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동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고즈넉한 돌담길 너머,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를 품고 있는 덕수궁이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에는 외부에서만 감상할 수 있었던 덕수궁의 주요 전각 내부를 일반 시민이 직접 관람할 특별한 기회가 열려 현장을 찾았다.
이번 관람은 문화유산청이 주최한 '덕수궁 전각 내부 특별관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평소 개방되지 않았던 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내부를 전문 해설사와 동행하며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을 지나며 시작되는 궁궐 탐방의 시작, 사진은 수문장 교대식 장면.
◆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전 '중화전'
대한문을 통해 궁에 입장을 하여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덕수궁의 중심이자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인 중화전이었다.
1902년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한 후 건립한 이 전각은 조선의 궁궐 건축 양식을 따르되, 외부의 창틀은 황금색으로 단장하여 황제가 있음을 뜻했고 내부에는 서양식 유리창과 샹들리에를 설치해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화려한 단청과 황금빛 용 문양이 장식된 천장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며, 황금색 창호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은 내부를 한층 더 장엄하게 만들어준다.
왕좌의 뒤편에는 일월오봉도 병풍이 자리 잡고 있고, 중화전 외에도 명정전, 근정전, 인정전, 숭정전에도 일월오봉도 병풍이 있다.
해설사는 중화전이 국가의 주요 의례가 거행되던 장소로,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외교의 장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화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구조와 높은 석조 기단, 중앙에 놓인 어도(御道)는 정전으로서의 위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중화전 내부 단청과 일월오봉도 병풍, 보개 천장을 중심으로 한 용상
◆ 격변의 정치사와 자연의 교감이 공존하는 '석어당'
두 번째로 방문한 석어당은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2층으로 지어진 목조 건물이다.
'석어(昔御)'는 '옛 임금이 머물던 집'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이곳에서 머물렀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석어당은 1층이 정면 8칸, 측면 3칸이며 2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청이 없는 소박한 외관이 오히려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낸다.
이곳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했던 장소이자, 인조가 반정을 통해 즉위한 공간으로 조선 정치사의 비극과 전환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해설사는 석어당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궁궐 건축에서 보기 드문 2층 구조로서 조망성과 상징성에 관해서도 설명을 곁들였다.
2층에 올라 바라본 덕수궁 뜰의 봄 풍경은, 때마침 살구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왕실이 자연과 교감하며 정무의 여유를 찾던 풍류의 공간으로서 석어당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석어당의 외관과 2층 내부 모습, 2층에서 내려다본 후원 풍경
◆ 황제의 일상과 근대의 흔적이 공존한 내전 '함녕전'
마지막으로 방문한 함녕전은 고종 황제가 실제 거처하며 정사를 돌본 내전 공간이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 고종은 덕수궁을 황궁으로 삼았고, 함녕전은 그의 생활과 정치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이 전각은 정면 9칸, 측면 4칸의 단층 건물로, 'ㄱ'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익공 양식을 따르고 있다.
내부에는 고종의 서양식 커튼과 샹들리에가 남아 있어 근대 문물의 수용과 전통의 공존을 보여준다.
함녕전은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 재건되었으며, 1919년 고종이 승하한 장소로도 기록되어 있다(승정원일기).
해설사는 함녕전이야말로 조선의 마지막 군주가 머물렀던 공간으로서, 단지 황제의 침전이 아니라 근대의 격랑 속에서 고종이 고민과 결단을 내리던 역사적 공간이었음을 강조했다.
전통과 서양식 인테리어가 공존하는 함녕전 내부 모습.
◆ 덕수궁 건축에 담긴 과학과 예술의 조화
세 전각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조선 궁궐 건축의 과학성과 예술성, 그리고 섬세한 마무리였다.
중화전의 보개 천장은 공기의 흐름을 조절해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는 구조였고, 석어당의 단청 없는 기둥은 자연스러운 목재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며 절제미를 보여주었다.
함녕전의 내부는 전통과 서양이 혼합된 인테리어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처럼 덕수궁은 건축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서이며, 그 공간에 깃든 삶과 사상, 문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이번 전각 내부 관람은 문화유산청의 특별 개방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했다.
전문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전각 내부를 실제로 걷고, 바라보고, 느낄 수 있었던 이 체험은 문화유산의 관람뿐 아니라 시간 여행과도 같았다.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국민과 공유하려는 정책적 노력의 일환인 만큼, 이러한 기회가 더 널리, 자주 제공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오늘 이 공간을 걷고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이 아닌, 역사를 기억하고 문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과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정문 중화문, 화강암 조각은 황제의 위용을 상징하는 용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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