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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 의미와 성공 전제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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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영 국가기후환경회의 피해예방위원회 위원
12월 1일부터 미세먼지 계절관리제가 시행됐다. 3일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계절관리제의 취지를 설명하며 각 부처뿐 아니라 국민들의 참여와 협조를 구했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란 미세먼지 농도와 관계없이 고농도 시기인 12월~3월 네 달간 평상시보다 강화된 저감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기저 농도를 낮춰 고농도 발생 강도 및 빈도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4월 출범 이래 5개월 간 국민참여단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놓은 단기 대책을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서, 계절 관리 기간 동안 ▲공공사업장 가동 단축 ▲5등급 차량 운행제한 ▲석탄화력 가동중단 확대 및 상한제약(80%) ▲도로청소 강화(하루 2회 이상) ▲다량배출사업장 상시 점검과 같은 대책을 시행하게 된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출범되었을 당시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무엇을 하려는 조직인지 존재의 이유에 관한 물음부터, 수많은 전문가를 포섭한 노력이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단기간에 포부대로 전방위적인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실현가능성에 관한 우려까지 설왕설래가 있었다. 필자 역시 피해예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1~2주에 한 번은 회의에 참석하며, 의견수렴이 과연 실효성 있는 정책 제안, 나아가 정책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구심 반, 기대반이었다.
그러나 9월 꽤 강력한 단기 대책이 제안되고, 그 후 지난달 28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겨울철 전력수급 및 석탄발전 감축대책이 심의,확정되자,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이 에너지나 교통 정책에 우선적으로 반영되는 일이 가능함이 판명됐다. 우리 역사 최초로 미세먼지 저감, 즉 환경 개선을 위해 발전소를 가동 중단하게 된 것이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시행 기간 공공기관 차량 2부제가 전면 시행된 2일 오전 세종정부청사 6동 출입구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가운데)이 홍보 캠페인을 하고 있다. 공공기관 임직원 자가용과 관용차는 이날부터 미세먼지 특보 발령 여부와 상관없이 차량 끝 번호에 따라 홀,짝수 2부제가 적용된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산업부는 우선 겨울철 석탄발전기 815기를 가동 정지하고 나머지 석탄발전기는 잔여 예비력 범위 내에서 최대한 상한제약(화력발전 출력을 80%로 제한하는 조치)을 하기로 했다. 비록 국가기후환경회의의 당초 제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례 없는 합의일 뿐 아니라, 그간 수차례 논의를 진행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던 전기료 정상화, 환경급전 도입,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 개편 등의 과제를 풀어내게 될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 대책에 있어 아쉬움도 없지 않다. 특히 수송부문이 그렇다. 유럽 선진국들뿐 아니라 우리보다도 환경이 열악한 인도, 중국, 네팔 등도 도심 미세먼지 대책으로 최우선 집중하는 것이 수송부문이다. 발전소나 사업장과 같은 오염원은 비교적 거주지에서 떨어져 있는데 비해, 교통수단의 근접성 면뿐 아니라 특히 디젤 자동차 배출물질인 블랙카본은 WHO에서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할 정도로 건강 위해성이 높다.
그러나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은 서울과 인천, 경기 등록 차량에 한해 실시된다. 여기에 영업용차량과 매연저감장치 부착 및 신청 차량은 빠져 전국 247만대의 5등급 차량 중 28만대(11.3%)만 적용받게 됐다. 또한 2부제 역시 공공부문에 한정되며, 공공부문도 중앙행정기관,지자체(소속,산하기관 포함), 학교 등 행정부만 포괄한다. 헌법재판관, 법관, 국회의원 등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므로 행정기관에 포함되지 않아 2부제 의무 대상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미세먼지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 강조한 이유다. 법 개정에 더해, 지자체의 조례 마련도 선행돼야 하는데, 수도권 중 경기도와 인천시는 아직 조례도 발의되지 않은 상황이다. 규정 마련은 정책의 연속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또한 가시적인 저감 효과를 보려면 현재 대책보다 제한 대상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이동수단이 가능하도록 인프라 또한 서둘러 구축해야 할 것이다.
지난 11월 27일, 우리나라가 주도한 최초의 유엔 기념일이 지정됐다. 문 대통령이 기후행동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제안함으로써 국제사회는 매년 9월 7일을 푸른 하늘을 위한 세계 청정 대기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게 됐다. 영광스러운 일인 한편, 이로써 대한민국을 푸른 하늘을 앞장서 만들 국제적 책무를 지게 된 셈이다. 이에 우리 시민은 더 가열차게 좋은 공기를 마시며 안심하고 살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결국 의회와 정부를 움직이고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국민의 관심과 요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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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영 국가기후환경회의 피해예방위원회 위원
20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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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수호성녀 산타 체칠리아에게 바쳐진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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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800년의 장구한 역사가 흐르는 로마. 로마라면 으레 역사의 도시, 예술의 도시, 종교의 도시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로마는 특히 기독교 전파의 진원지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관련된 이야기와 전설의 현장이 아주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산타 체칠리아 성당이다.
로마에는 트라스테베레(Trastevere)라고 하는 지역이 있다. 이 지역에는 로마 토박이들이 많이 살고 있고 또 로마의 토속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몰려있다.이 지역의 좁은 골목길과 연결된 산타 체칠리아 광장에는 산타 체칠리아 성당이 보인다.
로마 트라스테베레 지역에 있는 산타 체칠리아 성당.
