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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성과에 집착하는 유소년 스포츠, 그 결과는? 박광호 미국 The Citadel 교수 2021년, 세계적인 스트리밍 플랫폼 넷플릭스(NETFLIX)의 K-드라마 『오징어 게임(Squid game)』은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넘는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드라마는 어린 시절 우리가 즐겼던 전래놀이를 주요 소재로 사용하여 딱지치기, 구슬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과 같은 놀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현재 중년이 된 많은 분은 어릴 적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여러 가지 전래놀이를 즐겼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럼, 잠시 눈을 감고 그 시절 어떤 놀이를 했는지 그때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자. 필자는 얼음 땡, 자치기, 와리가리, 모래 뺏기, 땅따먹기, 사방치기 등 수십 가지가 기억이 난다. 이 밖에도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웃음소리, 놀이 규칙을 두고 벌이던 토론, 술래로부터 숨기 위해 생각지 못한 장소를 찾았던 순간들,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전봇대를 이용해 축구를 했던 추억 등 독자 여러분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로 인해 아동의 신체활동 및 체육과 관련된 문화, 사회, 환경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고층 빌딩과 현대적 건축물이 일상이 되었고, 기술과 신체적 우수성을 중점으로 개발된 유소년(청소년) 스포츠프로그램들이 대중화되면서 어린 시절 자발적으로 즐겼던 놀이와 신체활동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시민 체육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다룬 여러 해외 연구가 있으며, 스포츠 강국인 미국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미국의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의 문제점을 다룬 많은 사회학자의 연구를 통하여 함께 논의해 보고자 한다. 선수 및 청소년 주도 스포츠(Athlete/Youth-Organized Sports)의 중요성 최근 아동체육에 관한 해외 연구들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자유롭게 즐기는 놀이나 스포츠활동에서 중요한 공통 요소를 발견했다. 바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놀이를 주도하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네 골목길에서 5명이 모여 두 팀으로 나누어 축구를 한다면 운동을 잘하는 친구가 있는 팀은 2명, 그 외의 팀은 3명으로 팀을 합리적으로 나누어 축구를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이 각자 알고 있는 놀이 규칙의 차이를 극복하거나 형평성에 의문을 가지면서 갈등, 협상, 타협을 거쳐 합의된 규칙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창의성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배우고, 자발적인 즐거움과 만족감, 그리고 기타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며 스포츠 규칙의 존재 그리고 체육의 가치를 스스로 체험하며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평생 체육활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동기를 제공한다. 성인 주도 스포츠(Adult-Organized Sports)의 성장과 문제점19세기 후반 유럽과 북미에서는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청교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학문적 방법론을 통한 실증주의적 지식 탐구가 정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청소년의 신체와 정신 발달이 사회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을 높였고, 이 시기에 여러 스포츠가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학교, 교회, 지역사회의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통해 스포츠프로그램이 전문가 주도로 조직화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는 주·정부가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을 강화하면서 공공기관 주도의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 수가 감소하고 반대로 개인 사업자가 주도하여 민영화되는 사례가 늘어났다. 또한 물질주의가 개인 및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 기준으로 자리 잡아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전환 속에서 부모는 맞벌이로 인한 자녀 양육 공백의 대안으로 성인에 의해 자녀가 통제되는 스포츠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자녀가 전미대학체육협회(NCAA: 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Division 1 그룹으로 소속되어 있는 학교에 선수로써 진학하면 장학금을 받거나, 프로스포츠 선수가 된다면 자녀의 성공적인 삶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들이 엘리트스포츠 경험을 가진 지도자가 운영하는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체육의 본질보다는 기술 개발 및 신체적 우수성 그리고 성과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유소년 스포츠 프로그램들은 주로 수준 높은 코치, 화려하고 쾌적한 시설, 그리고 성인 스포츠와 비슷한 연간 훈련 및 시합 계획을 갖춘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변화하였으며,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모들이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연구결과들은 기술과 성과 중심의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연간 10만 달러(약 1억 3000만 원)의 소득을 가진 가정들이 대개 자녀를 재정적으로 문제없이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에 참여시킬 수 있다. 반대로 그보다 소득이 적은 가정의 자녀들은 스포츠 참여에 어려움을 겪어 소외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략 80%의 미국 가정에서 자녀들의 스포츠 참여를 줄이거나 중단하는 소득 기반의 불평등 구조가 형성되어 많은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에서 이러한 경제적 배제 패턴이 관찰되고 있다. 이 현상은 개발도상국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축구 같은 스포츠마저도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을 배제하는 부유한 가정의 스포츠로 변모하는 사례로 나타난다. 현재 많은 부모들은 스포츠프로그램에 과도한 재정지출을 함으로써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큰 기대와 함께 성공을 열망하고 있다. 이러한 부모들의 기대는 자신의 여유시간을 자녀의 스포츠 일정 관리에 전적으로 투자하고, 자녀의 삶과 경기, 훈련 성과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경향이 많다. 즉 부모가 자녀의 스포츠 참여를 격려하기보다는 경기의 내용 및 결과에 대해 질책하거나 성과를 요구하는 주체로 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심리적 압박을 받거나 불쾌함을 느끼는 상황을 자주 경험하고, 많은 청소년들이 스포츠 참여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코치와 운영자들의 관점에서 개인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 회원 수의 유지를 통한 사업 성공을 위해 선수들의 운동능력과 대회 성과를 지속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코치 주도로 스포츠의 규칙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프로스포츠 수준의 훈련을 강요하거나, 충분한 휴식 없이 과도한 일정을 소화하게 만들어 선수들의 부상률을 증가시키고 있다. 통계적으로 미국 내 모든 두부외상의 약 25%가 유소년 스포츠와 관련되어 있으며, 연간 25~30만 명의 학생선수들이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청소년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고 부적절한 부상(뇌진탕, 열사병, 근육파열 등)의 빈도가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유소년 스포츠 참여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약 70%의 청소년들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스포츠를 중단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성인 주도의 성과 중심 스포츠 프로그램의 확산을 통해 스포츠가 특권층을 위한 혹은 기피 대상이 되는 활동으로 인식되면서, 다양한 계층과 인종에서 폭넓은 엘리트선수층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점이 발생한다. 더 나아가 앞서 말한 선수 및 청소년 주도의 스포츠 참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스포츠의 가치와 평생 체육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는 문제가 있다. 미국 유소년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와 정책적 해결 방안 필요성 많은 사회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현재 미국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의 대중화는 관련 스포츠산업을 활성화시켰지만, 참여자들이 기대하는 성과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해외 스포츠사회학 연구에 따르면, 자녀를 스포츠프로그램에 보낸 약 50%의 부모들은 자녀가 스포츠를 통해 대학 진학, 올림픽 참가, 혹은 프로스포츠 선수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투자하지만, 이 중에서 약 20%의 부모의 자녀만이 스포츠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불과 2% 만이 스포츠분야에서 상위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자녀를 위한 투자와 국가 및 사회적 기회비용 측면에서 현재 미국의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 구조의 비효율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미국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의 비효율성은 주·정부의 체육 정책 및 규제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신자유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종종 가치와 복지보다는 산업의 성장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민간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 사업자들에게 청소년들의 스포츠 참여의 기회와 복지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과 규제가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많은 유소년 스포츠프로그램들은 특정 계층에게만 특권적이거나 배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관성이 부족한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조직화한 스포츠프로그램을 설립할 때, 주·정부에서 나이별로 청소년 시기에 적합한 스포츠 환경, 수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정책을 통해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유소년 스포츠 관련 영역은 현재 민영화되어 성장하고 있으며, 국민의 소득 수준도 점차 높아짐에 따라 미국과 유사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유소년 체육과 관련된 사업 및 프로그램이 엘리트선수 개발보다는 아동의 놀 권리를 강조한 복지와 평생 체육활동을 장려할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검토하고 준비해야 한다. 