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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추석 음식' 남았을 때…'갈비찜 잡채볶음밥'과 '전 두루치기' 어때요? 명절 음식은 아무래도 좀 남는다. 갈비를 하는 집은 귀한 것이니 보통 양념만 냄비 안에 조용히 깔려 있다. 잡채도 좀 있을 테고, 전도 자투리며 인기 없는 건 냉장고에 남아 있다. 데워 먹으면서 명절의 여운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다른 요리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갈비찜 잡채볶음밥'과 '전 두루치기'를 만들어보자. 박찬일 셰프 올해 추석은 아주 '맞춤'하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다. 물론 사과와 배가 모두 잘 익기에는 이르지만, 추수기에 얼추 맞는다. (추석이 추수의 감사 축제이자 제사인 것인 다들 아시겠죠?) 날씨도 좋고 시절도 나쁘지 않다. 언제는 우리가 태평성대만 있었나. 그 고난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건 또 명절이 아니었을까. 차려 먹고 마시고 다시 매무새를 다듬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12일 오전 대구 달서구 월성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대한적십자사 대구달서구협의회와 다문화가족이 함께하는 추석맞이 차례상 차리기'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고 있다. 2025.9.12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석은 '차례상'이다. 차례는 문자 그대로 '차를 올려서 조상에게 봉양하는 상을 갖추는 것'이다. 차는 아시아에서 가장 고급지고 가치 있는 음료였다. 물론 이제는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 추석 상은 설 상과 다르게 송편을 놓는다. 다른 음식은 당대에는 집집마다 별 차이가 없지 싶다. 갈비며 잡채 먹는 집이 많다. 갈비찜 대신 LA갈비 구워 먹는 집이 늘고 있는데 여전히 갈비찜은 추석 같은 명절상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추석에도 차례상에 올리는 '갱'이라 하는 소고깃국이 고기의 전부였다. 간혹 산적을 굽는 용도로 고기가 있긴 했지만 그 양이 아주 적었다. 고기가 비쌌다. 수입 고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잘 사는 친척집에서는 명절에 소고기 갈비찜이 올라왔다. 그 맛은 형언할 수도 없다. 오랫동안, 아니 지금도 내 꿈 중의 하나는 소갈비찜을 실컷 먹어보는 것이다. 갈비는 과거에도 아주 귀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명절만 되면 갈비가 품귀라는 기사가 60, 70년대 신문기사에 흔하다. 잘 사는 집을 묘사할 때 종종 '갈비를 쟁여놓고 사는 집'이라는 표현을 썼다. 갈비는 두 가지 요리 방식이 있다. 구이와 찜. 구이는 사 먹는 것, 찜은 집에서 먹는 것이었다. 우리집에서 소갈비 대용으로 돼지갈비찜을 먹을 수 있던 건 1980년대의 일이었다. 갈비찜은 사실 어떻게 요리해도 비슷한 맛이 나온다. 배합이 어려우면 그냥 시중에 파는 양념장을 써도 된다. 간장, 설탕, 마늘, 양파, 파, 후추, 술을 넣고 반나절에서 하루 쯤 냉장했다가 푹 끓이는 게 전부다. 피를 빼는 과정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싱싱한 갈비라면 생략해도 된다. 무와 당근을 넣어도 좋다. 무르게 푹 삶고 뼈가 쑥 빠질 정도면 다 익은 것이다. 압력솥을 쓰면 에너지가 절약된다. 단, 너무 오래 삶으면 살이 무르다 못해 무너진다. 갈비와 궁합이 좋은 건 잡채다. 명절에는 보통 잡채를 하는 집이 많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이용해 볶음밥을 만들어보련다. 소갈비찜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명절 막바지, 냉장고에 둔 갈비찜 냄비를 열어보면 살점은 없고 양념과 물러진 당근 따위만 남아 있다. 여러분 댁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이게 너무도 반갑다. 맛있는 볶음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뼈 같은 것을 추려내고 소스를 한 국자 퍼낸다. 딱 일인분의 밥을 볶기에 딱 맞다. 다른 재료는 고추장 반 큰 술과 잡채, 김가루 약간이면 '오케이'다. 궁중팬 같은 걸 달구고 갈비소스를 넣는다. 뜨거워지면 잡채와 밥을 넣는다. 잘 풀어줘가면서 섞는다. 식용유는 넣지 않는다. (갈비소스와 잡채에는 이미 기름이 충분하다!) 다 섞이면 고추장 반 큰 술을 넣어 섞어가며 마무리한다. 김가루를 뿌리고, 원하면 다진 파를 넣어도 좋다. 고추장은 사실 단맛과 매운맛을 더해주기 위한 것인데, 신김치 다진 것으로 바꿔도 된다. 맛 없다면 환불(?)해 드린다 (^^. 맛 보장!) 명절의 기본 음식은 전이다. 전도 대체로 남는다. 전을 다시 부쳐 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요리를 제안한다. 두루치기다. 두루치기란 조림이나 볶음과 비슷한데 사실 딱 나누는 경계는 없다. 즉석 요리 느낌이 더 강하달까. 재료는 잘 익은 김치, 파, 고춧가루, 다진 마늘, 캔 참치, 치킨스톡이면 된다. 먼저 냄비에 식용유 한 술을 넣고 달군 후 다진 마늘과 파를 넣어 가볍게 볶는다. 캔 참치는 넣고 휘휘 저은 후 물을 붓고 치킨스톡을 조금 넣는다. 김치와 전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고 고춧가루 넣어 바글바글 끓이면 두루치기 완성이다. 전 중에 두부전이 남았다면 더 맛있는 게 이 두루치기다. 그냥 두부를 넣어도 좋다. 맛을 보고 국간장이나 소금 간을 하면 된다. 국물이 적당히 '짜글이'처럼 되면 좋다. 전에서 기름이 충분히 나와서 국물이 진하고 깊어진다. 아아, 이번 추석은 제법 길다. 하지만 이 두루치기를 먹을 때쯤이면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나 할까.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2025.10.01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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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새 지평 국위 선양한 이재명 대통령 '유엔외교' 한국이 9월 유엔안보리 의장국이어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안보리 회의를 직접 주재했고 직접 선정한 'AI와 국제평화·안보'라는 주제로 회의를 진행했다이 대통령의 3박 5일 유엔외교는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주고 국위를 선양한 성공적인 외교였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 준 이 대통령의 '유엔외교' 이재명 대통령의 3박 5일 유엔(UN)외교는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주고 국위를 선양한 성공적인 외교였다. 먼저 1경 7000조 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고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을 만나 최첨단 미래산업인 인공지능(AI) 협력 업무협약(MOU)을 작성하고 AI 인프라를 구축해 한국을 아태지역 허브로 만드는 데 뜻을 모았다. 우리 국민의 미래 먹거리를 챙겼다.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는 한국민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의지 그리고 강력한 회복력을 발휘해 친위쿠데타 사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해 당당히 국제사회에 복귀했음을 선언했다. 국민주권국가로서 한국은 이제 민주주의 여정을 함께할 모든 이들에게 '빛의 이정표'가 될 것임을 약속했다. 적대와 대립으로 파탄에 빠진 남북 관계를 회복하고 정상화하기 위해 3원칙으로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 흡수통일이나 모든 적대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천명하고,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END 이니셔티브를 제시했으며 한반도에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를 열어가자고 제창했다. 특히 비핵화의 진전과 연결하지 않고 북·미 간 관계정상화를 수용한다는 것이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제안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비판, 기후·환경문제 경시와 자국이기주의 연설로 유엔 무대가 시끄러운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 포용과 연대의 가치를 수호하는 책임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은 거주하는 내외국인 모두를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존중할 것임을 선언하고 기후·환경문제 해결에 모범을 보이며 '원조하는 나라'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고 '함께하는 더 나은 미래(Better Together)' 건설에 앞장설 것임을 약속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리나라가 9월 유엔안보리 의장국이어서 이 대통령은 한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안보리 회의를 직접 주재했고 직접 선정한 'AI와 국제평화·안보'라는 주제로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AI가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발명품으로 국제협력과 다자주의 연대를 통해 적절한 규범을 마련해 활용하지 않으면 자칫 인류를 위협하고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으므로 공동의 대응 방안을 찾아내야 하고 대한민국은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 국제 규범 형성과 협력 논의에서 중심 역할을 자임할 것임을 천명했다. 안보리 회의를 주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외교적 역량을 확인하는 것인데 인류의 미래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AI를 주제로 국제 규범 형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은 한국의 신장된 외교력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이 대통령은 총회 연설과 한국의 대북 및 외교정책에 대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여러 양자 정상회담에서도 국익 증진 세일즈외교를 수행했다. 