성당 안에 들어서면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실내 공간에 휩싸인다. 먼저 천장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면류관을 받는 성녀 체칠리아, 즉 산타 체칠리아(Santa Cecilia)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천장화는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의 명곡 산타 체칠리아 장엄미사를 연상하게 한다. 이 곡의 원어 제목은 Messe solennelle de Sainte-Ccile인데 생트 세실(Sainte Ccile)은 산타 체칠리아의 프랑스식 표기이다. 그럼 체칠리아는 어떤 여인이었을까?
이야기는 로마제국 후기인 서기 23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에 체칠리아라는 전통 명문귀족 가문 출신의 규수가 있었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는 어린 나이에 귀족 발레리아누스와 결혼하고는 남편과 시동생을 기독교 신자로 개종시켰다.
당시 로마제국은 국운이 상당히 기울어져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데키우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국운을 조금이라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로마의 전통신 숭배를 강화하고 기독교를 국가차원에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된 산타 체칠리아 성당 내부.
어느 날 체칠리아와 남편과 시동생은 순교당한 기독교 신자들을 몰래 장례를 치러주다 그만 체포되고 말았다. 남편과 시동생은 참수형에 처해졌고 체칠리아는 귀족가문 출신이라서 특별대우를 받아 공개처형이 아닌 집안 목욕탕에서 질식사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녀를 열탕에 가두어놓고 불을 아무리 뜨겁게 때어도 그녀가 멀쩡하자 결국에는 참수형에 처하기로 했다.
망나니는 그녀의 목에 칼을 내리쳤다. 체칠리아는 왜소하고 가냘픈 체구에다가 목도 가는데 전혀 끄덕하지 않았다. 망나니는 다시 칼을 내리쳤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체칠리아의 상처난 목에서 피만조금 흘러나왔지 목은 멀쩡했다.
로마형법에 의하면 참수형을 할 때 사형수에게 세 번까지만 칼을 내리칠 수 있다. 망나니는 마지막으로 칼을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가냘픈 목에 상처만 깊게 났고 피만 흘러내릴 뿐이었다. 이를 본 망나니는 칼을 내팽개치고는 그냥 줄행랑쳤다고 한다.
체칠리아는 목의 상처와 출혈로 인하여 결국 사흘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체칠리아는 후세에 음악의 수호성녀로 추앙되었으며 순교한 날짜 11월 22일은 산타 체칠리아 축일로 음악관련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린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음악 학술원과 로마의 음악원은 산타 체칠리아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조각가 마데르노가 재현한 체칠리아가 순교한 모습. 목에 칼자국이 보인다.
체칠리아의 시신을 담은 관은 로마교외의 비아 아피아 도로 연변에 있는 지하 공동묘지인 성 칼리스토의 카타콤베에 안치되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지난 9세기 초에 테베레 강변 가까이 그녀가 살던 집으로 추정되던 곳으로 이장되었고 그 자리에는 경당이 세워졌다. 지금의 산타 체칠리아 성당은 바로 이 경당이 있던 자리 위에 건축된 것이다.
그 후 또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체칠리아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다가 1599년 10월 이 성당 지하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산타 체칠리아의 관이 발굴되었다. 당시 교황은 관의 뚜껑을 열어보도록 했다.
그런데 산타 체칠리아의 순교한 모습이 생생하게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영구히 기록하기 위해 조각가 스테파노 마데르노는 그녀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마치 3D스캔하듯 조각 했다.
제단 아래에 보존된 이 대리석 조각을 보면 조그만 체구의 산타 체칠리아가 지금 막 순교한 것처럼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고 잠든 것 같은 그녀의 목에는 칼자국이 선명하다. 지금도 살아 있는 듯한 체칠리아의 거룩한 모습은 죽음이 증언하는 영원의 도시 로마를 다시 한 번 피부로 느끼게 한다.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로마 대상을 받고 1840년에 로마에 왔던 젊은 작곡가 샤를 구노도 이 모습을 보았으리라.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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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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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힙합에 한국의 포장지를 입혀 재탄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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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플라, 그리고 루피는 쇼미더머니와 영원히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쇼미더머니에 나가도 끝까지 출연을 거부할 것 같은 래퍼들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린 미국에서 왔어. 우린 힙합의 멋을 알아. 우린 진짜야. 쇼미더머니랑 엮일 순 없어
하지만 둘은 지난해 쇼미더머니 777에 출연했고 (계획대로)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됐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들이 내세운 변화의 근거는 꽤 강렬하고 진솔했다.
이 긴장감을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많은 참가자에게 리스펙트가 생겼어요, 돈 벌려구요
쇼미더머니의 주인공이 되어 잡지 화보를 찍고 라디오에 출연하는 나플라와 루피를 보며 생각한다.
그들의 현재는 아쉬워해야 하는 타협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다행인 영광일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삶의 한 여정일 뿐일까. 또 쇼미더머니라는 경로를 거쳐 나아가는 이들의 미래는 그러지 않았을 때의 미래와 어떻게 달라질까.
나플라는 지난해 쇼미더머니 777에 출연해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은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마마) 레드 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AP Photo/Kin Cheung,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어쨌든 나플라와 루피는 스타 래퍼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둘이 함께 한 노래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바로 사과상자다.
만약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에게 제목만 알려준다고 해보자. 과연 사람들은 이 노래가 어떤 내용일지 맞힐 수 있을까? 내 생각엔 그래도 꽤 많은 사람이맞힐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이 노래에서 사과상자는 불법정치자금을 뜻한다. 정치권에서 불법정치자금을 사과상자에 실어서 나르다가 걸렸다더라 같은 뉴스를 볼 때의 그 사과상자다.
일단 힙합에 대해 잘 모르고 들어도 이 노래는 신난다. 어둡고 멋있고 흥이 나는 노래다. 하지만 힙합의 전통(?)에 대해 알고 나면 더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어두운 뒷골목 출신 래퍼가 많고 느와르/범죄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미국힙합의 세계에서는 예로부터 이런 유의 스토리텔링이 흔했다.
