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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균형
국지적으로 다가오는 재난에 지역이 맞서기
기후변화로 재난이 국지화·다양화하는 만큼 중앙정부 중심 대응을 넘어 권역별 방재체계를 구축하고, 시군구·읍면동의 현장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지역 간 방재 격차를 줄이는 투자는 안전한 정주 여건을 만드는 지역균형발전 정책이기도 하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7월 28일 일본 구마모토에서 규모 6.8(일본 기상청 기준 7.1)의 강진이 일어났다. 최대 진도 7의 흔들림에 쇼핑몰 천장이 내려앉고 8만 가구가 단수됐지만, 사망자는 38명에서 멈췄다. 13일 뒤인 8월 10일에는 콜롬비아 서부 커피 산지를 규모 7.4의 지진이 덮쳐 240명 넘게 숨지고 1600여 동의 건물이 부서졌다. 실종자가 수천 명이라고 한다. 일본과 콜롬비아의 사례는 진원 깊이가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같은 커피 벨트의 도시 아르메니아를 덮친 1999년 지진(규모 6.2)에서 1900여 명이 희생됐던 사례를 살피면 참조할 내용이 드러난다. 당시 아르메니아에서 무너진 건물 대부분은 내진 기준 도입 이전의 노후 건축물이었고, 1984년 내진 설계 도입 이후 지어진 건물은 대체로 버텼다. 재난의 피해 수준은 누적된 준비 수준을 따랐다. 일본인의 침착한 대응을 국민성으로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구마모토 지진 당일 나는 후쿠오카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지진 1분 전 굉음의 재난 경고 문자가 오자 사람들은 앱을 켜서 진앙과 진도를 확인한 뒤 해야 할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진도는 3이었고, 사람들은 잠시 기다렸다가 강의를 속개하자고 했다. 만약 진앙이 가깝고 진도가 5가 넘으면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만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국민성 이야기는 절반만 맞다. 일본은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을 겪고 1981년 내진 설계 기준을 대폭 상향했고,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기존 건축물의 내진 보강을 촉진하는 법을 만들고 2000년에 기준을 다시 손봤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의 복구 과정에서는 현과 시정촌 단위의 피난소 운영과 훈련 체계를 재정비했다. 이번 지진에서 주민들이 침착했던 것은 기질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의 산물이고, 건물이 버틴 것은 재난이 올 때마다 기준을 올리며 축적해 온 제도의 성과다. 그리고 그 훈련과 대응의 실핏줄은 언제나 기초자치단체였다. 한국은 2003년 태풍 매미 이후 초대형 태풍이 상륙한 경험이 없고,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 이후 이렇다 할 지진도 겪지 않았다. 공공시설물 내진 보강은 진척됐지만 민간 건축물의 내진율은 여전히 20%에 못 미치고, 내진 설계의 지역별 격차가 크다. 경주와 포항 지진을 겪은 경북의 내진율이 오히려 전국 최하위권이다. 얼마 전 만난 한 기후과학자는 이제 장마를 한국에서 찾기 힘들 거라고 전했다. 앞으로 여름비는 국지성 폭우로 쏟아지며, 태풍은 늦여름까지 달궈진 바다 위에서 힘을 키워 9월에 몰려온다는 것이다. 특히 농촌 가구의 대응이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6~7월의 장마, 이어지는 폭염, 그 이후의 태풍을 전제했던 농촌의 기상 대응 방식도 불확실성과 높은 기후 변동성에 맞춰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경험이 없는 재난이, 경험이 없는 지역에, 예고 없이 도착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해운대구 재난 대응 안전한국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훈련은 지진으로 인한 극장화재 및 인파사고를 가정해 실시됐다. 2025.11.3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국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정점으로 한 중앙 중심의 방재 국가고, 이 체계는 대규모 재난에서 자원을 동원하는 데 강점을 보여왔다. 이번 콜롬비아도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대통령이 직접 통합지휘부를 꾸려 대응했지만, 도시마다 피해 수준을 가른 것은 그 지역의 건물과 병원, 그리고 현장의 대응 역량이었다. 컨트롤타워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재난이 전국에 균등하게 오지 않는다. 재난은 언제나 국지적으로 도착하고, 골든타임의 첫 대응은 시군구와 읍면동의 몫이다. 인구 감소가 빠른 지역일수록 방재 인력과 재정, 응급의료 자원이 부족하다. 재난 담당 공무원 한두 명이 풍수해와 지진, 산불과 폭염 대책을 도맡는 군 단위 지역이 적지 않고, 순환보직 탓에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설계된 매뉴얼이 모든 지역에서 같은 속도로 작동하리라 기대하기 어렵고, 중앙의 컨트롤타워가 이 역량 격차 전체를 메우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중앙은 재난이 전개된 뒤 자원을 집중해 보낼 수는 있어도, 재난 초기 대응을 각 지역 대신 해줄 수는 없다. 기후 재난의 얼굴은 권역마다 다르다. 남해안은 태풍과 해일, 동해안은 지진과 산불의 위협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재의 기획 단위도 5극 3특 기준의 권역별로 유연하게 편성되어야 한다. 초광역권 협력이 지역산업 정책과 교통망 조성에 머물 이유가 없다. 권역별로 위험 지도를 그리고 장비와 전문인력, 거점병원과 대피 체계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비축하는 것이다. 실제 훈련과 첫 대응은 일본의 시정촌이 그러하듯, 시군구와 읍면동이라는 더 작은 행정 단위가 몸에 익혀야 한다. 계획은 권역이 세우고, 힘줄과 핏줄은 동네 수준까지 이어서 엮어야 한다. 이것은 방재 정책이면서 동시에 지역균형발전 정책이다. 안전은 정주 여건의 출발점이고, 재난 대응 역량의 격차가 곧 지역 격차다. 재난에 취약한 지역에 사람과 기업이 머물기 어렵고, 사람이 떠난 지역은 다시 재난에 더 취약해진다. 방치되어 있는 빈집들이 만드는 다양한 위험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끊는 투자가 방재다. 격변하는 기후 앞에서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버텨낼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 것까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태풍 오기 전 지역의 준비가 수도권-비수도권 다양한 형태의 격차와 불평등을 줄이는 또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학, 문화인류학을 거쳐 공학 박사(과학기술정책 전공)를 받았다. 제조업, 엔지니어, 산업 생태계에 대해서 현장 연구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등이 있다.