지난 7월 9조 원의 K2 흑표전차 수출 계약을 체결한 폴란드의 나브로츠키 대통령과는 K2의 우수성을 확인하면서 잠수함과 FA-50 전투기 협상 등 방산 협력 확대를 논의했고, 파벨 체코 대통령과는 관광 및 원전 사업 협력을 논의했으며 멜로니 이태리 총리와는 방산과 AI, 청정에너지, 우주항공까지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키고 철도·공항·도로 등 인프라 협력과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논의했다. 끝으로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대한민국 투자 서밋'이라는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해법을 제시했다. 린 마틴 뉴욕증권거래소 회장과 씨티그룹, UBS, 제이피모건,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거물 투자은행이나 자산운용사 대표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 대통령은 국방비 증액을 통해 군사 긴장 걱정이 없는 튼튼한 국방력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기업들의 불공정 지배구조를 시정하고 불공정 거래를 척결해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며, 세금 제도 개혁을 통해 배당과 자사주 취득 등에서 남용을 막는 3차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의 의사결정을 더 합리화하는 제도를 만들며 확장재정정책을 통해 적극적인 신산업 육성 정책을 펼치겠다고 다짐하면서 투자를 유치하고 한국 금융과 증시의 부흥을 모색했다. 유엔외교 이후 과제 이 대통령의 유엔외교는 이처럼 세계 외교무대에 한국의 국가 위상을 떨치고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함께 미래 경제에 대한 희망을 주었지만, 몇 가지 중요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공세가 가장 큰 난관이다.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4160억 달러인 상황에서 84%나 되는 3500억 달러의 투자를 요구하고 투자처도 미 상무부의 결정을 트럼프 대통령이 인가하면 한국은 단지 입금해야 하며 투자 이익금 배분을 한미가 반반으로 하다가 한국이 투자금을 회수한 뒤에는 미국 90%, 한국 10%를 갖는 방안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수용하면 또 다른 외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므로 한미 간 무제한 외환 스와프를 해야 하고 투자 대상 결정에 한국도 관여해야 하며 이익 배분도 상업적 합리성에 맞게 조정해야 할 뿐 아니라 한국인 입국 비자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하면서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 비록 일본이 미국과 유사 합의를 했다지만, 한국과 일본의 외환보유고나 미 국채보유액, 경제 규모, 국외 투자 능력 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 점을 고려해 미국은 투자액 자체를 줄이고 무제한 외환 스와프와 투자 방식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합당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조선, 원자력, IT, 배터리 등에서 미국의 제조업 중흥의 동반자인 한국이 외환 위기 등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치면 미국의 뜻도 이루지 못한다는 점 등을 잘 설명해 양국의 호혜적인 이익 증진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당 80주년 행사를 계기로 북·중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는지를 주시하면서 10월 말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차질 없이 준비해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먼저 숙소와 행사장 등 시설을 완비하고 경호와 안전 문제 등 행사 진행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고 회의 내용 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특히 이번에 20여 개국 정상들이 방한할 뿐 아니라 한미 및 한중 정상회담과 세계의 주목을 받는 미·중 정상회담도 개최될 가능성이 크므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방문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미 공조를 강화하고 이를 지원하는 동시에 회담이 개최될 경우 이를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관계 정상화 및 개선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빈틈없이 잘 마련해야 할 것이다. ◆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27년 간 세종연구소에서 북핵문제, 남북관계, 한미동맹, 한러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국의 국가안보와 국가전략을 연구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 구축 및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와 공동번영 및 국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실용외교를 주창해왔다.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 분과장을 맡았다. 2025.09.29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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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경제다 AI 전사 육성과 AI 3대 강국이 가능하려면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는 특히 중요하다. AI 모델을 활용해 미국이나 중국 등에 비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모델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즉 'AI 3대 강국'은 인재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이 발표되자 청년 일자리 문제가 언론에 도배되었다. 예를 들어, "청년 고용률이 16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들이 쉬고 있다"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학업이나 취업 준비, 육아·가사 등 구체적 이유 없이 그냥 쉬는 '쉬었음' 청년은 2020년(8월 기준)부터 2022년 일시적 하락을 제외하고 40만 명대가 지속 중이다. 노무현 정권 첫해인 2003년보다 20만 명 이상이 증가하였다. 일부 기성세대는 쉽게 청년 세대의 나약함을 탓하지만, '쉬었음' 청년 대다수는 "최저시급 이하의 급여를 받으며 화장실이 더럽고 냉난방을 제대로 하지 않는 열악한 업무 환경, 사적 심부름을 강압하는 분위기,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견디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노동력이다. '쉬었음' 청년이 희망하는 일자리 하한선도 연봉 2823만 원(약 월 235만 원)/통근시간 63분 이내/추가 근무(야근 등) 주 3.14회 이내/정규직 기회가 있다면 계약직 입사도 가능/반복되는 업무보다는 개인의 성장·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 등으로 '특별한' 일자리가 아닌, '상식적'(?) 일자리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상식적' 일자리조차 부족하다. 한국의 일자리 상황은 65세 이상 고령층 일자리의 증가와 청년 일자리의 감소로 요약된다. 8월 기준 청년 일자리는 1991~2025년 사이에 약 200만 개가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368만 개 이상 증가하였다. 그 결과 청년 일자리/65세 이상 일자리 비율은 1991년 8.3배에서 올해는 0.8배까지 감소하며, 지난해부터는 65세 이상 일자리가 청년 일자리를 추월했다. 한국의 청년 일자리 부족은 OECD 평균과 비교해도 확인된다. 지난해 기준 OECD 국가들의 평균을 보면, 65세 이상 일자리는 청년 일자리의 59%도 채 되지 않는다. 고령층 일자리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우리와 달리 청년 일자리 역시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전 대덕구 한남대 캠퍼스혁신파크에서 열린 청년과 지역 우수기업 간 일자리 매칭 '잡(JOB)담(談)'에서 참가 학생이 기업정보를 살피고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일자리 문제는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의 문제이다. 특히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는 신산업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의 주력 산업은 제조업이다. 1991년 8월에 제조업 일자리는 510만 개로 전체 일자리의 약 27%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올해 8월 제조업 일자리는 436만 개로 전체 일자리의 15%에 불과하다. '압축적 산업화'를 통해 '압축성장'을 달성한 한국의 경우 제조업 일자리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인 탈공업화도 압축적으로 진행 중이다. 일본이 약 50년에 걸쳐 진행된 탈공업화가 우리는 33년 소요되었다. 