거리의 삶을 살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을 가방에 담아 나르며 기쁨을 맛보는 영화적 시퀀스 말이다. 실제로 헐리우드 범죄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과 상자에 담아 돈다발 / 사과 상자에 담아 돈다발
이런 나의 해석을 나플라와 루피에게 직접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나플라는 LA에서 살았으니까 한국과는 좀 떨어져 있었잖아요. 한국 사람의 삶이 어떻고 한국 사람이 어떤 것에 공감대를 형성하는지 그 속에 들어가 있던 게 아니라 그것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았던 사람인 거죠.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사과상자라는 게 한국인한테 되게 익숙한 소재가 아닐까, 사과상자에 돈다발 담으라고 하면 한국인들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이에요 (루피)
이 노래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한국영화에 그런 장면이 많이 나왔어요. 이거다 싶었죠 (나플라)
나플라와 루피는 그 카타르시스를 사과상자에서 한국적으로 재현했다.
힙합문화를 잘 알고 힙합음악을 즐겨 들어온 사람이라면 익숙한 스토리텔링에 한국적인 포장지를 입힌 것이다.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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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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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역사를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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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의 코리아넷(www.korea.net) 게재 기고문을 번역한 것 입니다. 우치다 변호사는 미쓰비시 머티리얼 소송을 비롯해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 간의 문제해결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편집자주)
우치다 마사토시(변호사 겸 도쿄 변호사회 헌법문제협의회 부위원장)
1 일의대수(一衣?水)와 이치이노미즈(一葦水)
일의대수는 겨우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이란 의미로 중국 수나라 문제가 천하통일을 목표로 진나라를 공격 할 당시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한 말이다.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일의대수 보다 더 가까운 이치이노미즈(一葦水)로 비유한다. 일본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해 온 이웃이다. 에도시대 쓰시마번의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는 양국관계를 선린우호(善隣友好)라고 칭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일 양국을 왕래한 양 국민은 1000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처럼 친밀한 양국관계는 같은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로 악화됐다. 일본정부는 지난 7월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했고 8월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종료를 선언했다. 일한 관계는 지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 한국 대법원 징용판결 - 일한기본조약,일한청구권협정 재검토는 불가피
일본에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한 국가 간 합의에 위반된다는 비판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기자, 학자들은 물론 일부 방송에서도 이런 비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1965년 일한기본조약,청구권협정과 고이즈미 내각이 북한과 맺었던 2002년 일조(북일)평양선언을 비교하면 일한청구권협정(이하, 일한협정)이 식민지 지배 청산에 불충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한기본조약,청구권협정에는 1910년 8월 22일 이전에 대일본제국과 대한제국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제 무효임이 확인된다(일한기본조약 제2조)라고 명시됐다. 이 조항은 식민지 지배가 합법,유효였는지 위법,무효였는지 애매하다. 무효가 된 시기도 명시되지 않아 애매모호하게 해결됐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도 물론 반성조차도 없었다. 반면, 일조평양선언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확실히 명시돼 있다.
1995년 8월 15일 전후 50년 시점에 나온 무라야마 총리 담화를 계승해 일본측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인들에게 많은 고통과 손해를 끼쳤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고 명시돼 있다. 선언 발표 당시 지금의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는 관방부(副)장관으로 동석했다.
식민지 지배 청산을 언급하지 않은 일한협정의 재검토가 필요할 수 있으며 일본정부가 주장하는 해결완료는 통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원자폭탄 피해 한국인의 치료와 보상, 사할린 잔류 한국인 귀환 문제 등이 그 구제적인 대상이다.
3 중국인 강제동원과 한국인 강제동원 일부 일본기업의 화해를 평화자원으로 할용
필자는 한국인과 중국인 강제동원의 차이점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본질적으로 노예노동이라는 법적인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기간과 피해자 수에 차이가 크다. 중국인 강제동원은 1944년 9월부터 다음해 8월까지 약 1년 간 행해졌으며 피해자 수는 약 4만 여명이다. 반면 조선인 강제동원은 1939년부터 45년까지 장기간이었으며 피해자 수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이 차이를 이해한 후, 중국인 강제동원 문제의 성과를 토대로 한국인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면 어떨까.
가지마 건설(하나오카 사건, 2000년 11월), 니시마쓰 건설(2005년 10월), 미쓰비시 머티리얼(2016년6월)은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화해한 대표적인 일본기업이다. 특히, 미쓰비시 머티리얼 화해에 대해서 일본의 주요매체들은 환영의 뜻을 보여 중국측에 일본에도 역사를 마주하는 기업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이 있다는 안심감과 신뢰감을 주었으며 일중 간 안전보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식민지 지배의 실체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가 간 합의에 위반된다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식민지 지배의 청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일한 양국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이웃나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상대방의 역사를 진지하게 마주하는 자세이다. 안전보장의 주요 요소는 억지력이 아닌 국가 간 신뢰이기 때문이다.
4 역사문제 해결과 안전보장은 화해로 성립
스노베 료조 전 외무성 사무차관은 일한협정에 대해 (이들의 배상은) 일본경제가 부흥하기 전으로 일본 부담을 줄이는 데 그 중점이 있었다며 "조약적, 법적으로는 확실히 끝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불만이 남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외교포럼 1992년 2월호).
