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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이 현금을 배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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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이다.
주말부부로 지내던 우리에게 작은 위기가 찾아왔다.
월요일 아침에 바쁘게 집을 나선 남편이 지갑을 두고 간 것이다.
남편의 근무지는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우체국이었다.
남편이 근무지에 거의 도착할 무렵 지갑이 없는 것을 발견한 터라, 되돌아올 수는 없었다.
퇴근 후에 찾으러 오자니, 지갑 하나 찾자고 왕복 4시간을 움직이는 것은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택배로 보낼까 했지만, 신분증과 신용카드, 보안카드 등이 한꺼번에 들어 있던 터라 그 역시 꺼려졌다.
지금이야 핸드폰에 각종 결재 앱을 설치해서 사용하니 지갑쯤 며칠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결재 앱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때였고, 지갑을 두고 간 남편은 그야말로 무일푼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순간 나의 눈앞에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 우편물 배달을 하고 주변 직원들에게 멋쩍게 돈을 빌리러 다니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평소 극단적인 상상을 잘하는 편이다.
안쓰러움이 밀려오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간 묘안이 있었다.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를 이용해서 현금을 보내주자.'
물론 '현금배달 서비스'도 집배원이 배달할 때, 수령인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때문에 신분증이 필요한 서비스이긴 하지만, 배달하는 집배원 본인에게 보내는 것이니, 신분증은 없어도 될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서둘러 우체국 앱에 접속했다.
보내는 금액은 일십만 원, 그때 남기는 말에 적었던 글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긴급상황 발생. 긴급상황 발생. SOS를 칩니다. 신랑이 지갑을 두고 갔어요. 살려주세요"
당시 금융 창구에서 현금배달 서비스의 출납을 담당하던 직원이 평소 친하게 지내는 언니였기 때문에, 업무 처리를 하면서 한번 웃으시라고, 나름의 유머를 섞어 작성한 메모였다.
그날 오후, 현금과 메모를 전달받은 남편은 웃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고, 금융팀 언니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참고로 해당 서비스는 당일 16시 30분까지 접수되는 건에 한해 접수신청 다음 영업일에 배달되며, 16시 30분 이후의 접수 건은 다음 영업일에 접수되는 건과 함께 처리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때는 수신인이 집배원이었기 때문에 당일 전달을 받을 수 있었던 특이한 경우였다.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는 신청인이 지정한 수신자에게 우체국 집배원이 직접 현금을 전달하는 서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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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자에게 꼭 현금을 보내고 싶은 상황, 예컨대 계좌이체로 송금하는 것보다 좀 더 정성을 담고 싶을 때, 또는 받는 사람이 은행 창구를 방문하기 어려운 고령자나, 은행 점포가 드문 시외지역에 살고 있을 때 등의 상황에서 요긴하게 사용된다.
'계좌이체로 송금하는 것보다, 좀 더 정성을 담고 싶을 때'라고 한다면, 바쁜 일정으로 경조사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다.
아무리 모바일로 경조를 알리고 '마음 전하실 곳'으로 경조금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경조사를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짐이 되곤 한다.
이럴 때는 계좌이체 대신 경조금과 경조 카드를 함께 배달하는 '경조금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서 마음을 전하곤 하는데, 배달 구분을 선택할 때 '증서배달' 대신 '현금배달'을 선택하면, 경조금을 현금으로 전할 수도 있어서,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다.
연세가 많으셔서 은행까지 방문하기 어렵거나, 은행 점포가 드문 시외지역에 사는 부모님께 매월 '현금'으로 용돈을 드리고 싶을 때는 '부모님 용돈 배달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매월 용돈을 보내드리려면, 번번이 따로 신청을 해야 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부모님 용돈 배달서비스'가 시행되면서 한 번의 약정으로, 매월 예금주가 지정한 날짜에, 지정한 고객에게 현금을 배달할 수 있게 되어 서비스 이용이 훨씬 편리해졌다.
한편, '현금배달 서비스'는 복지정책에도 기여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달 12일, 경남 4개 지역(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군)의 지방자치단체가 배부하는 지원금을 '현금배달 서비스'를 통해 전달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통해 금융기관이 멀어 계좌이체 된 지원금을 찾으러 가기 어려운 주민이나 거동이 어려운 고령자, 장애인 등 소외계층의 불편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받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기에도, 편리함을 드리기에도 충분한 '우체국 현금배달 서비스'.
다가오는 5월, 가정의 달에는 부모님께 계좌이체 대신 현금을 배달해 드려 보는 것은 어떨까.
숫자로 찍혀 있는 통장을 보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받아보는 용돈은 좀 더 특별한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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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강원지방우정청 회계정보과 소속으로 2022년 공직문학상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우체국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동화로 옮겨내 수상의 기쁨을 얻었다. 우체통과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우체국에는 온갖 이야기를 담은 우편물과 택배가 가득하다. 이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동화로 옮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