문제는 한국의 제조업은 미국이 만든 제조업 생태계 중 생산 부문에 특화한, 즉 제품의 설계나 디자인 등 고부가가치 사업서비스는 미국 등 선진국에 의존한, 이른바 '자기완결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줄어든 제조업 일자리 대신 대표적인 저부가가치 서비스부문 일자리인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다. 1991년 92% 이상이었던 자영업자 평균 소득/급여생활자 평균 소득 비중이 지난해에는 35%도 채 안 될 정도로 하락한 배경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찾을 수 없는, 한국형 '소득의 초양극화' 현상이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은 결혼율과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령화로 이어졌다. 자영업자의 고령화가 초고속으로 진행하는 배경이다. 1차 베이비붐 세대가 60세가 된 2015년에 60세 이상 자영업자 비중은 25%에서 지난해에 37%까지 급증하였다. 반면 신산업 육성의 실패는 청년 일자리의 감소로 이어진다. 남성 군복무나 대학 졸업 등을 고려한 초핵심 노동력인 25~34세 취업자 규모도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8월에 606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올해 8월에는 535만 명까지 70만 명 이상이 감소하였다. 기업이 선호하는, 이른바 '중고신입'과 관련 있는 30~34세 일자리조차 1991년 8월 310만 명에서 2025년 8월에는 294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반면, 같은 시기에 65세 이상 취업자는 339만 명이나 증가하였다. 이처럼 고령층은 직장에서 은퇴 이후에도 레드오션인 자영업에 내몰리거나 정부가 만들어준 일자리 등에 의지하며 삶을 영위하고, 청년 일거리는 갈수록 없어지는 이유는 한국의 산업생태계가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보여준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일련의 기술혁명들로 인해 산업체계는 지각변동이 진행 중이다. 인터넷 및 IT 혁명으로 '디지털 생태계'가 열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플랫폼 사업모델 및 모바일 혁명 등은 '데이터 혁명'으로 이어졌고, 데이터 혁명은 'AI 혁명'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IT 강국, 신성장동력 육성 등으로 대응하였다. 그런데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에서 실망스러웠다는 것은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와 혁신 노력 등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재명 정부가 AI 3대 강국이나 초혁신 경제로의 대전환에 사활을 거는 배경이다. AI 대전환이 '괜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려면 지난 30년의 산업정책에 대한 처절한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디지털 생태계로의 전환에서 뒤처진 한국이 'AI 3대 강국'이 되겠다는 것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산업화 경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이 미국이 만든 산업생태계의 일 부문을 떠맡는 '식민지형 산업화'였다면, AI 3대 강국은 자기완결형, 이른바 선진국형 디지털 생태계의 구축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나 중국 등과 달리 디지털 생태계의 출발점인 플랫폼 및 데이터 경제의 인프라가 취약하고, 무엇보다 획일주의와 줄세우기와 극한 경쟁 속에서 '모노칼라 인간형'을 배출하는 현재 교육시스템 하에서는 AI 모델을 개발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교육시스템에서는, 돌파해야 할 과제를 찾아내고,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협력을 통해 지금까지 없었던 답을 만들어내는 인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처럼 플랫폼 사업모델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도, 위계(명령)와 경쟁이라는 제조업 생산조직 문화에 익숙한 '모노칼라 인간형'이 분산과 이익 공유와 협업이라는 플랫폼 사업모델의 문화와는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들더라도 플랫폼 사업모델을 디지털 생태계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지 못하다 보니 진화하지 못한다. 이것이 한국이 '데이터 혁명' 및 'AI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모바일 기기를 만드는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급기야 반도체 사업조차 AI 대전환 과정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며 2류 기업으로 전락한 이유이다. AI 기반 산업체계의 대전환에서 인재는 특히 중요하다. AI 모델을 활용해 미국이나 중국 등에 비해 뒤처진 플랫폼 사업모델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가치와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인재의 몫이기 때문이다. 즉 'AI 3대 강국'은 인재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 국민 맞춤형 AI 교육을 제공'하고, '쉬었음' 청년들이 AI 교육을 받으면 생활비까지 지원하겠다며 'AI 전사 육성'을 청년 고용 부진 대책으로 제시한 배경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의 실패한 산업정책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이나 기득권 등과의 '결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 전사'는 획일주의와 줄세우기, 극한 경쟁 환경의 산물인 모노칼라 인재를 만들어내는 현행 교육시스템과는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영국이 근대 산업문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혁명을 통한 새로운 인재 육성으로 의회민주주의 확립으로 상징되는 사회 지배세력의 교체와 근대 은행시시템과 유한책임제 도입 등 사회혁신들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물이 바로 19세기를 대영제국 시대로 만든 산업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혁명 없이 성공적인 AI 대전환이 어렵다는 사실은, AI 인프라와 AI 모델 등에서 2대 강국임에도 20%에 가까운 청년 실업률(8월 18.9%)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AI 전사들에 의한 새로운 시도들이 활성화되려면 우리 사회가 '부동산 모르핀' 투입을 중단하고, '부동산 카르텔'과 결별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AI 교육을 받은 전 국민이 AI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기에, '쉬었음' 청년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생계 압박을 벗어날 수 있도록 8월 칼럼에서 소개한 정기적 사회소득의 제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소득의 제도화야말로 초혁신 경제를 만들기 위한 시드머니이기 때문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 2025.09.25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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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의 미래 로그를 아십니까? AI 전환을 한다는 것은 그저 AI를 도입하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로그가 없는 웹페이지를 일만 년을 운영한들, 그 서비스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는다.박태웅 녹서포럼 의장로그(Log)는 통나무를 말한다. 오래전에 배의 속도를 잴 때 밧줄에 나뭇조각을 매달고 배 뒤편으로 흘렸다. 밧줄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매듭(knot, 노트)이 묶여 있어서 단위시간 동안 매듭이 몇 개나 풀려나갔는지를 보고 속도를 가늠했다. 그래서 배의 속도가 노트가 됐다. 항해일지는 '로그북'이다. 이게 발전해서 '로그시스템'이 됐다. '로그시스템'은 컴퓨터시스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벤트를 기록하는 것이다. 로그인, 파일 삭제, 시스템 오류 발생 등 온갖 다양한 사건들을 순서대로 기록한다.시스템 로그는 시스템의 운영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록한다. 애플리케이션 로그는 특정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이벤트를 기록하고, 보안 로그는 사용자 로그인 실패, 권한 변경과 같은 보안과 관련한 사건들을 기록한다. 로그는 이렇게 생겼다. // 사용자가 로그인했을 때logger.info("사용자 '{}'가 로그인에 성공했습니다.", username);이용자가 로그인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고 내용과 무관함.(ⓒ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웹사이트에 로그가 깔려 있다고 하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누리집(홈페이지)의 메뉴 중에 어떤 메뉴를 가장 많이 쓰는지를 즉시 알 수 있다. 아주 자주 쓰는 메뉴가 홈페이지의 아래쪽에 배치돼 있다면 다음번 개편에서 이 메뉴를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가 편리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메뉴를 클릭했는데, 뜨는 데 8초가 걸린다면? 즉시 고쳐야 한다. 3초 이상 걸리는 웹사이트의 경우 40%의 사용자가 이탈한다는 통계가 있다. 5초 이상이면? 죽은 사이트로 간주된다. 공공서비스 사이트 태반에 로그가 깔려 있지 않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아주 많은 공공서비스 홈페이지들, 애플리케이션들에 로그가 제대로 깔려 있지 않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까? 메뉴 배치가 맞게 된 건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떤 메뉴를 많이 쓰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장이 나도 알지 못한다. 