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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5일 '한류의 날'에 돌아본 한류의 기원

1997년 6월 15일 일요일 오전 9시 10분, 중국 CCTV에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爱情是什么 ài qíng shì shén me 아이칭스션머'라는 제목으로 처음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MBC에서 1991년 11월부터 1992년 5월까지 방송된 55부작 주말 드라마다. 대본 김수현 작가, 연출은 박철 PD. 기록에 따르면 한국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64.9%로 역대 2위(1위는 KBS <첫사랑>이라고 한다)다. 평균 시청률 59.6%. 이 자체로도 충분한 화젯거리가 되겠지만 우리가 <사랑이 뭐길래>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한류다.
<사랑이 뭐길래>는 방영 당시 기준으로 1992년 한중수교 이래 중국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중국의 집집마다 한국의 아버지와 어머니, 큰딸과 작은아들이 등장하는 대가족이 TV화면에 들어섰다. 이 드라마는 중국에서 시청률 4.2%, 평균 시청자 수 1억 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이는 역대 2위). 종영 후엔 재방송 요청이 쇄도했고, CCTV는 2차 방영권까지 구입해 1998년 저녁 시간대에 다시 편성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한류가 점화되었다.
한류의 기원(起源) 혹은 원년(元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의가 활발하다.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된 1997년 설이 대세인데, 여기에 맞서는 학설도 있다. 드라마 <질투>(중국에서는 '녹색연정(绿色恋情)'으로 개제)가 방영된 1993년 설이 가장 빠른 원년으로 대두되었다. 여기에 영화 <쥬라기 공원> 아젠다가 등장한 1994년설도 있다. 대통령이 참석한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쥬라기 공원> 영화 한 편이 현대차 150만 대와 같다"는 유명한 슬로건이 나온 것이 이때다. 이로부터 한국 사회에 대중문화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또 기획사 SM 출범, CJENM의 영상 산업 진출, 뮤지컬 <명성황후> 초연 등이 전개된 1995년설도 만만치 않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도 이 해에 방영되었다. 1995년 설은 올해가 2025년이라 부쩍 자주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한편 중국에서 처음으로 '韩流'라는 용어가 사용된 1999년 11월 19일(北京青年报)을 기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히 있다. 한국 드라마와 클론, HOT의 선풍을 주시하던 중국 언론이 이를 '한류'라고 네이밍한 것이다. 그러자 대만 언론에서 먼저 '韓流'를 보도했다는 검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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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여러 학설 중에서 <사랑이 뭐길래>가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다. 화제성, 상징성, 영향력 등에서 압도적이다. "용어가 나오기 이전에 실행으로서의 한류, 현상으로서의 한류가 시작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학계와 업계에서는 '1997년 <사랑이 뭐길래>'가 한류의 기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출발점이 6월 15일이다. 다만 이 학설의 치명적인(?) 약점은 1997년을 원년으로 삼을 경우 '한류의 역사는 아직(도) 30년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한류가 30년도 안 되었다니….
30년은 한 세대(generation), 긴 세월은 아니지만 시대구분점으로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23년부터 '한류 30년' 논의가 부단히 출몰해 왔다. 거의 해마다 등장한다. 2027년, 2029년에도 다시 나올 것만 같다. 한류 원년을 둘러싼 논의에는 한류를 통해 '0.7퍼센트의 반란',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를 이룬 한국인의 인정 욕구가 서려 있다. 마크 피터슨 교수는 K-컬처에 대하여 "한국 전통에 내려오는 창조적 천재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면서도, "가난과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욕망"을 지적하기도 했다.
<사랑이 뭐길래>부터라면 한류의 역사는 28년이다. 당시 중국이 한국 드라마와 K팝 등을 받아들인 것은 나름대로 의도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중국에서는 서구문화에 대한 경계심으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문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필자는 <3인3색 중국기>(2004, 공저)에서 "중국은 문화할인율이 낮은 한국 대중문화를 일종의 대체재로 소비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때에도 중국 당국은 일정 정도 이상의 한류에는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드(THAAD)를 빌미로 광폭적인 '한한령'이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한령에도 불구하고(또는 한한령 덕분에?) 한류와 K-콘텐츠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BTS, 블랙핑크,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은 중국 시장과 무관하게 이루어낸 한류의 킬러 콘텐츠다. 설마 중국이 '한류 잘 되라고' 한한령을 내렸겠는가. 한류의 세계화는 문화콘텐츠 현장에서 창·제작자들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작금 한중관계가 답보적이니 목하 <사랑이 뭐길래> 첫 방영일을 챙겨보는 것은 호사가의 반지빠른 일이 되었다. 그래도 1997년 6월 15일의 의미는 적지 않다.
중국에서 점화된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계기였다. 당시만 해도 항간에서는 우리 드라마나 가요를 폄하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는데 비로소 K-콘텐츠의 완성도와 보편적인 소구력, 치열한 내부경쟁 속에 형성된 제작 역량 등을 확인한 것이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영상 콘텐츠는 <겨울연가>,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으로 이어지다가 <기생충>, <오징어 게임>으로 폭발하였다. K팝은 2011년 SM의 파리 공연에서 시작해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세븐틴 등이 불멸의 금자탑을 쌓고 있다.

최근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 소식은 한류의 성공 서사에 한 획을 찍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서울의 대학로에서 출발한 공연 예술 콘텐츠다. 사계에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을 한꺼번에 일컫는 EGOT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한국이나 한국인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 이런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그런데 이제 EGOT를 완성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28년 전 한류의 남상(濫觴)을 돌아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전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
MBC 교양PD로 '인간시대', 'PD수첩' 등의 프로그램 연출을 맡았다.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MBC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을 거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 K-콘텐츠와 한류정책을 연구하면서 '공감 한류' 전파에 기여하고 있다. yons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