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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의 시대

[신영철의 마음읽기] 스마트폰 세상 벗어나 '현실 속 조화와 균형' 찾기

2025.02.20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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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세상은 늘 재미로 가득 차 있고, 끝없이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고통도 있고 좌절도 있고 아픔도 있다. SNS 세상이 이런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을 접고 도파민에서 벗어난다기 보다는 인터넷 세상과 건강한 관계를 재정립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답은 조화와 균형에 있다.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참 좋은 세상이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20년 전이면 상상도 못할 일이 손바닥 안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

뇌가 너무 쓸데없는 자극을 많이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옥스포드 사전은 지난해 '뇌썩음(brain rot)'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왠지 섬뜩한 단어인데 도파민에 찌든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들린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SNS 소비와 의존으로 인해 지적 손상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특히 유튜브 등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숏츠',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 무한 스크롤을 통해 재생되면서 우리의 뇌를 지나치게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도파민 중독'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인간의 뇌는 거의 1000억 개에 가까운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경들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세포와 세포간에 신호가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신경전달물질'이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인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도파민과 세로토닌, 그리고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물질이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무서운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마치 도파민이 무슨 죄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도파민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물질이다.

우선 도파민은 인간의 보상회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면 인간은 당연히 그 행동을 더 자주 반복하게 된다.

뇌의 측좌핵에서 전전두엽으로 이어지는 보상회로에 도파민이 분비되어 자극을 주면 기분이 좋아지고 보상행동이 일어나게 된다.

문제는 이게 너무 지나치면 소위 중독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어떤 행동을 해도 뇌에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의욕이 상실되고 행동을 중단하게 되지 않을까?

바로 도파민이 동기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에 대항해서 나오는 도파민 디톡스는 도파민을 차단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또 그래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을 접고 도파민에서 벗어난다기 보다는 인터넷 세상과 건강한 관계를 재정립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답은 조화와 균형에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열린 청소년들의 디지털 기기 의존을 줄이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에서 중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대체한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2024.8.7.(ⓒ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열린 청소년들의 디지털 기기 의존을 줄이기 위한 '디지털 디톡스 캠프'에서 중학생들이 '스마트폰을 대체한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2024.8.7.(ⓒ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도파민의 적절한 분비가 내 삶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는가, 그 반대로 작용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숏츠는 중독성이 강한 것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뇌에 보상이 빨리 주어지기 때문이다.

짧고 강한 자극일수록 도파민 분비는 증가한다. 당연히 보상이 빨리 주어지면 중독성향은 높아진다.

술을 마시는데 일주일 후에 취한다면 과연 알코올 중독자가 생길까?

경마장에 가서 배팅을 하면 말들이 트랙을 돌고 들어온다.

스릴이 느껴진다.

만약 말들이 달리다가 경마장 밖으로 나가서 한달 후에 들어 온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베팅을 할까?

숏츠와 같은 자극적이고 단순한 콘텐츠가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학업에 지친 학생들, 일상에 찌든 직장인들이 일과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위해 본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우리 뇌에는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있는데 어떤 일을 계획하고, 판단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등의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고차원적인 뇌 영역이다.

불행히도 이 영역이 작동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별로 중요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들, 이미 익숙해져서 굳이 생각이 별로 필요 없는 일들은 고위 중추 대신 하부 영역인 자동조절시스템을 통해 습관적으로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일종의 절전 모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단히 합리적인 에너지 사용 시스템이다.

숏츠를 보는 행동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일시적인 기분 전환이나 가벼운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면 좋겠는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한 반복되는 게 문제다.

자극을 받은 뇌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친다. 잠깐 본 것 같은데 벌써 새벽이다.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한 두 번 해 보았으리라. 바로 시간 왜곡 현상이다.

재미있고 기분 좋은 일을 할 때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몰입이 진행되면 가성 최면 상태에 빠지게 되고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특히 비디오 게임, 숏츠와 같이 화면을 통한 시각 자극이 이런 현상을 더 잘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의 리듬이 무너지고 다음 날까지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게임이나 SNS로 인한 지나친 시간소비도 물론 문제지만 더 큰 걱정거리가 있다.

인간의 뇌는 큰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작은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다.

이를 '내성'이라고 한다. 술꾼들이 같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 점점 양을 늘여야 하는 이유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을 엄청나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편리한 세상, 그러나 너무 단시간 내에, 너무 많은 자극에 노출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아동이나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적절한 제한이 필요할 것 같다.

스스로를 조절하는 전전두엽이 성숙되지 않은 시기에 지나친 자극에 노출되면 작은 일상의 행복이 사라질까 걱정이 된다.

현실의 세상은 늘 재미로 가득 차 있고, 끝없이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고통도 있고 좌절도 있고 아픔도 있다.

근심도 걱정도 많다.

SNS 세상이 이런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도한 경쟁과 성취지향적 문화, 즉각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스마트 시대와 결합하면서 우리의 뇌를 너무 자극에 물들게 하는 것 같다.

빠른 시간 내에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충동적인 측면도 필요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동력도 도움이 된다.

이런 우리의 성향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고 스마트 시대, 인터넷 세상에서는 큰 빛을 발휘하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후유증도 만만하지 않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여유를 찾기가 어렵고 주위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SNS 문화에 익숙한 우리 시대 청소년들과 젊은 청년들이 SNS로 대표되는 온라인 세상도 재미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며 살아가는 오프라인 세상도 참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신영철

◆ 신영철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0여년간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진료, 방송,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24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민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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