스포츠가 청소년들의 평생 동반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경쟁과 압박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 포기하게 될지는 대한민국 정부의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통한 정책적 지원에 달려 있다. 향후 관련된 정책 제안 및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유소년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평생 교육을 고려한 다른 나라의 유소년 스포츠정책 사례 연구가 유익할 것이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51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3.12.04 박광호 미국 The Citadel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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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드 바이올린이 탄생하기까지…바이올린의 역사 모차르트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이 시작한다고 하였다. 음악은 우리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느낌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무의식을 자극하는 음악을 통해 우리는 치유 받고 화합할 수 있으며 여러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 처음 음악의 목적은 의미 전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악기는 바로 인간의 목소리였다. 이후 다양한 소통과 의미전달을 위해 때려서 공명을 사용하는 타악기와, 관에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서 소리를 내는 관악기들이 등장 하였다. 하지만 타악기와 관악기가 주로 먼 곳으로 소리를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면 이후 등장한 찰현악기는 이들이 가지지 못한 부드러움과 자유로운 다이나믹의 조절을 통해 근거리에서 음악을 아름답게 즐기는 악기로 발전하였다. 마찰을 이용한 찰현악기는 우리 인간의 여러 가지 정서를 대변해 주고 있다. 현대 오케스트라의 현악기들 또한 고대의 찰현악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 중 미적으로나 음향적으로 가장 완벽한 형태로 발전한 악기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바이올린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심장에 가장 가깝게 대고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여러 현악기 중 에서도 가장 본능적인 소리를 낸다. 음향적으로나 미적으로도 아름다운 바이올린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지난 8월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 국제 악기음향기기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바이올린을 시연해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고대 찰현악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고대그리스인들은 철학과 건축, 수사학, 조각 등 다양한 분야를 발전시켰으며 음악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사용한 리라라는 악기는 공명상자 위에 한 개의 현을 튕기며 연주하는 악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악기에 활을 적용하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활을 사용하지 않으면 울림을 원하는 만큼 지속하기 힘들며 다이나믹의 표현도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활의 사용은 음악의 전달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활을 처음 사용한 악기의 발명은 아시아로부터 건너왔다. 이는 아시아에서 말을 가축으로 키웠으며 활 털의 재료가 말의 꼬리털이 가장 적합하였던 것에 기인하였던 듯 하다. 고대 페르시아의 케멘체(kemence)나 아라비아의 르바브(rebab)라는 악기는 모두 활을 이용하여 공명상자를 울리는 악기로 현대 현악기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악기는 악기를 땅에 대거나 구부리고 앉아서 연주하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기원이 된 악기로 보기는 힘들다. 무어인들이 스페인에 침입했을 때 전해진 레벡(rebec)이라는 악기는 악기를 어깨위로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중세 프랑스의 음유시인을 지칭하는 트루바두르(Troubadour)들이 사용한 비엘 아 아르쎄도 바이올린처럼 왼쪽어깨에 악기를 걸치고 활을 사용하는 악기였다. 이는 이후 비올족의 악기로 발전하였으며 13세기 이후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이탈리아에 전해져 바이올린의 탄생에 기여하였다. ◆ 비올 현대의 바이올린이 완성된 형태로 제작되기까지는 여러 현악기들의 변형이 있었다. 그 중 비엘에서 발전된 비올 족의 악기들은 바이올린 족의 악기들과 상당기간 경쟁하였으며 바이올린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3세기에 이탈리아에 전해진 비올은 17세기 중엽까지 300년이 넘는 동안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종류의 악기들로 제작되었다. 그 수가 워낙 많아서 모두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기록에 의하면 여러 비올 중 6현의 비올을 바이올린과 같은 자세로 서서 연주하는 판화가 있다. 비올은 비올라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비올라 다 브라치오(viola da braccio)와 첼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비올라 다 감바등 이 있다. 비올라 다 감바는 바로크 음악을 얘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악기이기도 하며, 실제 조르디 사발 등 몇몇 바로크 음악의 대가들에 의해 대중에게 선보이기도 한다. 또한 조르디 사발이 음악감독을 맡은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에는 비올라 다 감바의 연주가 삽입되어있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비올 족의 악기들은 음량에 한계가 있었으며 드라마틱하지 않은 소리는 현대 큰 무대에서는 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아마도 15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비올 족이 바이올린 족과의 경쟁에서 밀린 이유는 음색의 다양성과 작은 음량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누가 오늘날과 같은 바이올린을 만들었는지는 현재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여러 시대를 거치며 이런 다양한 악기들의 장점과 단점을 흡수하며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만들어 진 것만큼은 분명하다. ◆ 가스파로 다 살로-안드레 아마티 바이올린 제작의 1세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은 16세기 이탈리아의 가스파로 다 살로(Gasparo da Salo)와 안드레 아마티(Andrea Amati)를 들 수 있다. 물론 이전 시기에 카스파르 테펜브루커 (Kaspar Tieffenbrucker)라는 장인이 바이올린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바이올린은 현재 소실되어 사료로만 확인할 수 있다. 다 살로와 아마티가 사실상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바이올린 제작자로 인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다 살로는 브레시아 지방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브레시아파(Brescia School)를 창립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는 파올로 마지니(Paolo Maggini)등 후대 이름을 떨친 제자들도 여럿이 있다. 다 살로의 바이올린은 현재 아주 소수만 존재하는데, 외형은 현대의 바이올린처럼 아름답지는 못하다. 당시 그는 주로 연주되던 비올과 바스 등을 제작했으며, 비올을 개조하고 음향적 실험을 하면서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그의 악기에서는 힘있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비올의 약점으로 알려진 앞판의 볼록함을 줄이면 음이 강해짐을 깨닫고 시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다 살로의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은 19세기 노르웨이 불세출의 바이올리스트 올레 불(Ole Bull)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현재는 베르겐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다 살로가 브레시아파라면 아마티는 현악기의 성지인 크레모나파(Cremona School)의 창시자다. 아마티가 살던 크레모나는 당시도 그랬지만 현재도 현악기제작의 메카라 할 수 있다. 안드레 아마티의 초기 바이올린을 살펴보면 그가 브레시아에서 견습공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전성기 그의 악기는 개성이 뚜렷하고 실험적이며 독자적인 노선을 보여준다. 아마티는 귀족출신으로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으며 터키와 동인도로부터 각종 목재와 수지(樹脂), 풍부한 염료 등을 대량으로 매입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악기에 여러 음향적 실험 할 수 있었다. 여러 나무 중 맑은 음이 나는 나무를 찾기 위해 알프스를 헤매기도 하였으며 악기에 바르는 니스를 찾기 위해 기린혈과 고무수지 등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그의 악기는 맑고 아름다운 음이 나는 특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시도한 높은 아치형의 앞판은 음량적으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안드레 아마티는 손자인 니콜라 아마티에 와서 가문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손자인 니콜라 아마티은 앞으로 탄생할 크레모나 시대의 서막을 열어주었다. 훌륭한 스승이기도 한 그는 뛰어난 제자들을 두었는데 안드레이 과르네리, 루제리 등을 비롯하여 현재 명기로 알려진 제작자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바이올린 역사에서 최고의 롤모델 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명을 제자로 길러냈는데 그가 바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다. ◆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리스트나 제작자들이 가장 완성도 높고 모든 면에서 롤모델이라 말할 때 항상 거론되는 바이올린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다. 줄여서 스트라드(strad)라고 부르기도 하며 악기라벨에는 라틴어 방식인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라고 적혀있다. 지난 2018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열린 서울옥션 창립 20주년 150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전시에서 이탈리아 악기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1692년에 제작한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경매 시작가 70억원)이 진열돼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장 완벽한 형태의 비율과 만듦새는 현대 바이올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최대의 라이벌인 과르네리(Giuseppe Guarneri)도 동시대에 있었다. 