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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다녀오다

탄압 속에서 피어난 제암리 독립운동의 정신

2025.03.06 정책기자단 송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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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찬란한 대한민국을 이루는 배경은 무엇일까?

근현대사를 공부하며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이야기하라면 주저 없이 3·1운동을 떠올린다.

1910년, 대한제국은 완전히 국권을 강탈당했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의 수탈에 국민의 피해는 점차 커졌고, 의병을 비롯한 항일 조직은 점차 산이나 국외로 이동하며 제한적인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의 14개조 평화 원칙이 발표됐다.

'민족자결주의'가 알려지며 우리의 주권을 되찾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서울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일본과 중국 등 국외에서도 3·1운동을 알리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를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3·1운동은 억압된 날들을 보내던 우리 민족이 일제를 향해 보인 가장 크고 강력했던 외침이자, 국제 사회에 일제의 식민통치 실상을 알리고,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던 사건이었다.

특히, 3·1운동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독립운동으로, 민족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의 한 전시실 벽에 쓰인 문구. '독립의 염원 구국의 빛이 되다'라고 적혀있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의 한 전시실 벽에 쓰인 문구. "독립의 염원 구국의 빛이 되다"라고 적혀있다.

오늘날 많은 국민이 3·1운동의 의의와 영향,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3월 1일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역사학자들은 3·1운동이 수개월간 지속됐다고 이야기한다.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이를 탄압하기 위한 일제의 움직임도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은 106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뉴스에서 삼일절 행사를 언급하기 시작한 2월 마지막 주의 어느 날, 올해는 문득 역사의 현장을 직접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에 접속했고, 검색창에 3·1운동을 검색하니 총 263건의 검색 결과가 나왔다.

그중 가장 상단에 표시된 곳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과 그 일대로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은 "일제가 가장 잔인하게 독립운동을 탄압한 학살 현장"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에 '3·1운동'을 검색한 화면.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이 상단에 표시되어 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에서 '3·1운동'을 검색한 화면.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이 상단에 표시되어 있다.

3·1운동의 뒤를 이어 1919년 3월 31일,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기록에 따르면 제암리 감리교회 신자들과 인근의 주민들이 이곳에 함께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일본군은 이 일대의 만세운동을 탄압하고 주모자에게 보복했다고 한다.

하늘이 흐릿하던 2025년 3월 1일 아침,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으로 향했다.

유적지에 가까워지자 3·1운동을 기념하며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3·1절 아침,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입구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
3·1절 아침,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입구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

마을로 들어가니 제암리 감리교회 첨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적지에는 '제암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고 순국선열들 기릴 수 있는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3·1운동 순국기념탑과 23인 순국 묘지, 제암리의 참상을 알리고 책을 펴낸 스코필드의 동상까지 천천히 둘러보며 마음에 새겼다.

짧지만 만세운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 뒤로 보이는 제암리 감리교회 첨탑의 모습.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 뒤로 보이는 제암리 감리교회 첨탑의 모습.

이날 제암리 교회에 함께 방문했던 친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새 건물을 가리키며 오랜만에 와보니 처음 보는 건물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건물에 다가가 안내원에게 물어보자 2024년 4월, 기존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이 확장 이전해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으로 개관했다고 이야기했다.

기념관 안에 들어가 보니 상설 및 기획 전시실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각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서적, 당시 사용되었던 물건뿐 아니라 디지털 영상으로 재구성된 그날의 모습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방문객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한편, 이날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강당에서는 『제106주년 3·1절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참고로 이날 전국 주요 지자체는 3·1 만세 운동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기념식을 개최했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행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는데, 시장을 비롯한 내외빈과 화성 및 인근 지역 시민들까지 기념식에 참석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강당에서 개최된 『제106주년 3·1절 기념식』모습. 행사장 내부는 기념식 참석자들로 꽉 차 있었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강당에서 개최된 『제106주년 3·1절 기념식』모습. 행사장 내부는 기념식 참석자들로 꽉 차 있었다.

인근 도시인 용인에서 아들과 함께 제암리를 방문했다고 밝힌 김정미(38, 주부) 씨는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의 역사와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아이에게 꼭 새겨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아이 역시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희생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마치 역사 교과서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이야기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다르게 조금 특별한 시간을 보냈던 106돌 3·1절.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날의 제암리 모습이 생생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3·1운동은 국가보훈부가 선정한 '2025년 3월의 독립운동'이다.

광복 80주년이자 3·1운동 106주년인 올해, 대한민국 곳곳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 3.1운동 관련 여행지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송현진 songsunn_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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