쿠리야마 다카카즈 전 주미대사도 화해--일본외교의 과제에서 이웃국가(중국, 한국, 향후에는 북한)과의 화해는 일본외교에서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과제다. 왜냐하면 일본의 안전보장상 지정학적으로 사활적 중요성을 지닌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는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모습을 규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강제동원 문제도 니시마쓰 건설,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화해했을 때 단서로 한 최고재판소 판결의 부언의 정신 즉 피해의 중대성을 고려해 당사자간의 자발적인 해결이 요구된다-에 준거해 화해로 해결해야 한다. 역사문제는 이기고 지고의 판결에서 해결하면 한(恨)이 남는다. 반드시 화해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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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마사토시(변호사 겸 도쿄 변호사회 헌법문제협의회 부위원장)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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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광장’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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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시회에 자주 다니는 형편은 못 된다. 그런데 이 전시만은 여유 있게 꼭 보고 싶어 평일 날을 잡았다. 서울대공원 뒤편에 붙어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이곳은 사실 대중교통으로는 좀 불편하다. 걷기엔 조금 멀어서 4호선 대공원역에서 미술관까지 20분 간격으로 셔틀버스가 운행한다(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을 잇는 무료 아트셔틀버스도 하루에 네 차례 있다). 하지만 나는 대공원 매표소에서 1,500원짜리 코끼리 열차를 타고 가는 재미를 즐긴다. 대공원 경내와 넓은 호수가 철마다 꽃과 단풍과 설경으로 눈호강을 시켜주기 때문이다. 절정을 막 넘어가는 단풍과 이별했다.
과천관은 사실 그 접근성의 단점을 보상해주는 괜찮은 점이 많다. 부산하고 시끌벅적한 도심 미술관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동물원 옆 호젓한 이 미술관이 제격이다. 앞으로는 탁 트인 관악산, 뒤편으로는 높은 청계산을 이고 있는데다 뒷마당의 넓은 조각공원, 미술관 앞 휴식 공간도 운치가 있어 사색과 힐링에 그만이다. 혼자 가야 어울리는 미술관이다. 대공원에서 운영하는 치유의 숲, 호수 둘레길, 식물원, 장미원, 동물원은 덤이다. 미술관 내 레스토랑 가성비도 좋은 편인데 나는 만 원도 안 하는 여기 크림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각설하고 전시 이야기다. 전시 이름은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다. 1969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념 기획전이다. 전례 없이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에서 동시에 전시를 하는데, 덕수궁관에서는 1900~1950년대, 과천관에서는 50년대부터 현대까지의 미술을 다룬다. 서울관은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광장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으로 구성한 소규모 전시다.
3개관에서 300여 명 작가의 500여 점에 가까운 작품과 자료 수백 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그중 과천관 전시가 가장 규모가 큰데 200여 명 작가의 작품 300여 점이 걸렸다. 교과서에서나 봄직한, 평소 보기 힘들고 앞으로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작품들을 상당수 마주할 수 있다.이 기획전은 흔히 접하는 미술 사조나 화풍 중심이 아니라서 미술을 잘 몰라도 괜찮다. 역사의식이 있고 정치사회 변혁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더 반가울 거다. 전시는 근현대 연대기를 따라간다.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모더니즘, 해방 전후, 한국 전쟁, 폐허 복구, 국가주도 개발, 산업화, 민주화운동, 서울올림픽, 세계화, 고도성장과 대중소비문화, 경제위기, 밀레니엄 도래와 신자유주의, IT와 인공지능 시대로 이어진다. 미술은 그 시대의 가장 진솔한 소묘라고 한다. 어찌 보면 미술이 문학보다 시대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형상화한다.
워낙 대형 기획전시라서 아무리 국립이지만 관람료가 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2,000원이었다. 나는 미술평론가는 아니므로 전시 자체의 콘셉트나 작품 구성에 대해 평할 만한 위인은 못 된다. 다만 한국 근현대 미술 대표 작가의 대표작을 어느 정도는 망라한 이 정도 전시는 적어도 앞으로 10년 안에는 보기 어려울 거라는 점에서 놓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세기에 걸친 미술 사조도 일별할 수 있지만, 교육적 관점에서도 미술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학생들을 데리고 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점을 배려했는지 만 24세 이하와 대학생은 무료다.)
이쾌대 해방고지 1948년 작. 광복의 환희와 혼란, 희망이 보인다.
전시 제목은 작년에 돌아가신 최인훈 작가의 대표작 광장에서 따왔다. 한국 현대사에서 광장은 혁명과 민주화 시위, 노동자 투쟁,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시대적 의미가 있다. 한국의 근대가 갇힌 밀실(개인)에 가깝다면 현대는 열린 광장(집단, 사회)이다. 마지막 왕조와 일제 강점, 전쟁과 분단, 억압과 자유, 빈부 격차의 심화를 겪은 한반도에서 개인과 사회는 늘 부딪쳐 왔다.
전시는 1953년 9월 판문점 회담이라는 작품부터 시작한다. 휴전 회담장을 스케치한 풍경이 쓸쓸하다. 러시아와 평양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의 대가로 얼마 전부터 국내서 새롭게 존재를 조명받고 있는 변월룡(1916~1990) 작이다.
이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세 작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를 만난다. 대표작이 모처럼 각 서너 점 이상 옹기종기 나와있어 참 기쁘다. 이중섭의 가족 부부,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이 그림들 중 하나만 보기 위해서라도 미술관 나들이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어디서는 며칠 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사상 처음으로 100억을 넘어 132억 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추상 점화 우주와 뉴욕에서의 제작 시기와 기법이 같은 대작이다. 귀에 익은 박고석, 박서보, 박래현, 장욱진, 서세옥, 유영국, 이숙자 작품도 있고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는 이우환의 선으로부터도 볼 수 있다.
