등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화가들도 대상의 재현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대상자체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캔버스에서 대상을 없애고, 선과 색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흔히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으로 대별되는 두 사람은 옛날 방식과 회화의 개념 해체, 신지학의 새로운 철학을 삶과 예술에 적용 등의 공통점을 지녔다. 그러나 작품스타일(특히 음악과 미술을 연계한 시도)에서는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 우연한 탄생, 그리고 직관

칸딘스키의 추상은 서양미술사란 나무의 줄기에서 자라난 것은 아니다. 그의 추상은 미술사의 틀거지에서 벗어난 신종으로 우연한 산물이다.

‘어느 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작업실에서 아름다운 광채를 발산하는 그림을 보고 황홀함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거꾸로 놓인 자신의 그림이었다.’는 추상미술의 탄생배경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 우연한 체험을 통해 형태를 버리고 선과 색만으로 이루어진 그림도 감상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도한 것이 추상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칸딘스키<최초의 추상화> 1910, 종이에 수채화
칸딘스키<최초의 추상화> 1910년, 종이에 수채화

칸딘스키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시작했고, 결국 색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을 예술작품으로 표출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 음악이다.

색을 음악적 요소와 연결했다. 어린 시절부터 소리를 들으며 색을 연상하고, 색을 보면 소리를 연상하는 감각을 미술작품에 도입했다. 그리하여 음악을 회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 목적에 부합시켜 사람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는 말은 칸딘스키의 유명한 어록이다.

이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음악적 선율이 담긴 색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화가는 그 음악적 선율의 색을 조율하여 아름다운 연주를 이끄는 지휘자로 여긴 것이다.

실제 칸딘스키는 12음계의 창시자인 쇤베르크의 추종자였고,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는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모든 색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라며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들으며 황혼이 물들어가는 자연 풍경을 떠올릴 정도였다.

이런 경험을 종합할 때 칸딘스키에게 추상화는 각자 음색이 다른 악기들이 만나 연주하는 교향합주인 셈이다. 심벌즈,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 드럼 등 온갖 악기들이 소리 내는 음악의 현장이다.

칸딘스키 <즉흥>, <인상>, <구성> 시리즈
칸딘스키 <즉흥>, <인상>, <구성> 시리즈

궁극에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본능에 충실한 내적 감정의 직관적 분출이다. <즉흥>, <인상>, <구성>으로 이어지는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마치 곡을 연주하듯 색, 점, 선, 면 등 내적소리를 전달하는 회화의 기본요소로 타자와 소통을 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행위는 ‘내부의 명령’으로 간주했고, 예술은 ‘내부의 명령’ 없이는 나오지 않는다고 여겼다.

◇ 신조형주의, 수직·수평선의 만남

몬드리안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콤포지션>시리즈를 완숙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이다. 처음 네덜란드 전통미술에서 출발한 자연주의적 경향의 그림을 그렸지만, 피카소와 마티스의 입체파 그림을 본 후 새로운 조형적 탐구에 몰입했다.

그 때부터 세상의 본질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보았다. 검은색의 수평선과 삼원색의 수직선을 통한 절제된 구성(신조형주의)으로 세계미술에 몬드리안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는 나무의 잎보다 하늘로 상승하듯 향한 나무의 수직적 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바다의 푸른빛 물결보다 바다를 가로지른 수평선에 매료되었다.

몬드리안에게 수직과 수평은 대립관계에 있는 삶의 모든 요소들(긍정과 부정, 몸과 마음, 선과 악, 음과 양 등)사이의 긴장을 나타낸다.

몬드리안,<빨강, 검정, 파랑,노랑의 마름모꼴 구성>1925년
몬드리안,<빨강, 검정, 파랑,노랑의 마름모꼴 구성>1925년

수직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계가 성립되고 그 결과물로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이 탄생한다. 수직·수평선의 교차점은 삶의 대립적 관계들의 화합을 이끄는 완결점이자 동시에 평온함이 함축된 사각형을 만들어 내는 시작점이다.

몬드리안의 수직·수평선은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재즈에 심취했고, 이탈리아 미래주의 전위음악가인 루이지 루솔로를 좋아했다.

특히 기계음을 사용하는 미래주의 음악을 완벽한 소리의 결정체로 여겼다. 기계음은 자연적이지 않아 누구나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 중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음악과 미술의 만남이 절정을 이룬 대표작으로 꼽힌다. 부기우기(boogie woogie)라는 피아노 블루스의 특이한 주법(1 마디 8박자를 왼손으로 연주하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자유롭게 애드립하는 것)을 미술에 접목한 작품으로 노란색 긴 띠 속의 색점들이 경쾌한 리듬처럼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예전의 굵은 검은색 테두리대신 밝은 원색의 색점을 수직·수평선이 교차하는 지점중심으로 배치했는데, 마치 뉴욕의 반듯한 길 위에 불빛을 밝히고 솟아있는 빌딩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준다.

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43, 캔버스에 유채
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43, 캔버스에 유채

수직선과 수평선의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려 했던 몬드리안의 열정은 인생의 황혼기에 만난 뉴욕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어졌다.

◇ 변방의 두 화가가 꿈꾼 ‘회화의 유토피아’

러시아(칸딘스키)와 네덜란드(몬드리안)라는 변방 출신의 두 사람이 추상미술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형식으로 유럽미술의 틀을 바꿔놓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 사람은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선과 색으로, 한 사람은 수직·수평선의 만남을 통해서 미술과 음악의 하모니를 추구했다. 음악을 선과 색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음악적 선율을 음미하려 했던 칸딘스키와 다르게 인공적 기계음이야말로 정직한 소리의 완결이라고 여겼던 몬드리안의 작품세계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추상 세계의 목적지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미술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었던 형식으로 두 사람이 도달하고자 한 예술의 목적지는 결국 ‘회화의 유토피아’였다.

만약 그들의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면, 몬드리안의 예언처럼 우리는 예술 없이 살게 되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이 꿈꿔왔던 유토피아가 비록 그들의 그림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은 또 다른 예술가의 이상향으로 남아있다.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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