2026.08.14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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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시대
샌프란시스코에서 확보한 두뇌와 기억, '몸'은 어떻게 만들까
샌프란시스코의 성과를 대한민국의 생산성과 산업 경쟁력으로 완성하는 길, 이제 그 마지막 퍼즐인 '몸'을 국가 AI 전략의 중심에 놓을 때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지난 7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대한민국 인공지능(AI) 전략의 미래를 보여주는 두 장면이 펼쳐졌다. 한쪽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하며 대한민국을 글로벌 AI 3대 강국으로 이끌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국내 기업과 엔비디아·브로드컴·오픈AI·앤트로픽 등 글로벌 AI 기업 간 대규모 반도체·AI 인프라 협력이 구체화되며, AI의 '두뇌'인 반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데이터센터라는 두 축에서 새로운 도약의 기반이 마련됐다. 한국 제조 역량과 AI 기술이 국제 협력의 축으로 자리 잡은 의미 있는 성과다. 다른 한쪽, 상하이에서 열린 '2026 세계인공지능대회(WAIC)'는 피지컬 AI 경쟁의 방향을 보여줬다. 300대가 넘는 체화지능(embodied AI) 로봇이 등장했고, 신에너지차 생산라인에서는 로봇이 부품을 집고 나사를 체결하며 검사까지 수행했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로봇들이 하나의 지능 모델을 공유해 실제 약국 업무를 협업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휴머노이드 경쟁의 중심이 단순한 운동 성능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일하며 실제 가치를 만드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더 미드웨이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샌프란 AI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두 장면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확장된 '두뇌'와 '기억'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이제 이를 움직이는 '몸(body)'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지컬 AI는 디지털 공간의 지능을 현실 세계의 생산성과 서비스로 바꾸는 실행체다. 로봇이 물류창고에서 물건을 나르고,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며, 언젠가 가정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모든 장면이 이 층에서 구현된다. 대한민국은 이 경쟁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반도체·조선·배터리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현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데이터센터'와 '언어 데이터'가 핵심 자산이었다면, 피지컬 AI 경쟁에서는 로봇이 현장에서 보고, 움직이고, 실패하며 축적하는 '행동 데이터'가 핵심 자산이다. 한국의 제조현장은 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지난 6월 1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피지컬 AI 얼라이언스 2기 출범식' 행사장에 전시된 로봇이 상자를 열어 마우스를 집어넣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정부도 올해부터 5년간 총 5040억 원 규모의 국가 피지컬 AI 사업을 추진하며 한국형 AI 로봇 플랫폼 확보에 나섰다. 이제 이 기반을 샌프란시스코에서 확대된 글로벌 협력과 연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확대되는 첨단 반도체와 연산 인프라를 피지컬 AI 학습과 대규모 시뮬레이션에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로봇의 지능은 방대한 연산과 현장의 행동 데이터가 결합될 때 성장하며 가상환경에서 학습한 행동을 실제 로봇으로 이전하는 시뮬레이션 역량 또한 국가 경쟁력이다. 또한 국제 협력의 범위를 로봇으로 넓혀야 한다. 반도체·데이터센터에 집중된 협력을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과 행동 데이터로 확장해, 부품 공급국을 넘어 차세대 AI 시스템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올라서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강점을 축으로 국제 규칙 형성에 참여해야 한다. 제조현장의 행동 데이터 품질 기준,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의 안전·성능 인증 체계는 우리가 강점을 발휘할 분야다. 모든 표준을 주도하기보다 잘하는 영역에 집중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다. 이 대통령은 AI를 '인류가 발견한 새로운 불'에 비유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그 불을 지피는 기반이라면, 피지컬 AI는 그 불이 공장과 물류현장, 병원과 가정에서 실제로 일하게 만드는 '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성과를 대한민국의 생산성과 산업 경쟁력으로 완성하는 길, 이제 그 마지막 퍼즐인 '몸'을 국가 AI 전략의 중심에 놓을 때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KIST AI·로봇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인공지능·로봇 분야 연구를 수행하며 국가 과학기술 전략 수립과 대형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다. 인공지능 기반 영상인식, 선별 및 전역 관제 등 다양한 AI 분야에서 다수의 원천기술을 개발해 산업 및 공공 영역에 확산시켰다.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했고, 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과 KIST 미래재단 석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6.08.12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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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국가재정전략회의로 본 '대한민국 미래 투자'
미래투자는 산업 기반을 갖추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인재를 키우고, 그 성과를 국민의 일자리와 기회로 연결해야 한다.…이제 성과는 지출 규모가 아니라 변화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투자가 산업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국가재정전략회의는 톱다운 예산제도의 핵심 절차다. 톱다운 방식은 정부가 총지출 규모와 분야별 지출한도를 먼저 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각 부처는 정해진 한도 안에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꼭 필요한 사업을 고르는 동시에 효과가 낮은 사업은 줄이거나 뒤로 미뤄야 한다. 정부가 역대 최대 수준의 지출구조조정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투자를 늘리려면 기존 지출을 과감하게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3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는 필자 포함 정부와 여당, 민간 전문가 등 130여 명이 참석했다. 회의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해 보였다. 재정은 경기변동을 완화하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략적 투자의 후원자로서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병목을 찾아 풀어주는 신산업정책의 역할도 맡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13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정부가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제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래대응기금의 투자 대상도 청년, 성장동력, 지방, 인재의 4대 분야로 정했다. 각 부처가 원하는 사업을 모아 예산을 나누는 데서 벗어나 국가 전체의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회의에서 제시된 숫자는 선택의 크기를 보여준다. 2029년까지 민간이 추진하는 AI 데이터센터는 총 8.4GW 규모다. 