과르네리 바이올린은 전설적인 파가니니를 비롯한 현대 최고의 연주자들에게도 찬사를 받고 가치도 스트라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악기의 개수와 길러낸 제자, 후대에 미친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스트라디바리에 무게를 좀더 실어 볼 수 있다. 초기 스트라드는 스승 니콜라 아마티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이 시기 그는 스승의 악기를 모방하고 조수로 참여하며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다. 실제 후기 니콜라 아마티의 악기들 중에는 스트라디바리의 손길을 거친 악기들이 많다고 추측된다. 독립한 이후 그는 스승인 니콜라의 아름답고 투명한 음색과 브레시아파마지니의 중후하며 강한 소리를 결합하는 시도를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악기의 소재, 두께와 비례, 니스의 배합 등을 통해 스트라드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다. 전성기 그의 악기는 음향적으로나 미적으로 어떤 악기도 쉽게 따라오기 힘든 경지의 소리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현대의 대부분의 악기 제작자들은 측량된 스트라드 모델로 많은 실습을 하며 대부분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90세 넘게 살았던 스트라디바리는 피로를 모르는 연구가였다. 그런 그의 열정이 바이올린의 기준을 만들었으며, 이는 그가 남긴 500여대의 바이올린을 통해 현재도 증명되고 있다. ☞ 음반추천 스트라드와 과르네리를 비롯한 여러 악기로 소품을 연주한 제임스 에네스(James Ehnes)의 Homage앨범을 추천 드린다. 연주도 훌륭하지만 명기라 불리는 여러 바이올린의 특성을 느껴볼 수 있는 음반이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2023.11.30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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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가 불가능한 패러디 음악의 제왕 기존 곡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은 이미 수백 년도 더 이전부터 존재했던 작법이다. 특히 민요 같은 경우 멜로디는 그대로 두고 여러가지 방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이 이미 전세계에서 익숙하게 벌어져온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에 있어 특정 인물을 떠올려야만 한다면 단연 우리는 위어드 알 얀코빅의 이름을 생각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위어드 알 얀코빅은 수십 년 동안 천재적인 방식의 패러디 작법으로 청중들을 즐겁게 해왔다. 영리한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가사, 현란한 아코디언 연주 기술, 그리고 특이한 곱슬머리까지 얀코빅의 모든 것이 코미디와 음악 세계를 한 번에 아울렀고 그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의 유머와 상상력은 자신이 만든 영화, 그리고 직접 집필한 동화책으로 까지 확장됐다. 참고로 초창기에 고수하던 아프로 헤어스타일과 안경을 탈피하고 케니 지 풍의 푸들 헤어스타일로 바꿨는데 그 이유는 1998년 1월 라식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8년 8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위어드 알 얀코빅 (사진=저작권자(c) EPA/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59년 캘리포니아 린우드에서 태어난 얀코빅은 어린시절부터 영특했고 월반을 하기까지 했다. 대학 재학 중인 1979년 밴드 더 넥의 My Sharona를 패러디한 My Bologna를 학교 화장실에서 녹음한 것이 라디오를 통해 인기를 끌면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1983년 맥코이스 활동, 그리고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입장 음악 Real American을 만들고 부른 프로듀서 릭 데린저가 얀코빅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프로듀스 한다. 얀코빅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Beat It을 Eat It으로 바꿔 부른 것이 크게 히트했을 무렵이었다. 얀코빅 또한 마이클 잭슨이 동의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지만 마이클 잭슨은 얀코빅의 패러디 곡을 무척 좋아했고 심지어 이후 자신의 Bad를 패러디한 Fat의 경우 얀코빅에게 Bad 뮤직 비디오를 찍었을 당시의 세트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또한 얀코빅을 마이클 잭슨의 Liberian Girl의 비디오에 출연시키는 등 교류를 통해 그의 재능을 인정했다. 이후 얀코빅은 장르를 초월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MC 해머, 너바나, 쿨리오, 에미넴 등 인기 아티스트의 히트곡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패러디의 일인자라는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다. 마돈나의 패러디 곡은 마돈나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을 얀코빅이 적용한 것이기도 했다. 돈 맥클린은 자신의 아이들이 얀코빅이 열렬한 팬이라서 그의 American Pie를 패러디한 The Saga Begins를끊임없이 들었고 실제로 자신의 공연장에서 실수로 얀코빅 버전의 가사를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가수들은 얀코빅이 패러디 하는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는데, 그가 패러디 하는 것이 바로 그 시기 인기의 척도가 됐기 때문이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경우 인터뷰에서 얀코빅이 자신의 곡을 패러디 했을 때 너바나가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거절 사례 또한 많았다. 프린스의 경우 얀코빅이 수차례 제안했지만 거절했고 심지어 같은 시상식장 안에 함께 있을 당시에는 시상식 측에 얀코빅이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게끔 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제임스 블런트의 Youre Beautiful의 패러디 Youre Pitiful은 가수는 찬성했지만 음반사에서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얀코빅이 직접 자신의 SNS에 곡을 올리기도 했다.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패러디한 Perform This Way의 경우엔 레이디 가가의 매니저 측에서 독단적으로 레이디 가가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이후 얀코빅이 직접 곡을 온라인 상에 올렸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레이디 가가가 이 패러디 곡을 좋아하며 과거 회사를 통해 전달받은 적이 없었다면서 사용을 허가했다. 곡의 의미와 일맥상통하게 얀코빅은 곡으로 얻은 수익을 인권 단체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의외로 얀코빅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른 것은 꽤나 늦은 시기에 와서 였다. 2006년 카밀리어네어의 곡 Ridin을 패러디한 White Nerdy가 싱글차트 10위권 내에 들었다. 이어 2014년 14번째 앨범 Mandatory Fun이 커리어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이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첫번째 코미디 앨범이 됐다. 그래미에서는 80년대부터 총 4번을 수상해 왔다. 얀코빅의 앨범은 특정 시기부터 어떤 규칙을 따르고 있다. 앨범의 홀수 트랙에는 패러디 곡을, 짝수 트랙에는 자신의 자작곡을, 그리고 중간에 최신 히트곡의 폴카 메들리를 넣는 방식이었다. 특히 이 폴카 메들리에서 얀코빅의 천재적 발상들이 마구 쏟아진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얀코빅의 진짜 팬들은 패러디 곡이 아닌, 얀코빅의 자작곡 또한 애호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얀코빅은 비교적 초창기에 디지털 발매방식을 모색했다. 왜냐하면 최신 곡의 패러디는 시대에 뒤쳐지기 이전 비교적 빨리 나오면 나올수록 좋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족족 인터넷 상에 싱글로 공개하는 방식은 얀코빅이 기틀을 다져 놓았다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 친화적인 인물이었던 얀코빅이 Don't Download This Song이라는 제목의 곡을 내놓기도 하는데, 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당신들이 불법으로 노래를 다운받으면 내가 비싼 차와 비싼 집을 구입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나무에서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코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얀코빅은 음악 활동 이외에도 벤 폴즈, 프레지던츠 오브 USA의 코믹한 뮤직 비디오를 직접 감독해주기도 했다. 그 밖에도 얀코빅의 원맨쇼에 다름 아닌 영화 UHF 전쟁(*국내 TV 방영 제목은 기적의 채널 62)을 완성했고, 이후 스파이 하드,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 등의 패러디 영화에서도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얀코빅의 (가짜) 전기 영화 위어드가 2022년 공개됐는데, 얀코빅의 역할은 해리 포터로 유명한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담당해 열연하기도 했다. 영화는 전기 영화라기 보다는 UHF 전쟁의 정신적인 속편에 더 가깝다. 2022년 11월 1일 뉴욕 브루클린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시네마에서 열린 위어드 알 얀코빅의 전기 영화 위어드에서 얀코빅 역할을 맡은 다니엘 래드클리프(오른쪽)와 얀코빅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Steven Bergman/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얀코빅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은데 이 지면에서 일일이 다루기에는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만 언급해 보겠다. 얀코빅은 초등학생 시절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싶었지만 부끄럼이 많았기 때문에 들키고 싶지 않아 반 친구들 모두에게 초상화를 그려줬다는 내용을 SNS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얀코빅이 좋아하던 그 여자아이가 직접 보관하고 있던 그 초상화를 몇십년 만에 찾아 온라인상에 올리면서 얀코빅은 SNS에서 첫사랑과 재회하게 된다. 이처럼 얀코빅은 재미있고 재치 있으며 무엇보다 친근하고 겸손하다. 그는 3~40박스 분량의 팬레터를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기도 했다. 데뷔 40주년을 넘어섰지만 위어드 알 얀코빅은 여전히 신선하다. 그는 언제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노래들을 찾아 재해석하고 있고 그 속도는 느려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얀코빅이 자신의 활동명에 이상한(Weird)을 붙여 사용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이상하고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기 때문에 서로를 그렇게생각하는 것에 다름 아닐 뿐이다. 무엇보다 그는 패러디라는 것이 단순한 장난이 아닌 하나의 작품, 그리고 장르로서 자리잡는 데에 일조했다. 남의 노래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행위에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얀코빅은 꾸준히 창의적인 노력들을 이어 나갔다. 수없이 많은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녹음해왔고 이는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 와도 절묘하게 맞물려진다. 