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이 우뚝 서 있는 창신동 대로변. 오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골목 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어느새 얽히고설킨 쪽방촌이 모습을 드러낸다. 흡사 좁은 미로 같은 이곳에서는 담당 공무원조차도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지난 4월 9일, 이곳 동대문 쪽방촌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과 장애인 고용 업체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봉사활동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서울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코로나19 여파로 비교적 한산했다. 마스크를 끼고 장을 보는 주민들 가운데 노란 조끼를 입은 봉사단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재래시장 곳곳을 종횡무진하며 이웃들에게 나눠줄 신선한 먹거리들을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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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방학동 도깨비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 |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현재 100여개의 상점들이 모여있는 종합재래시장이다. 야채, 과일가게, 정육점, 떡집 등 상점들의 종류와 판매 품목도 다양하다. 봉사단들은 한 가게에서 대량으로 구매하는 대신 가능한 여러 군데서 장을 봤다.
구매한 먹거리를 가지고 봉사단이 도착한 곳은 시장 안의 고객지원센터 안마당. 그곳에는 식품들이 담겨있는 키트들이 열을 맞춰 진열돼 있었다. 재활용할 수 있는 리빙박스에 담겨있는 식품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신선하고 질이 좋았다. 감자, 오이, 파프리카 등 야채는 물론이고 오렌지, 딸기 같은 제철과일도 빠지지 않았다.
만들어진 반찬도 가짓수가 많았고, 고기는 국거리용과 굽기용 두 종류가 포함됐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동안에도 추가로 포함될 먹거리들이 안마당에 속속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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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고객지원센터 안마당에 나눔 키트들이 진열되었다. |
“구호 식품들은 어디에 전달되나요?” “코로나19 여파로 더욱 힘들고 외로운 이웃분들이 계시지요. 동대문 쪽방촌 등 나눔의 온정이 필요한 분들에게 전달됩니다.” (서울 광염교회 강신욱 목사) 이번 나눔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은 방학동 도깨비시장뿐만 아니라 공릉동 도깨비시장 등 서울 내 주요 재래시장을 돌면서 먹거리 장을 보고, 이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에 따른 불황으로 침체된 지역 재래시장 상권도 살리고, 어려운 이웃들도 돕는 ‘일석이조’ 아이디어인 셈이다. 이날 참여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중에는 동대문 쪽방촌 사역으로 널리 알려진 등대교회도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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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대한민국!’. 완성된 키트들은 처지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
구호 식품 키트가 완성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행여 빠진 물품이 있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마침내 완성된 키트들은 총 80여개. 한 키트당 소요된 금액은 7~8만원가량이지만 거기에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완성된 키트들은 4개 교회와 장애인 고용 업체에 각각 분배되어 현장을 떠나갔다. 과연 나눔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동대문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인 물품들과 함께 차량에 몸을 실었다.
창신동 등대교회 김양옥 목사의 인상은 따스하고 푸근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쪽방촌 사역에 뜻을 품고 현장에서 고군분투해온 지 어느덧 15년여. 감히 애증의 세월이라고 할 만큼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다. 쪽방촌에 흘러들러 온 주민들은 가난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 그런 그들을 오랜 기간 동안 사랑으로 보듬으며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김양옥 목사는 자신의 사역이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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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쪽방이 나눔의 온정으로 환해졌다. |
쪽방촌 주민들 중에는 이런 도움에 힘입어 자립과 자활에 성공한 이들도 적지 않다. 자립에 성공한 비결을 묻는 질문에 김 목사는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고,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사랑의 능력이 바로 자립을 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약 한 시간 가량 이동한 끝에 종로구 창신동 430번지에서 460번지까지 걸쳐있는, 이른바 ‘동대문 쪽방촌’에 도착했다. 김 목사를 비롯한 등대교회 교인들은 나눔 키트들을 들고, 매고, 끌면서 미로 같은 쪽방촌 곳곳을 방문했다. 눕기는커녕 앉아있기도 마땅치 않은 좁은 방에서 홀로 식사를 준비하던 주민들이 이들의 방문을 반갑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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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극복, ‘사람’이 방안이고 ‘사랑’이 해답이다. |
모든 구호 식품을 전달하고 나니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린 늦은 저녁이었다. 미처 끼니도 챙기지 못한 와중에 폭풍처럼 이어진 고된 작업이었지만, 봉사단들의 뒷모습은 어쩐지 든든해 보였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사랑과 나눔은 더욱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국가적 재난 상황을 맞이하여 가중된 고통으로 신음할 이웃들에게, 단순히 일용할 양식이 아닌, 날마다 샘솟는 희망의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강은혜 lavie11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