로딩 타임이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좌절해서 떠나도 알지 못한다.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떠나도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공서비스 페이지를 쓸 때마다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실로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AI)은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데이터는 일을 할수록 쌓여야 하고, 기계가 읽을 수 있어야 하고,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데이터다. 예를 들어, 우리 공무원들은 모두 아주 훌륭한 AI 비서를 거느릴 수 있다. 낮에 열심히 작업을 해서 문서를 만들어두고 퇴근하면, AI 비서가 밤새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 과거에 비슷한 일들은 어떤 게 있었나? 관련 문서들을 찾아놓기도 하고, 다른 부서나 부처에서 지금 관련이 있는 일들을 추진하고 있는 건 없나? 찾아서 '이 둘은 시너지가 날 것 같아요' 제안을 해줄 수도 있다. 회의록을 올려두면 하기로 한 일, 책임자, 중간보고일, 관련 문서들을 두루 정리해서 캘린더(달력)에 해당 링크와 함께 표기를 해줄 수도 있다. 일정을 보면 관련 문서들이 링크로 잡혀 있어서 한눈에 볼 수 있다. 일을 하면 저절로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 그러자면!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모든 일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을 할수록 저절로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AI 전환을 한다는 것은 그저 AI를 도입하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왜 클라우드를 써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무엇보다 더 스마트하게 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로그가 없는 웹페이지를 일만 년을 운영한들, 그 서비스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는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2025.09.23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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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 한류의 미래를 위한 차별금지법 한류의 위기는 우리 내부의 차별이라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때 올 것이다. 한류의 미래를 위해 지난 십수년간 제자리걸음인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이것은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최근 한류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은 그동안 기준이 되었던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을 넘어서고 있다.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에 관심을 빼앗긴 듯한 케이팝 또한, BTS가 군대휴지기를 맞으며 케이팝의 후퇴를 걱정하던 목소리가 잊혀진 지 오래다. 블랙핑크, 세븐틴, NCT가 BTS의 앨범판매 기록들을 넘어섰으며, 특히 국내에 덜 알려진 스트레이 키즈는 최근 Karma까지 7개 앨범을 연속해서 빌보드 Top 200에서 1위에 오르는 신기록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케이팝을 넘어서 지금까지 어떤 대중음악 스타들이 빌보드에서 도달한 적이 없는 기록이다. 이들은 멤버 중 두 명이 호주 국적이라서 영어 소통이나 군대휴지기의 위험도 잘 극복하리라 예상된다. 이런 조건은 향후 케이팝 그룹들의 부침없는 성공을 위한 레시피로 이미 여러 그룹이 따르고 있고, 군대를 마치고 돌아 올 BTS와 더불어 케이팝의 미래를 보다 안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게 해준다. 서울의 한 음반 판매점에 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앨범이 진열돼 있다. 2024.12.23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와 같은 성공으로 올해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은 20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며, 이 또한 한국 관광의 새로운 기록이 될 것이다. 연간 3000만~4000만을 기록하는 일본과 중국, 2024년에 기록적인 1억 명을 기록한 프랑스에 비해 아직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의 입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한류의 강세가 예측가능하게 하는 한국 관광의 미래는 밝다. 관광객의 증가는 한국을 미디어로 접하지 않고 거리에서 직접 경험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한류에 더해짐을 의미한다. 수많은 관광 유튜버들이 거리에서 한국을 전세계로 생중계하는데, 이들의 카메라는 늦어도 안전한 밤거리, 힙한 홍대와 성수동의 즐거움만 잡는 것이 아니라 명동, 광화문, 건대 등 도심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과격한 구호의 혐중시위를 전세계로 생중계한다. 올해 5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되는 중국 관광객들이 거리에서 중국인을 혐오하고 죄악시하는 목소리를 접하고 있고, 이를 보는 다른 외국 관광객들도 한국의 이면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한국 미디어콘텐츠가 한류팬의 경계를 넘어서 글로벌 대중문화로서 광범위하게 소통되면서, 한국 콘텐츠 내부에 표출되는 의도되거나 의도되지 않는 모든 인종주의적 감수성과 그렇게 해독 될 수 있는 표현들에 세계의 한류 애호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세계 청소년을 아우르는 케이팝 팬덤 내부에서 새로운 남성성, 여성성을 포함한 젠더 표현 문제가 이슈가 된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다. 한류 콘텐츠는 기존의 지배적 남성성이 보여주지 못한 부드러운 남성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아이돌 문화는 세계의 청년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젠더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전유하고 즐길 수 있는 일차 자료가 되고 있다. 미백에 기초한 케이뷰티 문제도 아이돌의 피부표현을 둘러싼 흥미로운 인종과 피부색주의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지곤 한다. 케이팝은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가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성정체성과 피부색으로 표현되곤 하는 인종의 문제가 교차되어 부딪히며 올바름의 경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것은 소란스럽지만 동시에 매우 건강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을 방문해 혐중 시위군단을 마주친 세계 청년들의 놀라움을 상상해볼 수 있다.한류 현상을 연구하며 가장 즐거운 일은, 한류 소비자들이 한류 콘텐츠와 그것을 생산해 낸 한국에서 새로운 가치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압축성장 경쟁사회의 악이 중첩되어 드러나는 한국의 픽션물들, 그러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인간성의 상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잃지 않는 한국의 수작들은 선진국 시청자들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식민경험, 배고픔, 전쟁, 분단, 독재 등 지구상의 모든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극복의 모델을 찾는다. 이들이 찾는 새로운 가치는 돌봄과 연대, 공동체의 선을 위한 개인의 태도 등 여러 가지 차원에서 담론화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이다. 한류가 만들어 낸 매력은 그 콘텐츠 생산자에게도, 세계 속 소비자들에게도 미스터리면서 긍정적이다. 이 과정을 분석하고 담론화하는 일은 즐겁지만, 항상 위태함을 동반한다. 이 위태로움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안의 인종주의와 성차별이다. 전자는 오징어 게임의 파키스탄 참가자나 청년경찰 속 연변 범죄자 집단처럼 외국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이프 재현을 통해 드러나지만, 이것은 국내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닿아있다.후자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과한 미적 기준이나 드라마의 여성과 성소수자 재현을 둔 팬들의 토론을 통해 드러나지만, 이것은 현실 속 미투 현실과 퀴어퍼레이드를 둔 논란에 닿아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 명동에서 마주하는 과격한 혐중시위는 미디어 문화에 기초한 한류 애호자가 한국의 차별적 현실을 마주하는 극적인 순간이다.필자가 여러 기회를 통해 수없이 강조했듯, 한류는 '밑에서 부터의 세계화'다. 힘있는 엘리트 중재자들이 퍼뜨린 문화가 아니라 힘없는 일반 수용자들이 만들어낸 버텀업 문화현상이고 영향력이다. 그래서 더욱 선한 영향력이 중시되고, 배려와 연대의 태도, 돌봄과 겸손의 제스츄어, 크고 작은 공동체의 가치가 중시된다. 케이팝 그룹들이 팬들과 맺는 관계, 케데헌의 주인공들이 추구하는 가치도 이와 상동형이다. 한류는 일세계가 아닌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만들어낸 비주류의 아름다움이고, 따라서 차별과 배재의 담론이 최대의 적이다. 누가 내게 한류의 미래에 대해 묻는다면, 한류의 위기는 혹자가 걱정하듯 시장의 축소에서 올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차별이라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때 올 것이라고 답한다. 