정부는 범부처 지원체계를 가동해 인허가와 제도를 정비하고 핵심기술, 테스트베드, 클러스터 구축을 지원할 계획이다. 피지컬 AI는 2030년 세계 1강을 목표로 한다. 제조업뿐 아니라 국방, 돌봄, 농업, 치안으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 반도체 분야의 민간 팹 투자 규모는 957조 원에 이른다.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패키징, 파운드리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을 보강하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지원한다. 호남권에는 800조 원 규모의 기업투자를 지역 성장으로 연결할 첨단산업 거점이 추진된다. 용인 국가산단은 2031년 첫 팹 가동을 목표로 하며, 국도 45호선 확장사업도 2026년 8월 발주할 예정이다. 정부 재정이 민간투자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재정은 기업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병목에 집중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입지와 교통망, 인허가와 기술개발이 대표적이다. 공장을 대신 짓는 것이 아니라 민간투자가 제때 실행되도록 필요한 기반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원 조달 방식도 달라진다. 정부는 장기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할 계획이다. 호황기에 늘어난 세수를 일회성 지출로 소진하지 않고 미래의 생산능력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다만 추가 세수의 산정 기준과 적립·인출 원칙, 투자 성과의 평가 방식은 명확해야 한다. 미래투자는 산업 기반을 갖추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할 인재를 키우고, 그 성과를 국민의 일자리와 기회로 연결해야 한다. 정부가 AI 전환에 대응할 청년 전문인력 20만 명 이상을 양성하고, 민간·공공 일자리와 창업을 통해 30만 명 이상의 기회를 만들겠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성과는 지출 규모가 아니라 변화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투자가 산업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2026.08.03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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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브라질 꼬치구이는 '평등과 환대'의 음식
브라질에서는 손님이 오면 슈하스쿠를 준비한다. 주말이면 마당이나 아파트 발코니에 딸린 작은 화덕에 불을 피우는 것이 흔한 풍경이다. 이는 외식 메뉴이기 이전에 가정의 의례에 가깝다. 친구에게 잘 구운 꼬치 한 점을 내미는 마음, 그 행위에 브라질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박찬일 셰프 브라질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고기구이 집을 간다. 브라질 특유의 꼬치구이를 파는. 그곳에서 함께 웃고 울고 인생의 시간을 보낸다. 친구를 환영하는 곳도 꼬치구이집, 즉 슈하스카리아이거나 집안 뜰에 마련한 화덕이다. 한국에서 집들이에 밥을 짓거나 삼겹살을 굽듯, 브라질에서는 손님이 오면 슈하스쿠를 준비한다. 주말이면 마당이나 아파트 발코니에 딸린 작은 화덕에 불을 피우는 것이 흔한 풍경이다. 이는 외식 메뉴이기 이전에 가정의 의례에 가깝다. 친구에게 잘 구운 꼬치 한 점을 내미는 마음, 그 행위에 브라질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한국에 사는 브라질 친구들을 몇 사귈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강남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이보라는 멋진 친구였다. 브라질식으로 고기를 구워 파는 집이었고 그는 숙련된 요리사 겸 파사도르였다. 파사도르의 의미는 뒤에 쓴다. "원래는 프로리그 축구선수였어요. 부상으로 그만두었지만요." 기저귀도 떼지 않은 아기 시절부터 공을 찬다는 나라 출신이었다. 조국에서 낮에는 축구를 하고 저녁에는 슈하스카리아에서 고기를 굽고 썰었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서울에 정착하게 됐다. "슈하스카리아죠. 제일 그리운 것은 말이죠." 서울에도 슈하스카리아가 여럿 있지만, 브라질만 하겠는가. 게다가 아직 우리나라는 브라질 음식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나라다. 그가 그 공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겨우(?) 식당이라니. "브라질 사람에게 슈하스카리아는 그냥 식당이나 고깃집이 아니에요. 뭐랄까, 가장 정겨운 공간입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직장 동료와 데이트의 기억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에요."기념일과 축제와 일상을 그 식당과 함께 한다. 우리가 삼겹살과 돼지갈빗집을 옆에 두듯이, 그들도 그런 공간이 있다. 브라질의 슈하스케리아(Churrascaria)는 단순한 고깃집이 아니다. 드넓은 초원과 소 기르기, 이민의 역사, 공동체 식문화를 압축해 보여주는 공간이다. 관광객에게는 이국적인 레스토랑이지만,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승진 턱을 쏘거나 생일, 축구 경기 관람과 가족 모임이 모두 이루어지는 생활문화의 중심이다. 고급 집과 아주 저렴한 대중적인 집이 다 있어서 형편에 맞게 이용한다. 어떤 경우든 기쁘고 신나는 곳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브라질 요리 슈하스쿠.(ⓒ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슈하스쿠는 한국에 소개된 것은 꽤 오래전이다. 다만, 좀 더 본격적인 가게는 요즘 들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기다란 꼬치에 고기를 꽂아 구운 후 웨이터가 손님의 탁자에 와서 직접 썰어주는 서비스가 슈하스카리아의 핵심이다. 그런 웨이터를 파사도르라고 부른다. 날카로운 칼을 놀려 맵시있게 고기를 썰어 서빙하는 기술이 아주 노련하고 빠르다. 우리 고깃집에서도 몇 해 전부터 세련된 동작으로 고기를 썰어주는 직원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생각하면 될 듯하다. 파사도르는 기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배역'이다. 손님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단골을 관리하고 가게의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역이다. 인기 있는 파사도르를 스카우트하려는 가게들의 눈치 싸움도 심하다고 한다. 그가 슈하스쿠를 구워 내왔다. 소 우둔살을 먼저 썰었다. 지방을 두툼하게 붙인 채 굽는 게 특징이다. 고소한 지방이 붉은 살코기를 단단히 붙들어둔다. 우둔살은 지방이 거의 없어서 자칫 지루한 맛을 줄 수 있는데, 표면에 붙은 지방을 그대로 살려서 잘라 구우면 맛이 아주 좋다. 그가 섬세하게 칼을 들어 고기를 저몄다. 겉은 미디엄웰, 그다음 부위는 미디엄. 천천히 숯불에 굽기 때문에 우둔살인데도 질기지 않았다. "슈하스쿠를 하는 집이 브라질에는 아주 많죠. 한국의 고깃집만큼 많아요. 제일 인기 있는 부위는 이 우둔살이에요. 아, 브라질 집 근처 잘하는 집에 가서 이 부위를 먹고 싶어지네요." 브라질에는 "일찍 오는 사람이 피카냐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인기 있는 부위란 뜻인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먼저 먹이를 먹는다"라는 말처럼 은유로 쓰인다고 한다. 오늘날 브라질은 세계 최대 상업적 소 사육 국가 중 하나다. 브라질 지리통계원(IBGE) 집계에 따르면 최근 소 사육 두수는 2억 3000만 마리를 넘어서며, 이는 브라질 전체 인구를 웃도는 수치다.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를 보유하고 있지만 종교·문화적 이유로 대부분 도축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식용을 위해 사육되는 소의 규모에서는 브라질이 세계 최대로 꼽힌다. 광대한 목초지와 대규모 목축 산업을 기반으로 중국, 미국, 중동, 동남아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쇠고기를 공급하며 세계 소고기 무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 사람들에게 쇠고기는 단순한 수출품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슈하스카리아에서는 다양한 직업과 세대의 사람들이 같은 화덕에서 익은 고기를 함께 나눈다. 식사는 서두르지 않는다. 화덕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이어진다. 손님은 원하는 만큼만 받고, 서버는 가장 좋은 익힘 상태의 고기만 잘라 준다. 