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앉은 여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사연을 이야기하자 열심히 듣던 노무사가 방안을 제시했다.
영등포시장 역.
이곳 영등포시장 역에서는 한 달에 2번 영등포구 노동자 종합지원센터에서 노무사가 나와 무료로 노동 상담을 하고 있다.
저녁 5~7시,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이다.
퇴근 시간이 되자 지나는 사람들은 좀 더 많아졌다.
배너에 적힌 '무료 상담'을 본 사람 중 몇이 간단한 질문을 하거나 본격적으로 앉아 상담했다.
영등포시장 역에서 시간에 맞춰 상담 준비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부터 공모로 선정된 34개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노동 약자 교육 및 법률구조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지자체가 계획한 노동 약자 권익 보호 사업을 심사, 적정한 곳을 선정해 추진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노동 약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마련된 이 사업은 임금체불,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등의 대응 교육을 비롯해 노무사의 법률 상담, 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신속한 권리구제 지원 등을 하고 있다.
놀라지 마시라.
무려 지난해 이 사업을 통해 1만 6000여 명의 근로자가 지원을 받았다.
또 올해는 영세사업주를 사업 대상에 포함해 관련 법 및 인식 개선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다.
내가 사는 서울에도 자치구 센터에서 노동 약자 교육 및 법률구조 상담을 하고 있다.
이중 고용노동부와 영등포구청이 함께 하는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의 지하철역 무료 상담으로 찾아갔다.
역사에서 찾기는 쉬웠다.
담당 노무사가 친절하게 상담을 이어 나갔다.
정식으로 책상에 앉아 공인노무사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주로 퇴사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법률 조항을 보여주면서 답변을 해줬다.
그동안 잘 몰랐던 퇴직금, 건강보험 등에 관해 상세히 알 수 있었다.
내가 퇴직금을 궁금해하자 그는 고용노동부의 '퇴직금 계산기'를 알려줬다.
"요즘은 해고 문제로 제일 많이 상담하러 오세요."
노무사에게 일반적으로 어떤 상담 내용이 가장 많은지 묻자, 그는 해고라고 답했다.
덧붙여 갑질과 괴롭힘도 거론했다.
괴롭힘 중에는 자발적 퇴사를 끌어내기 위해 괴롭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고 했다.
"우선 갑질,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 증거를 잘 수집해 두어야 해요. 일기나 다이어리, 녹취자료도 좋아요. 증거를 수집해 신고해야죠. 만약 계속 괴롭혀 해고하면서 자발적 퇴사처럼 보이도록 한다면 사직서는 쓰지 말아야 해요. 사직서를 쓰면 해고에 해당하지 않거든요."
위의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자, 그는 증거를 강조했다.
또,해고까지이어지는경우자발적퇴사가아닌걸분명히해야한다고했다. 이후 구제 신청 등에 관해서도 들려줬다.
상담자에게 주는 작은 선물들.
"센터에서는 노무사들이 10시~17시까지 돌아가면서 상담하고 있어요. 또, 센터마다 좀 다른데, 저희 센터에서는 경비 노동자분들과 정기적으로 모이거든요.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상담해 드리고 있고요. 주로 임금, 근로계약, 괴롭힘에 관해 문의하시는데요. 무척 도움이 됐다며 고마워하실 때 참 뿌듯해요."
그는 보람됐던 기억을 말했다.
영등포구 노동자 종합지원센터의 홍석빈 팀장.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는 중 뒤에서 대기하는 두 남성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는 센터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고 싶어 공익노무사이자 센터 사업 추진팀에 있는 홍석빈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희는 노동법에 관해 회사에서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무료 상담. 권리구제 사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가 종합지원센터라 노동자들에게 여러 분야를 지원하고 있어요."
영등포구 노동자 종합지원센터에서는 크게 노동법률 지원과 노사관계 컨설팅, 노동교육 및 취업 지원, 노동자 문화복지 프로그램을 비롯해 노동자 마음 치유를 하고 있다.
"일하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으신 분들이 있잖아요. 최대 10회로 개인과 집단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 상담을 할 기회를 무료 제공해요. 또 일상 시간에서 즐기는 요가, 통기타 모임 같은 다양한 모임을 지원하고 있어요."
이곳 센터는 2021년 10월에 시작했다.
특별히 1층에는 이동 노동자 쉼터를 두어 휴식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배달 라이더 및 학습지 교사 등이 이용하고 있다.
이동 노동자 쉼터는 특별한 가입을 필요 없고 명부만 작성하면 물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단다.
그러다 보니 그들도 자연스레 직장 내 어려움을 문의하게 됐다.
"많은 상담자가 처음에 말을 하면서 의기소침해하거나 미안한 듯 문의하시는데요. 그럴 필요는 없어요. 그냥 업무 중 궁금한 점이 생기면 마음 편하게 물어봐 주시면 좋겠어요. 꼭 내가 어떤 일을 당해야 노동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모든 노동 시간에는 노동법이 적용되는 거니까요."
홍 팀장은 센터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지 말고, 맘 편하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지하철역으로 찾아오는 행사도 그런 취지에서 비롯됐다.
지하철역에서는 비록 그냥 지나치더라도 후에 그런 일을 겪고 센터로 전화가 오기도 한다고.
"보통 노무 관계로 상담을 받으면 상담료가 5~10만 원이 들거든요. 그렇지만 저희는 무료고 무엇보다 경력 있는 노무사들이 전문적으로 노련하게 정성을 다해 상담해 주시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좋지요."
홍 팀장은 노동 상담의 좋은 점을 말했다.
특히, 불안정 노동을 하는 노동 약자들은 무료 상담은 물론, 사건을 무료로 수임(월 평균 임금 300만 원 이하)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또 "어르신들은 모임에 오셔서 외로움을 덜고 일자리도 서로 소개하기도 한다"라며 모임의 중요성도 덧붙였다.
한 여성이 상담을 받고 있다.
센터에 오기 전부터 노무사로 일해 온 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많지 않았을까.
홍 팀장은 임금이 체불됐던 한 택시 기사를 떠올렸다.
혼자서 아주 고민했었는데 상담을 통해 임금 체불이 수월하게 합의됐다고.
그때 택시 기사가 "돈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무료로 상담, 수임을 열심히 해주셔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고맙다"고 말했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힘든 가운데도 기운이 난단다.
노동 약자는 어떤 사례가 많았을까.
요즘 들어 급증한 문제도 있을지 궁금해 묻자, 그는 센터 경비 노동자 모임에서 나온 문제를 언급했다.
경비 노동자들이 전처럼 1년 이상이 아니라 3개월씩 돌아가며 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단다.
홍 팀장은 "경비 노동자 단기계약이 증가한 듯 보인다"며 "한 곳에 재직 기간이 짧아 직장에서 관계 형성도 어렵고 계속 회사를 옮겨가며 일을 새로 배우는 것도 쉽지 않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노동고용부는 이 센터들을 비롯해 지난해 서울, 부산, 평택 등에 설치한 '근로자 이음센터' 에서 올해부터 플랫폼·프리랜서 대상 계약·보수 관련 분쟁 상담·조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삶의 터전인 직장에서 불편한 일이 생겼다는 건 여러모로 힘들다.
그렇다고 혼자서 끙끙 앓을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 중에 노동법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직장에서 문제가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걱정하지 말고 노동자종합지원센터 등을 찾아 상담해보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