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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산업의 미래
AI 시대, 인문학의 새로운 기회
우리가 AI 시대의 새로운 인문학 연구 방식을 수립하면 전 세계 인문학 연구를 이끌 기회를 가질 수 있다. AI에서 G1은 어렵더라도 AI 시대 인문학은 한반도에서 얼마든지 이끌어 갈 수 있다. 정부는 이 부분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하며, 이제 공학자와 자연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가 협동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의미 있게 봐야 한다.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몇 년 전에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다트머스 대학교 학제 간 참여 연구소에서 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이 의식, 실재, 지능, 영성, 시간, 환경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토의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계적인 인문학자들이 현대 과학과 기술 수준에 대해 매우 상세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AI 시대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올수록 인문학의 위기나 소외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인류는 새로운 과학과 기술 발전으로 큰 변혁을 이룰 때마다 인문학을 발전시켜 왔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을 거친 과학 혁명,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양자 역학은 우리 인류에게 세계와 실재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주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인간이 갖는 존재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AI 관련 강연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기술 발전의 내용에 대한 질문보다 그럼 이제 인간이란 무엇이고 우리의 존재 가치와 삶의 의미 그리고 미래 사회에 대한 걱정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질문에는 나 같은 공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들이 답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지능을 가진 자율적 존재의 등장을 예견할 수밖에 없으며, 이들은 이제 도구가 아닌 우리의 동반자가 되리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존재의 등장이 5년 안에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하며, 최근에 등장한 '오픈클로'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몰트북'에서 보여준 AI 에이전트의 대화 수준은 이들이 자체적인 사회를 갖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물론 과장된 면이 아직 많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라이프위크(SLW) 2025'에서 방문객들이 키네틱 LED 터널 앞을 지나고 있다. 2025.9.30.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인문학이란 기본적으로 언어, 문학, 철학, 역사 등 인간의 문화적, 정신적 유산을 탐구해 인간 자체와 그 가치를 본질적으로 성찰하는 학문이다. 그 기저에는 이 세상에 이런 지적 수준을 갖는 생명은 우리밖에 없고 그에 따라 인간다움의 가치를 논하고 자기 성찰과 삶의 방식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우리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지능을 갖고 자체적으로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구성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면 인문학 연구 주제 대상을 인간에 국한하는 것이 맞을까? 2019년 세계적 규모의 사모펀드 회사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만 회장은 옥스퍼드 대학에 1억 5000만 파운드를 기부해 슈워츠만 인문학 센터를 설립하도록 했다. 그가 옥스포드에 요청한 것은 기존의 인문학을 넘어서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열라는 것이고 옥스퍼드가 인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쌓아온 연구를 통해 전 세계 자연과학 연구자들이 하는 일을 보완하라는 것이었다. 옥스퍼드 대학은 이 기부를 르네상스 이후 가장 규모가 큰 기부라고 반겼다. 그런데 바로 르네상스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벗어나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와 개인을 발견한 초기 근대 문화의 성립이라고 볼 수 있다(르네상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어쩌면 지금 21세기에는 또 다른 르네상스적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인문학은 다시 한번 변신과 도약을 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20세기까지 인간만이 독창성, 창의력, 뛰어난 사고와 우주에서의 유일한 의식을 가진 존재라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유전학과 생물 화학의 발전, 천문학과 물리학의 새로운 발견, 컴퓨터 문명의 등장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우리가 갖는 가치를 다시 살펴보게 만들고 있다. 또한 다른 생명과의 공존, 인간 자체가 여러 생명체로 구성된 복합적인 세계라는 것, 뇌과학의 발전과 양자 역학적 해석에 의한 의식 탐구 등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지적 존재의 등장은 우리에게 문명사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제 지능 수준에서 우리를 넘어설 수 있는 디지털 존재와 공존, 협력, 공동 연구, 의사소통과 새로운 사회 구조, 예술 창조 등은 인류 문명이 또 다른 단계로 넘어서는 순간에 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지능에 따른 후(後) 인본주의 또는 인지적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비인간과 공존하는 인간의 조건을 탐구해야 하는 새로운 인문학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AI 시대의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 대상에서 배제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유일한 지능 주체가 아닌 세계에서 의미와 규범이 어떻게 생성·유지·충돌하는 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지금 AI 관련해 많은 국가 과제가 기술 혁신과 국가 경쟁력, 산업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개인은 AI 사회에서 내 삶의 의미, 존재의 가치, 새로운 윤리와 같은 인문학적인 질문과 대답에 목말라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대부분은 고전적이거나 20세기 수준의 인문학이었다. 이제는 21세기 AI 시대에 맞는 인문학 연구가 필요한 것이고 새로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우리가 AI 시대의 새로운 인문학 연구 방식을 수립하면 전 세계 인문학 연구를 이끌 기회를 가질 수 있다. AI에서 세계 1위 국가 달성은 어렵더라도 AI 시대 인문학은 한반도에서 얼마든지 이끌어 갈 수 있다. 정부는 이 부분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하며, 이제 공학자와 자연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가 협동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의미 있게 봐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인류 문명에 공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이며, 이는 우리 젊은 인문학자들이 과학과 기술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출 때 가능할 것이다. 인문학자와 공학자, 과학자들이 같이 연구하는 새로운 융합 연구에 대해 정부 지원이 더 크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 2026.02.12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등이 있다. -
민생경제
코스피 5000, 가능성을 지속성으로
코스피 5000은 단순한 숫자 이벤트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이 오랫동안 발목 잡혀 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실질적으로 걷어내며 '시장 규율의 프리미엄'을 회복했다는 신호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가능성을 지속성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코스피 5000은 단순한 숫자 이벤트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이 오랫동안 발목 잡혀 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실질적으로 걷어내며 '시장 규율의 프리미엄'을 회복했다는 신호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이루어진 상법 개정 논의, 이사회·감사기구의 독립성 강화, 공시 투명성 제고,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확대가 맞물리면서 '한국 기업은 싸게 사는 시장'이라는 인식이 불식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크게 늘어난 흐름은 밸류업이 구호에 그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상승의 엔진은 AI와 반도체다. 2025년 한국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반도체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점은 한국 경제의 강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쏠림이라는 구조적 위험도 함께 노출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표 기업의 호황이 지수를 끌어올릴수록, 그 성과가 다른 산업과 지역으로 퍼지는 통로는 더욱 중요해진다. 