한류의 미래를 위해 지난 십수 년 간 제자리걸음인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이것은 곧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한류 연구자로 정진하면서 팬덤 온라인 참여관찰로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방법을 거쳤으나 스스로는 여전히 세상 속 의미의 생산을 묻는 기호학자라고 이해한다.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한류, 드라마의 모든 것, BTS길 위에서를 출판했고 넷플릭스의 영향, 한국문화산업, 한류현상의 이론화를 위해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다년간 연구 중이다. 2025.09.22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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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이재명 정부, 대전환기 속 실용 외교로 위기 돌파 이재명 정부의 100일은 성공적이다더 험난한 산을 넘기 위해서는 외교·안보 부처의 지속적인 혁신, 민관협력의 제도화, 그리고 국민적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전환기의 외교·안보 환경은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줄을 모르고, 북·중·러 삼각 협력은 강화되고, 국제 무역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외교·안보 환경이다. 과거의 질서는 무너졌으나 새로운 질서는 나타나지 않는 궐위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다자 정상 무대에 무난히 데뷔했고 한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실용 외교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재명 대통령(뒷줄 가운데)이 지난 6월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G7 및 초청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실용 외교, 원칙 갖고 유연하게 한미 정상회담으로 고비를 넘었지만,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다. 트럼프 정부는 관세를 무기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한미동맹을 위해서는 서로가 이익을 봐야 한다. 대미 투자 과정에서 미국이 비자 문제를 해결해 줘야만 공장을 짓고 운영할 수 있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미국에서 제조업 투자는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 미국이 한국의 직접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투자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지속 가능한 동맹의 발전을 위해 원칙을 갖고 대미협상을 하고 있다.한일 관계에서도 실용 외교의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다. 급변하는 무역 질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보호무역과 미국의 일방주의에 따라 세계적으로 소지역 협력이 새로운 외교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한일 관계는 공통의 이해만큼 차이도 크다. 역사문제 인식의 차이는 상수이고, 안보 분야의 협력도 정세의 영향을 받는다. 일본 총리의 교체도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일본이 전통적인 국내 정치의 늪에서 벗어나 달라진 국제질서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23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이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왔다. 지속 가능한 한미 관계의 기반을 다지고, 한중 관계 발전의 기회로 삼으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계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베트남이나 칠레 등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외교 다변화의 좋은 기회다. 급변하는 외교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변화로 선택의 범위를 넓힐 수 있어야 한다. 대북정책, 천천히 일관되게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남방 삼각과 북·중·러 북방 삼각의 진영 대립은 한국 외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냉전 시대에는 진영 내에서 경제성장과 안보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한국의 국력이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냉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현재 북방 삼각의 관계 역시 신냉전으로 부르기는 어렵다. 냉전 시대는 이념이 결속의 동기였지만, 지금은 이익이 작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중 관계의 회복이다. 북핵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중국은 최근 들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반도 정책의 핵심인 이 문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핵 협상의 재개 과정에서도 한중 관계로 미·중 대화를 중재할 필요가 있다. 한중 경제 관계 역시 당분간 경쟁과 협력을 병진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야 하겠지만, 한러 관계의 회복도 중요하다. 북한은 현재 북방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터라 남북 관계를 포함해 남방정책에는 관심이 없다. 이재명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포함해 접경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선제 조처를 했다. '9·19 군사합의'의 복원에서도 우리가 먼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방벽을 건설하고, 대남 비난을 지속하고 있다. 협상은 때가 있기에,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이 북방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남방의 수요를 느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긴장이 높았던 시기에 쌓인 불신을 고려할 때 신뢰 형성은 시간이 걸린다. 경주에서 열리는 APEC이 한반도 평화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려면 남북 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시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 도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국민적 지지'로 위기 극복현재 진행되는 국제질서의 변화는 국면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분단의 위기에서 강대국을 설득해 통일을 이룬 오스트리아의 사례와 노사정 대타협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네덜란드 사례의 핵심은 국내적 통합이다. 내부 분열은 대외 위기를 극복하는 데 걸림돌이다. 특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지정학적 중간 지대인 한반도는 언제든지 내부 분열이 국제화될 수 있다. 그래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내적인 통합이 중요하다. 민관이 힘을 합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면한 국면의 복잡함을 국민은 인식할 필요가 있고, 정부 또한 위기의식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정치적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국회에서 외교·안보 분야만이라도 협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초당적 협력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누구나 알지만, 정부의 노력하는 자세는 언제나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의 100일은 성공적이다. 그러나 더 험난한 산을 넘기 위해서는 외교·안보 부처의 지속적인 혁신, 민관협력의 제도화, 그리고 국민적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 / 전 통일부 장관성균관대에서 북한의 정치경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정부때 통일연구원 원장,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전략(2016),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등이 있다. 2025.09.15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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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산업의 미래 대한민국 경쟁력 기반을 다시 세울 '산업 AX' 산업 AX는 우리 나라의 경쟁력 기반을 다시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 내고 끊임없는 피드백과 평가, 그리고 개선이 민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이런 기민성을 살려야만 한다.