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대화와 만남의 시간이 된다. 우둔살, 즉 피카냐(Picanha) 부위 말고도 치맛살도 높이 친다. 갈비로 많이 먹는다. 돼지, 닭도 굽지만, 기본적으로 슈하스쿠는 소고기를 의미한다. 왜 소고기일까. 역사가 있다. 브라질에는 원래 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16세기 포르투갈 식민지 개척자들이 이베리아반도의 소를 들여오면서 브라질의 목축이 시작됐다. 광대한 초원에서 방목된 소들이 빠르게 번식하며 거대한 야생 소 떼가 형성됐고, 이를 몰고 관리하는 목동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바로 가우초다. 즉, 카우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초원을 이동하며 소를 몰았고, 장기간의 유목 생활 중 필요할 때마다 현장에서 소를 도축해 식사를 해결했다. 복잡한 조리도구를 지니고 다닐 수 없는 이동 생활이었기에 가장 단순한 방법이 자연스럽게 선택됐다. 고기를 큰 덩어리째 쇠꼬치나 나뭇가지에 꽂아 숯불 가까이 비스듬히 세워 천천히 익히는 방식이었다. 바비큐와 그릴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브라질은 엄청난 양의 소를 기른다. 값도 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본 기억이 없다. 이보는 웃으며 말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다 먹어버려서 수출할 고기가 없을 거예요." 가우초의 야성이 살아 있는 슈하스쿠를 이해하면 브라질도 더 가까운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2026.07.29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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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새 지평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남미 3국 순방' 실용외교
이재명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24일부터 한국 경제의 성장과 대도약의 기반을 다지고, 외교 지평을 더 확장하며 글로벌 책임강국을 지향하는 실용외교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해외순방에 나선다. 홍현익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집권 첫해에 다양한 양자 및 다자외교를 구사한 이재명 대통령이 2년 차를 맞아 국익 증진을 위한 실용외교를 더욱 적극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24일부터 한국 경제의 성장과 대도약의 기반을 다지고, 외교 지평을 더 확장하며 글로벌 책임강국을 지향하는 실용외교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해외순방에 나선다. 실리콘 밸리에서 한국의 AI 산업 도약을 모색하고 국제 영향력이 커지고 있고 미·중이 세력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모여있는 남미를 순방한다. 미국·남미 순방 일정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4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남미 3개국 순방 외교, 배경과 일정 작년 6월 사면초가의 매우 어려운 외교 상황에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우선 일본과 미국을 방문해 정상 간 신뢰를 회복한 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주최하면서 한미 관계를 진일보시키고 한중 관계도 정상화했다. 남아공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가해 인공지능(AI) 발전의 공정 수혜와 포용적 지속가능 성장을 주창해 책임 강국임도 입증했다. 올해 초 중국을 방문해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진전시켰으며 일본,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 베트남을 방문해 국익을 증진하고 한국 외교의 외연을 넓혔다. 6월 프랑스 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벨기에, 유럽연합(EU),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교황과 면담했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도 더 강화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레뱅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행사장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번 달 튀르키예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케이(K)-방산 세일즈 외교를 구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의를 재확인했고, 몽골을 방문해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을 보강하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잠정 타결하고 대북 우회통로도 마련했다. 이제 이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를 방문해 실용외교의 지평을 전 세계로 펼친다. 먼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앤트로픽, 오픈AI,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투자·협력을 구체화하고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회장 등이 가세하는 'AI 서밋'을 통해 국내 기업과 빅테크 기업 간 양해각서 체결과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통해 양국 간 벤처 투자 생태계를 연결하고 한국의 글로벌 AI 도약 의지를 과시한다. 희토류 강국이자 최대 방산시장이며 남미 공동시장을 주도하는 브라질은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자율성을 자부하는 나라로 이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성장 배경과 이념적 성향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친분과 신뢰 및 실질적 협력 증진을 모색한다. 칠레는 유망 인프라 시장이고 주요 무역 동반자이므로 이 대통령은 자유무역협정(FTA) 현대화로 교역을 더 진흥하고 배터리 필수광물인 리튬 공급망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 아르헨티나에서도 리튬과 셰일 가스 공급망 확보를 모색하고,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활용해 한미 동맹의 신뢰를 보강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외교의 과제 러시아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는 과제로 남아 있다. 우선 러시아는 러-우전쟁 전 한국과의 무역이 북한과의 무역보다 200배나 많은 우방국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한국의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비우호 국가가 됐고 관계가 멀어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여전히 한국과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협상에 거리낌이 없다. 따라서 북·러관계 강화에 따른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전황을 지켜보면서 제재를 적당히 완화하고 직항로를 개설하는 등 호의를 보이면 러시아도 호응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단기간 대화에 나오기는 어렵겠지만, 전작권 전환으로 국가 자율성을 회복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공존 및 상호 존중과 협력 의사를 표명하는 동시에 미일과의 관계 정상화를 지지한다면 결국 불가침과 호혜적인 협력의 길로 나올 것이다. 성공의 관건은 여야가 초당적으로 이 길이 가장 현실적인 대북정책이라고 공감하고 지지하는 데 있다.◆ 홍현익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27년 간 세종연구소에서 북핵문제, 남북관계, 한미동맹, 한러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국의 국가안보와 국가전략을 연구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 구축 및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와 공동번영 및 국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실용외교를 주창해왔다.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 분과장을 맡았다.