코스피 5000의 밝은 면은 성장 동력의 폭발과 투자 자신감 회복이다. 특히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렸던 가계 자산이 자본시장으로 유입되는 '머니 무브'가 가속화된다면, 이는 기업의 투자 재원 확충과 혁신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주식·펀드·연금이 장기 자금으로 자리 잡을수록, 기업도 단기 실적에만 매달리기보다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같은 미래 현금흐름 창출에 투자할 여지가 커진다. 한국 증시 최초로 종가 기준 코스피 5000을 달성한 2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코스피 종가가 표시된 전광판을 배경으로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2026.1.27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러나 어두운 면도 분명하다. 특정 업종 집중이 심해질수록 지수는 상승해도 체감경기는 따로 노는 디커플링이 가속화될 수 있다. 2025년 4분기 역성장(-0.3%) 논란이 불거졌듯, 지수 랠리와 실물 사이의 간극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소비 회복은 여전히 더디고, 고용 시장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그냥 쉬었음'이 늘어나는 등 불안 요소가 상존한다. 지수의 환호가 청년의 일자리와 중소기업의 매출 증가로 골고루 퍼지지 않는다면, 코스피 5000은 사회적 통합을 강화하기보다 박탈감을 키울 수도 있다. 가계부채 부담은 이 간극을 더 넓힐 수 있다. 부채가 소비 여력을 갉아먹는 구간에서는 수출 호황이 와도 내수 반등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책은 '지수 부양'이 아니라 '순환 복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재정은 단기 부양에 나서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민간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방향, 즉 서비스 산업 혁신, 규제 합리화, 노동 이동성 강화를 지향해야 한다. 통화정책 역시 성장과 물가, 금융안정의 균형을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2025년 말 기준 실업률 4.1%대, 청년 실업률 6.2% 안팎이라는 지표는 주가 상승이 곧바로 일자리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가계신용 잔액이 1968조 원 수준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금리 부담은 소비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내수를 살리려면 임금·고용의 질 개선과 함께 중소 서비스업의 생산성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2025년 성장률이 반올림해 1%에 머물고 4분기 역성장 논란까지 겪은 만큼, "시장은 파티인데 실물은 냉각"이라는 경고를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한국은행이 2026년 성장률을 1.8% 내외로 전망하는 것은 급반등보다 완만한 회복에 가깝다.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코스피 5000 이후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다음 세 가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첫째, 시장이 과열될 때는 '일괄 규제'보다 '맞춤형 관리'가 필요하다. 투자경고 종목이 늘어난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묶기보다, 위험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해 변동성을 줄이고 투자자 피해를 막아야 한다. 둘째, 공매도는 필요하되 공정하게 운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불법 공매도는 확실히 차단하고, 관련 정보는 더 투명하게 공개하며, 개인 투자자도 제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셋째, 반도체 호황이 대기업 실적에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이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노동시장에서 직무·성과 중심 문화가 자리 잡도록 돕고, 전직·재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더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기대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 규모나 유동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외환·결제·계좌 개설 등 접근성에서 국제 투자자가 체감하는 불편을 줄이는 제도 정비가 핵심이다. 편입이 성사되면 패시브 자금이라는 안정적 수급이 생길 수 있지만, 그만큼 글로벌 위험회피 국면에서는 조정 폭도 커질 수 있다. 들어오는 돈만 볼 것이 아니라 나갈 때의 충격 흡수 장치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5000'을 위해 필요한 것은 숫자에 취한 낙관이 아니라 이익 체력에 기반한 질적 성장이다. 정부는 지수 중심 정책의 유혹에서 벗어나 내수 회복과 구조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주주환원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 규율로 내재화해야 한다. 투자자 역시 변동성 확대를 전제로 장기·분산 포트폴리오를 갖춰야 한다. 지수는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과정의 품질이 지속성을 좌우한다. 코스피 5000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가능성을 지속성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2026.02.09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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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허름한 시장에서 할머니가 말아주는 '제주 순댓국'
민족의 국밥 한 자리를 차지하는 순댓국. 제주는 유독 순댓국의 역사가 깊다. 제주에서는 '큰일'이라고 부르는 혼례와 장례 문화가 있는데 그때 돼지를 많이 잡았다. 주로 여자들이 순대를 만들었다. 순대는 창자라는 고유의 모양 덕에 속에다 무엇이든 채워넣어 먹을 수 있는 기능적인 음식이다. 제주의 풍토가 만들어낸 이 한 그릇의 음식 박찬일 셰프 오래 전 제주에 신혼여행을 갔던 누이의 기억 한 토막. 그때는 흔히 개인택시를 하루 이틀 대절(금액을 정해서 빌리는 것)해서 여행을 했다. 기사가 데려간 식당에 앉았더니 돼지고기를 내오더란다. 문제는 시커먼 털이 숭숭 박혀 있는 껍질 붙은 고기였던 것. 그게 서울사람에게는 흔한 장면이 아니었다. 식욕이 떨어져서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랑의 채근에 한 점 먹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없는 고기 맛이었다고. 나도 처음 먹었을 때 한 급 다르다고 느꼈다. 굳이 제주 돼지의 맛을 설명할 건 없겠다. 자, 여러분도 궁금해 할 질문 한 가지. 제주 사는 음식전문가 친구에게 그걸 물었다. 왜 제주 돼지는 맛있는가. "제주 사람들은 여기 돼지 맛있다고 하지 않아, 뭍 돼지가 우리 것보다 맛없다고 하지. 크하하." 알았다 알았어. 제주 사람들의 고기 자부심, '육부심'이라고 해야 활까. 하여튼 답을 찾자면 해석이 많다. 물이 좋아서 그렇다, 종이 좋은 거다, 사육기술이다 등등. 흑돼지는 그렇다 치고 이른바 '백돼지'는 육지랑 종(種)이 같은데 왜 맛이 그리 좋으냐고. 제주고유 재래흑돼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고기가 맛이 좋으면 다른 것도 좋다. 이를 테면 뼈와 부산물을 이용하는 온갖 음식들. 제주 국밥은 순댓국과 해장국이 양분한다. 순댓국은 돼지이고, 해장국은 소다. 둘 다 전국 대표선수 자격이 있을 만큼 맛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국밥이라고 하면 순댓국밥을 지칭한다. 그만큼 많이 먹는다. 외지인에게도 인기 있는 몸국이라는 것도 돼지 부산물로 만드니까 순댓국의 형제다. 요즘 제주 대표음식이 된 고기국수가 상업화된 것은 1980년대로 본다. 순댓국, 고기국수, 몸국. 죄다 돼지 음식이다. 셋 다 제주식의 오랜 '큰일' 문화 덕에 번성했다. 큰일이란 결혼, 장례 같은 걸 뜻한다. 제주는 성씨가 적고 고립된 섬 문화, 특유의 끈끈한 유대관계 때문에 친인척 사이의 친밀도도 아주 짙다. 그걸 확인하는 게 혼인잔치며 장례다. 요즘도 잔치하면 삼일씩 내리 하는 전통을 지키는 집이 꽤 있다. 이때 돼지를 잡는다. 요새는 맡겨서 사서 쓰곤 하지만 여전히 돼지를 몇 마리 잡느냐 하는 게 큰일의 핵심이다. 돼지를 잡으면 창자가 나온다. 여자들이 달라붙어 속을 채운다. 계절에따라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넣는다. 돼지 피가 중심이다. 진한 제주 순대의 탄생이다. 제주에서 순댓국은 곳곳에 명가가 있는데, 나는 동문시장 광명식당에서 처음 먹었다. 허름한 노포에서 뜨겁게 토렴한 국물을 한 술 뜨자 속이 다 풀렸다. 적당히 야성적인 냄새가 살아 있다. 현대식 순댓국은 너무 깔끔하달까. 냄새를 다 지워버린다. 제주 돼지 역사는 오래 되었다. 3세기경의 중국의 삼국지 위서나 5세기 후한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제주에서 돼지를 많이 기른 것은 여러 설이 있다. 화산재가 중심인 토양이 영양이 적어서 농사를 위해 비료를 얻으려고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이른바 돗거름(돼지거름)이 그것이다. 물론 고기는 귀중하고 맛있으니 가능한 한 많이 기르려고 했다. 사육 환경에서 제주가 유리한 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순대는 오래 전부터 먹었다. 근대적인 순댓국 기록도 있다. "순대국은 도야지살문물에 기름은 건저버리고 우거지를 너어서 끄리면 우거지가 부드럽고 맛이 죠흐나 그냥 국물에 내쟝을 써러너코 졋국 처서 먹는것은 상풍(常風)이요 먹어도 오르내기가 쉬웁고 만이 먹으면 설서가 나나니라." <조선무쌍신식조선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36년판에서. 초판은 1924년). 점잖게 '하느니라'하고 썼던 과거의 요리책이다. 그림이나 사진은 없고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100년 전 순댓국도 지금과 똑같다. 졋국(새우젓)을 쳐서 먹는 방식도 흡사하다. 저자는 서울의 유명한 음식평론가 겸 셰프 겸 한량이었던 이용기 선생이다. 그때 순댓국이 서울에서도 꽤 팔리는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싸고 만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당시 돼지 생산은 쉽지 않아서 나름 고급음식에 속했다. 순댓국이 전국적으로 흔해진 건 1970년대 현대적인 돼지 생산 덕이었다. 식용유 짜고 남은 수입콩깻묵 같은 사료가 풍부하게 공급되고 사육기술도 보급되면서부터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으면 당연히 창자가 많이 생기고, 순대도 덩달아 폭발한다. 값싼 당면 덕도 보았다. 당면으로 순대소를 만들면 가격이 거의 거저다. 순대 피와 약간의 자투리 채소, 당면이면 충분히 맛있는 순대가 된다. 지금도 당면순대는 식품 중에서 가장 싼 '고기(?)' 음식이다. 만 원이면 시장에서 거짓말좀 보태서 한 보따리를 받을 수 있다. 허름한 제주의 시장에서 할머니가 말아주는 순댓국밥 한 그릇 하고 싶다. 제주에는 봄이 오고 있을 것이다.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2026.02.05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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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새 지평