때문에 몇 년 전에는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만 공연한다는 슈퍼 볼 하프타임 쇼에 얀코빅을 세워 올리자는 서명이 인터넷 상에 돌기도 했다. 어느 서명인은 서명란 앞쪽 공란에 이렇게 글을 적었다. 위어드 알 얀코빅이야 말로 진정한 미국의 목소리다 ☞ 추천 음반 ◆ Bad Hair Day (1996 / Scotti Brothers) 갱스터랩으로 시작해 모던 록, RB, 펑크, 아카펠라를 관통하는 걸작. 특히 90년대 얼터너티브 곡들의 폴카 메들리 The Alternative Polka는 90년대 중반 빌보드 모던 록 차트를 일목요연하게 요약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앨범 이후 얀코빅은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안경을 벗고 활동한다. ◆ Trapped in the Drive-Thru (2006 / Volcano) 10분 50초에 달하는 이 노래는 알 켈리의 힙합페라(Hip-Hopera) 치정극 Trapped in the Closet을 패러디한 작업물이다. 알 켈리의 오리지널 노래와 비디오 자체도 호들갑스럽기는 한데 얀코빅은 패스트푸드점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하는 과정을 섬세하게(혹은 조잡하게),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다뤄내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잘 찾아보면 웹상에서 한글 자막이 달려 있는 비디오를 확인할 수 있으니 반드시 가사를 숙지하고 볼 것.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 2023.11.29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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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소망의 섬, 배반의 강, 불멸의 빛” 그대 슬픈 눈에 어리는 이슬처럼 맑은 영혼이 내 가슴에 스며 들어와 푸른 샘으로 솟아나리니 그대 여린 입술 사이로 바람처럼 스친 미소가 나의 넋을 휘감아도는 불꽃이 되어 타오르리니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빈 바다를 헤매는 내게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되어 사랑이란 소망의 섬, 그 기슭에 다가갈 수 있다면 사랑이란 약속의 땅, 그곳에 깃들 수만 있다면 그대 붉은 입술 다가와 화살처럼 스친 입맞춤 나의 넋을 앗아가버린 상처되어 남아있는데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 떠나버린 나의 사랑아 꽃상여에 그대 보내며 살아야 할 이유마저 없으니 사랑이란 절망의 벽, 울부짖는 통곡마저 갇힌 채 사랑이란 배반의 강, 간절한 언약마저 버리고 사랑이여 불멸의 빛, 거짓 없는 순종으로 그대를 사랑이여 사랑이여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1992년 조용필 14집, 작사 곽태요, 작곡·노래 조용필) 조용필 14집 앨범 앞면(1992년). (이미지=네이버지식백과) 조용필 노래 제목에 서양 여성의 이름이 들어간 건 두 곡이다. 조용필 10집(1988년)에 모나리자가, 14집(1992년)에 슬픈 베아트리체가 있다. 두 노래 모두 잡을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다. 내 모든 것 다 주어도 그 마음을 잡을 수는 없는 걸까/미소가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돌아서야 하는 걸까/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 단발머리를 쓴 조용필의 오랜 작사 파트너 박건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불멸의 작품 모나리자의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보고 썼다고 한다. 조용필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불리는 노래다. 이 노래 4년 후 슬픈 베아트리체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제목에 생경한 느낌을 가졌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서양에는 사모하는 여인을 칭하는 이름들이 있다. 줄리엣, 베아트리체, 비너스, 아프로디테, 마돈나 등이 그렇다. 문학작품이나 신화 속에 나오는 아름답고 순결한 여인, 영원한 사랑의 표상이다. 베아트리체는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단테의 평생 마음 속 연인이었다. 이런 이름들은 대체로 현실에서 맺어질 수 없는 연인이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입된다.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형이거나 짝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가까이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슬픈 베아트리체는 그걸 묻는다. 조용필의 노랫말들은 대부분 상당히 시적이다. 한양대 국문과 유성호 교수는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이란 책까지 냈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음유시인 밥 딜런을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슬픈 베아트리체는 특히 그렇다. 산문으로 풀면 이렇다. 당신은 이슬처럼 맑은 영혼이고 바람처럼 스친 미소입니다. 그것들이 내 가슴에 스며들어와 솟아나는 푸른 샘이, 넋을 휘감아 도는 불꽃이 되었습니다. 내게 사랑은 소망의 섬이요, 약속한 땅입니다. 그 기슭에 다가서고 그 땅에 깃들고 싶습니다. 빈 바다를 헤매는 내가 살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당신입니다. 하지만 그대는 떠났지요. 화살처럼 스친 당신의 붉은 입술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당신을 꽃상여에 보내며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상실했습니다. 사랑이란 결국 절망의 벽이요, 배반의 강이었나 봅니다. 울부짖는 통곡마저 가두고 간절한 언약마저 저버린 나의 사랑. 그래도 내게 사랑은 불멸의 빛입니다. 거짓 없는 순종으로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1274년, 아홉 살의 알리기에리 단테(1265~1321)는 이탈리아 피렌체 최고 가문의 딸인 여덟 살의 베아트리체를 그 집 파티에서 처음 만나 혼자만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열여덟 살에 피렌체 아르노강의 베키오 다리에서 우연히 다시 스쳤으나 아무런 고백도 하지 못한 채 인사만 건네고 헤어진다. 그렇게 짧은 단 두 번의 마주침이었지만 베아트리체는 평생 단체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연인이 되었다. 영국 화가 헨리 홀리데이가 1883년에 그린 베아트리체를 만난 단테. 단체는 아홉 살에 처음 만난 베아트리체를 홀로 사모해 오다 열여덟 살에 피렌체 아르노강 베키오 다리에 서 두 번째로 스쳐 지나가듯 만났으나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고 그게 끝이었다. 4세기 중엽에 완성된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다리로 이후 사랑의 명소가 됐다. (이미지=네이버지식백과) 명문가의 남자와 결혼을 한 베아트리체는 24세 젊은 나이로 콜레라로 세상을 떠난다. 단테도 결혼을 하고 세 아들을 두었다. 단테는 피렌체 정계의 핵심 인물로 출세했으나 실각했다. 긴 망명 생활을 하면서 그가 한 일은 못다 이룬 첫사랑을 문학으로 승화한 것이다. 불멸의 작품인 신곡(神曲, La Commedia di Dante Alighie)이다. 죽기 1년 전인 1320년 12년 만에 완성한 대서사시다. 베아트리체는 신곡에서 숭고한 사랑의 상징으로 환생하고 천국의 안내자가 되어 단테를 구원한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최고의 선이요, 영원한 동경과 사랑이자 문학적 영감의 원천으로 평생을 함께한 셈이다. 신곡 이후 베아트리체는 영원한 연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가 짝사랑하던 여인의 이름도 베아트리체다. 신곡의 원제는 우리말로 하면 단테의 희극인데, 일본 작가 모리 오가이가 만든 이상한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단테에 대해 지구 위를 걸었던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극찬했고, 괴테는 신곡에 대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라고 찬미했다. 시인 서정주는 이 노랫말이 한 편의 매우 아름다운 시라고 말했다. 이 노래 작사가는 곽태요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언론사에서 일하며 시를 썼다고 하는데, 같은 앨범에 실린 고독한 러너 외에는 다른 가사가 찾아지지 않는다. 노래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반주로 고급한 가곡의 느낌을 준다. 대부분 노래의 길이가 3분 안팎인 시절, 이 노래는 5분 22초나 이어지며 반복되는 후렴도 없다. 조용필은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창법을 구사했다. 고난도의 노래로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승부를 거는 노래로 많이 불린다. 팬텀싱어에서는 성악으로 재조명됐다. 2017년 방영된 JTBC 팬텀싱어 시즌1 결승전에서 슬픈 베아트리체를 열창하는 성악그룹 인기현상. 슬픈 베아트리체는 클래식의 느낌을 준다. (JTBC 방송화면 캡처) 조용필은 고독과 바람의 가수다. 그의 노래들은 인생과 사랑에 뒤따를 수밖에 없는 근원적 고독과 허무를 깔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나지는 않는다. 조용필은 고독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악수하며 극복하는 삶의 의지로 승화한다.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고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이라면서도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이고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킬리만자로의 표범). 슬픈 베아트리체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통곡하면서도 사랑은 불멸의 빛이라며 그 사랑에 거짓 없이 순종하겠노라고 한다. 역시 곽태요가 작사한 고독한 러너에서는 어떤가. 어느 하늘에 꿈이 있을까/어느 바다에 사랑 있을까/이제는 모두 떠나버리고 홀로 남아/시작이라는 신호도 없고/마지막이란 표시도 없이라고 고독을 말하지만 지쳐 쓰러져도 달려가리라/푸른 바다에 파도가 되어/아침 햇살에 솟아오르고/저녁 노을에 지는 날까지/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뛰어가리라며 고독한 러너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조용필 음악의 원천은 깊은 고독이지만 그는 고독에서 늘 새로 탄생한다. 그의 밴드명처럼 위대한 탄생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빠졌든, 그 사랑으로 아파하든, 사랑이 떠나갔든, 그의 노래에서 위안과 삶의 의지를 얻는 것이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2023.11.29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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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중심, 영국과 프랑스 방문 성과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성공적인 순방을 마쳤다. 지난 4월의 워싱턴 선언과 8월의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협력이 있었고 그 사이 일본에서 G7 정상회담 참가가 있기는 했지만, 우리 외교안보 자원이 미국과 일본에 다소 과다하게 집중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일던 차에 윤 대통령의 의미 있는 방문이 이뤄졌다. 세계 민주주의 본산인 영국을 상대로는 민주주의를 매개로 유럽의 한복판에서 유례가 없는 최고 수준의 외교 파트너십을 구축했고, 프랑스를 찾아서는 엑스포 외교에 집중하면서 한국 특유의 총력 외교를 전개했다. 영국 국빈 방문을 통해 국방 안보와 탄소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국가 이익의 모든 영역을 다뤘다. 언론의 보도처럼 이번 윤 대통령의 영국 방문은 찰스 3세 국왕이 초청한 첫 국빈 자격이었다. 왕실 주최의 성대한 공식 환영식과 버킹엄궁 국빈 만찬이 이어졌는데 이런 형식에 현혹되지 말자는 일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외교 전문가가 말하듯이 외교는 의전(儀典)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한·영 수교 140년을 계기로 한·영 관계의 분기점이 마련되었다. 