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치유 주간'은 해당 대상에게 심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 공동체 변화를 통해 재난 심리 지원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관련 업무 종사자의 역량 강화 및 적극 활동을 포상, 재난 시 심리 지원 서비스와 트라우마 회복에 관한 인식을 증진 시키는 걸 목적으로 한다.
이에 전문가, 국민 등 다양한 대상을 위한 워크숍, 간담회, 교육과 체험 및 표창 등이 진행됐다.
국가트라우마센터.
국가의 큰 재난이 발생하면 협업 기관이 심리 지원팀을 꾸렸고 그 중심에는 늘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있었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어떤 곳일까.
이전 '마음 안심 버스'를 취재하며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트라우마 치유 주간'을 맞아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심민영 센터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민영 센터장.
"국가트라우마센터는 2018년 개원한 국내 첫 최대 규모 재난 심리 지원 전담 기관이에요. 강원도 산불은 물론 코로나19, 이태원 참사,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등 재난 현장마다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트라우마 경험자의 심리 회복을 돕고 있습니다."
그동안 트라우마에 관한 국가조직이 없었고 국민 재난 심리 회복을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인식이 뚜렷해진 시기였다.
심 센터장은 2007년부터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근무하며 국민의 재난 심리 회복에 헌신한 공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대한민국 공무원상 홍조근정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얼마 전 발생했던 산불 현장을 비롯한 다양한 재난 현장에 참여해 트라우마 경험자들을 만나왔다.
국립정신건강센터 4층에 있는 국가트라우마센터.
"이곳 센터의 업무 중 핵심은 재난 현장 위기 대응이에요. 재난 발생 시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심리 지원을 하는 업무인데요. 이 업무가 잘되도록 다른 업무들이 전문적으로 뒷받침하고 볼 수 있겠죠."
이곳에서는 국가의 재난 트라우마에 대응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재난, 사고, 전쟁 등과 같은 심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은 충격을 겪어 발생하는 심리적 외상을 뜻한다.
보통 트라우마를 겪으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체에서 사건이 연상되는 걸 회피하도록 과도하게 차단한다.
이와 함께 죄책감 같은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런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놓치고 신체에 신호가 와야 알아차리지만, 늘 마음을 들여다보며 미리 알아둬야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대처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다양하나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는 재난 트라우마의 심리적 회복을 돕고 있다.
그런 재난 트라우마는 어떻게 규정할까.
"솔직히 애매할 수도 있어요. 일종의 사고일까, 재난일까, 현장에서도 어려워하곤 하죠. 예를 들어 인천에서 전세 사기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했을 때나 대남 확성기로 강원도 주민들이 힘들어했을 때도 심리 지원을 했었어요.그래서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이 어떤 걸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받는다면 공공기관 서비스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문자 그대로 재난 트라우마라고 제한 두면 범위가 좁아진다.
그렇지만 어디 현실은 그럴까.
국민은 다양한 상황에서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좀 더 유연하게 바라봐야 한다.
트라우마에 관한 자료들이 비치돼 있으며 벽에 '마음 안심 버스'가 그려져 있다.
그는 국내 처음 '마음 안심 버스'를 도입했다.
지금은 전국으로 퍼져 많은 곳에서 이용하고 있다.
이런 '마음 안심 버스'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상담하려면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지만, 재난 현장은 무척 혼잡하잖아요. 몹시 불안한 분들과 편안하게 상담하고 싶어도 아늑한 공간이 없잖아요."
어수선한 현장에서 재난 경험자에게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버스는 재난 현장 방방곡곡에 다닐 수 있다는 점도 큰 몫을 했다.
"저희 바람이라면 '마음 안심 버스'를 탈 때는 힘들어도 나갈 때는 편안해지면 좋겠어요. 사실 짧은 시간이라 다 해소될 순 없어도 이용자들 만족도가 높았거든요."
'마음 안심 버스'를 타면 간단한 스트레스 지수 측정이나 상담을 통해 한 번 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또 복식 호흡이나 간단한 안정화 기법들을 알려줘 일상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보통 80~90%가 반응이 오거든요. 그럴 때 심리적 응급처치나 안정화 기법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정보를 알려 드리고 있어요. 트라우마 주요 증상이요? 흔히 잠을 못 자면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긴장이 되며 당시 생각이 자꾸 나는 거죠."