2026년 한국의 4강 외교 과제와 한반도 평화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고양했으며 향후 오해 소지 없이 적극적으로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전개할 능력과 의지를 보여줬다…남북 대화 재개와 관계 정상화의 물꼬는 우리 정부가 계속 선제 조치를 포함해 우호적인 의사와 행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된다면 트일 수 있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국제 평화·공동번영 주도할 기반 갖춘 한국의 실용 외교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후반 6개월간 다자외교 5회, 9개국 순방 및 35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올해 들어 중국과 일본을 방문해 전쟁 중인 러시아를 제외한 4강 외교를 완료했다. 그 결과 국제 평화와 공동 번영을 주도할 외교적 기반을 구축했으며 국익 증진 실용 외교의 외연을 확장하고 보다 능동적으로 펼칠 준비를 갖췄다. 무엇보다 한국 외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국, 중국, 일본의 지도자들과의 돈독한 신뢰를 구축해 호혜적 차원에서 자신감 있는 외교를 펼칠 수 있게 됐고, 동시에 한국의 국익과 보편적 이념에 따른 우리의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한국 외교의 자율성을 고양했으며 향후 오해 소지 없이 적극적으로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전개할 능력과 의지를 보여줬다. 미국의 일방적인 자유무역협정(FTA) 무효화와 고관세 부과, 투자 및 안보 관계 조정 압박에 대해 우호 및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내심을 발휘하고 설득해 우리의 국익을 수호하는 선에서 관세와 투자 협상을 마무리했으며 안정된 안보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전작권 전환에 대한 동의, 그리고 원자력 잠수함 건설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를 포함하는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합의까지 이끌어냈다. 중·일 갈등이 돌출돼 안보 환경이 악화됐지만 오히려 이를 슬기롭게 간접 활용해 연초에 연속적으로 한중,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동북아 평화와 안보 및 협력을 강조하면서 중·일 양국 간 긴장 수위를 낮추고 협력을 도모하도록 유도하는 주도력을 과시했다. 시진핑 주석이 일본의 침탈 역사를 지적하면서 대일 공조를 주장하고, 다카이치 총리가 민주국가 연대를 내세워 대중 공조를 유도했지만, 이 대통령은 "동북아 3국이 최대한 공통점을 찾아 함께 소통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한중일 협력 기조 회복을 권유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추대하고 자신은 페이스메이커를 자임해 한반도 평화 회복의 동력을 마련했고, 미국의 과도한 투자 압박을 인내와 투철한 의지로 극복했다. 시진핑 주석에게 한중 해군의 공동 수색·구조 훈련을 제안해 대미 자주성을 보여줬으며, 동시에 "중국만큼 일본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한중 모두 고유의 핵심적 이익이 매우 중요하므로 북한을 억지하기 위해 원자력 잠수함 건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대중 자율성도 과시했다. 끝으로 일본은 이 대통령의 한일관계도 중시하는 태도에 안도했고 양국 관계에 난제였던 과거사 문제도 조세이 탄광 사망자 신원 확인 협력 합의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강훈식 비서실장, 이 대통령, 조현 외교장관, 위성락 안보실장. 2025.11.1.(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4강 외교 과제와 한반도 평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고관세 복원 위협에서 알 수 있듯이 신뢰의 한미관계를 유지하려면 정상 간 합의의 원활한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먼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는 대미투자특별법이 정상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되고 순조롭게 적절한 투자처를 찾아 실행될 것임을 미국 지도자들에게 안심시켜야 한다. 원자력추진잠수함 건조와 원자력협정 개정 그리고 한미 동맹 현대화와 조정도 전작권 전환과 함께 양국 간 우호적인 조정을 통해 계획대로 진전돼야 하고, 특히 한미동맹이 한국의 연루 위험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억지해야 한다. 끝으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방문 계기 북·미 정상회담을 가지도록 지원해야 한다. 중국의 서해 구조물 일부 이동으로 순조로워 보이는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 정상화도 양국 국민 간 반감을 완화하고 교육, 문화, 관광 교류 등을 증진하면서 경제·사회 협력 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한령 해제도 서두르기보다 바둑, 축구 등 쉬운 문제부터 시작해 영화, 드라마, 게임을 거쳐 노래, 공연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반도 안정과 평화, 남북 관계 정상화 및 협력이 중국에도 이득임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중국이 북·미 회담이나 남북회담 재개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데도 각별한 외교적 노력이 전개돼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일본 지도자들과도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월 22일 소위 '다케시마의 날'을 맞아 다카이치 총리가 선을 넘지 않아야 하고,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극우적인 행동을 한다면 양국 관계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해야 한다. 한미일 간 적절한 안보협력을 모색하되 미·일이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하나의 전구' 등 반중 동맹화 움직임은 억지해야 한다. 양국 간 문화·경제 협력을 증진하면서 일본을 설득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모색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한러관계가 비우호 관계로 악화돼 러시아 내 교포 및 한인과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실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대러 제재를 최소한으로 완화하고 한러 직항로를 재개하는 등 전쟁 중에도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이 끝나면 조속히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호혜적인 다양한 남북러 경협 가능성을 활용해 러시아가 한반도 평화 및 남북 관계 정상화에 기여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지속 가능한 안정을 유지하며 분단비용을 최소화하려면 남북 관계도 정상화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최악의 불신과 대립 관계로 전락한 남북 관계를 먼저 적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평화공존 의지를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대화 재개를 위해 정진했다. 그러나 북한은 적대행위는 자제하면서도 아직 관계 복원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남북 대화가 재개돼야 하며, 전쟁은 물론이고 국지전 이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큰 우발 충돌도 방지하는 제반 조치가 강구되고 합의돼 실행돼야 할 것이다. 남북 대화 재개와 관계 정상화의 물꼬는 우리 정부가 계속 선제 조치를 포함해 우호적인 의사와 행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된다면 트일 수 있다. 따라서 미 행정부와 중국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정부는 핵 문제와 연계하지 않더라도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를 지지할 것임을 천명할 수 있다. 남북 관계 재개와 진전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 성패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북측과 약속한 것을 설사 미국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관철할 수 있는 자율 역량을 가지느냐 여부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북 관계 진전에 과속을 자제하고, 외국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켜낼 수 있는 사항에 국한해 합의를 이루고 일단 합의를 본 사항은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추락한 남북 신뢰를 회복하는 관건이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27년 간 세종연구소에서 북핵문제, 남북관계, 한미동맹, 한러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국의 국가안보와 국가전략을 연구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 구축 및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와 공동번영 및 국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실용외교를 주창해왔다.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 분과장을 맡았다.