2026.07.24
홍현익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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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의 미래
AI에게 가장 대체되기 쉬운 사람 양산하는 사회
지금의 학교는 '인공지능에 가장 먼저 대체될 사람'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대한민국 사회의 얇은 안전망은 '가장 먼저 대체될 인간'을 대량 생산한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탄광의 카나리아 지금의 학교는 산업 시대의 고안품이다. 산업사회의 만트라는 규격화, 표준화, 대량생산이다. 학교는 공장과 거울처럼 대응한다. 위계가 있고, 생산라인의 분업에 조응하는 개별 과목들이 있다. 공장에 일 자체의 만족이 아니라 임금, 상여금과 같은 외재적 보상이 있는 것처럼 학교에는 공부 자체의 즐거움 대신 성적, 상벌과 같은 보상이 있다. 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을 할수록 학교는 높은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공장에서 가장 중요히 쓰일 가치이기 때문이다. 아뿔싸,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와버렸다. 순종하고 근면하며 표준화된 실행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수만 배 잘하는 일이다. 산업 시대 학교가 만들려 한 그것—지시를 정확히 따르고, 표준 절차를 오류 없이 반복하며, 정해진 정답을 신뢰성 있게 산출하는 인간—이 바로 오늘날 생성형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펴낸 2025 일의 미래 리포트는 이런 현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1000개 이상 기업(55개 경제권, 1400만 노동자)을 조사해 2030년까지 가장 가파르게 줄어들 직무를 조사했다. 우편 사무원, 은행 창구 직원, 데이터 입력원, 출납원, 행정 비서…정해진 절차를 반복하는 직무들이다. 향후 수요가 가장 빠르게 감소할 역량은 성실, 정확, 규율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빠르게 부상하는 역량도 있다.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 호기심, 평생학습이다. 특히 분석적 사고는 기업 10곳 중 7곳이 필수로 꼽았다. 하나같이 산업 시대 학교가 체계적으로 무시해 온 자질이다. 학교는 그런 것을 채점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의 브린욜프슨 등이 쓴 유명한 보고서 '탄광의 카나리아'도 주목할 만하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22~25세 신입의 고용이 약 16% 줄어들었다. 반면, 숙련 인력의 고용은 오히려 늘었다. 브린욜프슨은 이렇게 해석했다. 거대언어모델(LLM)은 책·논문 등 '책상 위 지식'으로 훈련됐는데, 그것이 바로 학교가 사회 진출 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지식과 제대로 겹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지금의 학교는 '인공지능에 가장 먼저 대체될 사람'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아주 몹쓸 일이다. 범죄행위에 가깝다.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가르쳐야 할 것과, 더 이상 가르치면 안 될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감량 목록과 증량 목록을 만들자는 것이다. 먼저 현행 교육과정에서 AI가 이미 대체하고 있거나, 머지않아 대체할 역량을 교과별로 식별해 낸다. 예를 들어, 단순 사실의 암기와 재생산, 정형화된 문제 풀이 반복 훈련, 공식 대입형 계산, 다시 말해 입시를 위한 문제 풀이들 그리고 정보 검색과 정리 자체가 목적인 과제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열심히 할수록 더 빨리, 더 쉽게 대체 당하게 될 일들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할 인간의 역량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역량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규명해서 수업 안에 녹여 넣어야 한다. AI가 감히 대체하지 못할 것들, AI가 득세할수록 더 귀해지는 역량이 그것이다. 후보군은 다음과 같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2전시장에서 열린 '2025 부산 디지털 교육 페스타' SW-AI거점센터 부스에서 학생들이 딥러닝 AI 알고리즘을 이용한 바둑로봇과 오목을 두고 있다.2025.12.17.(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질문하는 능력. 답을 찾는 것은 AI가 하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는 인간의 몫이다.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은 현행 입시 교육에서 거의 훈련하지 않는다. 비판적 검증 능력. AI가 생성한 정보, 논증, 코드의 오류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AI를 잘 쓰는 것보다 AI의 출력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이 만 배나 중요하다. 맥락 통합 능력. 서로 다른 분야, 서로 다른 관점을 연결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AI는 패턴 안에서 작동한다. 패턴을 깨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다. 신체와 경험 기반 학습. 실험, 만들기, 현장 조사, 예술 창작, 체육, 돌봄 실습처럼 몸을 쓰고 직접 경험해야 하는 학습은 AI가 대체할 수 없다. AI 시대에 더욱 빛날 인간의 일이다.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합의. AI의 발전은 갈수록 가속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조정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협업과 소통. 인간과 인간이 협업하고 인간이 AI와 협업하는 능력이다.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맥락을 공유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학교가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이다. 싱가포르가 보여준 것…사회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우리 못지않은 입시의 사회, 학벌의 사회다. 싱가포르는 2021년부터 채점을 상대평가로 바꿨다. 중등 성적별 계열분리도 2024년에 폐지해 과목별로 능력에 따라 듣게 했다. 당시 옹예쿵 교육부 장관은 이 변화가 아이들의 낙인화를 줄이고 성장 마인드 셋을 길러줄 것이라고 밝혔다. 23년에는 모든 초중등에서 중간고사를 없앴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싱가포르 가계의 연간 사교육 지출은 2018년 14억 싱가포르달러에서 2023년 18억 달러로 약 30% 늘었다. 약 70%의 가구가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 학자들은 이를 '그림자 교육 체계'라 부른다. 심지어 정부가 중간고사를 없애자, 일부 학원들이 그 공백을 메우려 '모의 중간고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2개의 기둥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중간고사는 없앴지만 여전히 학력이 좋은 일자리와 지위로 가는 관문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두 번째, 떨어지면 받쳐줄 안전망이 없었다. 싱가포르는 보편적 실업보험과 일반 최저임금이 없고, 대신 저임금 노동자 대상의 근로소득보전과 업종별·훈련 연동형인 점진적 임금 모델로 대체한다. 노후는 개인 강제저축인 중앙적립기금의 자기책임 원리에 기반한다. '강한 학력-서열 배분'과 '약한 안전망'이 중첩할 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하나로 수렴한다. 경쟁에서 이기면 좋은 일자리와 지위를 얻고, 지면 받쳐줄 바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 공부를 하지 말고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 호기심,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기르라는 말이 부모의 귀에 대체 어떻게 들리겠는가. 