중앙홀에 들어서면 정면에 대형 걸개그림 노동해방도와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시선을 압도한다. 작가 최병수가 제작한 흑백의 강렬한 톤으로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 현장에 직접 걸린, 낯은 익었지만 처음 보는 것이다. 오윤의 민중미술 판화들, 박생광의 화려한 채색화 전봉준도 걸려 있다. 80년대 신문을 똥을 닦는 용도로 모욕한 임옥상의 신문에 눈길이 멈췄다.
박정희 정권 치하 동백림사건으로 수감됐던 작곡가 윤이상과 재불화가 이응노의 흔적도 있다. 수인번호 5527번 윤이상이 서울구치소에서 딸에게 보낸 1968년 11월 1일 직인이 찍힌 편지는 눈물겹다. 나는 너의 편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 읽는다나는 사과를 먹으며 찍은 네 사진을 참 좋아하는데 아침저녁으로 그 사진에 뽀뽀를 한다 그의 육필 악보, 이미 유럽에서 명성을 얻은 두 작가의 구속에 대한 외국 언론 보도도 전시됐다. 이응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며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그 유명한 연작 군상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년 작. 점점마다 그리움이다.
사진으로는 전쟁에 두 팔을 잃은 군인이 벙거지 모자를 쓰고 고개를 떨군 채 구직이란 푯말을 들고 서있는 임응식의 유명한 작품 구직, 50~60년대 명동 거리 사진 연작, 사진작가 오형근의 잘 알려진 아줌마 연작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현대에 오면서 이불과 최정화 서도호 등의 설치, 소수자와 이주자 문제, 페미니즘 등을 다룬 작품들을 전시했다. 전시장을 나가면서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초청작인 김홍석, 김소라의 비디오설치 만성 역사 해석 증후군을 본다.
작품이 아니더라도 전시된 자료도 볼 만한다.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같은 당대의 수준 높은 잡지들, 초창기 산업디자인과 TV 자동차 광고, 도시개발의 흔적들, 올림픽 포스터 들도 오랜만에 보는 것들이다.
과천관에 머물지 않고 덕수궁관 전시까지 봐야만 근현대사를 관통할 수 있다. 덕수궁은 시내한가운데라 일찌감치 갔었다. 여기 전시는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해방, 성 불평등의 시대 한가운데 서 있던 사람들과 작품을 보여준다. 일제 하에서 예술로 민족혼을 강조한 작품들, 민족투사들의 지조와 절개가 의연한 초상화 앞에 서면 뭉클하다. 근대기 신문과 문예지, 연극과 영화 자료 등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장을 풍성하게 해준다.
덕수궁관에서의 백미는 단연 이쾌대다. 그 유명한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과 군상1-해방고지, 군상IV을 마주 할 수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평양을 택한 이쾌대(19131965)는 변월룡만큼 과거에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2015년 현대미술관의 전시 거장 이쾌대-해방의 대서사시를 즈음해 그는 한국 미술의 절대적 대가로 인정받았다.
광장 전시장은 우리 앞 세대에게 바치는 헌화와 추도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작가뿐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 민초와 민중과 시민, 곡절과 시련과 극복과 도약의 근현대를 헤쳐간 이름 없는 단역과 조연을 소환했다. 어떤 그림들 앞에서는 눈물이 났고, 탄성이 터졌고, 엄숙해졌다.
작품들 앞에 서면 역사로부터 어떤 질문을 받는 느낌이다. 한국의 지난 120년과 2019년 늦가을, 지금의 한국 사회, 그리고 밀실이 아닌 광장에 선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 중립지대에서 이상향을 찾고자 했으나 태평양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을 생각한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전시라서 관람을 권하고 싶다. 과천관은 내년 3월 29일까지, 덕수궁과 서울관은 내년 2월 9일까지 한다니 아직 많이 남았다.
◆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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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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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는 습관만은 기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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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지능이특별히 높기보다는성실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예체능도 마찬가지다. 모든 아이의 꿈은 바로 이 성실한 생활습관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우리 사회도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고 유지된다.
우리 곁에는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다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강한 것은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생활하는 습관 때문이다.
아이가 책상에 앉는 습관을 갖게되면 알아서 공부하는 습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초등학생에게는 주간계획표가 적당하다
아이들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 학교에 가거나 공부를 하는 것도 자신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적있는 행동이다. 이렇게 목적이 있는 행동을 뇌과학적으로는 실행력이라고 한다.
습관은 이 실행력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다. 아이들은 해야 할 일을 제시간에 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습관은 게으름처럼 하기 싫은 본능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아이가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처럼 하기 싫은 본능을 넘어서는 실행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가 실행력을 높이려면 목표를 세운 후에 세부 계획을 짜야한다. 초등학생에게는 주간계획표가 적당한데, 1주일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 뒤 주말에는 실천 여부를 평가해 다음 주 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
아이의 뇌는 어떤 일을 반복하다 중지해도 계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2개월 정도 부모가 곁에서 도와주어 반복한다면 좋은 습관이 된다. 그리고 좋은 습관 한 가지에 집중하면 기계적으로 행하던 다른 나쁜 습관까지 다시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간계획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핵심습관을 만들면 학업성취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TV도 덜 보고, 바깥운동을 더 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먹으려 애쓰게 된다.
이런 부수적 효과들은 처음에는 계획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좋은 습관이 삶의 다른 부분까지 스며들게 된 것이다.
◆ 의지력을 실험하지 마라
처음 습관을 들일 때는 의지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지력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작심삼일이 되기 쉽다. 의지력은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팔 다리 근육과 비슷하기 때문에 많이 쓰면 피로해진다.