2026.02.02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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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경제다
환율, 한국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속살
1%에 턱걸이할 정도로 경제성장률이 추락한 가운데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가 바로 고환율이 지속되는, 한국 경제의 '실제' 펀더멘털(속살)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핀란드 경제가 노키아 몰락 이후 이른바 '노키아 리스크'를 겪은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 25년간 실패한 산업생태계의 진화가 시급한 이유이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제는 성장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시점이라 한 배경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환율 안정화를 위해 애쓰는 이재명 정부의 안쓰러움은 이재명 정부가 물려받은 과거 유산에서 비롯한다. 환율 안정화에 책임을 떠맡고 있는 당국 수장들의 구두 개입이나 국민연금 동원 등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자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공정성 논란의 소지가 있는 세제 혜택이라는 강수(?)까지 동원하였다. 그러나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13거래일 후에는 다시 1470원대로 돌아갔고, 1월 21일부터 25일 사이에 한일 정상의 구두 개입으로 환율은 하향 안정세로 전환하였다. 문제는 고환율이 취약한 경제구조의 산물이기에 하향 안정세 추세가 지속할 수 있는가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의 환율 수준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괴리가 되었다는 주요 당국자들의 주장은 구조의 취약성을 외면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펀더멘털은 고용·생산·물가 등 경제의 기본 체력을 의미하며, 환율은 단기적으로 펀더멘털 변화를 예상해 움직이고, 중장기적으로는 펀더멘털 상태에 따라 움직인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모두가 주지하듯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지난 35년간, 특히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 이후 빠르게 약화해 왔다. 예를 들어, 성장률은 10%대 성장률 시대의 막을 내린 1992년 이후 연평균 7.8%(1992~97년)→4.1%(1998~2019년)→2.0%(2020~24년)로 계속 하락해왔고, 지난해에는 급기야 1.0%를 턱걸이하였다. 같은 기간 일자리 증가율 역시 연평균 2.2%→1.1%→1.0%로 하락해왔고, 지난해에는 1% 밑으로 떨어져 0.7%를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는 세계 최고의 고령화 속도와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 그에 따른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취업률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OECD 기준 경제활동인구(15~64세) 대상 일자리 변화율을 기준으로 보면 2.0%→0.9%→0.2%로 더 빠르게 줄어들다가 지난해에는 –0.6%로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경제 체력의 지속적 약화는 모두가 아는 얘기이다. 그에 따라 원달러 환율 역시 외환위기 이전 평균 819원에서 외환위기 충격이 완화된 2000년 이후부터 닷컴버블 붕괴나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때를 제외하면 러·우전쟁 발발(2022년 2월 24일) 이전까진 평균 1130원, 러·우전쟁 이후부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2025년 6월까지 평균 1352원, 그리고 지난해 7월 이후 최근까지 1422원으로 구조적 상승이 진행되었다. 펀더멘털이 취약해지며 환율도 계속 상승해 왔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원화 가치의 하락이 과거와 달리 지난해 2분기부터 진행된 자본시장 붐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환율은 2024년 12월 3일 계엄 전후로 1400원을 돌파하였고, 그 이후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며 지난해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때까지 1450원 안팎에서 움직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 등으로 환율은 안정세로 돌아서 지난해 상반기 마지막 날인 6월 30일에는 1350원대 초까지 약 100원 가량 하락했다. 그런데 하반기부터 다시 상승세로 전환하더니 9월 26일부터 1400원을 다시 돌파한 이래 최근까지 4개월 동안 평균 1450원대로 뛰어올랐다. 일반 국민은 내란 상황 때로 환율 변동성이 커진 것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이 '3차 외환위기 조짐'을 거론하고, 한국은행이 전문가 대상으로 조사한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에서는 주요 리스크 중 환율이 가계부채를 제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민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사실상 동원할 수 있는 대부분 조치가 쏟아져 나왔고, 그 결과 한두 달 내에 1400원 전후로 환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전망이 실현된다 해도, 현재의 환율 수준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이전 20년 이상 지속됐던 평균 1100원대와 비교하면 매우 낯설고 불편한 수치이다. 통화의 대외적 가치를 나타내는 환율은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 경제의 신뢰를 반영한다. 그런데 원화가 주요국 통화 중에서 가장 많이 하락한 통화 중 하나라는 사실은 우리 경제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 현황이 표시되어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경제학에서 말하는 환율의 결정 요인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은 달러 대비 원화의 상대적 가치(가격)라는 점에서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높아질수록 원화 가치는 하락할 것이고, 한국 경제에 비해 미국 경제가 건강하고 높은 수익을 보장해 준다면 돈(달러)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출되고, 그 결과 환율은 상승할 것이다. 이러한 상식적 판단을 반영하여 경제학에서는 경제성장률이나 통화량 증가율이 환율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한다. 환율과 관련하여 거론하는 펀더멘털로 고용이나 생산, 물가 등을 말하는데, 고용이나 생산 등은 경제성장률의 구체적 산물이고, 통화량 증가율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금리 차이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일시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 2년간 미국과 일본 간 금리 격차가 축소됐음에도 엔저는 개선되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환율이 상승으로 전환한 지난해 7월에 비해 그 이후 한미 간 금리 차이가 축소되었음에도 원화 가치는 반대로 하락이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통화량 증가율이나 경제성장률을 중심으로 지난해 7월 이후의 환율 상승 배경을 살펴보자. 소비쿠폰 지급 등 정부의 돈 풀기가 환율을 올렸다는 야당의 주장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통화량 증가가 고환율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7~11월 사이 한국의 총통화량은 2.1%가 증가했고, 미국은 1.7%가 증가했다. 그런데 통화량 증가가 비례적으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기계적 사고다. 경제활동을 매개하는 돈의 규모는 통화량 자체뿐만 아니라 돈이 얼마나 빠르게 순환하는가를 나타내는, 이른바 화폐유통속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돈이 돌지 않는다는 말이 한국 경제의 특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듯이 한국의 화폐유통속도는 미국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화폐유통속도 하락만큼 통화량 증가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 시중에 공급된 돈 중 많은 돈이 실물경제로 가지 않고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며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인플레로 이어지는 배경이다. 환율에 대한 마지막 설명 요인은 경제성장률이다. 그런데 환율이 상승세로 전환한 지난해 3분기(7~9월)의 성장률 1.3%는 전분기 대비 성장률 기준으로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성장률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듯이 지난해 7월 이후 환율 움직임은 이전과 다른 패턴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위안화와 달러의 움직임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었다. 구체적으로 러·우전쟁 발발 이후부터 지난해 6월 30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4.6% 하락하였는데, 같은 기간 위안화는 달러 대비 13.4% 하락했고, 달러는 0.9% 상승했다. 달러와 위안화 가치의 변화가 원달러 환율 변화의 약 98%를 설명한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이후 최근(1월 20일)까지 원화 가치는 9.5% 하락했는데 달러와 위안화 가치의 변화는 19%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이 기간에 위안화 가치는 하락세를 멈추고 상승세로 전환하였다. 오히려 이전 기간에 사실상 통화정책의 자율성이 약화한 엔화 가치 하락률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부터는 원달러와 엔달러가 동조화되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성장 방식에 변화가 있음을 말한다. 실제로 수출과 무역수지, 경제성장 등에서 반도체에 과도한 의존을 해왔다. 수출에서 반도체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2018~2024년간 최대 20% 안팎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지난해엔 24%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를 분기별로 보면 1분기까지는 종래 흐름의 연장선인 20.6%에 불과했으나 코스피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한 2분기에 23.1%, 3분기에 25.1%, 4분기에 28.3%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5년 이전 가장 규모가 컸던 2022년과 2024년의 7%대에서 지난해에는 9%대로 증가하였다. 지난해 분기별로 보면 1분기에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인 7.7%였으나 2분기 8.3%, 3분기 9.7%, 4분기 11.3%로 급증하였다. 지난해 GDP(1조 8662억 달러)는 2024년 GDP(1조 8746억 달러)보다 0.4% 줄어들었는데 반도체 수출액은 22% 이상 증가하였다. 경제 규모가 줄어드는 가운데 반도체 수출의 급증으로 반도체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반도체는 중요한 산업임에도 반도체를 제외한 지난해 수출액이 2022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듯이, 반도체에 대한 극단적 의존은 반도체가 불황으로 바뀔 시 파국을 피할 수 없다. 반도체가 주도하는 자본시장의 붐 속에 실물경제 침체가 공존하는 배경이다. 1%에 턱걸이할 정도로 경제성장률이 추락한 가운데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가 바로 고환율이 지속되는, 한국 경제의 '실제' 펀더멘털(속살)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과거 한때 휴대폰 시장의 약 절반까지 차지하였던 노키아에 높은 의존도를 보였던 핀란드 경제가 노키아 몰락 이후 이른바 '노키아 리스크'를 겪은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 25년간 실패한 산업생태계의 진화가 시급한 이유이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제는 성장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 시점이라 한 배경이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
2026.01.29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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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의 미래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이 뭔가요?