그는 트라우마를 겪었을 때 가장 중요한 예후를 '수면'으로 꼽았다.
초반에 잠을 잘 자는 것으로도 회복이 빨라질 수 있다고.
그렇지만 괜찮은 듯싶어 가족이나 이웃을 챙기느라 잠을 못 잔다면 자신도 알게 모르게 누적될 수 있다.
"보통 저희가 재난 현장에서 개입하는 부분은 피라미드처럼 생각했을 때 가장 밑단인 응급처치예요. 그렇지만 저희는 모니터링하고 있는데요.심리 지원할 때는 괜찮아서 종결했는데 6개월 이후 증상이 새롭게 나타나기도 하고 주기반응으로, 일시적으로 악화하기도 하거든요. "
트라우마 후 보이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약 10%는 뒤늦게 증상이 나타난다. 초반에는 정신이 없어 극복한 듯 보이나 중간에 비슷한 갈등 상황이나 피해가 다시 발생하면 이전 트라우마가 활성화된다는 소리다.
보통 전문가들이 6개월 이후 발병 시 판단하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는 모니터링하고 있다.
"대부분 재난 당시는 심리 지원을 1순위로 찾지 않아요. 먼저 복구를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후에 밀려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꼭 전화번호를 남겨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전화를 받아주고 재난 당시에는 거절해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해본다.
그만큼 상황에 따른 상태 변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센터 앞에는 관련 프로그램 등을 소개해 놓았다.
재난 유형은 다양하다.
그렇다면 재난에 따라 반응이나 심리적 지원이 다를까.
심 센터장은 기본적인 틀은 같아도 고위험군 비율 등 차이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산불의 경우는 지역상 어르신이 많고 시각적인 자극이 큰 만큼 냄새, 소리 등이 자꾸 떠오른단다.
또 희생자가 많은 인재 같은 경우 유가족에게 마음속에 남겨진 복합 애도(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속적인 애도 상태)가 보이고 감염병으로 격리 기간이 길었던 경우 고립감이나 우울감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는 같은 재난이라고 해도 각각 다르다.
예로 같은 감염병이라도 코로나와 메르스는 같지 않다.
"사람마다 다 받는 충격이나 반응도 달라요. 가족 안에서도 다를 수 있거든요. 과거 경험 등이 함께 떠올라 그 사건보다 더 크고 깊게 트라우마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상담할 때는 과거의 기억들도 확인하죠"
오래 지나서 증상이 나타난다면 치유가 종료된 시점은 언제로 볼까.
그는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고 고통스러운 증상이 없을 때로 본다고 말했다.
물론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트라우마 이전과 아주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떠나보낸 사람이 떠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직장에 가거나 집안일을 하며 잘 자는 등 일상생활이 된다면 회복하고 있다고 간주한다고.
국가트라우마센터 내부.
또 궁금했던 건, 업무상 매번 이런 상황과 마주해야 하는 경우였다.
난 이전 경찰, 소방공무원과 만나 트라우마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반응이 다양했다.
너무 무덤덤하거나 반대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걸 겪는 자신이 나약한 건 아닐지 걱정한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제 외래에 다니셨던 분이 오랫동안 세월 구조 관련 업무를 맡으셨는데요. 치료 계기는 참사 현장에 가셨다가 충격받으신 거였지만 그 밑에는 그동안의 많은 사건이 있었더라고요. 보통 현재는 묻을 수 있는 정도의 힘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영향력이 어디 가진 않거든요. 저는 조직문화가 좀 달라지면 어떨까 싶어요."
재난과 관련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보통보다 강인하다고는 하나 회복력과 상관없이 강한 트라우마가 누적된다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즉 그 원인은 개인의 성향이 아닌 트라우마 자체에 있단다.
그래서 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심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 심리적 안정을 취하며 자극의 원인에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본인은 못 느껴도 트라우마 누적이 근무 경력이랑 비례한다는 데이터가 있어요. 이건 업무적으로 유·무능을 판단하면 안 되거든요. 예를 들어 소방관이라면 누구보다 현장에 깊이 개입하고 희생자와 공감했기 때문에 타격을 받을 수 있어요. 절대 내가 나약하다거나 여기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버리셔야 할 거 같아요."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에 활용되는 도구들. 아이를 위한 포근한 인형이 눈에 띈다.
