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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엿본 퀀텀(양자)의 세상

2024.07.30 백승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국가기술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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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정부는 지난 7월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3대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AI-반도체·바이오·양자 분야에 집중 투자해 디지털 전환 선도국가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이 3대 분야는 성장잠재력이 높고 타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핵심기술로, 국가 간 기술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관련 전문가들의 기고를 통해 3대 게임 체인저의 현주소 및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백승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국가기술전략센터장
백승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국가기술전략센터장

‘God does not play dice with the universe’ - Albert Einstein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지배하는 물리법칙은 뉴턴의 운동법칙을 토대로 완성된 고전역학에 기반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물체의 위치와 속도(운동량)를 알면 다음 상태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인 세상을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퀀텀(양자)의 세상은 불확정성의 세상이며, 우리의 관측(measurement)에 의해 상태가 결정되는 세상이다. 

양자역학적 관점에서는 ‘삼라만상은 입자이며, 동시에 파동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 개체에 대한 에너지 및 운동량 등 불연속적으로 변하는 양의 기본값을 양자(quantum)라고 하며, 우리의 세상에서는 전자, 광자 같은 미세한 에너지 덩어리를 또한 양자(quanta)라고 통칭하고 있다. 

에너지와 운동량 등의 물리량이 불연속적인 값을 가질 때 양자화(quantized)되었다고 하며, 양자화된 빛 덩어리는 광자(광양자)라고 표현한다. 미시세계에서의 양자역학적 현상은 중첩(superposition), 얽힘(entanglement), 불확정성(uncertainty)으로 표현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엿보았던(어쩌면 추측하였던) 다른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자 현상이다. 

1877년 물리계의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는 파격적 가설을 제안했던 루트비히 볼츠만, 빛의 양자화를 처음 주장한 막스 플랑크, 광전효과를 완벽히 설명한 광양자 가설을 제안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등 위대한 과학자들이 그 세상을 엿보았다.

양자역학의 위대한 과학자들. (좌측부터) 리처드 파인만, 루이 드 브로이, 닐스 보어, 막스 플랑크, 피터쇼어,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버트 아인슈타인 (자료: 퀀텀코리아 2024)
양자역학의 위대한 과학자들. (좌측부터) 리처드 파인만, 루이 드 브로이, 닐스 보어, 막스 플랑크, 피터쇼어,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버트 아인슈타인.(자료=퀀텀코리아 2024)

“지배하는 법칙이 다르면, 세상의 모습도 달라진다.” 카이스트 물리학과 이순칠 교수는 그의 저서 ‘퀀텀의 세계(Quantum World)’에서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인류는 양자현상(science)을 기술(technology)로 발전시킴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문명의 진화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서 활용하는 컴퓨터(고전컴퓨터)는 정보의 단위를 비트(bit)라고 표현하는데, 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는 퀀텀 비트라고 하여 큐비트(qubit)라고 표현한다. 

미국 IBM은 초전도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최선두로 개발해 오고 있으며, 2023년 현재 1121 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출시한 바 있다. IBM은 127 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이용하여 슈퍼컴퓨터로 계산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방대한 연산을 0.001초 내에 완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며, 구글은 53 큐비트 양자컴퓨터로 현존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가 47.2년 걸리는 연산을 6.18초 만에 완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자기술로 인한 우위(quantum supremacy)와 이득(quantum advantage)을 증명함으로서 인류 문명에의 파급력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게 하였다.

세계화의 시대가 지나고 다시금 패권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현 시점에 양자기술은 국가 안보에 가장 중요한 국가 핵심기술로 다루어지고 있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은 창과 방패로도 볼 수 있는데,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소인수분해 등에 기반한 RSA 암호체계 등의 방패망을 양자컴퓨터로 손쉽게 뚫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뚫고자 하는 자(양자컴퓨터)와 막고자 하는 자(양자암호통신)의 치열한 대결이 시작되었다. 양자컴퓨터가 10년 내 기존 암호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 정부는 2035년까지 빠르게 양자기술 확보 및 첨단 암호화 기술을 적용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2018년 국가 퀀텀 이니셔티브(NQI)를 발표하면서 5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 중에 있으며, 영국도 2023년 수립된 국가 양자 전략을 기반으로 올해부터 약 4조 원의 투자를 시작하였다. 일본은 20년 양자이노베이션전략, 22년 양자미래사회비전을 발표하며 국가전략기술로서 양자과학기술개발을 추진 중이다. 

퀀텀코리아 2023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양자과학기술 전략 보고회 (자료: 대통령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퀀텀코리아 2023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양자과학기술 전략 보고회.(자료=대통령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은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한 범부처 국가 ‘양자기술 전략로드맵’ 수립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대한민국 양자과학기술 전략(양자시대를 여는 우리의 도전과 전략)’을 2023년 6월 발표하며 향후 10년간 민관 3조 원 이상의 투자 계획과 함께 한국의 양자기술과 산업의 본격적 시작을 알렸다.   

2023년 10월 31일 ‘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공포되었고 2024년 11월 1일 시행 예정이다. 법 시행에 따라 5년 주기의 종합계획이 수립될 예정으로 향후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인 양자과학기술 개발 및 산업육성이 추진될 동력이 마련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올해 4월에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가 ‘퀀텀 이니셔티브’를 확정·발표함으로써 양자경제 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추진 전략과 체계를 보다 구체화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개발된 2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터.(자료=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개발된 2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터.(자료=한국표준과학연구원)

1946년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위해 무게 30톤, 길이 25m의 인류 최초의 전자식 계산기 에니악이 개발된 이래 불과 50여년 만에 기술적으로는 슈퍼컴퓨터로, 우리의 일상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컴퓨터 기술의 획기적 진전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는 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에서 초전도 방식의 50 큐비트급 양자컴퓨터를 빠른 속도로 개발 중이며 올해 초 대중을 상대로 20 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시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향후 10년, 이후 50년간 양자기술이 가지는 무한한 파급력으로부터 인류의 문명과 우리의 삶이 또 어떻게 진화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인류가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지 못한 담장 너머 미지의 세상이 있으며, 그 세상은 다른 법칙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극소수의 인류가 엿보았던 전혀 다른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을 우리도 이제 슬쩍 엿볼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시작점으로 돌아가서 아인슈타인의 생각과 달리 신이 정말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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