140년 전 영국군이 처음 한반도에 발을 내디뎠을 순간을 떠올려 보면 실로 감회가 새롭다. 140년의 역사 동안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경제성장, 민주화 운동 등 한국의 근현대사에는 유난히 굴곡진 사건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성장·민주주의·선진화를 목표로 쉬지 않고 나아갔다. 이번 한·영 정상회담은 이러한 나아감이 빚어낸 상징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백악관, 조어대, 총리관저(일본)와 관련한 보도에 익숙하던 우리에게 다우닝가 합의 역시 충분히 신선했고 내용도 매우 풍부했다. 이번에 합의한 풍부한 어젠다는 양국 간 외교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끌어 올리게 되었는데, 필자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사이버 파트너십 관련 부분이다. 사실 사이버 분야는 아직까지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인 합의와 룰이 매우 빈약한 상태다. 자칭 타칭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영국과 사이버 분야의 협력과 글로벌 룰을 주도해 나간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처음부터 끝까지 부산엑스포 유치전이었다고 알려졌지만 필자는 이런 분석에 50%만 동의한다. 물론 엑스포 유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는 충분히 강했고, 프랑스 방문의 목적 또한 여기에 부합하는 점은 이해한다. 동시에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세계화 30년 시간 동안 진행된 독일의 독주와 격차를 만회하고자 최근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외교전(外交戰)은 한국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기존의 양자 및 다자주의 외교에 더해서 다양한 소다자주의 외교 네트워크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행정부와 경제계 리더들의 대규모 방문은 외교 현안이 무엇인가를 떠나서 급변하는 국제질서에서 외교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아시아 50여개 국가 중에서 한국은 명실공히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과 가장 앞선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다. 한국 외교는 한반도를 대표하지만 동시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런 맥락에서도 세계 민주주의 본산인 영국과 치열한 외교전의 현장인 프랑스, 이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정상외교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세계화 이후 모든 나라들이 그러하듯 국경이 사라지고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현실에서 한국처럼 이제는 상당한 체격을 갖춘 나라의 활발한 정상외교는 불가피해 보인다. 외교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국가 자원이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3.11.28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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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팝(J-POP)’의 귀환…왜? 연말이다. 2023년도 거의 다 갔다. 한 해를 돌아보며 올해 음악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몇 가지 키워드가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일이 있다. 바로 제이팝의 귀환이다. 한국에서 일본음악이 다시 인기를 끌었다는 뜻이다. 방금 나는 귀환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다. 맞다. 일본음악은 한국에서 한 때 각광받았던 적이 있다. 일본문화가 공식적으로 개방되기 전부터 이미 일본음악은 한국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적지 않은 제이팝 마니아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아우르는 시간 동안 제이팝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정이 달랐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제이팝은 한국에서 존재감이 점점 약해졌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역시 케이팝의 약진이 크다. 케이팝과 한국힙합의 성장 및 발전으로 인해 일본음악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돌아보니 그게 벌써 10년 더 된 것 같다. 세월 참 빠르다.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모은 밴드 엑스 재팬(X JAPAN)의 리더 요시키가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걸스 익스플로션 패션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AP Photo/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런데 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올해에는 제이팝이 한국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확언해도 될 만큼 가시적인 흐름이 잡혔다. 일본아티스트 이마세의 노래가 멜론 톱100 챠트에 진입했고, 일본밴드 요아소비의 내한 콘서트가 전석 매진되어 공연회차를 한 번 더 늘려야 했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토미오카아이가 한국팬들의 요청에 힘입어 한국에 다녀가기도 했다. 2023년은 제이팝이 한국에서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스포티파이가 가챠팝이란 플레이리스트를 신설한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가챠는 일본의 캡슐 뽑기 자판기에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일컫는 말이다. 스포티파이는 이 플레이리스트의 설명란에 어떤 노래가 나올지 레버를 돌려보세요. 당신의 네오-제이팝을 찾아보세요라고 써놨다. 네오-제이팝이라. 제이팝의 새로운 흐름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스포티파이도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최근 각광받는 제이팝은 예전의 제이팝과 사뭇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예전과 여전히 비슷한 점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점도 있다. 요즘의 제이팝은 일본의 전통적인 록음악과도 다르고 일본만의 색이 강한 아이돌음악과도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근 제이팝 열풍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마세의 NIGHT DANCER는 얼핏 들으면 그냥 세련된 팝이다. 전통의 일본풍이나 짙은 일본색은 찾아볼 수 없다. 보다 많은 한국인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이다. 그렇다면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틱톡과 유튜브쇼츠 같은 플랫폼과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그런데 이게 실제로 올해에 일어났습니다 네오-제이팝 곱하기 틱톡 곱하기 쇼츠라.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더 이상했을지도. 일본음악이 내수에만 매몰돼 있다는 말은 이제 사실이 아니다. 아직도 일본음악을 고인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게으른 사람이다. 일본음악은 이미 해외로 눈을 돌렸고 다양한 디지털 프로모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 재패니메이션의 도움도 얻고 있다. 텐피트의 인기는 슬램덩크 극장판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빼놓고 말할 수 없고 요아소비의 인기는 TV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가 불을 지폈으니까. J팝 듀오 요아소비(YOASOBI)가 지난 22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열린 MTV VMAJ(비디오 뮤직 어워드 재팬)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Keizo Mori/UPI/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케이팝의 반작용이라는 관점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케이팝이 화려하고 복잡하고 타이트한 느낌이라면 제이팝은 여러 모로 상반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케이팝은 맥시멀리즘이고 제이팝은 미니멀리즘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단순화한 비교가 맞다. 하지만 케이팝에 물리거나 피로를 느낀 이들이 제이팝에서 결핍을 채우거나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았다고 말한다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제이팝에서 엿보이는 태도와 가사 스타일을 통해서도 최근의 제이팝 열풍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 현재 거의 국민가수이자 한국에도 많은 팬이 있는 Aimyon의 노래들이 좋은 예다. 개인의 내밀한 마음을 담백하게 드러내고 일상의 작은 단위들을 섬세하게 적은 그의 노랫말은 제이팝의 전통적인 가사 경향과 이어져 있는 동시에 일본인의 경향성과도 연결돼 있다. 복잡미묘한 마음상태를 은은하게 돌려 말하는,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화법 말이다. 나는 제이팝의 이러한 무드가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가닿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대보다 개인적이고, 기꺼이 혼자를 즐기고, 때때로 전화통화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분위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약간은 의기소침해져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말이다. 아, 국적과 언어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고 그 음악이 힙하고 취향에 맞으면 바로 좋아할 수 있는 그들의 특성 역시 빠뜨려서는 안 된다. 나라가 다른 게 중요한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는 세대이기도 하니까. 이번 글에서는 제이팝의 귀환에 대해 큰 맥락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에서 실제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아티스트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힙합에 관해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들에게 음악과 예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최근에는 제이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의 시학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2023.11.24 김봉현 음악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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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국민음악가, 드보르작의 영화 속 음악 오랜 세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통치를 받았으며 굴곡진 현대사를 가지고 있는 체코는 동유럽의 보석과도 같은 나라다. 수도 프라하를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강과 아름다운 호수와 동굴, 그리고 굽이치는 협곡과 넓은 평원은 체코의 자연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 환경은 여러 체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이는 국민음악가라 할 수 있는 드보르작일 것이다. 