재난 현장에는 꼭 건강한 성인들만 있는 게 아니다.
혹 아이들이라면 어떨까. 성인과 다른 치유 과정이 필요할까.
심 센터장은 "인생에서 첫 번째 부정적인 경험은 각인이 크게 된다"며 "주변 어른들이 역할이 중요한데 다친 마음을 이해하고 잘 설명을 해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심 센터장은 오랜 기간 다양한 현장에서 많은 재난 경험자를 만나왔다.
재난 심리 지원을 하며 보람 있었던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어느 유가족이셨는데요. 당시 재난 지역 보건소에서 상담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셨어요. 그분 말씀이 수습하고 대응하느라 지친 마음을 이렇게 따스하게 달래준 공간은 처음이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보통 고맙다는 말씀은 하지만, 상담 공간이 인생에서 좋은 순간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거든요. 마음이 짠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우리 역할이 중요하구나 싶어 보람도 됐고요. '마음 안심 버스' 체험은 잠깐이지만 안정을 경험하고 가면 그것만으로도 좀 견딜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심 센터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현장에 내려가면 상황에 따라 3주도 있게 된다.
지난 3월 발생한 경북 산불 때는 영덕군 해양센터 앞에 버스를 주차하고 주민들에게 언제든 몇 번이든 생각나면 상담을 받으라고 했다.
심 센터장이 '트라우마 치유 주간' 홍보물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지원하는 절차는 어떻게 이뤄질까.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행안부 등을 중심으로 범부처가 모여 '중앙재난 심리 회복지원단'을 구성해요. 재난마다 상황이 다르니 그때 맞게 심리 지원을 하고 이를 총괄하도록 결정하는데 대부분은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맡게 돼요. 이후 각 심리 지원을 하는 기관과 회의하며 업무분장을 합니다. 또 센터는 재난 상황별로 가이드라인, 심리 안정 용품 등을 준비해 기관에 배포하고 심리지원팀을 대상으로 긴급교육을 하며 브리핑 및 모니터링을 하죠. 이후 중장기 상태로 넘어가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맡아요. 저희는 소방대원과 같은 업무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소진 프로그램을 하게 되고요."
심 센터장은 이어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최종 목표는 전국 어디서나 균등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권역 단위로 상시 표준 매뉴얼, 각종 지침 등 준비 체계를 익히고 있다.
"재난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자원이 많고 부족한 곳 가리지 않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되게 균질화하고 표준화하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마련해서 하고 있지만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거든요. 앞으로 저희 역할은 정보계 서비스를 표준화, 고도화하는 것이에요.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 외국인, 아이들 같은 취약계층에 맞도록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날 (4.23)은 대국민 행사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트라우마 인식 개선 방향과 함께 조언을 부탁했다.
"올해 '트라우마 치유 주간'에는 이 사회가 트라우마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어요. 저희는 재난 트라우마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은 다 트라우마랑 맞닿아 있거든요. 살면서 70~80% 분들이 재난 사고를 경험한다고 되어 있고요. 이 사건들이 잘 극복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분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요."
심 센터장의 이야기처럼 트라우마는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다. 모두가 일상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기에 회복을 당사자에게만 맡길 수는 없다.
그는 필요하면 꼭 전문가를 찾아가라는 말을 당부했다.
또 앞서 말했듯 트라우마는 공개해야 회복이 된다.
공개해도 안심이 되는 사회, 모두가 전반적으로 트라우마를 이해하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오랜 시간 걸린 인터뷰가 끝이 났다.
여느 인터뷰보다 질문도 많았다.
긴 내용이지만 꼭 필요해서 가급적 다 담고 싶었다.
그렇다는 건 트라우마가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날 푸른 하늘과 밝은 풍경을 잠깐 봤지만, 그간의 피곤함이 씻기는 듯 시원했다.
돌아오는 길, 눈을 들어 바라본 하늘은 참 예뻤다.
잠깐이더라도 그런 맑은 하늘을 봐서 그럴까.
내일 다시 흐린 하늘이 된다고 해도 오늘 같은 하늘이 있어 살아갈 힘이 난다.
그런 회복을 주는 맑은 하늘은 '마음 안심 버스'가 더 나아가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