'독파모'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AI) 생태계를 갖기 위한 시도다…'독파모' 프로젝트가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전 세계 Top 20에 한국 모델이 몇이나 들어갔다. '주목할 만한 모델'에는 5개 모델이 발표와 동시에 모두 포함됐다. 올해 말에 어떤 모델이 나올지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파운데이션(Foundation) 모델'부터 시작해 보자. '파운데이션'은 '기반'을 뜻한다. 모델은 뭘까? '모델하우스'란 말을 떠올리면 쉽다. 현실 세계의 복잡한 현상을, 수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추상화해서 구현했다는 뜻이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세상의 패턴을 학습한 다음, 그것에 관해 질문하면 지능적인 답을 내놓는' 거대 AI 모델을 말한다. 그 분야에 관해 두루 잘 기능한대서 기반 모델이다. '독자'는 우리가 스스로 이걸 만든다는 뜻이다. 이 셋을 합하면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은 우리가 우리 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거대 AI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독파모(독자 파운데이션 모델)'는 오는 2027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거대언어모델(LLM)과 멀티모달(여러 개의 모드를 가진 것, 언어뿐 아니라 그림, 동영상 등을 처리할 수 있는 모델을 말한다) 모델을 확보하자는 국가 프로젝트다. 5개 정예 팀을 선발해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비롯해 연구개발을 지원해 준다. 단계마다 한 팀씩을 떨어트리고 마지막 남은 2팀에는 수천 장의 최신 GPU를 몰아준다. 결과물은 '오픈 웨이트(가중치 공개)'로 공개해 누구나 쓸 수 있게 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에서 참석자들이 SK텔레콤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25.12.30.(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독파모를 개발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그는 AI를 '5단 레이어 케이크'에 비유했다. 에너지, 칩과 컴퓨팅 인프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AI 모델, 그리고 궁극적으로 애플리케이션 레이어로 구성된 구조라는 것이다. 독파모는 이중 에너지를 제외한 넷을 목표로 한다. 단순히 모델만 만들자는 게 아니다. 젠슨 황의 말처럼 AI는 원래 이렇게 다섯 계층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다. AI 풀스택 생태계 • 인프라 및 하드웨어층: AI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초고속네트워크분산컴퓨팅 최적화/저전력 고효율 설계/국산 칩 생태계 • 데이터 파운데이션층: 데이터 수집, 정제 및 레이블링, 합성데이터 생성데이터 큐레이션/저작권 및 윤리 가이드라인/멀티모달 정렬 • 모델 훈련 및 최적화층: 모델 아키텍트 설계, 사전학습, 미세조정모델 아키텍터 원천기술/학습효율화/각 억제• 추론 및 서비스층: MLOps(AI 운영 자동화)/경량화/API 서비스실제 AX 경험(가전, 조선, 물류…)/실시간 서비스 최적화 독파모가 'from scratch(바닥부터 제대로)'를 원칙으로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야 인프라부터 서비스 단계까지 풀스택 생태계를 아우를 수 있다. 인프라를 예로 들어보자. GPU를 이 팀에 4개, 저 팀에 4개를 할당했다고 하자. 그러면 분명히 어떤 때는 이 팀 GPU는 노는데, 저 팀 GPU가 모자라고, 어떤 땐 다 모자라는 일이 생길 것이다. 만약 실시간으로 GPU 자원을 재할당해 줄 수 있다면, 즉 고성능 GPU 하나를 다수의 사용자가 나눠 쓰거나, 반대로 다수의 GPU를 하나로 묶어 쓰는 일을 실시간으로 해줄 수 있으면 효율이 엄청나게 올라갈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GPU 분할 및 동적 할당'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AI 개발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같은 일을 절반의 전기만 쓰고도 해줄 수 있는 AI 칩을 만들 수 있다면 역시 효율이 크게 올라갈 것이다. 같은 전기료로 2배의 칩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AI개발 시간의 80%는 데이터 정제에 들어간다고 한다. 데이터 처리 기술이 크게 올라간다면 역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만든 다음에 즉시 서비스에 투입해 검증해 볼 수 있으면 역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독파모가 LG, 업스테이지, SKT, 네이버, 엔씨와 같은 모델개발회사만 뽑지 않은 게 그 때문이다. 인프라와 하드웨어의 퓨리오사, 리벨리온, 래블업, 데이터의 플리토, 셀렉트스타, 에이아이웍스, 라이너, 네이버, 서비스와 산업 확산의 한글과컴퓨터, 올거나이저, 포스코, 롯데, 크래프톤, 포티투닷이 모두 '독파모'다. 여기에 대학교를 모든 팀에 필수로 포함시켰다. 대규모 GPU 클러스터를 활용해 1000억 개 이상의 매개변수를 가진 모델을 직접 학습시켜 본 경험은 도저히 책으로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K-AI)'이 AAII(Artific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의 세계 최상위 프런티어 언어모델 경쟁에서 3위를 달성했다. AAII는 AI 평가 전문 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가 운영하는 글로벌 AI 성능 평가 플랫폼이다.(그래프=Artificial Analysis 제공) 한국 '독파모' 모델 5개가 전 세계 '주목할 만한 모델' Top 20에 모두 포함됐다.(그래프=Artificial Analysis 제공) '독파모'는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AI 생태계를 갖기 위한 시도다. 이런 풀스택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이 안 된다. 한국은 그 자격을 갖춘 드문 곳중 하나다. '독파모' 프로젝트가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전 세계 Top 20에 한국 모델이 몇이나 들어갔다. '주목할 만한 모델'에는 5개 모델이 발표와 동시에 모두 포함됐다. 올해 말에 어떤 모델이 나올지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2026.01.26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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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
한류의 미래를 위한 재원, 한류펀드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류'라는 과실이 다시 씨앗이 되도록 만드는 제도적 상상력이다. 이에 한류창의산업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얻은 수혜를 환류하는 제도를 마련해서 '한류펀드'를 형성하고, 이것을 한류창의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데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지난 칼럼에서 한류창의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구조적인 위기에 대해 분석하며, 이제는 정부지원과 같은 외적 수혈이 아니라 시스템 내에서 선순환이 가능한 한류의 장기적 비즈니스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한류의 성공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장기적 정책이 필요한 바,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미 모든 산업영역과 문화영역에서 적용되고있는 원칙인 '수혜의 환류' 정책이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25 마이케이 페스타'에서 외국인 관광객 등이 한류 팬 사인회를 기다리고 있다. 2025.6.19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류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의 성과가 아니다. 드라마와 음악을 중심으로 시작된 한국 콘텐츠는 관광, 항공, 플랫폼, 뷰티, 식품 등 광범위한 산업에 파급효과를 만들어 왔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상당수가 K-콘텐츠를 계기로 여행을 결정하고, K-드라마와 K-pop은 한국 화장품과 식품의 글로벌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한류는 이제 국가 브랜드이자 다산업 연쇄 가치사슬의 핵심 자산이다. 다시 말해서 이 유관산업들은 K-드라마와 K-pop의 오늘을 가능케 한 한류창의산업과 이해를 같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공이 과연 지속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전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한류의 중심인 콘텐츠 산업은 여전히 제작 편수 감소, 인력 소진, 중소 제작사 붕괴 등 구조적 위기에 놓여 있다. 한류로 이익을 얻는 산업은 늘어났지만, 그 이익이 다시 콘텐츠 생산 조건으로 돌아오는 경로는 거의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수혜는 확산되었으나, 재투자는 자발성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환류'라는 정책 개념이 중요해진다. 환류란 성공한 산업의 이익 일부를 다시 그 성공의 원천이 된 영역으로 되돌리는 장치다. 환경 분야의 탄소 비용 내부화나 금융 규제에서 익숙한 개념이지만, 문화산업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고,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적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타격을 입은 영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텔레비전이 자국영화의 방송편성과 프로모션, 제작투자를 하도록 의무화했고, 캐나다와 유럽국가들은 플랫폼의 국내수익 중 일부를 국재에 재투자하도록 의무화했다. 