물론 그가 살았던 당시에는 체코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보헤미아인이라는 민족성과 자신들의 언어를 갖고 있었다. 드보르작의 음악은 풍부한 화성과 보헤미아의 자연을 닮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서정성이 있다. 또한 그의 음악 속 단순함에는 민족성과 자연, 그리고 인간미가 녹아있다. 음악을 통해 모두와 소통하고 싶어했던 드보르작의 언어는 심각하고 어둡기보다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영화에서도 아름답게 빛나며 스토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성실했던 드보르작은 9개의 오페라와 교향곡을 포함해 많은 장르의 작품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의 어떤 음악들이 영상과 함께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있을까. 체코 카를로비 바리에 있는 드보르작 공원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oncerto 드보르작은 많은 수의 협주곡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오직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 협주곡만 작곡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곡도 종종 연주되지만 그 중 가장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연주되는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첼로 협주곡 B minor다.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은 A major와 B minor가 있는데 A major는 미숙기 그의 젊은 시절 작품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이 되지 않은 미완의 작품이다. 하지만 첼로 협주곡 B minor는 그의 전성기 작품으로 대중적이며 첼로협주곡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54세의 드보르작이 미국 뉴욕의 국립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할 시절에 작곡한 첼로 협주곡 B minor는 보헤미아의 정서 위에 미국 토속의 인디언, 흑인영가 등의 멜로디가 융합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94년 3월 뉴욕필하모닉의 연주회장에서 동료 작곡가이자 첼리스트인 빅터 허버트가 작곡한 첼로 협주곡2번을 듣고 영감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은 전체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악장은 엄격한 소나타 형식으로 이국적인 1주제가 목가 풍의 주제로 발전하며 에너지 넘치는 첼로의 선율이 흐르고 있다. 2악장은 마치 엄마의 품속 같은 따스함과 고향의 아련한 정서가 느껴지며 드보르작의 타지생활에서 오는 고독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악장이다. 마지막 3악장은 넘치는 에너지 감정을 보헤미아의 무곡과 민요, 그리고 미국 토속음악의 리듬을 잘 융합하여 녹여내었다. 첼로협주곡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몇몇 영화에서 등장하는데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힐러리와 재키, 거장 키에슬로프키의 마지막 작품 랑페르(Lenfer), 잭 니콜슨과 미쉘 파이퍼등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이 출연한 이스트윅의 마녀들(The Witches Of Eastwick)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티모시 달튼이 주연한 007 시리즈에서도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을 들을 수 있는데 영화의 장르와 상관없이 많은 작품에 삽입될 정도로 음악감독들에게 사랑 받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Opera 총 9개의 오페라 작품을 남긴 드보르작은 독일어로 쓰여진 첫 작품 알프레드를 제외하고 이후 작품들은 모두 체코어로 작곡되었다. 이들은 민족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지만 대중적으로 그의 유일한 성공작은 루살카 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페라 루살카는 체코 판 인어공주라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물의 요정이며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루살카가 인간인 왕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 스토리의 줄거리다. 루살카를 작곡할 당시 유럽은 바그너와 리스트, 드뷔시 등 새로운 음악적 조류와 스타일이 휩쓸고 있었는데, 드보르작은 진보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인 음악적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드보르작이 브람스와 교류하며 그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기 때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 루살카는 연속성 있는 오케스트레이션과 복잡한 화성, 그리고 모티브의 활용 등을 통해 바그너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미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바그너와 이탈리아 오페라 그리고 자신의 민족적 정서와 음악들이 서로 적절히 어우러진 작품이 바로 루살카라고 할 수 있겠다. 루살카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라면 달의 노래(Song to the Moon)다. 달의 노래는 왕자와 사랑에 빠진 루살카가 달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해달라고 부르는 아리아다. 하프연주로 시작되는 이 아리아는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름다운 선율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다. 여러 기악곡들로 편곡됐으며 매혹적인 선율 때문에 많은 영화에 삽입되었다. 제시카 텐디와 모건 프리먼 주연의 아름다운 영화 드라이빙 미스데이지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영화화 한 바이센테니얼 맨 그리고 윌리엄 데포 주연의 헌터가 대표적이다. ◆ Humoresques 가장 대중적이며 널리 연주되고 사랑 받는 드보르작의 작품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유모레스크(Humoresques)일 것이다. 피아노 소품곡으로 베토벤의 엘레제를 위하여 이후 가장 유명하며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리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편곡으로도 자주 연주된다. 유모레스크는 바이올린 이외에도 오케스트라버전, 각종 현악기와 목관악기 등으로 연주되는데, 이렇게 다양한 편곡으로도 연주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멜로디와 대중성을 함께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박자 형식의 유모레스크는 우아한 기품이 있으며 유머러스한 매력을 품고 있다. 또한 때때로 서정적인 선율과 되돌아 오는 밝은 분위기는 우리의 인생처럼 해학적인 느낌 또한 주고 있다. 마치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처럼 말이다. 드보르작은 총 8개의 유모레스크를 남겼는데, 보통 그의 유모레스크를 지칭하면 7번째 작품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 국립음악원 원장시절에 많은 명작을 남긴 드보르작은 휴가시즌에 고향에 들러서 그 동안 수집한 다양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엮어서 유모레스크를 작곡했다. 그의 유모레스크는 단순하지만 유럽의 전통과 민족성을 바탕으로 미국적인 열린 사고가 융합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대중성은 유모레스크를 드보르작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영화음악에 활용하게 만들었다. 유모레스크가 삽입된 작품은 1929년도 디즈니사의 Mickeys Choo-Cho를 비롯하여 게리쿠퍼 주연의 Mr. Deeds Goes to Town, 셜리 존스가 출연한 The Secret of My Success, 영화 조이럭클럽과 키스 헤링턴 주연의 Testament of Youth까지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영화의 OST로 활용되었다. ◆ Symphony 작곡가에게 교향곡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쏟아 붓는 작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작곡가의 긴 사이클 중에서 교향곡은 하나의 이정표와도 같은 표식이며 발자국이라 할 수 있다. 드보르작은 일생 동안 총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모든 작곡가들이 그렇듯 마지막 작품에 이르러서 사고의 확장과 통찰력이 음악을 통해 드러나듯이 그의 9번교향곡은 명작이자 그를 상징하는 작품과도 같다. 신세계로부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작품은 드보르작이 3년간의 미국생활 중에 완성한 교향곡으로 미국의 토속적 멜로디와 국민악파의 전통적인 색채를 아름답게 융합했다. 전체 4악장의 구성으로 되어있는 9번 교향곡은 모든 악장이 완성도가 높고 음악적 개성이 뚜렷하지만 그 중 2악장과 4악장은 대중들에게 특별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2악장의 오보에와 클라리넷, 잉글리쉬 호른의 멜로디는 고향의 향수와 그리움을 아름다운 선율로 풀어내고 있으며, 기관차의 소리를 도입부에 배치한 4악장은 여러 영화의 모티브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테마이다. 9번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드보르작의 8번 교향곡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특히 3악장은 드보르작의 로맨티시즘을 엿볼 수 있다. 교향곡 9번을 OST로 사용한 영화 작품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캐서린 햅번의 1935년작 Break of Hearts, 1937년작 Wells Fargo가 있다. 또한 해리슨 포드의 긴급명령, 글렌 클로즈의 Paradise Road,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디파티드등이 대표적이다. 8번 또한 Dear Wendy와 Belle toujours등 여러 영화에 삽입되었다. ◆ Coda 드보르작의 작품은 이외에도 대표작인 현악사중주 아메리카, 현악합주곡 세레나데, Slavonic Dances, 가곡 Songs my mother taught me등이 영화에 자주 쓰였다. 드보르작의 음악은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선율과 서정성으로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곤 하며 때때로 긴장감 넘치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 또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음악이 드라마틱하며 서정적인 이유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사고와 조국과 자연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 음반추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를 추천한다. 피에르 푸르니에의 첼로 연주 또한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오페라 루살카의 달의 노래(Song to the Moon)는 루치아 포프와 르네 플레밍의 목소리가 아름답다. 유모레스크는 개인적으로 바이올리스트 크라이슬러가 직접 연주한 음반과 조슈아 벨의 연주도 좋다. 