한국에서 고교학점제와 국제바칼로레아(IB) 공교육 도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정확히 같은 이유다. 대입이라는 서열 배분의 관문과 그 뒤의 얇은 안전망을 건드리지 않으면 교실 안의 개혁은 입시 구조에 고스란히 흡수된다. 결론은 분명하다. 교육을 진짜로 바꾸려면 삶의 결과를 학력 순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안전망은 '복지'가 아니라 'AI시대 역량 형성의 인프라'다. AI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인 비판·창의·협업·판단·모험·평생학습은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 위에서만 자란다. 떨어지면 절벽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안전한 표준답—즉 AI가 이미 더 잘하는 것—으로 회귀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얇은 안전망은 '가장 먼저 대체될 인간'을 대량 생산한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2026.07.20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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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코리아의 글로벌 전략
유럽은 한국의 안보 파트너가 될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튀르키에 앙카라에서 개최된 NATO정상회담에 참석해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만나 한·나토 협력을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며 "이번에 협상을 개시한 한·나토 조달 기본협정은 우리 방산기업들이 나토 방산시장으로 더 넓게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그 성과를 제시했다.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유럽은 한국의 안보 파트너가 될 것인가? 된다면 어떤 안보 파트너가 될 것인가? 2026년 한국은 더 많은 더 강한 국가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평화의 시대가 가고 전쟁의 시대가 온 지금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요국들은 대부분 유사한 상황이다. 탈냉전 시대 세계의 경찰로 세계 질서를 좌우하던 미국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중국과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그러나 역설적으로 안으로 움츠러드는 미국만이 남았다. 이러한 미국에 안보를 절대적으로 의존해 온 한국과 동아시아와 유럽의 국가들은 다들 각자도생을 해야 할 지 아니면 어떻게든 뭉쳐야 할 지 갈팡질팡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NATO 사무총장-IP4 소인수 회담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크리스 펭크 뉴질랜드 국방장관, 이재명 대통령,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 모테기 토시미쓰 일본 외무대신,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대신, 팻 콘로이 방위산업부 장관. 2026.7.7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새삼 한반도와 동아시아 주변을 둘러본다. 누가 있을까? 일본이 먼저 보인다. 일본도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오월동주라면 지나친가? 기시다 총리 이후 일본은 한국과의 안보 파트너 관계 강화에 열심이다. 미국이 저리 변한 걸 화들짝 놀라듯 알아챈 후다. 작년 한 도쿄의 안보대화에서 일본측 보수 주류 인사들이 금기어였던 '(미국으로부터의) 전략적 자율성'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본에게 한국과의 안보 연계가 새삼 달리 보이는 것이다. 한국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러니 일본과 껄끄럽더라도 경제, 과학기술, 문화교류, 그리고 군사안보까지 강화하는 한국이 이상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유럽의 주요국들이 이 안보 파트너 결핍에 어떤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그리고 한국이 사용하기 시작한 '전략적 자율성'의 기원은 유럽의 프랑스다. 물론 개념상이었고 실제로는 프랑스와 유럽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안보를 의존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라는 집단안보체제 하에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 나토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유럽-대서양 동맹을 떠난다고, 그린란드 영토를 넘기라고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를 상대하는 유럽 국가들은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튀르키에 앙카라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담에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을 만나 한·나토 협력을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며 "이번에 협상을 개시한 한·나토 조달 기본협정은 우리 방산기업들이 나토 방산시장으로 더 넓게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그 성과를 제시했다. 또한 위성락 실장은 "한·나토 협력이 일회성 교류가 아니라 해를 거듭하며 뿌리를 넓혀가는 협력임을 보여준다"고 선언했다. 물론 나토 체제 편입까지는 아니다. 전쟁의 시대를 본격화 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한국은 폴란드를 비롯한 중동북부 유럽 국가들에 대규모로 무기를 팔면서 현지 공동 생산과 준동맹급의 안보 협력 연계 구조를 만들어왔다. 대규모 무기를 공급하면 그 수입국의 안보는 최소한 부분적으로 수출국, 즉 한국에게 의존하게 된다. 엄청나게 큰 안보 책임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을 통해 현 정부도 안보 협력을 전제로 한 대유럽 방산 수출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번 나토 정상회담의 성과도 그 맥락인데 이에 대한 명확한 인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외부에서 보기에 한국은 유럽을 새로운 안보 파트너로 삼고 앞으로 점증할 글로벌 및 지역 안보 위기 시에 상호 간에 군사적, 경제적, 과학기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지를 시험하고 있다. 폴란드와의 방산 수출 협상에서 폴란드 지도자들은 한국을 실제로 '동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반도,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나면 그들이 '상호운용성'이 보장된 폴란드제 한국 무기를 보내겠다고 했단다. 솔깃하지 않은가? 함께 나누고 만들고 수출까지 같이 하게 되는데 그 물건이 국가의 생사를 좌우하는 첨단 무기다. 일단 유럽 전체는 아닐지라도 유럽의 일부는 이미 한국의 핵심 안보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들이 미국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또 우리가 그럴 수도 없지만 최소한 각자도생 보다는 어떻게든 뭉치려는 모양새다. 동아시아와 유럽의 안보 컨버전스(수렴) 구조 속에서 머나먼 거리의 폭정(tyranny of distance)도 이겨내는 본능적인 행동인가? 한국의 안보는 언제나처럼 위기고, 탈냉전 평화에 취했던 유럽은 이제 제대로 위기다. ◆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UCLA 정치학 박사로 혁신 과학 시대의 정치적 新舊 난제에 천착하는 융복합정치학자다. 국내·국제정치의 상호작용, 글로벌 안보컨버전스, AI 정치와 정책을 연구한다. 주요 저서로는 피크코리아(Peak Korea)가 출간됐으며, 그 국제편에 해당하는 세계에서 한국은 얼마나 쓸모있을까?를 집필 중이다. 또한 Global Expansion of Korea's Defense Industry는 2026년 출간 예정이다.