일단 한 곳에 의지력을 사용하면 다른 일에는 그만큼의 의지력을 발휘할 수 없다. 따라서 의지력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좋은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반복 행동을 익히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거나 책상에 바로 앉는 방법, 혹은 시간이 되거나 특정한 신호가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행동하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습관 고리를 심어 주어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되면 일어날 시간에 바로 깨어나고, 공부시간에는 자동으로 책상에 앉는 습관이 만들어진다.
베일런트(George E. Vaillant)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의는 1939년부터 1944년까지 하버드 졸업생과 도시 빈민을 대상으로 젊은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의 삶을 추적하는 대규모 조사를 벌였다.
이 결과, 유아기에 집안을 돕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성인기 성공과 정신건강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빠가 아이들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심어주어야 할 교육적 가치는 학습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중한 가치관과 좋은 습관을 갖게 하면 기대 이상으로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다.
학습 면에서도 아빠가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 하는 것은 자기주도성이며, 그것은 가정에서 유아기때부터 교육시킬 수 있다.
◆ 학교숙제를 미루지 마라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결심했다면 이를 반복해서 생각해야 한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지라고 생각하며 잠들면 다음날 정말 일찍 일어난다. 잠들기 전에 내일 학교에서 할 일이 무엇이지?, 내일 꼭 마쳐야 하는 공부는 무엇이지?라고 질문하면 계획이 생각나고, 생각을 많이 하면 구체적 실천방안까지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뇌의 원리를 이용하면 공부를 미루는 습관을 예방할 수 있다. 아이가 공부를 차일피일 미루며 질질 끌게되면, 일단 어디서부터든 시작하게 하자. 그러면 시작한 공부를 끝내겠다는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어려운 규칙을 정하면 미루기 쉬울 뿐 아니라 그만두는 일도 많다. 때문에 새로운 습관을 들일 때는 아이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쉬운 계획이라도 수행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이는 자신감으로 이어져 더 큰 습관을 반복할 수 있다.
일단 책상에 앉기 책상에 똑바로 앉기 책상에 똑바로 앉아 공부하기처럼 처음에는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점차로 어려운 습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
만약 책상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면 공상을 하든 만화책을 읽든 책상 앞에 20분간 앉아 있는 습관부터 들인다. 책이나 블럭, 과학상자 등 좋아하는 것을 올려놓아 책상에서도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한편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았다가도, 어떤 과목을 시작할지 결정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 그 때는 결정 시간을 줄이는 의미에서 매일 같은 과목으로 공부를 시작하면 좋다.
예를 들어 매번 책상에 앉자마자 산수문제를 한 두장 푸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점차로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따라서 시작하는 과목은 어려운 과제보다는 습관적으로 반복할 수 있고, 속도측정이 가능하고, 향상 여부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과제가 좋다.
특히 학교숙제를 스스로 매일 한다면 곧 습관이 시작되는 것이고, 이를 반복하면 예습과 복습으로 확장될 수 있다.
◆ 김영훈 가톨릭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가톨릭대 의대 졸업 후 동 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베일러대학교에서 소아신경학을 연수했다. 50여편의 SCI 논문을 비롯한 10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의학학술지에 발표했으며 SBS 영재발굴단, EBS 60분 부모, 스토리온 영재의 비법 등에 출연했다. 주요 저서로는 아이가 똑똑한 집, 아빠부터 다르다, 머리가 좋아지는 창의력 오감육아, 아빠의 선물 등이 있다. pedkyh@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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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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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과 함께하는 상생 개발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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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신 KOICA 사업전략,아시아본부 이사한국과 아세안은 30년 전 대화관계를 수립하고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왔다. 한국과 아세안의 상호 방문객은 2017년과 2018년 사이 143만 명 증가했으며, 한국의 아세안 무역액도 최근 3년 동안 연간 9% 이상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의 긴밀한 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 발표 이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신남방정책의 기본원칙은 사람, 평화, 번영 즉 3P(People, Peace, Prosperity)로서 이전의 경제협력 위주 중심에 더해 보편적,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 다음주 25일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한국은 아세안 대화 상대국 중 최초로 국내 2009년, 2014년에 이어 세 차례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한 국가가 됐다.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첫날인 11월 25일은 마침 한국이 선진공여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DAC에 가입한 날을 기념하는 개발협력의 날이다. 이는 한국이 수원국에서 명실상부한 공여국으로 인정받은 상징적인 날이기에 우리의 개발경험을 아세안과 나누기에도 뜻깊은 계기다. 코이카(KOICA)도 외교부와 함께 이러한 의미를 살려 올해 개발협력의 날 행사는 다음주 25일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한다.
개발협력은 평화와 인권, 젠더 등 다양한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상생번영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신남방정책의 기본 철학을 구현하는데 효과적인 정책수단의 하나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우리나라 무상원조 전문기관으로서, 신남방정책의 3P에 환경(Planet)을 더한 4P를 핵심 지향가치로 설정하고 신남방정책의 비전인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현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2017년 11월 9일(현지시간) 자카르타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3P를 핵심으로 하는 대(對) 아세안 협력 구상 신(新) 남방정책을 공식 천명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개발협력 관점에서 볼 때에도 아세안은 우리나라의 핵심 파트너다. ODA 규모 측면에서 10년전에 비해 공여액이 163% 증가했으며, 내용 측면에서도 국가협력전략(CPS) 및 5대 중점 프로그램 지원 등을 통해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개발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KOICA는 사람,평화,환경과 같은 보편적 가치와 경제적 번영의 가치를 상호보완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OICA가 추진 중인 메콩 평화마을 조성 사업은 이러한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메콩국가들의 농촌지역이 오늘날까지 불발탄과 지뢰, 그리고 이로인한 피해자들의 사회소외에 따른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기획됐다.