교향곡8번은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선호하고 9번은 카라얀과 라파엘 쿠벨릭을 명반으로 꼽고, 구스타보 두다멜이 교황 베네딕토16세의 80세 생일 콘서트에서 연주한 영상 또한 인상 깊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2023.11.23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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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사회복무요원 이기식 병무청장 지난 1월 강추위 속 대전의 한 대형병원 주차장에서 협심증으로 쓰러진 60대 시민을 발견해 심폐소생술을 통해 생명을 구한 청년의 미담 사례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또 지난 8월 동대구역에서 흉기를 꺼내던 사람을 발견해 즉시 철도경찰에 신고해 큰 범죄를 예방한 청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청년 모두 사회복무요원이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더욱 밝고 건강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이 있다. 현재 전국에는 5만여 명의 사회복무요원이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문화, 환경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노인·장애인 복지시설, 지역아동센터, 철도 역사 등 우리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현장 곳곳에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에 병무청에서는 사회복무요원들이 복무현장에서 정당한 권익을 보장받고, 병역이행으로 인한 학업 및 경력 공백을 최소화해 복무 후 안정적인 사회진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올 해 10월 31일 병역법에 복무기관 내 괴롭힘 금지 및 성실복무 의무 관련 해당조항을 신설해 내년 5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복무기관의 장 또는 직원들은 사회복무요원에게 폭행, 폭언 등의 괴롭힘을 할 수 없다. 사회복무요원들은 정당한 직무 명령을 준수하고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복무요원이 복무기관에서 괴롭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권익보호가 한층 강화됐다. 둘째, 복무기관에 배치할 때에 전공을 연계해 배치함으로써 자기개발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복무자의 70% 이상이 사회서비스 분야에 복무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전공과 사회서비스 수행기관의 업무가 연계되도록 2020년부터 전공·복무기관 연계 배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약 4500명 이상의 청년들이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관련 기관에서 복무하면서 경력단절 없이 사회경험을 쌓고 자기개발의 기회를 갖게 됐다. 셋째, 복무중 행했던 봉사활동과 리더십 활동 등이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회복무경험 학점인정제를 2020년 1학기부터 시행하고 있다. 참여 대학은 매년 10여 곳씩 증가해 현재 41개 대학이 사회복무경험을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향후 유관기관과 협업을 강화해 복무 중 취업·창업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한편 학점인정 참여대학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넷째, 청년들이 사회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병역이행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복무요원 복무만료 후 학업 및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장병내일준비적금 가입자에게 사회복귀준비금을 지원하고 있다. 사회복귀준비금은 2022년 적금 납입액부터 지원되고 있으며, 장병봉급인상과 함께 지원액도 단계적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예를들어 2023년 1월 소집자가 매월 40만 원씩 납입하면, 2024년 9월 복무만료 후에는 원금을 포함해서 1500여만 원을 수령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사회복무대상(大賞) 시상을 통해 사회복무요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있다. 금년에 10주년을 맞이하는 사회복무대상 시상식에서는 매년 100여 명 이상을 포상해 왔으며, 모범 사회복무요원 및 복무기관에 대한 포상·격려로 이들의 사기진작과 자긍심을 고취해나가고 있다. 금년 12월 초 사회복무대상 수상자와 복무분야 별 최우수자 등 모범 사회복무요원들을 시상식에 초청, 그간의 노력에 대해 격려하고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병무청은 우리 사회의 복지와 안전 사각지대에서 오늘도 묵묵히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들이 권익을 보장받고 병역이행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2023.11.22 이기식 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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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APEC 정상회의 참석: 캠프데이비드 정신과 글로벌 중추국가의 동시 구현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지난 11월 15일~1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3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규칙 기반 자유무역 확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식량안보 달성, 공정하고 투명한 디지털 생태계 조성 등에 대한 회원국들의 협력을 재다짐하는 자리였다. APEC을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 간 경쟁이 지나친 갈등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한편, 기후변화· 마약 퇴치·인공지능 문제 등에 있어서는 협력해 나갈 뜻을 표명했다. 그동안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 각종 신흥안보 이슈에 대한 국가 간 협력 동력의 상실 등을 우려했던 지구촌 가족들에게는 안도감을 주는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우리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리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각종 국제회의를 통해 세계의 눈높이에 맞춘 외교를 펼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는 우리의 한반도 문제 해결 정책에 대한 지지만을 호소하거나 단순히 참가에 의의를 두는 기존의 외교 관행으로부터 탈피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행보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15일 APEC 정상회의 개막일에 열린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행사 기조연설에서 다자무역체제의 수호자로서 APEC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언급했고, 이는 17일의 제2세션 발언에서도 다시 강조되었다. APEC의 역할 강화 필요성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은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위한 APEC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제의(제2세션)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16일 인도-태평양 경제협력프레임워크(IPEF) 정상회의에 참석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공급망 안전을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첨단 과학기술의 보호·발전을 위한 협력, 디지털 격차 해소 및 거버넌스 확립은 미래 성장동력과 직결된 현안으로, 우리 정부가 지난해부터 강조해 온 사항인데, 윤 대통령은 APEC 제2세션 회의에서 AI·디지털 규범과 거버넌스 정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내년 중 한국에서 개최할 AI 글로벌 포럼에 대한 APEC 회원국들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첨단과학기술과 디지털 분야 협력의 중요성은 17일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한일정상 좌담회에서도 다시 언급되었고,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원천기술 및 첨단기술 개발, AI와 디지털 거버넌스 정립, 탄소 저감과 청정에너지 분야에서의 한-미-일 공조 강화와 공동 리더십 발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이제 글로벌 의제들의 대상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제창출자(Agenda Setter)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글로벌 중추국가를 향한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GM, 듀폰, IMC, Ecolab 등 미국 4개 기업으로부터 총 1조 5000억 원(11억 6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것 역시 우리 세일즈 외교의 개가라 할 수 있다. 지난 8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동력을 확보한 한-미-일 협력 추세를 다시 과시한 것도 이번 APEC 정상회의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그리고 기시다 일본 총리는16일 별도의 3자 회동을 가졌고, 한일 간에는 16일 정상회담에 이어 17일 스탠퍼드 대학에서도 다시 만남이 이루어졌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에는 한일관계의 완전한 회복과 지속적인 협력의 정신이 다시 확인되었다.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 이후 국내외적으로 이에 대한 견제와 북러 간의 외교·군사적 밀착이 있었음을 고려할 때 이는 분명 의미가 있다. 일부에서는 한-미-일 협력이 북러 밀착과 북-중-러 삼각 관계의 강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고,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국제정세의 격변 속에서 미국이 국제질서에 대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또한 북한이 핵 능력 고도화를 지속하는 현실에서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 공약과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윤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참가는 캠프데이비드 정신은 변함이 없고, 각종 도전요인들에 맞서 한-미-일의 결속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통해 미중 정상회담과 일중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지만, 한중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다른 양자관계에 비해 한중 간의 긴장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한중 간에는 이미 지난 8월 중국 정부가 유커(游客)들의 한국 관광을 다시 허용한 데에서도 나타나듯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고, 중국 역시 과거의 외교 관행이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불러왔다는 교훈을 상기할 것이다. 설사 중국이 한국을 한-미-일 안보협력의 약한 고리로 인식하여 초조감을 불러일으키려는 포석을 두고 있다고 해도, 이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중국의 협력적 자세를 유도할 수 있다. 캠프데이비드 정신과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상호존중의 한중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2023.11.21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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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정의(Justice), 다양한 질문이 필요하다 김용선 국민대학교 스포츠윤리연구소 박사 우리 일상에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오며 사라지지 않는 물음, 비록 명쾌한 해답과 해결이 불가능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물음은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오늘날 정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어쩌면 보다 나은 인간 사회의 구현에 대한 희망과 동시에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정의 문제에 대한 갈구함을 뜻한다. 