문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인력, 시간, 창작 환경이라는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공공적 자산이며, 한류의 경우 명백히 한류창의산업의 성공으로부터 수혜를 입은 연관 기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넷플릭스 사례는 이 논의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고, 그 결과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위상도 높아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넷플릭스는 이미 한류 드라마로서 명성을 얻고 있던 K 드라마의 명성과 제작 노하우의 덕을 보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기존 한국드라마의 아시아 시장에서의 성과와 스트리밍 영향력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런 투자를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넷플릭스 시스템 속에서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청자에 도달하는 동시에 제작비 급등, 방송 편성 축소, 즉 드라마 제작의 급격한 감소, IP의 플랫폼 집중이라는 구조 변화가 가속되었다. 문제는 넷플릭스가 한국내 제작에 투자를 했느냐가 아니라, 그 투자 방식이 산업 전체의 재생산 구조를 강화했느냐는 점이다. 개별 프로젝트에는 자본이 투입되어 해마다 넷플릭스 한국투자액이 트로피처럼 전시되지만, 인력 양성, 중소 제작사 존속, 장기 IP 축적과 같은 기반 영역에는 충분한 자원이 돌아가지 않았다. 제작비 상승과 제작편수의 감소는 한류창의산업 내 노동자들에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았고, 많은 청년들이 산업에서 떠나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다. 청년들이 유입되어 분투할 수 없는 산업의 미래는 없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는 이미 투자했으니 더 요구할 수 없다"는 주장은 논점을 비켜간다. 정책이 다루어야 할 대상은 기업의 의도가 아니라 그 결과다. 환경 규제가 오염 의도를 묻지 않듯, 문화정책 역시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만들어낸 구조적 효과를 교정할 책임을 논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환류 정책은 투자를 처벌하는 장치가 아니라, 투자의 효과를 산업 전체로 확장하기 위한 균형 장치다. 이 원리는 넷플릭스뿐 아니라 한류 수혜 기업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한류 콘텐츠를 활용해 매출을 창출하는 관광 상품, 항공·숙박 패키지, K-뷰티·K-푸드 마케팅, 플랫폼 광고 수익 등은 모두 콘텐츠라는 공통의 원천에 기대고 있다. 이들 기업이 일정 부분을 콘텐츠 인력, IP 개발, 중소 제작 금융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하거나 선택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재균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한류 콘텐츠 산업의 발전과 밀접하게 이해를 공유하는 운명공동체임을 이해시켜야한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모든 기업에 일률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투자와 기금 출연 중 선택권을 주고, IP 국내 잔존이나 인력 보호에 기여할수록 세금부담을 줄여주는 구조 등 서로 수용가능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산업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현실적인 해법을 고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류는 우연한 성공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인력과 창작의 축적 위에 형성된 결과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공의 과실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그 과실이 다시 씨앗이 되도록 만드는 제도적 상상력이다. 한류 수혜의 환류를 제도화하는 일은 문화산업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축적한 문화 자산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선택이다. 한류창의산업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얻은 수혜를 환류하는 제도를 마련해서 '(가칭) 한류펀드'를 형성하고, 이것을 한류창의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생태계를 만드는데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한류 연구자로 정진하면서 팬덤 온라인 참여관찰로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방법을 거쳤으나 스스로는 여전히 세상 속 의미의 생산을 묻는 기호학자라고 이해한다.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한류>, <드라마의 모든 것>, 를 출판했고 넷플릭스의 영향, 한국문화산업, 한류현상의 이론화를 위해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다년간 연구 중이다. 2026.01.22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
한반도 평화
2026년 한반도 정세의 변수와 과제
외교는 움직여야 역할이 생긴다. 남은 것은 남북 관계다. 세계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 필요하다…악화의 시간이 길수록 불신이 높을수록 관계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서두르지 말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충분히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새해 들어 이재명 정부는 외교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한중과 한일 정상회담을 연달아 열어,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였다.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구조적 갈등과 동북아시아 지역 차원의 중일 갈등 사이에서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냈다. 외교는 움직여야 역할이 생긴다. 남은 것은 남북 관계다. 세계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 필요하다. 한반도 정세의 세 가지 변수 한반도 정세는 국제 질서의 영향을 받는다. 남북 양자관계가 상호 인식과 정책에 따라 대립과 협력 사이에서 변할 수 있지만, 변화의 방향과 속도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 따라 달라진다.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정세의 주요 변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러·우 전쟁의 종전이다. 전쟁이 끝나야 북러 관계도 달라지고, 북한의 외교적 전략의 우선순위가 변한다. 북한은 러·우 전쟁에 참전하면서 러시아로부터 외교·경제·군사 분야에서 지원받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효과가 줄었고, 러시아에서 얻은 외화의 증가로 북·중 접경무역이 활성화됐다.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심축으로 외교 전략을 펼치면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 끝나야 미·러 관계도 달라지고 한러 관계도 재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종전 협상의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면 당분간 러·우 전쟁의 조기 종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린란드 문제를 포함해 미국과 유럽의 외교관계가 악화하면서 동맹국 내부의 단일 협상안을 마련할 수 없고, 미국의 중재도 한계를 보인다. 언제나 전쟁은 마음먹은 대로 시작해도, 끝내고 싶을 때 끝낼 수 없다. 전쟁의 결과인 상처를 치유하고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걸린다. 특히 영토의 조정 문제는 단순히 전력의 물리적 우위를 넘어선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방문객들이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를 망원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2025.6.19.(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둘째는 북미 관계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두 번 중국을 방문한다. 4월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고, 11월에 선전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는 시점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외교적 성과를 만들려면 4월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4월 베이징 방문 계기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북미 관계가 풀려야 남북 관계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변수가 많다. 만남이 이뤄져도 만남과 협상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한다. 북한의 태도도 중요하다. 북한은 대미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미국을 불신하고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으로 북한의 불신은 더 커졌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국제규범이 무너지고 군사적 개입이 늘어날수록 북한은 핵 보유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적대성'이 줄어 들었지만, 여전히 북한은 두 국가론을 유지하고 국경화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9차 당대회의 개최 시점과 당규약에 '두 국가론'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반영할지도 지켜봐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관계 회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한반도 평화공존' 위한 세 가지 과제 첫째는 외교를 통한 환경 조성이다. 한미 관계를 통해 북미 관계 재개의 환경을 만들고, 한중 관계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러·우 전쟁이 끝나는 대로 한러 관계를 회복해서 남북러 삼각 협력 사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한일 관계에서 대북 정책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전략적 소통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남북 양자관계에서 불신을 신뢰로 전환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서 국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돌아갈 때다. 