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정부가 내년 예산을 약 728조 원 규모로 편성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8.1% 증가한 규모이고 이 가운데 AI 3강 진입을 위한 예산을 올해보다 3배 증가한 10조 1000억 원을 투입하면서 AI 분야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 가운데 제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은 1조 1000억 원 규모이며 이에는 AI 팩토리 선도 프로젝트, 피지컬 AI 개발, 휴머노이드 개발, 온 디바이스 AI 개발 등을 포함한다.산업, 특히 제조 분야의 경쟁력을 AI 기술을 통해 강화하고 이를 위한 기반 기술과 응용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우리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어젠다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대한민국 미래성장 전략의 틀을 잡기 위해 예산과 국정과제 전반에 이러한 기조를 곳곳에 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이 실효적으로 의미 있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번 글에서는 이를 위한 몇 가지 조언을 더하고자 한다.이재명 대통령이 8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대한민국, AI로 날다'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9.8.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우선 AI 팩토리를 2030년까지 500개 이상 구축한다고 하는데, 규모와 제조업의 종류에 따른 몇 가지의 참조 모델을 잘 만들고 그에 대한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500개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몇 가지 모범 사례를 집중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산업 인터넷을 강조하던 시절에 제너럴 일렉트릭(GE)이 프레딕스(Predix)를 거창하게 내세웠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간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상 고객의 기대와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멋진 플랫폼만 만들려고 했던 GE가 현장 적용에 실패한 것이다.피지컬 AI에 대한 계획도 사실 이 분야가 이제 막 관심을 받으며 AI 분야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회이면서도 위험 요소이다. 피지컬 AI를 위한 데이터는 기존 AI 학습 데이터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여기에는 인과 관계 및 추론 메타데이터, 다양한 맥락과 비정형적 상황 데이터, 시공간적 일관성 및 멀티모달 통합, 상호작용 및 에이전트 행동 데이터 등의 또 다른 특성을 갖춘 데이터 구성이 필요하며 이는 피지컬 AI라는 분야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매우 어려운 도전이다.엔비디아의 옴니버스와 코스모스는 디지털 트윈과 피지컬 AI 학습 플랫폼의 두 가지 플랫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이런 플랫폼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이런 수준의 기술을 도입 활용할 것인가도 중요한 의사 결정이다. 국내에서 그동안 진행한 디지털 트윈 과제들의 결과물이 과연 이런 수준의 경쟁력이 있는 지 되짚어 봐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떤 교훈을 우리가 얻었는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산단이라는 산업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산단이 갖고 있는 특징에 기반한 AI를 기반으로 고도화하려는 과업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맞는 특화 모델을 고민하면서 팔란티어의 온톨로지 모델 같은 복합적 솔루션도 함께 검토했으면 한다. 산업 AX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적과 함께 이 분야에 특화된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기업과 AI 전문기업의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어 서로가 문제를 공유하고 협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게 해야 하며, 우수 사례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산업 AX 모범 사례와 공유할 수 있는 기술 솔루션과 데이터를 개방할 수 있는 산업 AI 허브 같은 공간을 만들어서 누구나 같은 업종의 다른 사업장에서 AI 전환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가에 대한 정보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존에 우리 정책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던 많은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승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산업 AX는 어느 나라도 아직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한 영역이고, 각 나라의 제조 현장과 문화, 업무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모델이나 방법론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팔란티어는 고객에서 단지 솔루션과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본사 엔지니어들이 현장에 가서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고, 효과 분석과 필요한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고객과 협의한다. 산업 AX는 멋진 AI 엔지니어가 자기 회사에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투입되어 현장 엔지니어나 현장 전문가와 함께 풀어가는 과제를 통해서 성과가 나온다. 두 문화의 간극이 아직 크며 여러 소통의 문제를 갖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협업과 소통을 원활히 도와주는 것이 어쩌면 이 국가 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일 수 있다. 다른 AI 과제도 국가적으로 모두 중요한 목표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산업 AX는 우리 나라의 경쟁력 기반을 다시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 내고 끊임없는 피드백과 평가, 그리고 개선이 민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이런 기민성을 살려야만 한다. ◆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AGI의 시대, AI 전쟁 2.0 등이 있다. 2025.09.11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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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콩나물국밥의 사연 전주를 위시하여 전북은 콩나물국밥을 아주 잘한다. 시원하고 '개미지'고(감칠맛 돋고) 흐뭇하다. 물이 좋아서 콩이 이쁘고 콩나물도 맛있으니 국밥도 좋다고 한다. 전북의 노포 상당수는 콩나물국밥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줘도 안 먹을 것 같은, 너무도 대중적인 이 국밥이 지역의 최고 음식이 된 건 무슨 까닭일까. 박찬일 셰프세상 어디든 저마다 사는 방식이 있고 먹는 일도 비슷하다. 같은 나라이니 관공서 양식이며 경찰 제복은 같을지라도 말씨와 차림새며 온갖 습속이 달라서 그 재미로 세상이 굴러간다고까지 생각이 미칠 때가 있다. 왜 아니겠는가. 먹는 일은 더 하다. 비슷한 음식이라 해도 미묘하게 변주가 있다. 이를 테면 중국 화교가 시작한 짜장면과 짬뽕마저도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다. 전국 화교 중국집 연합회라는 게 있어서 대의원대회를 하고 서로 사이좋게 통일해서 만들어 팔자고 굳게 결의문을 채택한다고 치자. 그래봤자 각자 고향의 주방에 들어서면서 까맣게 잊어버릴 거다. 아니, 설사 그 결의를 지키자고 마음먹었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손님들이 이럴 게 뻔하다. "아휴, 요새 왜 이 집 짜장이 달라진 거 같어. 옛날 같질 않어." 무언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주방장은 뜨끔해서 다시 자신만의 짜장 레시피로 돌아갈 것이다. 음식은 달라야 맛이기도 하니까, 굳이 통일할 필요도 없다. 좌우지간 짜장면 먹고 싶어서 하는 소리다. 콩나물국도 그렇다. 서울 살면서 콩나물국이 '요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식당에서 기본 백반을 시키면 국이 딸려 나온다. 오늘은 무슨 국이 나올까 기대하는 재미로 백반을 오래 먹었다. 하필 콩나물국이 나오면 아주 실망스러웠다. 돈 값도 제일 적고, 미리 끓여두는 국 안에 콩나물은 푹 퍼져 있게 마련이고, 값싼 콩나물 말고 건더기랄 게 없는 이 국의 특성상 별다른 맛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천원한끼 식당에서 시민들이 콩나물국밥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2024.5.10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그러다가 전라북도에서 크게 놀랐다. 명성이야 오래 되어서 익히 알았지만 막상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자면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콩나물국밥 정도야 그냥 한 상 주세요, 하면 될 것 같지만 전라북도에서는 그게 아니다(라는 걸 여러분도 다 아실 것이다). 수란으로 할까요 날계란으로 할까요, 오징어를 넣을까요 말까요, 밥은 토렴할까요 따로 낼까요. 여기서 끝이 아니다(어떤 프로그램의 성우 목소리를 떠올리시면 좋다). 가게마다 또 다르고, 동네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이 동네 사는 친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먹어야 현지인처럼 쓱, 잘 얻어먹을 수 있냐."거, 어렵지 않어. '여기는 어떻게 시켜요?'