2026.07.14
백우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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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균형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와 60년 전 경부고속도로
지역격차는 시장에 맡기면 심화될 뿐이므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같은 첨단산업의 전략적 지역 배치가 필요하다. 경부고속도로처럼 기존 타당성 논리를 넘는 결단과 임무지향 산업정책, 그리고 갈라치기가 아닌 조율의 협력적 거버넌스로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1966년 12월, 세계은행(IBRD)의 한국교통조사 보고서를 종종 살펴본다. 당시 교통정책의 중심은 철도였다. 보고서는 한국의 교통 투자를 대폭 늘리고 도로의 비중을 키우라고 권고하면서도, 서울과 부산을 잇는 4차선 고속도로에는 '경제적으로 시기상조'라는 딱지를 붙였다. 포장도로가 전체 도로의 6%에 못 미치고 트럭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이었으니, 간선 고속도로보다 지역 간 도로망과 차량 확충이 먼저라는 논리였다. 박정희 정권은 듣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는 막대한 인부, 엔지니어로도 부족해 군인까지 동원한 돌관공사로 뚫렸고, 결과적으로 경부축은 후발공업국의 추격 과업을 완성하는 고도성장의 척추가 되었다. 성공에는 이면이 있다. 경부축, 그리고 포항에서 거제에 이르는 남동임해공업지역과 호남의 여수·광양 같은 임해 거점에 투자와 교통 인프라가 집중되는 동안 호남 내륙과 강원은 50년간 구조적 저발전 상태에 놓였다. 산업단지와 대학, 청년 일자리가 경부축을 따라 수도권과 영남에서 재생산되는 동안 나머지 지역은 인구 유출과 산업 공백이 맞물리는 악순환을 겪어 왔다. 지난번 글에서 밝힌 것처럼 21세기 공간분업의 전개 속에서 첨단산업의 수도권 집중은 대구경북과 동남권마저 순서대로 배제했다. 2023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선정처럼 시장의 선호에 모든 것을 맡기다 보면, 지역 격차는 좁혀지는 방향보다는 벌어지는 방향으로 가기 마련이었다. 지방소멸이 균형발전의 과제를 넘어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는 인식은 이제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29일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이래 거듭 밝히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호남 투자가 많아 보여도 "역사적으로 누적된 투자량을 비교한다면 조족지혈"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논쟁은 1966년 경부고속도로,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때의 논쟁과 닮은 데가 있다. 그때도 기존 타당성 검토의 문법으로는 무모하다는 반론이 무성했다. 검토의 틀을 바꾸지 말라며 '왜 호남인가'를 묻는 목소리가 닮았고, 이번에는 대구·경북 등 소외되는 지역이 호명되는 구도도 닮았다. 소수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말이 글로벌 1등 기업에게 정부가 압력을 넣는 게 아니냐는 논란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2026년의 한국에 필요한 것, 그리고 작동되고 있는 것은 민주적으로 시행하되 가능한 한 빠른 의사결정을 해내는 협력적 거버넌스다. 이견은 충분히 검토하되, 결정이 내려지면 집행은 신속해야 한다. 7월 1일 출범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1호 조례로 반도체 전략투자 지원 조례를 통과시켰고, 정부 통합지원금 20조 원을 필요하면 전액 반도체 기반 조성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행정통합의 결실을 미래 산업에 걸겠다는, 지역의 일치단결과 중앙정부와의 협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청와대는 6일 '3대 메가 프로젝트' 중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과 관련해 광주 군 공항 부지에 산단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광주 군 공항 일원에서 제1전투 비행단 훈련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 2026.7.6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역사에는 조율의 선례도 있다. 호남 푸대접론이 들끓던 1966년, 정부는 제2정유공장 입지로 여수를 택했다. 지역 간 균형이 고려된 결정이었고, 이 공장은 훗날 여천석유화학단지의 모태가 되었다. 정치적 압력이 경제 논리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입지의 균형을 잡는 조율로 작동한 사례다. 첨단산업의 입지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인공지능, 재생에너지 같은 신산업 자산을 적절한 수준에서 분배하고 조율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사불란할 필요는 없지만, 일이 되는 쪽으로 중지를 모으는 게 현명한 일이다. 구조화된 불균등을 바로잡는 데 기계적인 1/N 지역별 배분은 답이 아니다. 불균등 시정을 위한 집중 투자도 검토할 수 있다. 시장에 맡겨둔 결과가 '창조적 파괴'가 아닌 '경로의존'의 심화라면 정부의 현명한 조치가 필요하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임무지향 산업정책이 힘을 얻는 시대다. 미국도 유럽도 반도체와 에너지를 놓고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지역균형발전만큼 선명한 임무는 드물고, 전력망과 용수, 인재 양성처럼 정부가 깔아야 할 판도 명확하다. 반도체, 피지컬 AI,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링과 새로운 에너지 믹스라는 경기는 이제 1회초다. 승부를 가르는 것은 꾸준한 집중력의 유지다. 60년 전에는 없던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축적된 전문성이 우리에게는 있다. 갈라치기가 아니라 조율로 승부하는 정치력, 그리고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중지를 모을 때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학, 문화인류학을 거쳐 공학 박사(과학기술정책 전공)를 받았다. 제조업, 엔지니어, 산업 생태계에 대해서 현장 연구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등이 있다.
2026.07.10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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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시대
피지컬 AI 속도전, 신뢰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
속도와 안전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두 바퀴다…3년 안에 세계 최고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그 속도만큼이나 그것을 지탱할 신뢰의 인프라를 함께 놓아야 한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올해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는 한국 산업 정책의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도체, 피지컬 인공지능(AI), AI 데이터센터를 '초격차 산업강국 대도약을 위한 삼각축'으로 규정하고 "오직 속도전만이 살 길"이라며 "청와대에 직할 담당관을 둬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인간의 두뇌인 반도체, 지능을 갖춘 신체인 피지컬 AI, 생각의 창고인 데이터센터를 결합해 독자적 한국형 AI 생태계를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3년 안에 글로벌 기업 의존에서 벗어난 세계 최고 수준의 독자 피지컬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 목표는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6월 초 340억 원 규모의 '피지컬 AI 선도기술개발' 사업에 착수해 국내 대표 10개 산학연을 결집시켰다. 그동안 외산에 의존해온 시뮬레이션 플랫폼 즉 '월드모델' 원천기술의 국산화가 핵심 과제다. 방향은 명확해졌고 속도도 붙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피지컬 AI 얼라이언스 2기 출범식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로봇개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런데 이 속도전에서 반드시 함께 달려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신뢰'다. 주목할 점은 정부 스스로 그 답을 이미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과기정통부는 착수보고회에서 "피지컬 AI는 현실에서 동작하기 때문에 사고 때 인명피해로 직결될 수 있어 가상환경에서의 충분한 사전 학습과 검증이 필수"라고 전했다. 속도와 안전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두 바퀴다. 문제는 이러한 '검증'을 뒷받침할 피지컬 AI 시대의 제도적 기반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현행 국제 로봇 안전표준인 ISO 10218은 산업용 로봇 셀과 예측 가능한 작업환경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고 협동로봇 기준인 ISO/TS 15066도 사람과의 접촉 시 힘과 속도를 제한하는 협업을 전제로 한다.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피지컬 AI 휴머노이드에 이러한 기존 안전 체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입히는 것과 같다. 유럽연합(EU)이 AI 법을 통해 고위험 AI와 AI가 내장된 안전 관련 제품에 대한 규제를 단계적으로 정비하는 동안 올해 1월 시행된 한국 인공지능기본법은 자율적으로 판단·행동하는 로봇이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제조사·개발자·운영자 간 책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전(全)주기 안전 인증 체계다. 