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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약국에서 책 처방을 받다

2021.09.16 정책기자단 김윤경

올여름, 우연히 책을 만들어 볼 기회가 있었다. 집 근처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자유롭게 자기 감정을 적거나, 벽에 걸린 글귀를 필사할 수 있었는데 어느새 그 적은 종이들이 차곡차곡 쌓였나 보다. 전시를 위한 책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 책 다시 보기 1 - 책 만들기

다양한 책을 보며 그냥 만들어 진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다양한 책을 보며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전문적(?)으로 책을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작업은 꽤 흥미로웠다. 표지는 물론 책 외부를 두르는 띠지, 제목, 폰트나 크기 등등… 자유롭게 고를 수 있지만, 내용에 맞게 고려해야 했다. 책의 분위기에 따라 속지의 무게나 질감도 달라졌다.(세상에 하얀 종이만도 그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작업에 사용하는 생전 처음 보는 도구들이 신기해 눈을 뗄 수 없었다.

망치, 왁스, 다양한 풀과 뼈로 만든 도구 등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용품은 무척 많았다.
망치, 왁스, 다양한 풀과 뼈로 만든 도구 등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용품은 무척 많았다.


실로 꿰매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난 좀 힘들어도 한 장 한 장 풀을 발라 고이 접는 방식을 택했다.(처음엔 고상할 줄 알았다) 웬걸, 긴 시간 풀을 바르며 하나씩 반듯하게 접고 있으니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곧 왜 이런 중노동(?)이 필요한지 이해됐다. 글과 편집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드디어 완성된 책. 무더운 여름의 고생이 한가득 들어 전시돼 있다.
드디어 완성된 책. 무더운 여름의 고생이 한가득 들어 전시돼 있다.


한 달여에 걸친 자투리 시간이 모여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이 나왔다. 깔끔했다. 책 제목은 ‘감정의 세탁’. 실은 세탁기 돌리는 걸 깜빡한 게 생각이 나 적었지만, 짓고 보니 그럴 듯했다. 감정이 승화되는 느낌이랄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쉴 새없이 제본기에서 자른 페이지를 풀칠로 하고 반드시 누르는 일에만 몰두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쉴 새 없이 제본기에서 자른 페이지를 풀칠하고 반듯하게 누르는 일에만 몰두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정말 정성스레 잘해 보고 싶다. 비록 거의 필사한 내용이었지만, 책을 만들다 보니 책과 또 다른 방법으로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다.

폐철길이 숲길, 책거리로 바뀐 경의선 숲길.
폐철길이 숲길, 책거리로 바뀐 경의선 숲길.


◆ 책 다시 보기 2 - 책약국에서 처방받은 책.

드디어 9월 가을, 독서의 달이 왔다. 그동안 책에 대해 좀 더 이해했기 때문일까. 좀 더 특별한 독서의 달을 보내고 싶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전국 각지에서 전기, 강연, 체험 등 8700여 건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소개한 ‘독서인 누리집’(https://www.readin.or.kr/home/index.do)에서 책 캘린더를 보고 한 프로그램을 택했다. 

문체부 올해 슬로건인 어깨펴기, 가슴펴기, 책도 펴기 포스터가 붙어 있다.
독서의 달 올해 슬로건인 어깨펴기, 가슴펴기, 책도펴기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중 가깝고 걷기 좋은 경의선 책거리 ‘책약국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했다. 책약국은 작가들이 고민을 상담해 책으로 처방해 준다. 내 고민은 지극히 현실적이나, 이걸 또 예술적인 책으로 풀어주는 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경의선 책거리는 폐철길이 숲길로 또 책 테마거리로 조성된 곳이다. 이젠 움직이지 않지만, 어딘가로 가고픈 희망을 주는 철길. 그곳에 앉아 책 속에서나마 멀리 떠나볼까. 

김현 작가가 알맞은 책을 처방하고 있다.
김현 작가가 알맞은 책을 처방하고 있다.


약사 가운을 걸친 김현 작가와 만났다. 짧다면 짧은 20여 분이 내 처방 시간이었다. 

상황 1

작가 : 윤경님은 원래 성격과 달라지신 것 같아 고민이라고요.
나 : 네. 제가 예전엔 좀 느긋해서 친구들이 이지고잉(easygoing) 이라고 했거든요. 나름 말도 잘했던 것 같은데, 점점 제가 아닌 것 같아요.
작가 : (적어준 내용을 보다가) 윤경님은 달라진 원인을 알고 계시네요. 전 그걸 인식했다는 것부터 큰 의미가 있다고 보거든요. 지금의 변화를 즐겨보면 어떨까요? 전과 다르지만, 이 역시 나 잖아요. 말 잘하는 사람이, 꼭 여유 있는 사람이 좋을까요.

9월은 독서의 계절. 경의선 책거리는 조용하고도 풍성하다.
9월은 독서의 계절. 경의선 책거리는 조용하고도 풍성하다.


상황 2

나 : 작가님은 투철한 철학이 있으신 듯한데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상대와 대화가 전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나요?
작가 : 음. 우선 제 입장을 이해시키고요. 혹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전 그 관계를 그만둘 거예요.
나 : 가족이나 친구라면요?
작가 : 어떤 이유로도 나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과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은 이유라면 몰라도. 저라면 가족이나 친구라도 거리를 둡니다. 물론 힘들겠죠. 그래도 더 좋은 사람과 만나고 즐겁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책 약국에서는 내 고민을 책으로 처방해줬다.
책약국에서는 내 고민을 책으로 처방해 줬다.


작가는 책약국에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상담하러 왔다고 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기에 인생, 사랑, 직장 같은 고민이 대다수였다고.

약 봉투 안에는 작가가 추천해 준 처방책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처방전과 책 한 권을 들고 경의선 책거리를 걸었다. 걷다가 앉고 싶은 곳에 앉아 가을 햇살과 실랑이는 바람에 책을 넘겼다. 뒤편에 심어진 라벤더 향기가 한껏 향을 발한다. 마치 기차를 타고 이름 모를 역에 내린 듯하다. 

아까까지 무거웠던 고민이 바람에 실려갔는지 어깨가 펴진다. 문체부가 말하는 올해 독서의 달 슬로건은 어깨펴기, 가슴펴기, 책도펴기다. 

행복은 어쩌면 자연 속에 보는 책 한권 속에 들어 있지 않을까.
행복은 어쩌면 자연 속에 보는 책 한 권 속에 들어 있지 않을까.


솔직히 그동안 책과 멀어졌다. 여유 없다는 핑계도 한몫했겠지만, 책은 먼저 다가와 줬다. 올여름 책을 이해하고, 이번 가을 책으로 위안을 받으며, 난 다시 책과 가까워지고 있다. 이렇게 책의 묘미를 느껴간다면, 60+(60세 이상)가 되었을 때, 난 더더욱 책에 푹 빠져 있지 않을까. 올해는 문체부가 정한 ‘60+ 책의 해’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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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는 이명이 표시된 저작물인 경우에는 그 실명 또는 이명을 명시하여야 한다.
제138조
제138조(벌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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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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