하고 물어봐" 여기 콩나물국밥은 어떻게 먹어야 좋으냐고 물어보라는 뜻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러면 주인은 아무 말도 없어. 옆에 앉은 아저씨가 대신 말해줄 것이니 그걸 새겨들으면 돼."아아, 주인은 가만히 앉아서 매출 올리고, 아저씨는 나 같은 외지인 안내를 해줘서 뿌듯하고, 나는 제대로 시켜먹어서 좋으니 이런 '일거삼득'이 어디 있는가. 전주 콩나물국밥 (사진=기고자 제공)사실, 내가 이 지역 콩나물국밥에 놀란 건 전주 남부시장이 시작이었다. 보통의 국밥 프로세스는 비슷하다. 주문하면 뜨거운 국을 푸고(더러는 밥을 토렴하고) 양념을 얹어 반찬 곁들여 낸다. 헌데 그 시장 국밥집은 달랐다. 시장 밖으로 차가운 새벽공기가 낮게 깔려 있고, 국솥의 김은 여닫는 문 밖으로 느리게 퍼져 나가는 가운데 주문 받은 '이모'가 국을 담은 투가리를 커다란 탁자 위에 척 올린다. 그럼 그걸 받아먹으면 될 것 같지만 하이라이트는 이제부터다. 마늘과 매운 고추며 파를 냅다 도마 위에 올려서 손님을 마주보고 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렇게 천천히 밥을 내다가는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영세한 국밥집이 어쩔 것이냐 하고 걱정을 하게 만든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다다다, 다진 양념을 척 그릇에 얹어야 이 멋진 국밥이 완성된다. 마늘이며 고추를 막 다진 것과 미리 썰어둔 것을 얹는 것은 천양지차다. 음식은 향인데, 어떤 게 더 맛있겠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주는 물론이고 익산, 군산 같은 비슷한 권역의 어느 도시에 가도 콩나물국밥으로 한 가락 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농을 섞어서 세 집 건너 하나는 콩나물국밥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전날 과음하는 아저씨들도 점차 줄고, 먹잘 게 많은 시대라 예전 같은 인기는 아닐지라도 전북에 가서 콩나물국밥 안 먹고 뭐를 먹을 것인가. 추신: 다른 음식은 몰라도, 잘 하는 콩나물국밥집은 택시기사들에게 함부로 묻지 마시라. 전통의 명가들은 물론 동네마다 워낙 신흥강호가 즐비해서 기사님이 즉답을 못하고 골머리를 앓게 된다. 외지인에게 온정을 베풀려는 장한 마음씨 덕이기도 하지만, 맛있는 콩나물국밥집이 너무 많아서 그럴 것이다. ◆ 박찬일 셰프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2025.09.04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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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는 728조 예산 결국 이번 예산은 경기 대응을 위한 일시적 재정부양이 아니라, 성장의 엔진을 교체하고 사회안전망의 그물을 더 촘촘히 엮는 '방향 전환형 확장'이다. '빚을 내서라도'가 아니라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장의 조건을 바꾸자는 제안, 2026년 예산안은 그 현실적 타협점 위에 서 있다.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2026년 정부 예산안은 총지출 728조 원으로 전년 대비 8.1% 늘어난 '확장재정' 기조를 보여준다. 경기 둔화와 인구구조 변화가 만든 구조적 수요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인공지능과 신산업에 투자해 성장의 축을 바꾸겠다는 선택이다. 총수입은 674조 2000억 원으로 3.5% 증가에 그치는 반면, 총지출은 54조 7000억 원 늘렸다는 점에서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부는 고성과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고 저성과·중복 사업은 과감히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다.국가채무가 1415조 원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51.6%까지 상승하는 상황은 단순한 재정 악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필수 투자로 인한 점진적인 흐름에 가깝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복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산업구조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 등 새로운 국가적 과제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단기간 내 감축보다는 안정적 확대가 불가피하다. 민간의 자생적 회복만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지속 성장을 뒷받침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투자가 반드시 요구되는 시점이다.실제로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 계획을 보면, 당장은 투자 중심의 확장 기조를 유지하지만 점차 총지출 증가폭을 줄이고, 2029년에는 국가채무 비율을 50% 후반에서 관리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미래 복지비용과 경제 전환에 필요한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재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전략이다. 지금의 국가채무 증가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전환을 이끌고, 미래 안정과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책임 있는 대응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앞으로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재정운용 속도를 다시 조절하며, 국가채무 관리와 경제 활력 제고라는 두 목표를 균형 있게 추구해 나갈 것이다.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 선보인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이번 예산의 무게중심은 명확하다. AI 3강 도약을 위해 고성능 GPU 1만 5000장을 추가 확보하고, 생활과 산업 전반에 적용할 'AX 스프린트 300'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300개의 생활밀착형 제품에 AI를 신속히 이식한다. AI 예산은 3조 3000억 원에서 10조 1000억 원으로 3배 이상 확대되었다. RD는 19.3% 늘어난 35조 3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ABCDEF(인공지능·바이오·문화콘텐츠·방위산업·에너지·첨단제조업)' 분야 핵심기술을 고도화하고, 5년간 100조 원 이상의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유망기업의 스케일업을 뒷받침한다.'모두의 성장' 축에서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만 7세에서 8세로 높이고, 청년미래적금을 신설해 납입액을 매칭 지원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으로 24만 명에게 월 15만 원을 지급하며, 지역거점 국립대 육성을 위해 예산을 4000억 원에서 9000억 원으로 배증했다. 지방 의료와 교통 인프라 보강도 포함됐다. 재난대응과 첨단국방, 한반도 평화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확대된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 RE100 산단과 분산형 전력망을 선제 구축하고, 전기차 전환지원금 최대 100만 원과 녹색금융을 늘려 민간의 전환 비용을 낮추려 한다. 문화·관광·콘텐츠 분야의 소프트파워 투자와 지역관광 활성화, 지역사랑상품권 등 민생 보강 장치도 병행된다.확장재정의 그늘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이 자리한다. 연례성 행사·홍보성 경비와 같은 경상비를 줄이고, 중복·저성과 사업 1300여 개를 정비했으며, 의무지출 제도의 틈새를 손보는 방식으로 약 27조 원을 절감해 핵심과제에 재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줄일 것은 줄이고, 키울 것은 키우는' 체질개선 없이는 확장재정이 곧바로 건전성 논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총수입 증가율이 총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당분간 GDP 대비 4% 안팎에서 머물 것이고, 금리와 환율의 변동성은 국채 조달 비용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려면 세입 기반 확충과 지출 효율화라는 두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세원 포착과 과세 형평을 높이는 세제 정비, 사회보험의 재정구조 개선, 성과 중심의 예산평가를 제도화하는 노력 없이는 '확장 후 정상화'라는 시나리오가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AI 전환과 RD 확대가 생산성 개선으로 빠르게 이어지고, 수출·투자가 회복돼 세입이 견조해진다면 채무비율 상승은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물 수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사업의 우선순위와 배분의 정밀성, 지역·세대 간 형평에 대한 검증이 더 엄밀하게 진행돼야 한다.결국 이번 예산은 경기 대응을 위한 일시적 재정부양이 아니라, 성장의 엔진을 교체하고 사회안전망의 그물을 더 촘촘히 엮는 '방향 전환형 확장'이다. 핵심은 속도와 질의 균형이다. 구조조정으로 새는 돈을 막고, 미래 투자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며, 중장기적으로 총지출의 증가 속도를 다시 낮추는 세 단계를 일관되게 실행할 때 비로소 확장재정은 재정불안을 키우는 비용이 아니라 체질개선의 투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가 아니라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장의 조건을 바꾸자는 제안, 2026년 예산안은 그 현실적 타협점 위에 서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2025.09.03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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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새 지평 한미정상회담, 이슈 팩트체크와 향후 과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신뢰하고 한반도 평화와 미래지향적인 상호협력을 격의 없이 협의할 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 경제 통상문제에서 불확실성이 제거됐고, 원자력 협정 개정에 대해서도 정상 간에 거론돼 일부 진전이 도출됐다.