정부가 국산화하려는 '월드모델' 시뮬레이션은 강력한 검증 도구이지만, 가상 검증만으로 안전이 보증되지는 않는다. 시뮬레이션을 출발점으로 실환경 테스트, 운용 로그 축적, 사고 보고, 업데이트 후 재검증까지 하나의 순환 체계로 묶어야 한다. 로봇이 스스로 학습해 계속 변하는 만큼, 인증도 일회성이 아니라 생애 전주기에 걸친 지속적 과정이어야 한다. 둘째, 책임 소재의 법제화다. 피지컬 AI 사고의 책임은 제조사·운영자·개발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 통합자, 데이터 제공자, 유지보수 사업자, 현장 관리자까지 얽힌 복잡한 사슬 속에서 사고 유형별 책임 주체를 사전에 규정해야 한다. 셋째, 국제 표준 선제 참여다. 3년 내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한다면, 기술만이 아니라 그 안전 규범까지 한국이 규범 형성자로서 주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피지컬 AI가 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가 데이터센터로 모여 산업 혁신을 이끄는 선순환"을 강조했다. 이 선순환이 지속되려면 그 출발점인 현장에서 국민이 로봇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단 한 번의 중대 사고가 그동안 쌓아온 산업 전체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과 윤리는 속도를 늦추는 브레이크가 아니라, 고속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가드레일이다. 3년 안에 세계 최고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그 속도만큼이나 그것을 지탱할 신뢰의 인프라를 함께 놓아야 한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KIST AI·로봇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인공지능·로봇 분야 연구를 수행하며 국가 과학기술 전략 수립과 대형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다. 인공지능 기반 영상인식, 선별 및 전역 관제 등 다양한 AI 분야에서 다수의 원천기술을 개발해 산업 및 공공 영역에 확산시켰다.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훈했고, 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과 KIST 미래재단 석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6.07.08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AI·로봇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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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무역 인사이트
독일의 멈춤이 한국 제조업에 묻는 것
독일의 위기는 제조업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제조업을 둘러싼 혁신·자본·서비스 생태계의 지체에서 왔다. 강점도 시대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족쇄가 된다. 독일은 스마트공장을 먼저 외쳤지만 AI·플랫폼 시대의 성장 언어로 넘어가지 못했다. 한국은 달라야 한다. 제조업을 지키되 제조업에 갇히지 않는 것, 그것이 독일 경제가 한국에 보내는 경고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유럽의 기관차로 불리던 독일 경제가 힘을 잃고 있다. EU 집행위는 올해 독일 성장률을 0.6%로 전망했다. EU 전체 1.1%, 유로존 0.9%에도 못 미친다. 독일경제연구소(DIW)는 2,3분기 역성장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한때 유럽 성장을 견인하던 나라가 이제는 유럽 평균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 국가가 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낯설지 않다. 러·우 전쟁과 미·이란 전쟁 이후 높아진 에너지 비용, 고령화와 숙련 인력 부족,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이 겹쳤다. 자동차, 기계, 화학처럼 에너지 비용과 세계 수요에 민감한 산업이 독일 경제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충격은 더 컸다. 중국도 더 이상 독일 제품을 사주는 시장이 아니다. 전기차와 배터리, 기계장비와 산업재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됐다. 독일의 부진을 외부 요인으로만 설명하면 핵심을 놓친다. 충격은 밖에서 왔지만 취약성은 안에서 자랐다. 문제의 뿌리는 과거 독일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던 정교한 부품, 숙련 노동, 강한 중견기업 중심의 성공 공식이 새로운 기술 질서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데 있다. 2010년대 독일이 주도한 인더스트리 4.0은 공장 안을 똑똑하게 만드는 자동화의 언어였다. 반면 지금의 AI와 플랫폼 경제는 공장 밖의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연결해 수익화하는 생태계 싸움이다. 자동차는 엔진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모빌리티 서비스로, 기계장비는 단순 판매에서 운영 최적화와 구독형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제조업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제조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맥킨지는 유럽의 혁신 병목을 '창출이 아닌 전환의 문제'라고 짚었다. 기술력 있는 신생·성장기업은 많지만, 이들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만큼 스케일업에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유럽 대기업 중 스타트업의 제품·서비스를 먼저 도입하거나 투자에 나서는 곳은 20% 수준으로, 미국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어렵게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해도 실제 시장 출시로 이어지는 비율은 5% 미만이다. 완벽주의와 위험 관리에 치중한 탓에 신기술은 현장과 시장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못했다. 소수 선도기업과 다수 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독일 산업의 구조적 약점이다.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6 코리아 나라장터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26.3.25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대목에서 독일은 한국의 거울이다. 우리도 제조업·수출 의존도가 높고, 낮은 에너지 자급도와 저출산·고령화, 중국의 추격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만 한국은 독일과 다른 강점이 있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등 첨단 제조업의 실행 속도가 빠르고 디지털 기술 수용성도 높다. 얼마전 방한한 피터 하윗 브라운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높은 R&D 투자와 역동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제조업을 넘어설 것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조업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제조업의 울타리에 갇히지 말라는 의미다. 성장은 기존의 성공 공식을 지키는 데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낡은 질서를 바꾸며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나온다. 이제 한국 제조업은 더 넓은 혁신 생태계로 확장해야 한다. 자동차는 모빌리티 데이터 서비스로, 반도체는 AI 인프라와 설계 생태계로, 기계·조선은 디지털 운영 서비스로 넓어져야 한다. 기술이 시장으로 가는 통로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첫 고객이자 공동개발자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R&D 지원을 넘어 실증, 조달, 규제 개선, 인력 재훈련, 성장 금융을 연결하는 시장 설계자로 거듭나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의 AI 확산도 미룰 수 없다. 일부 선두 대기업만 AI를 잘 쓰는 구조로는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2·3차 협력사와 지역 중견기업까지 AI가 스며들어야 한다. 동시에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여 제조업이 흔들릴 때 경제를 받쳐줄 두 번째 엔진도 키워야 한다. 수출 제조업 하나에만 의존해 성장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독일의 위기는 제조업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제조업을 둘러싼 혁신·자본·서비스 생태계의 지체에서 왔다. 강점도 시대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족쇄가 된다. 독일은 스마트공장을 먼저 외쳤지만 AI·플랫폼 시대의 성장 언어로 넘어가지 못했다. 한국은 달라야 한다. 제조업을 지키되 제조업에 갇히지 않는 것, 그것이 독일 경제가 한국에 보내는 경고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연세대 경제학과와 KDI대학원(MBA)을 거쳐 건국대에서 무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국무역협회 입사 후 30년 이상 수출입 동향분석과 글로벌 통상전략 수립을 주도해온 무역 전문가다. 현재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으로서 수출경쟁력 강화, 산업별 공급망 안보, 신통상질서 대응 등 급변하는 대외 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6.07.03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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