구체적으로 메콩지역 농촌지역의 지뢰제거와 피해자 재활 지원, 소득증대를 위한 농촌개발을 종합적으로 지원해 장기적으로 메콩국가들이 전쟁의 상흔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메콩 국가들로부터도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여러 아세안 국가들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단기간에 이룩한 한국의 개발경험을 공유받고 싶어한다. 한강의 기적이 아세안에 이어지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원조(aid)나 경제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개발(development)을 넘어 상생번영(co-prosperity)를 위한 사업들을 개발 및 추진할 필요가 있다.
상생번영을 위해서는 교통 및 도시개발과 같이 현재의 수요에 대응하는 인프라 지원도 중요하지만, 미래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싱크탱크 형성과 청년인재 양성이 중장기적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한,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협력사업이다.
코이카와 베트남이 각각 3500만 달러의 사업비를 투입해 추진하고 있는 VKIST는 베트남 산업경제 발전기반 마련과 연구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 프로젝트로, 문 대통령도 이 사업을 미얀마 개발연구원(MDI) 사업과 함께 상생번영을 위한 협력의 좋은 사례로 언급한 바 있다.아세안 국가의 평 균연령은 30세에 불과해 매우 젊고, 인구도 20억명에 달해 인적자원 개발을 통한 무궁무진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지속가능한 상생번영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아세안의 지식기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고등교육 분야에 대한 지원필요성이 급증하고 있다.
KOICA는 이러한 수요를 반영하여 아세안 국가들의 고등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등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고등교육 분야 지원을 통해 인적자원 양성과 지식창출을 유도하여 아세안이 스스로 개발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특별정상회의의 공식 슬로건은 동행, 평화와 번영이다. 이번 특별정상회의와 개발협력의 날 기념식을 통해 개발협력이 한국과 아세안이 함께 상생번영의 미래를 열어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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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신 KOICA 사업전략·아시아본부 이사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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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수소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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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2년에는 수소를 냉,난방과 전기, 교통 등 도시 주요기능의 에너지로 쓰는수소도시가 우리의 현실이 될 전망이다.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 안으로전국 지자체 중 3곳을 수소시범도시로 선정하고 계획 수립과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 과연, 수소는 안전할까? 수소를 사용하는 도시는어떤 모습일까? 전문가가 알려주는 수소도시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주)
이종석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연구위원
2019년은 우리나라가 수소경제를 선포한 원년이다. 정부는 지난 1월 세계 최고수준의 수소경제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수소를 새로운 혁신성장 동력이면서 친환경 에너지의 원동력으로 삼아 2040년까지 수소 경제를 선도할 산업생태계 구축과 이를 지원할 수소생산 및 공급시스템 등의 조성을 지원해 나아갈 것임을 밝혔다.
이후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를 이행할 구체적 추진방안으로써 지난 10월 국토교통부는 도시 내 수소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는 수소 시범도시 추진전략을, 과학기술정통부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수소에너지 분야의 최장 2040년까지의 단기,중기,장기 기술개발 추진 전략을 담은 수소기술개발 로드맵을 각각 발표하였다.
필자는 우연히 이러한 정책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현재는 수소기술개발 로드맵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연구에 참여하고 있다.정책수립 과정과 기획연구에 참여하면서 관련 분야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미래 수소사회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았고 현재도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부 부처의 세부 정책 수립과정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그려 본 수소도시를 통해 2040년쯤 만나게 될 우리나라의 수소사회 미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래 수소사회와 수소도시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1,2,3차 산업혁명에는 이를 가능하게 만든 주요 에너지 자원인 나무-석탄-석유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탈탄소화가 급격히 진행 중이며,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폭발적으로 커져가고 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수소 혁명(2002)에서 수소가 미래에는 인류의 주요 에너지 자원이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함께 자원고갈로부터 자유롭고 무공해 에너지원인 수소가 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 하는 주요 에너지 자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수소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산업과 생활에 활용된다는 것은 단순히 기존 화석 에너지에 대한 교체가 아닌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이용할 수 있는 사회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의 생활과 경제활동의 모습이 획기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미래 수소도시 예상모습(안).
미래 수소사회에서는 화석연료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여 신재생에너지를 활용, 청정수소를 생산하게 된다. 또 수소의 액화,고체화 기술로 생산된 수소를 대용량으로 운송,저장하여 도시에서 수소를 에너지로 사용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도시내,도시간 운송,저장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수소의 경제성은 더욱높아질 것이다.
미래 수소도시에서는 수소의 생산-저장,이송-활용에 필요한 인프라가 도시내에 구축되어 수소가 도시의 주된 에너지원이된다. 수소도시에서는 시외지역에서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 등을 태워서 발전을 하고, 송전탑을 통해 전기를 도시까지 가져와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 아닌 도시 내에서 태양광과 풍력발전기 또는 생활쓰레기, 폐플라스틱 등을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보관한 후 수소배관망을 통해 도심 건물 및 주택 등에 수소를 공급하여 건물내 설치된 연료전지를 통해 필요한 전력과 열을 만들어 사용하게 된다.
건물에서 수소 생산에서부터 활용까지의 전주기 에너지 관리는 건물에너지 관리시스템인 BEMS(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도시 차원에서의 BEMS와 같은 유사한 역할은 메가스테이션(Mega-Station)에서 이루어진다.
메가스테이션은 도시차원에서 대용량 수소를 생산-저장,이송-활용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시민들이 수소를 사용함에 있어 안전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수소도시 운영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취합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또 수소도시에서는 BEMS와 메가스테이션의 상호 연계를 통해 각 빌딩이나 주택 등에서도 태양광 및 풍력발전기 등을 통해 자체 전력을 생산하고, 잉여 전력은 수소를 생산,보관한 후 전력수요가 증가할 경우 연료전지를 통해 전력을 사용하거나 메가스테이션을 통해 거래도 가능해진다.
