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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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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 토요일은 국가공무원 공채 시험일이었다.
아침 일찍 관외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라 부담이 되어 올해는 지원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시험장의 풍경이 궁금했다.
점심을 먹으며 감독관에 지원했던 동료 주무관님께 응시생은 많았는지, 분위기는 어땠는지 여쭤보았더니, 한 교실에 스무 명 중 열아홉 명이 시험을 보러 왔다고 했다.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엄숙하고 진지했다고 했다.
주무관님의 이야기에서 자연스레 7년 전 봄을 떠올리게 되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었던 내가 갈 곳은 집과 독서실뿐이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美化)된다고 하던데,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을 어둡게 기억하고 있다.
출구가 없는 깜깜한 동굴 속, 벽에 손을 대고 더듬어 가며 한 걸음씩 걷는 듯했던 그때다.
그땐 합격만 하면 어떤 어려운 일이 주어지더라도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어떤 민원인을 만나더라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해 운 좋게도 나는 두 번의 면접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경기도 고양에서, 또 한번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두 번 다 오후 조였다.
순번이 늦어 긴장 속에서 준비했던 답변을 되뇌며 긴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손발은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졌지만 이미 다짐만으론 천생 공무원이었다.
어딘가 지친 표정의 면접관 두 분은 면접을 마무리하면서 나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할 기회를 주셨다.
그날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내 대답이 어땠는지는 다 기억할 수 없지만, 마지막 한마디만큼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것만큼은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다짐이기에.
7년이 지났다.
'처음의 마음을 잊지 않는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지금 읍행정복지센터에서 증명서를 발급하고, 전입신고를 받는 민원 담당 공무원이 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의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무거운 말을 꺼낼 수 있었을까.
내가 했던 말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말인지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다소 뜬금없는 화제일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은 문득, 나만 이렇게 어려움을 느끼는 건지 궁금했다.
동기와 차를 마시면서 그 친구에게 슬쩍 물어봤다.
"너는 왜 공무원이 되고 싶었어?"
들어온 시기는 다르지만 나보다는 초심이 남아있을 것 같은 남편에게도 물어봤다.
"공무원으로 사는 지금의 삶이 어때?"
그들의 답변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삶에 있어서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고 지향하는 목표 또한 다르기에.
하지만 신규 공무원이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눈빛에서 어떤 반짝임을 볼 수 있었다.
모두 처음은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읍행정복지센터의 일상은 분주하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그분들은 어느 날은 민원인이고, 어느 날은 직능단체 회원이기도 했다.
내게 오는 민원인들은 서류를 발급받거나,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오는 분들이다.
매일 같이 읍행정복지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 이상 스치듯 지나가는 민원인이 대부분이다.
한때는 아기의 출생신고를 받고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아기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며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사망신고를 받으면 가족을 떠나보낸 이의 먹먹함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했다.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들렀던 민원인 같았고, 마음속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언제 꾸었는지 모를 아득한 꿈속에서는 민원을 받고 사실조사를 나갔다.
내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때를 기억하며 일에 대한 내 마음과 감정이 많이 무너져 있음을 느꼈다.
괴로운 마음과 무너진 감정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곳에서 추스를 수 있었다.
산불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됨에 따라 읍장님을 포함한 다섯 명의 직원들은 일요일에 산불 근무를 서야 했다.
팀장님 두 분과 함께 마을 순찰을 하며 위험한 상황은 없는지 확인하고, 주민들에게 산불 예방과 산불 발생 시 행동 요령에 대한 홍보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일에 대한 의식은 산불 예방을 목적으로 한 홍보 노래가 흘러나오는 행정 차량 포터에서 깨어났다.
부끄럽지만, 민원 업무의 성격상 출장 다닐 일이 많지 않아 마을 지리에 어두웠던 나는 그 마을이 그 마을처럼 보였지만 주덕읍 화곡리~사락리 일대, 덕련리~당우리 일대를 꼼꼼하게 눈에 담았다.
벚꽃이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아서인지 상춘객은 보이지 않았다.
한식을 맞아 공설묘지에 들른 성묘객에게 산불 예방 홍보지를 나눠드리며 조심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이번 산불은 국가적인 재난이다.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도록 작은 노력이나마 보태는 것이 공무원의 일임을 다시 느꼈다.

그날 오후에 곳곳에 내린 고마운 봄비처럼, 여러 유관기관에서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성금 기부가 이어졌다.
동료 주무관님은 성금 접수로 바빠 보였다.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손길에서 우리가 살사는 곳이 서로 돕고 보듬는 지역사회임을 알았다.
그 안에서 공무원은 어떤 존재일까?
7년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이곳에 몸을 담으며 느꼈던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공무원이란 주민들이 상생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인 것 같다.
사람들이 저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그래서 서로 만나 함께 돕고 살 수 있도록 제 등을 내어주는 다리.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가장 강하고 튼튼한 돌다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튼튼한 두 '다리'로 우리 지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번에는 벽을 더듬으며 한 걸음씩 느릿하게 걷지 않고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뛰어나가고 싶다.

◆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충주시에서 민원담당으로 일하며 겪은 일상을 수필로 쓴 글이 등단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공직 업무의 꽃인 '민원 업무'로 만난 수많은 일화들이 매일 성장통이자 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