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시샘하듯 아직은 바람이 차갑던 어느 3월 오후,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지난 2월 26일 국가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의친왕가 복식'을 기념하여 열리는 '궁중 여인의 복식' 특별전이 한창이다.
'의친왕가 복식'은 의친왕비 연안 김씨가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해경 여사에게 전해준 것으로, 이해경 여사가 모교인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 기증했다.
단아한 색감이 아름다운 '궁중 여인의 복식'(출처: 국가유산청)
선명하고 화려한 무늬의 옷을 좋아하는 나는 '궁중 여인의 복식' 전시 홍보물에 걸린 고운 녹색 빛깔의 한복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한복의 한 종류로 보였는데 실제로 이 옷은 조선시대 왕실 여성과 사대부가 여성이 중요한 의식 때 입었던 예복인 '원삼'이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과거에는 옷이 계급과 지위, 신분을 상징했다.
조선 시대의 궁중 의복 또한 신분에 따라 색깔과 문양이 다르게 만들어졌다.
'당의'와 '스란치마'
이렇게 조선시대 궁중 의생활 문화와 전통 복식이 지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유물 7점이 <궁중 여인의 복식> 전시에서 공개되는 것이다.
녹원삼과는 닮은 듯 다른 에메랄드빛 녹색이 청초한 당의(원삼과 마찬가지로 왕실 여성과 사대부가 여성이 착용했던 예복), 원삼과 당의 등과 함께 갖춰 입는 스란치마, 화관과 삼작노리개, 궁녀용 대대(허리띠) 등 의복에서 장신구까지 전시는 알차게 구성되었다.
옷과 장신구에 수 놓인 화려한 금박 무늬가 궁중 의복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원삼과 당의 차림을 한 조선 왕실의 여성들
'궁중 여인의 복식' 전은 여러 의미에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첫 번째는 유물의 학술적, 역사적, 예술적 가치이다.
19세기 말~20세기 전반의 복식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최근에 제작한 것처럼 잘 보존되어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비단의 색감과 장식 문양 등은 우리 전통 복식 중에서도 궁중 의생활 문화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 생생함은 아마도 의친왕비가 갖고 있던 궁중 복식을 직접 전달받은 이해경 여사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모교에 기증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출처가 명확하므 더욱 높은 가치를 지녔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민속문화유산에 지정된 것이다.
2년 전 키아프-프리즈 서울 취재 때도 느꼈지만 진본성에 있어서 이 프로비넌스(provenance)는 매우 중요하다.
국가유산청은 중요한 민속문화유산을 국가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한다
민속문화유산은 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이나 관습에 사용되는 의복, 기구, 가옥 등으로 국민 생활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을 의미한다.
이 중 특별히 중요한 것을 국가 민속 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지만, 민속의 범위가 넓은 만큼 민속 유산의 범위도 넓어진다.
그러므로 국가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물을 기념 전시의 이름으로 한자리에서 실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가 않다.
'의친왕가 복식'은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이 출범한 이래로, 4번째로 지정된 국가 민속문화유산이지만 지정 기념 전시는 처음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한복 입은 외국인 관광객을 보는 것이 어느덧 자연스러워졌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은 국립고궁박물관과 경복궁에 이미 녹아들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궁중 여인의 복식' 전시에도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전통문화는 K-컬처의 세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할 K-컬처의 대표 브랜드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생활과 밀접한 의복인 한복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전형적인 전통문화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전통문화가 되길 기대한다!
국가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의친왕가 복식'을 바탕으로 궁중 의복과 장신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깊은 연구가 이뤄지면 궁중 복식도 또 하나의 훌륭한 전통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5월 11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우리 전통문화의 색다른 가치와 매력을 재발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