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성공한 정상회담'에 대한 논란 평가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적인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국내외 모두에서 전반적으로 안도와 선방 차원을 넘어 '성공'이라고 평가하는 가운데, 성과를 폄훼하는 일부 편향적인 평가가 있어 사실 여부를 점검하고 향후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먼저, 이 대통령 당선 당시 연합뉴스의 서면 질의에 '백악관 당국자'는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다소 엉뚱하게 답변해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또 미 행정부는 7월 30일 관세 협상 타결 이후에도 계속 수정을 요구해 왔고, 한국의 안보 취약성을 활용해 한미동맹의 역할 변경과 국방비 인상 및 방위비 폭증, 주한미군 규모 축소까지 시사하며 한국의 양보를 압박했다. 급기야는 한미 정상회담 실패를 도모하는 듯한 목적으로 퍼트려진 루머를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세 시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회담 실패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그러나 민주국가로 재탄생한 한국의 이재명 정부는 국익을 수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철저한 준비 그리고 외교력과 지혜를 총동원해 난관을 극복했고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혹을 불식하고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그리고 공식적인 신뢰를 구축했으며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한미 협력의 기틀을 창출했다.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작성한 방명록 메시지.(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그런데도 몇 가지 논란이 제기됐다. 의전 홀대, 동맹 현대화의 구체적인 내용 결여, 공식 발표문 부재 등이다.첫째, 미국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을 때 미 국무부 의전장이 아닌 에비게일 존스 부의전장의 영접을 받은 것은 미국 측이 사전에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미국이 국빈방문을 1년에 서너 번 정도밖에 실시하지 않기 때문에 역대 한국 정상들은 임기 중 1번 혹은 못 한 경우도 있었고, 전 세계 국가가 200개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통상 부의전장이 영접하는 관행을 보면 이는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기 어렵다. '공식 실무방문'이었고 이재명 정부의 외교 기조가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이므로 의전이 아니라 회담의 내용을 중요시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미국 국빈 방문은 없었고 '공식 실무방문'을 4차례 했는데, 2017년 6월 첫 방미 때는 의전장 대리가 공항에서 영접했다. 또 지난 2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나 7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도 의전장 대리가 영접했다.둘째, 대통령 숙소는 미국 국무부 발표대로 영빈관 격인 '블레어하우스'가 정기 보수공사(renovation) 중이므로 워싱턴 D.C.의 인근 호텔로 정한 것이다. 미 국무부도 블레어하우스는 매년 진행되는 정기적인 보수 및 수리를 위해 8월 한 달은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를 비난하는 것 역시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여겨진다. 지난 2021년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식 실무방문 때도 보수공사로 인해 블레어하우스가 아닌 외부 호텔에 투숙했다. 따라서 '역대급 홀대'라는 일부 주장은 '대체로 거짓'으로 여겨진다.'정상 간 신뢰 구축 성공'한 미국 방문이번 정상회담은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 구축과 동맹의 우의 확인, 그리고 한반도 평화 회복 및 첨단 기술 협력 등 한미동맹의 지속적이고 미래지향적 협력 강화가 주목적이었다. 여타 많은 의제에 대해서는 거의 다 미국의 요구를 잘 방어하는 것이 절실했다. 이런 여건과 사정을 고려하면 동맹 현대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빠진 것은 오히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동맹 현대화'는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주한미군을 이제는 중국 견제용이란 것을 명확히 하고 이를 위해 북한 방어는 한국이 주로 맡으며 미군은 지원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국방비를 GDP 대비 2.4%에서 최소 3.5~3.8% 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기준처럼 5%로 올리고, 작년 말 한미 간에 합의된 방위비분담금도 900% 폭증하려는 것이다. 이는 재정적으로 큰 부담인 데다 자칫 한·중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비우호 관계 내지 준적대관계로 악화시킬 수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미국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 회담에서 미국의 요구를 모두 거부하기보다는 한국군의 인공지능(AI) 첨단 정예군화와 북한에 대한 감시·정찰 능력 향상, 대량의 드론과 정밀타격능력 확보 등을 이뤄 자강력을 증강하고 전작권을 전환 받는 등 우리에게 필요한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방비 인상을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여타 미국의 요구는 유예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끝으로 공동발표문이 빠진 것은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관세 관련 합의된 것도 많았고, 미국은 대미 투자 관련 세부 사항이 들어간 합의를 발표하기를 원했지만, 우리가 국익을 지키려면 신중히 처리해야 해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해 발표를 안 했으므로 향후 협상을 진행해 합의에 도달하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합의 발표를 안 해 시간을 번 것이 더 잘 된 것으로 볼 수 있다.한반도 평화·협력 새 지평외교 과제는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을 전격적으로 신뢰하고 한반도 평화와 미래지향적인 상호협력을 격의 없이 협의할 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수차례 '스마트한(smart)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했을 뿐 아니라, "당신은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한국은 당신과 함께 더 높은 곳에서 더 놀라운 미래를 갖게 될 것이다,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직접 써서 이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뒤 가진 업무 오찬 때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당신은 위대한 리더'라고 써서 전달한 메시지.(사진=대통령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아울러 이번 회담으로 경제 통상문제에서 불확실성이 제거됐고, 원자력 협정 개정에 대해서도 정상 간에 거론돼 일부 진전이 도출됐다고 한다.몇 가지 중요한 과제는 남았다. 관세 협상은 "우리도 수정할 게 있다"고 맞받아 7·30 합의를 지켰지만, 호혜적으로 잘 마무리해 문서로 합의해야 하고 15%로 하향된 자동차 관세도 조속히 시행해야 하며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관세에서 한국의 최혜국대우를 보장받아야 할 뿐 아니라 조선, 원자력, 방산, 첨단 기술 협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이제 이재명 정부 대외정책의 주축인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의 기반은 튼튼하게 마련됐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러 협력 강화 가능성으로 ▲더욱 부각된 한·중 및 한·러 관계 정상화 ▲전략적 동반자관계 회복 및 호혜적인 발전 ▲양 강대국의 한반도 평화 지지 유도 ▲남북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활용한 한반도 평화 회복 및 정착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정부는 이전보다 갑절의 노력을 기울여 전방위 우호 협력 및 균형적 실용외교를 현실적이고 지혜롭게 구사해 한반도 평화 회복 및 번영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27년 간 세종연구소에서 북핵문제, 남북관계, 한미동맹, 한러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국의 국가안보와 국가전략을 연구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 구축 및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와 공동번영 및 국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실용외교를 주창해왔다.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 분과장을 맡았다. 2025.09.02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