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콘텐츠 영역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 의미와 활용

2021.12.14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글자크기 설정
인쇄하기 목록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이하 메가 FTA)이다. 2011년 아세안이 협상을 최초로 제안하고 2012년에 협상을 개시한 이후 8년에 걸쳐 31차례의 공식협상과 19차례의 장관회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2020년 11월 15일 제4차 RCEP 정상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서명됐다. 

인도는 RCEP 출범 당시 협상에 참여했으나 대중 무역적자 확대 등을 이유로 2019년 불참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보다 비준절차를 일찍 마친 중국, 일본 등 10개국에서는 2022년 1월 1일부터 협정이 발효되며 지난 12월 2일 국회비준을 마친 우리나라는 2022년 2월 1일부터 협정이 발효된다. 이로써 전세계 GDP, 인구, 교역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초의 메가 FTA가 내년 이후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RCEP은 상품, 서비스, 원산지규정, 투자, 지식재산, 전자상거래 등 총 20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상품분야에서는 이미 체결된 한-아세안 FTA를 업그레이드하고 일본과도 FTA를 체결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아세안 FTA는 추가개방을 통해 관세철폐 수준을 더욱 확대했다. 한국과 일본 간에도 관세철폐 수준을 확대하되 자동차나 기계 등 민감한 품목은 양허에서 제외했다. 

서비스 및 투자분야에서는 아세안 국가들이 한-아세안 FTA 대비 시장개방 수준을 다소 확대했다. 아세안은 문화콘텐츠, 유통과 물류 서비스 분야를 개방했고 일본은 온라인 게임, 쌀/담배/소금에 대한 도소매 및 중개 서비스를 개방했다. 투자챕터에서는 아세안 9개국과 최초로 유보목록을 도입했고 이행요건 부과금지를 통해 아세안 지역에 대한 투자환경을 개선했다. 원산지 규정을 포함하는 다양한 통상규범에 대해서는 RCEP 역내에 통일된 규범을 마련하여 적용하도록 했고 한-아세안 FTA에는 없던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관련 챕터를 새롭게 도입해 저작권/특허/상표/디자인에 대한 포괄적인 보호규범을 마련하는 한편 급증하는 전자상거래에 대응하는 최신의 무역규범을 도입했다.

지난해 11월 15일 청와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제4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정상회의 모습.

지난해 11월 15일 청와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제4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정상회의 모습.

이렇게 장기간의 협상을 통해 체결된 RCEP은 우리나라에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RCEP의 의미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경제적 이익을 따져볼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RCEP은 다수의 국가가 참여하는 메가 FTA이고 기존에 개방되어 있지 않은 상품과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서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다수의 국가가 참여하다보니 큰 폭의 추가적인 시장개방을 합의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보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경제적 이익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 국가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추가적으로 개방했고 일본도 우리나라에 대해 추가적으로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한일 간의 FTA 체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정도이다. 요약하자면 다수의 국가가 참여하는 메가 FTA를 성립시키기 위해 큰 이익도 큰 손해도 피하도록 개방수준이 설계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우리국익에 큰 영향을 주는 전략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먼저 RCEP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간의 간접적인 FTA 체결효과를 가진다. 한일 간 시장개방에는 찬반양론이 있지만 한국의 제조업 발전수준과 한일 양국 간 관계개선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면 RCEP을 통한 간접적인 양국간 시장개방은 오히려 필요할 수도 있다. RCEP을 통해 한일 양국이 민감 품목 이외의 상품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양국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고 경제적 측면에서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중일 간 FTA 체결효과도 있기 때문에 중국 시장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기업의 대중 수출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아가 RCEP을 한중일 간 경제협력의 채널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RCEP은 역내 전체를 대상으로 누적원산지 규정을 적용하기 때문에 아시아 역내의 가치사슬을 고도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와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제조업 기반의 한국경제는 동아시아 지역에 확고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RCEP의 통일된 원산지규정 도입은 역내에서의 무역과 투자의 편의성을 향상시켜 세계의 제조업 거점으로서의 동아시아 지역의 위상을 더욱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원산지 규정 이외에도 지식재산권이나 전자상거래와 같이 역내에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새로운 규범을 도입함으로써 자유롭고 규범에 기반한 무역질서를 아시아 역내에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1990년대 이후 가속화한 세계화의 흐름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그 대신 세계경제는 지역화 내지 블록화가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WTO의 역할이 약화되고 자유무역을 주창해 왔던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자국우선주의로 돌아선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한국경제는 안정적이고 규범에 기반한 무역과 투자질서를 필요로 한다. 세계경제질서가 편가르기와 보호주의로 뒤틀리면 한국경제는 그 자체만으로 매우 큰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이는 어떻게 해서는 막아야만 하는 불행한 사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라면 무엇이든 확보해야 한다. 

메가 FTA는 자유롭고 규범에 기반한 세계경제질서를 형성하는 수단의 하나일 수 있다. 물론 이는 양날의 칼이다. 세계경제를 쪼개는 단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규모 개방경제로서의 한국경제는 메가 FTA를 경시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장치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역내에 통일된 규범을 확산하고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활동이 영위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우리경제의 성장기반인 자유롭고 규범에 기반한 세계경제질서의 형성과 확산을 도모해야 한다. RCEP은 이러한 메가 FTA의 가능성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첫 경험이 될 것이다.   

하단 배너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