둘째, 선제적 조치의 필요성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서 핵심은 적대성이다. 적대관계가 두 국가론의 원인이기 때문에 어떻게 적대성을 완화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대북 방송과 대북 전단 문제에서 선제 조치를 통해 북한의 호응을 유도한 바 있다. 접경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가능한 수준에서 선제 조치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호응 여부에 따라 9·19 군사합의의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민 합의의 중요성이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정체성 정치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북 정책은 국내적으로 정체성 정치의 주요 구성요소다. 심화되는 정치적 양극화의 현실에서 대북 정책의 초당적 협력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북 정책에서 다수의 합의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국민적 의견 수렴의 문을 열고, 사회적 대화를 확대하고, 널리 지혜를 구해야 한다. '일관성'과 '인내심' 필요 세계질서는 급변이나 격변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하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국면이다. 동북아시아 지역이나 남북 관계는 다른 지역의 정세와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과거와 달리 세계는 연결돼 있고, 다른 지역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남북 관계를 예측할 수 있어야 변화에 대응능력이 생긴다. 악화의 시간이 길수록 불신이 높을수록 관계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서두르지 말고,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충분히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메시지에서 핵심은 방향이다. 평화와 공동 번영의 의지를 일관성 있게 발신해야 한다. 현안에 대해 정부가 한목소리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노력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 / 전 통일부 장관 성균관대에서 북한의 정치경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정부때 통일연구원 원장,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전략>(2016),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등이 있다.
2026.01.19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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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산업의 미래
피지컬 AI 세계 1위를 위한 기반을 만들자
우리가 피지컬 AI 분야 세계 1위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반과 운용 환경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적 의지는 강하다. 그러나 이제 좀 더 기민하고 구체적인 실천 전략 수립이 필요할 때이며, 현장과 대화, 현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빠르게 세워 나가야 할 시점이다.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행동 계획안을 통해 2030년 피지컬 AI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6을 다녀온 후 밝힌 소감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현장과 산업 데이터, 반도체 배터리, 모빌리티 로봇 등 피지컬 AI에 최적화된 산업 구조, 빠른 융합과 고도화가 가능한 연구·인재 역량을 갖추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고성능 휴머노이드나 자율주행차 개발과 이를 위한 AI 플랫폼 기반 연구에 집중하고 있고, 중국은 대규모 실증, 빠른 반복, 즉각적인 산업 적용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첨단 제조 환경과 경험, 국가 정책적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피지컬 AI 분야 세계 1위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반과 운용 환경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피지컬 AI를 위한 AI 기반 기술의 현재를 파악해 보면 몇 가지 접근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CES에서 선보인 엔비디아의 전략을 살펴보면 단순히 실세계에 대한 디지털 버전을 넘어서 물리적으로 정확한 디지털 세계를 표현하는 옴니버스, 물리 세계에서는 시간적 전개 예측, 물리적 인과 관계를 추론해 다양한 세계에 대한 확률적 분포를 전개하는 코스모스, 그 위에서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알파마요(자율주행), 그루트(휴머노이드) 같은 VLA(비전-언어-행동) 모델을 추가하고 이 세 가지 계층 간의 데이터를 피드백 루프로 연결한다. 알파마요의 결정을 시뮬레이션 하는 알파심이라는 모듈 또한 내부에서 활용한다. 엔비디아의 기본 철학은 물리적 현실을 정확히 디지털 세계에 표현하는 것과 선택, 전략, 정책을 분리해서 책임과 설명이 좀 더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며, 실세계 적용을 위해서는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로봇이나 자율주행차가 먼저 학습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국방, 기업, 산업에 따른 다양한 세상을 위한 확장 가능성을 얻고자 한다. 세계 최대 IT(정보기술)·가전 전시회 'CES 2026' 개막 이틀차인 7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 마련된 엔비디아 전시장 '피지컬AI관'에서 관람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6.1.8.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테슬라는 세상에 대한 이해나 모델은 암묵적으로 거대 신경망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고, 실제 도로 운행을 통해 학습을 하고 검증은 실제 도로에서의 통계적 성능에 의존한다. 물론 테슬라도 월드 시뮬레이터를 갖고 운행 데이터에서 얻어진 엣지 케이스(자주 일어나지 않는 특수한 상황)를 좀 더 다양하게 합성 데이터로 추가해 학습하게 한다. 종단간(엔드-투-엔드) 방식이라는 테슬라의 방식은 물리 세계에 대한 접근은 실제 세계를 경험하는 인공 신경망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것이고 실세계 자체를 실험실로 쓴다는 방안이다. 중국도 휴머노이드나 자율주행에서 이런 혼돈 속의 세계에서 피지컬 AI가 실제로 경험을 통해 발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번에 큰 관심을 받은 현대차의 아틀라스 휴머노이드는 구글의 제미나이 로보틱스라는 VLA 모델을 활용했다. 구글의 접근은 모델 중심의 통합형 구조라는 점에서는 테슬라와 유사하지만, 언어, 추론, 계획의 범용성을 더 추구한다. 테슬라가 행동 중심이라면 구글은 인지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팔란티어는 파운드리 온톨로지를 통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의사결정과 데이터 흐름을 반영하는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는 객체, 사건, 관계 중심으로 세계를 구조화된 기록으로 표현한다. 팔란티어에서 AI는 의사 결정의 보조자이며 누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가를 추적할 수 있는 AI 운영 체제에 가깝다. 이와 같이 주요 기업이 피지컬 AI에 접근하는 방식은 철학이 다르고 기본 플랫폼이 다르다. 우리의 피지컬 AI 전략이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이들과 경쟁 수준의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이나 월드 모델, 독자적 VLA 모델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코스모스라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2025년 1월 CES에서 발표하면서 여기에 투입한 자원을 소개했는데, 2천만 시간의 영상 데이터, 9천조 개의 토큰, 1만 장 규모의 H100 GPU를 사용해 학습했다고 한다. 엄청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지컬 AI가 성공하려면 현장 데이터를 통한 고품질 학습, 현장에 있는 많은 시스템과의 통합 운영, 신뢰성 강화, 실시간 제어를 통한 지연 시간 문제 해결, 실패를 관리할 수 있는 현장 관리 방안, 효율적인 엣지 모델의 개발 등 앞으로 해결한 문제가 매우 많다. 그러나 이런 추가적인 연구 개발이 우리에게는 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첨단 제조 환경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제조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고품질 데이터의 확보, 현장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센서와 부품의 다양성과 이에 대한 운영 경험, 공장과 시설 운영에서 얻은 시행착오와 관리 비결, 그리고 통신과 반도체 기술 기반을 모두 갖춘 나라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뛰어난 잠재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실제 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피지컬AI 레퍼런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범 사례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이는 국내 기술과 외국 기반 기술의 협력을 통할 수도 있으나, 현재 추진하는 국가 대표 파운데이션 모델과 같이 자체적인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의 구현도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혼란한 세상에서 AI가 계속 진화하는 방식을 취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안전하고 체계적인 접근 그리고 다양한 환경으로의 확장을 위한 탄탄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 결정이 필요하다. 