비단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스포츠는 공정성과 경쟁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현재 스포츠는 정치, 경제, 과학, 외교 등 여러 분야와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며, 우리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듯 복잡한 이해관계 안에 놓인 현대사회의 스포츠는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 그 안에서 옳은 정의를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 스포츠는 평등과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실은 승리지상주의와 결과중심주의에 의한 평등과 공정성만을 확인하고자 하며, 스포츠의 다양한 가치와 스포츠 내 숨겨진 도덕을 간과하고 있어 스포츠 정의에 대한 고민은 더 깊다. 스포츠 정의의 실현을 위한 몇 가지 쟁점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 영향력은 시대적·사회적으로 변화하고 있어 시대가 변화하면 스포츠에 대한 인식도 스포츠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사회에서 구현되는 정의는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며, 시대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역동적 개념으로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공동체의 관습과 문화 그리고 정치적 이유에 따라 다르다. 즉, 스포츠에서 정의 실현은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와 시대에 부합된 기준과 잣대로 평가받아야 하며, 현실적인 측면에서 정의를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1. 여성 선수 경기에 남성 선수를 페이스메이커(Pace maker)로 참여시켰다면,페이스메이커는 전략인가? vs 페이스메이커는 의도된 희생인가? 2003년 4월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Paula Radcliffe)라는 여성 선수가 2시간 15분 25초의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 경기에서 폴라 래드클리프는 남성 페이스메이커 5명에 둘러싸여 결승선까지 달리며 그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여성 선수 경기에 성별이 다른 남성 선수를 페이스메이커 역할로 참여시켜 얻은 폴라 래드클리프의 세계기록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세계마라톤연맹은 폴라 래드클리프의 기록에 문제없음을 공식화하며, 마라톤경기에서 페이스메이커의 존재를사실상 인정했다. 스포츠는 경기할 때 경쟁에 이기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정당한 행위이며, 스포츠경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선수, 팀은 승리를 얻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스포츠 참여자들의 보편적 주장이다. 그렇다면 스포츠경기 내에 존재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같은 팀 선수의 우승을 위한 전략과 전술의 방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팀에 소속된 선수의 우승을 돕기 위한 의도된 희생의 역할로 스포츠규칙의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팀워크를 가장한 경쟁성과 공정성을 훼손시키는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인가? 2. 의족을 착용하며 패럴림픽이 아닌 일반 육상경기에 출전한 선수는,장애를 극복한 인간 한계의 도전인가? vs 신체 한계를 극복한 도구에 대한 공정성 논쟁인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육상 남자 400m에 출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Oscar Pistorius) 선수는 의족을 착용하며 근대올림픽이 개최된 이래, 장애를 갖고 패럴림픽이 아닌 일반인 육상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착용한 의족은 강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탄소 섬유 소재로 치타와 캥거루의 움직임이 반영된 뒤꿈치가 없는 알파벳 C 모양이다. 이를 통해 그는 마이클 존슨(Michael Johnson)의 육상 남자 200m 세계기록보다 1.5초 느린 기록을 갖게 되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올림피즘의 상징적 모토인 인간 한계를 극복한 스포츠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선수로서 찬사를 받았지만, 일반선수들은 그가 착용한 의족을 문제 삼아 공정성 논쟁으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rations)에 제소하였고, 이 문제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에서 참가를 결정하며 5년 만에 일반선수들과 함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올림픽 참가 문제는 장애에 의한 신체 약점을 극복한 인간 한계의 도전 문제인가? 아니면 안경처럼 자연적인 신체 한계를 극복하는 도구 또는 도핑처럼 인위적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인가?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쟁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윤리적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3. 2020 도쿄올림픽에 역도 국가대표로 참여한 트랜스젠더 선수,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인권 문제인가? vs 시스젠더 여성 선수를 역차별하는 공정성 문제인가? 뉴질랜드의 역도 국가대표인 로렐 허버드(Laurel Hubbard) 선수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젠더 선수로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힌 논바이너리(Non-binary, 이하 LABTQ) 선수들의 올림픽 참여는 현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트랜스젠더 선수의 증가와 관련하여 로렐 허버드의 올림픽경기 참여는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시스젠더(Cisgender,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 선수들과 동일하게 경쟁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공정성 문제에 대하여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경기 참여권은 성 정체성과 관련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권 문제와 시스젠더 여성 선수들에게 역차별되는 공정성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스포츠 평등권의 문제로 어떤 균형을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다. 4. 인간과 로봇(인공지능)과의 시합,스포츠 속 인간과 기계와의 자연스러운 공존인가? vs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윤리적 논쟁인가? 1997년 설립된 세계로봇축구대회인 로보컵(Robocup)은 AI 로봇 축구대회로 로보컵의 최종 목표는 2050년 AI 로봇과 인간 월드컵 우승팀의 대결에서 AI 로봇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전문가들은 AI 로봇들이 2050년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아직 없지만, 30년 안에 어떤 기술이 어떻게 생길지 모른다며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실제 2045년 기술이 인간을 초월한다는 문명의 특이점(Singularity)이 다가오고 있다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논의에 따르면 로보컵에서 인간과 로봇과의 시합, 그리고 로봇의 승리는 그렇게 상상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2016년 바둑 9단 이세돌과 알파고(AI)의 대전에서 알파고가 4대1로 승리하면서, 신체를 이용한 스포츠에서도 인간과 AI와의 경쟁이 머지않은 미래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로봇공학, 유전공학, 생명공학 등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은 우리 일상의 커다란 파장과 함께 스포츠에서도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키며 자연적 신체성을 벗어난 인간 존엄성의 문제, 향상된 신체에 의한 공정성 논쟁,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 스포츠의 중심 가치들을 훼손할 수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스포츠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예측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고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스포츠에 첨단 과학기술의 도입은 많은 기대와 우려의 논의로 소환되며, 스포츠 정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고민과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마치며 정의는 하나의 완결적인 이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를 보면 정의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자동화, 연결성의 극대화, 파괴적 혁신에 의한 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신체에 개입하며 스포츠에서도 인간 vs 인간의 시합을 넘어, 인간 vs 기계가 시합을 할 수 있는 시대로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과거 스포츠가 추구했던 스포츠 정의는 분명 이전의 정의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의의 문제는 이론적 체계에 의한 합리적이며 논리적 결과물이었던 정의보다는 사회적 인식과 정서를 기반으로 한 가치 기준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스포츠에는 자유, 평등, 배려, 인정, 화합, 연대, 공정, 정의 등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물론 사회가 원하는 경쟁과 승리의 가치를 무시한 채, 스포츠의 전통적 도덕만을 고집한다면 현실과 분리된 스포츠문화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 스포츠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중심 가치는 분명 이전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스포츠 정의는 타고난 신체의 정상성을 기준으로 승리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공정성이란 명분에 따라 인종, 장애, 소수자, 종교, 젠더(Gender) 등을차별하는 것이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스포츠의 역할과 정의가 필요하다. 즉, 스포츠에서 정의 실현은 스포츠가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핵심가치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관점에서 이해될 때 가능해진다. 스포츠가 비교 테스트의 장으로서의 역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긍정의 가치를 경험하고, 화합할 수 있는 확장된 스포츠 공동체를 구성하는 역할로 스포츠를 바라보는 변화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49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3.11.20 김용선 국민대학교 스포츠윤리연구소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