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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일본을 이기지 못한 이유
지난 16일 규모 7.3의 강진이 일본 규슈지방 구마모토현을 강타하면서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대지진은 1995년 1월 발생해 65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과 지진 규모는 비슷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47명으로 인명 피해는 과거에 비해 매우 적었다. 지난 주 비슷한 시기에 에콰도르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규모와 비교 해보면 그간 일본이 얼마나 자연재해 발생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열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8년 이래 규모 4.0 이상의 지진은 최근까지 총 43회 발생했고, 사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인 규모 5.0 이상 지진은 6회 발생했다고 한다.
한반도도 이제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의견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진 발생 빈도 또한 늘고 있다. (자료=기상청) |
실제로 지난 16일에는 일본 구마모토 현을 강타한 지진의 여파로 우리나라 경남 지역에서도 진도 3.0의 지진이 관측됐다.
반면, 일본 정부와 국민들이 이번 지진에 대응하는 모습은 외신을 통해 보도되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어떻게 지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건축물의 ‘내진 설계’ 덕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피해 지역인 구마모토현에는 지진에 취약한 목조 주택이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내진 설계’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피해 지역인 구마모토현에는 지진에 취약한 목조 주택이 많아 재산 피해가 특히 컸다. (사진=KTV 국민방송) |
필자는 지난 2010년 교육부의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을 통해 일본으로 학술답사를 다녀왔는데, 이때 일본 곳곳에 위치한 기상청과 방재센터에 방문해서 일본이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실습’ 위주의 재난 대응 훈련
일단 지진이 발생하면 몇 초 만에 많은 인명, 재산 피해가 일어나게 된다. 한번 땅이 흔들린 다음에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평상시 반복 훈련을 통해 지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재난 대응 훈련은 자연 재해가 발생했을 때 행동 요령을 어릴 때부터 습관화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훈련해야 상황 발생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훈련의 골자다. 일본 국민들은 미취학 아동부터 성인들까지 전국에 위치한 200여개 방재센터를 통해 의무적으로 재난대응훈련을 받고 있다.
가고시마현 방재연수센터에서 시민들이 지진 발생 시 대피 요령, 부상자 응급 조치 방법 등에 관한 훈련을 받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어린 아이부터 성인들까지 의무적으로 재난 대응 훈련을 받는다. 어려서부터 반복 학습해야 긴급한 상황 발생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훈련의 골자다. |
필자는 가고시마현 방재연수센터, 오카사 시립 아베노 방재센터, 시즈오카현 지진방재센터 등에 방문해서 일본 국민들이 어떤 내용의 훈련을 받고 있는지 알아봤다. 일본의 지역사회에서는 자연재해에 대비해 단순 ‘시청각 교육’이 아닌 실제와 같은 ‘실습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훈련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시청각 교육으로 시작됐지만, 실내에 있을 때와 실외에 있을 때의 대피 요령을 구분해서 설명하는가 하면, ‘지진이 일어나면 책상 밑이나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 낙하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평상 시 높은 곳에 물건을 올려 두지 않는다.’, ‘지진 발생 시 가구가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구를 구입할 때 크기를 가급적 천장 높이에 맞춰 구입한다.’, ‘걸어서 대피하며, 짐은 최소화 한다.’, ‘미리 집결 장소를 정해서 가족들과 헤어졌을 때를 대비한다.’ 등으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필자도 오사카 시립 아베노 방재센터에서 일본 시민들과 함께 재난 대응 교육을 받았다. 시청각 교육 뿐만 아니라 실제와 같은 실습 훈련도 진행된다. 교육 내용은 재해 발생 시 관공서에 신고하는 요령, 부상자를 구조하는 방법 등 다양했다. |
시청각 교육이 끝나면 바로 실제와 같은 실습이 시작된다.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전화기를 들고 관공서에 신고하는 방법, 낙하물에 깔린 부상자를 구출하는 방법, 화재발생 시 효과적으로 불을 끄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훈련은 교육장 밖에서도 계속된다. 지도를 보고 거주지에서 가까운 대피소를 직접 찾아가 보면서 주변 지형과 지물을 눈에 익히고,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서 대피소에서 생활해야할 때를 대비한 1박 체험도 펼쳐진다.
시민들이 훈련에 참여하는 모습은 모두 모니터링 된다. 필자의 훈련 수료증인데, 일부 교육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
시민들이 훈련에 참여하는 모든 모습은 컴퓨터에 의해 모니터링 되며, 교육이 끝나면 주어지는 수료증을 통해 훈련 받을 때 어떤 부분이 미흡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진 예비 경보’ 통해 골든타임 확보
필자는 가고시마 지방 기상대에 방문해서 일본의 화산 활동과 지진을 어떻게 관측하고 경보를 발령하고 있는지도 알아봤다. 지진은 현재 과학기술 수준으로 발생 시기와 강도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지진이 관측됐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최대한 빠르게 알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지진은 현재 과학기술 수준으로 예보를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지진 사전 예보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
일본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지진 사전 예보를 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 있었다. 지진 경보는 지진파의 특성을 이용하는데, 지진파는 크게 P파와 S파로 나뉜다. P파는 속도가 빨라서 먼저 지표면에 도착하지만 에너지가 작다. P파가 도달한 뒤에는 뒤이어 S파가 지표면에 도착한다. S파는 속도는 느리지만 에너지가 커서 지진 피해는 대개 S파에 의해 발생된다.