물론 산업 분야별로 독자적인 특화 모델을 만들어 접근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조 현장만 해도 너무나 다른 환경과 시스템이 있고, 현장의 문제를 하나하나의 독립적인 모델로 해결하는 것은 모델의 파편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과거 AI가 문제 별로 독립적인 모델이 발전하다가 거대언어모델(LLM)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로 통합하게 되는 혁신에 뒤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체적인 월드 모델 또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력 있는 VLA 모델 구축이 늦어진다면, 우리는 LLM이 발전하고 3년 뒤에 본격적인 국가 전략을 논의한 것처럼 다시 피지컬 AI를 위한 외국 기술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 난 다음에 새롭게 도전하자는 이야기를 반복할 수 있다. 정책적 의지는 강하다. 그러나 이제 좀 더 기민하고 구체적인 실천 전략 수립이 필요할 때이며, 현장과 대화, 현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안을 빠르게 세워 나가야 할 시점이다. ◆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 2026.01.15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등이 있다. -
민생경제
이재명 경제의 성장전략과 혁신의 토대
결국 2026년 경제성장전략의 성패는 '자금 동원' 자체가 아니라, 그 자금이 혁신의 연쇄반응을 만들도록 자본·노동·생산성의 세 축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리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펀드가 마중물이 되고, 인재가 공급되고, 경쟁과 이동성이 혁신을 확산시키며, 지식 생태계가 꾸준히 새로움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일시 반등을 넘어 추세 자체가 바뀔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202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결국 '지식이 퍼지는 방식'의 문제다. 실험과 토론이 존중되고, 현장 기술과 과학 지식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실패가 다음 시도로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생산성이 구조적으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같은 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기옹과 하윗은 이러한 성장 생태계가 작동하는 경제적 메커니즘을 '혁신과 경쟁'으로 풀어냈다.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등장하면 낡은 방식은 밀려나고, 이 창조적 파괴가 반복될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다만 혁신은 저절로 퍼지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고, 진입과 퇴출이 원활하며, 전환 비용을 흡수하는 안전망이 갖춰질 때 비로소 혁신은 연쇄반응으로 이어진다. 한 나라의 산출은 자본(설비·인프라·R&D), 노동(인구·참여·숙련), 그리고 생산성(기술·조직·제도·경쟁이 만드는 효율)으로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저출생으로 생산인구가 줄고 투자도 둔화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획기적인 투자 확대와 생산성을 높이는 개혁 없이는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 최근 발표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생산함수의 언어로 읽으면, 자본·노동·생산성이라는 세 축을 혁신을 통해 성장경로를 재설계하려는 청사진으로 볼 수 있다. 9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한 상인이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를 시청하고 있다. 2026.1.9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먼저 자본 측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투자의 '양'보다 '방향'을 바꾸겠다는 의지다.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AI·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고, 국민참여형 펀드와 세제 혜택을 결합해 장기자금을 모험자본으로 전환하려는 구상도 담겼다. 자본을 혁신 부문으로 재배치하려는 장치인 셈이다. 장기 주식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생산적 금융 ISA도 신설한다. 국내 주식·펀드, 국민성장펀드, BDC(성장단계기업)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청년형·국민성장 ISA를 통해 참여층을 넓히겠다는 방향도 함께 제시됐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가이드라인과 자사주 과세체계 정비를 함께 묶은 점도 의미가 있다.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여 장기투자 기반을 다지려는 접근이다. 여기에 CVC(기업형 벤처캐피털)의 외부자금 모집 및 해외투자 규제 완화, 금융회사의 생산적 대출에 대한 충당금 손금인정 확대 조치도 포함됐다. 이런 조치들은 혁신 투자로 가는 금융의 관로를 넓히는 미세조정으로 볼 수 있다. 둘째, 노동 측면에서는 인구 감소로 노동 투입이 줄어드는 문제를 인적자본의 질로 상쇄하려는 설계가 담겼다. 이공계 장학금과 연구생활장려금을 확대하고, 학·석·박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며, AI 단과대학을 신설해 권역별로 확산한다. 해외 우수인재 유치와 비자 트랙 정비도 포함됐다. 인재 파이프라인을 길게 깔아 숙련 인력 공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주도성장 정책도 같은 흐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과 기업이 수도권에만 쏠리지 않도록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규제·정주·재정·세제를 패키지로 지원한다. 권역별 혁신벨트를 구축하고 광역 교통·물류망도 확충해 지역의 실물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이다. 셋째, 생산성 측면에서는 기술 축을 AX와 피지컬 AI까지 넓혀 일하는 방식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독자 AI모델을 공개하고 정부 AX 사업에는 첨단 GPU·모델 등 공통자원 지원체계도 마련한다.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끌어올려 같은 투입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하다. AI의 적용 범위도 넓히려 한다. 휴머노이드 프로젝트와 월드모델 기반 학습을 추진해 제조·물류·재난·농업 같은 실물 영역으로 AI를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생산성 향상이 일부 선도 산업에만 머물지 않도록 '확산 범위'를 키우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공정성장 과제를 생산성의 제도 축으로 함께 묶은 점도 중요하다. 상생결제 등 대금지급 시스템의 의무화를 확대하고, 하도급 과징금 상향과 기술탈취 제재 강화, 증거개시 도입 검토도 추진한다. 거래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이고 혁신의 성과가 정당하게 보상받는 환경을 만들어, 기술 혁신이 중소기업·서비스업까지 확산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마지막으로, 거시 안정과 구조혁신을 한 묶음으로 제시한 점은 전략의 지속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경기·물가·금융이 흔들리지 않도록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입 기반을 다지고 비과세·감면도 점검한다. 조달과 공공기관 혁신을 통해 재정 효율을 높이겠다는 방향도 담겼다. 성장정책이 단기 재정지출 경쟁으로 소진되는 것을 막는 안전판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펀드와 세제가 정책의 전면에 놓이면서 '돈을 모으는 장치'가 '돈을 잘 쓰게 만드는 규칙'보다 더 커 보인다. 한국 경제의 문제는 돈이 부족한 데 있지 않다. 시중 유동성은 오히려 풍부하다. 문제는 돈이 혁신으로 흘러가지 않는 데 있다. 혁신에 도전하는 기업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고, 반대로 상속을 통한 자산 이전에 관심이 쏠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경제의 역동성은 예전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전략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고민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둘째, 생산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축인 사회개혁 로드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정년연장 논의, 직무·성과 중심 보상체계 확산, 전직·재교육을 통한 이동성 제고, 자영업 구조와 산업 구조조정 등이 모두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제도 개혁은 기술 투자 못지않게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결국 2026년 경제성장전략의 성패는 '자금 동원' 자체가 아니라, 그 자금이 혁신의 연쇄반응을 만들도록 자본·노동·생산성의 세 축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리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펀드가 마중물이 되고, 인재가 공급되고, 경쟁과 이동성이 혁신을 확산시키며, 지식 생태계가 꾸준히 새로움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일시 반등을 넘어 추세 자체가 바뀔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2026.01.12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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