P파와 S파의 시간 간격은 길어야 수십 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단 1초라도 빠르게 지진 경보를 전달하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서 내륙과 해저에 수천 개의 지진계를 설치했다. 약 20km 간격으로 촘촘하게 설치된 이 지진계에 P파가 감지되면, 일본 기상청에서는 지진의 강도와 방향만 빠르게 분석해서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에 ‘지진 예비 경보’를 발령한다.
지진파는 P파(파란색 원)와 S파(빨간색 원)로 나뉜다. P파는 속도가 빨라서 먼저 도착하지만 규모가 작고, 실질적으로 피해를 발생 시키는 것은 속도가 느리면서 에너지가 강한 S파다. 지진계에 P파가 감지되면 일본 기상청은 지진 규모와 방향을 계산해서 신속하게 지진 예비 경보(긴급 지진 속보)를 발령한다. 경보를 받은 시민들은 S파가 도착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다. |
가고시마 지방 기상대의 하라 토시오 계장은 “지진 발생을 감지 및 분석하고, 방송과 휴대전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경보를 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모두 합해 10초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참사’를 기억하고 교훈을 후대에 전하려는 노력
고베 시내를 걷다보면 건물 외벽에 시간이 멈춘 채로 걸려있는 시계를 많이 볼 수 있다. 시계는 모두 5시 46분을 가리키고 있다. 5시 46분은 지난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시각이다. 시민들은 지진으로 멈춰선 시계를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걸어뒀다. 대지진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미다.
그때까지만 해도 큰 지진을 경험하지 못했던 일본에는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은 거의 없었고, 지진이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도 없었다. 하지만 대지진을 겪고 난 뒤 일본인들의 의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 국민들은 지진에 대해 안일하게 여겨왔던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했고, 정부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와 메뉴얼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고베 대지진 피해 지역에는 현재 ‘HAT고베’라는 신도시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대지진을 계기로 설립된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
지진으로 쑥대밭이 됐던 피해지역 위에는 현재 ‘HAT고베’라는 신도시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는 대지진을 계기로 설립된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 재해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다.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 외벽과 입구에는 ‘We don't forget 1995.1.17.’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는데, 그날을 잊지 말자는 문구처럼 센터의 대부분은 대지진을 기억하는 공간이었다.
재해기념관 외벽과 입구에는 ‘We don't forget 1995.1.17. 5:46 am’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95년 1월 17일 5시 46분에 발생한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은 14초 만에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6434명 사망, 3명 실종, 4만3792명 부상 등 많은 재산, 인명 피해를 남겼다. |
전시관에는 지진 희생자의 유품에서부터 무너져 내린 집의 벽돌, 불타버린 간판 등 20만 점에 달하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자료들을 통해 지진의 참상과 피해 규모, 그리고 도시 복구와 부흥의 과정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일본은 이 자료들을 통해 자연 재해가 얼마나 큰 피해를 일으키는지, 예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후손들에게 생생하게 알리고 있었다.
또 한 가지 놀랐던 것은 대지진을 경험한 지역 주민들과 유가족들이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에서 스토리텔러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센터에 방문한 일본 국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일본에는 ‘재해는 잊을 때쯤 찾아온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매년 1월 17일 새벽 다섯 시 지진이 발생했던 시간이 되면 고베 시민들은 히가시 유원지 공원에 모여서 묵념을 하며 희생자를 기리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일본에는 ‘재해는 잊을 때쯤 찾아온다.’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 국민들은 매년 1월 17일 5시 46분이 되면 공원에 모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도식을 열고 있다. 이밖에도, 고베항에 조성되어 있는 ‘메모리얼 파크’에는 대지진으로 파괴된 방파제들을 수리하지 않고 보존하여 공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통해 이곳을 찾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지진 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었다. |
우리나라는 어떻게 지진에 대비하고 있을까? 그동안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라고 알려졌었기 때문에, 건물의 내진 설계도 지난 2005년에서야 법제화되어 현재 전체 건물의 35% 정도만 지진에 견딜 수 있다. 지진 예비 경보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시민들에게 지진 경보를 발령하는데 1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지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우리나라가 이번 일본 지진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번 지진은 과거와 달리 진원이 낮고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직하형(直下型)’이었다. 그래서 속보가 발령되기 전에 지진이 시작돼 최첨단 지진 예비 경보 시스템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반복 학습한 ‘재난 대응 훈련’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우리나라 교육부도 내년부터 안전 교과목을 신설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전국 8곳에 ‘종합안전체험관’을 조성해서 지진을 비롯한 각종 재해·재난 상황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신설되는 안전 교육은 단순 시청각 교육이나 일회성 체험에 그쳐서는 안된다. 재난 대응 선진국인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실제 상황에 도움이 되는 ‘실습 교육’, 어린 아이부터 성인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교육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