한편, 수소도시내 연료전지의 보급이 일반화되면 수소를 이용해 가정이나 건물에서 직접 전기와 열을 만들 수 있게 됨에 따라 대형 송전탑의 건설로 인한 사회적 갈등 문제도 수소사회에서는 더 이상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전기자동차 대비 짧은 충전시간, 긴 운행거리 등과 같은 수소연료전기자동차의 장점으로 인해 미래 수소사회에서는 수소자동차 외에도 버스,트럭,건설 중장비,열차,노면전차(트렘),드론,선박 등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상업용 교통수단들의 수소의 사용은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배출량을 상당량 줄여 청정도시 구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미래 수소도시 수소충전소에서는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함께 연료 충전을 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재생에너지 등을 이용하여 수소를 자체 생산,저장,공급까지 가능한 융,복합 충전소 형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복합환승센터,주차장,버스 차고지,철도 역사 등 주요 생활편의 시설 등에도 수소충전소가 위치해 시민들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도 수소에너지의 활용이 가능하게 된다.
미래 수소사회에서 수소도시는 도시의 입지, 기능과 경제사회적 특성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출될 수 있다. 인천공항과 같은 미래의 공항도시는 드넓은 공항부지에서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하여 수소를 생산,저장하였다가 수소를 유사시 공항 운영의 비상 전력원 활용이 가능하다.
평시에는 수전해를 통해 생산된 수소는 공항리무진 버스, 물류운송 차량 등의 연료로 사용하고 수소생산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산소는 공항내 산소농도를 쾌적하게 유지하는데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국내 여러 중소도시들의 수소도시로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은 국토교통부의 수소 시범도시 조성을 통해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도시를 위한 준비과거의 정부에서도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발표하고 수소경제 구현을 위해 노력한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기술력의 부족과 관련 법 제정 미비로 실제 정책으로 연결되지는 못하였다. 또 이러한 정책추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개발되어도 국민들의 생활에 녹아들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구성원들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수소와 같은 에너지 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는 국민적 합의와 주민 수용성 문제 해결은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따라서, 수소가 단순히 화석에너지의 대체제가 아닌 새로운 청정에너지원으로 우리생활 속에 자리 잡고 사용되기 위해서는 관련 법 및 제도의 제정과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 국회에서는 수소경제와 수소도시 추진을 원활히 지원하기 위한 수소경제법, 수소산업 육성 특별법, 수소도시 조성 및 운영 특별법등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개발이 되어도 이를 지원하는 법 및 지원 제도가 적시에 마련되지 못하여 상용화 시기를 놓쳐버리거나 국내외 관련 시장을 우리나라와 기술경쟁 관계에 있는 외국에 빼앗겨 버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부는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확보가 계획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련 법 및 제도 마련에도 힘을 기울여 이 글에서 그려 본 수소사회와 수소도시가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우리나라가 수소경제라는 기회의 문을 활짝 열고 수소경제 시대를 주도하는 에너지 자립국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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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연구위원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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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아세안…!” 동남아시아 힙합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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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힙합과 상관없이 말해보자.
정세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앞으로 동남아시아를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남아시아가 얼마나 젊은 지역인지 알고 나면 이런 전망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2017년 6억 4878만 명을 기록한 동남아 전체 인구의 중위연령은 28.8세였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28.8세 미만의 어린이와 젊은이라는 뜻이다. 이 맥락은 동남아시아 힙합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윗세대와 달리 자기의 정체성을 자신의 국가,지역,인종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들에서 자유롭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그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인터넷과 유튜브가 있었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곧 그들의 정체성으로 내면화 됐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힙합은 그들이 표현방식과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인 가장 대표적인 존재일 것이다.
실제로 동남아시아 힙합은 최근 몇 년 간 뜨겁게 떠오르는 중이다.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88라이징(88rising)은 좋은 예다.
아시아 젊은이들의 문화적 힘을 보여주기 위해 설립된 레이블이자 미디어 88라이징은 이 열풍의 핵심에 있다. 88라이징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377만 명이고, 88라이징에 소속된 래퍼와 싱어들은 대부분 스타가 됐다.
한국에서는 특히 더 동남아시아 힙합을 멋모르고 폄하하기 쉽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힙합의 수준이 가장 뛰어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실제로 접한 후에는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동남아시아 힙합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아티스트 3인에 관해 정리해봤다.
2016년 16세에 싱글 Dat $tick으로 데뷔해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온 리치 브라이언. (사진=저작권자(c) 88Rising/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인도네시아 :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2019년 현재, 동남아시아 힙합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를 단 한 명만 꼽아야 한다면 아마 리치 브라이언을 선택해야할 것이다.
그는 원래 리치 치가(Rich Chigga)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으나, 치가라는 단어가 흑인에게 모욕적일 수 있음을 지적받은 후 리치 브라이언으로 개명했다.
2016년 초 그가 공개한 Dat $tick 뮤직비디오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덕분에 그는 단숨에 슈퍼스타가 됐다.
90년대 힙합의 전설적인 집단 우탱 클랜(Wu-Tang Clan)의 멤버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는 이 영상을 본 후 직접 리믹스 트랙에 참여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 영상은 현재 1억 30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리치 브라이언은 자신이 늘 인터넷과 함께였다고 말한다. 인터넷을 통해 힙합을 배웠다는 것이다. 또 어릴 때부터 자신은 혼자 자란 것과 다름없으며 현실 친구보다 오히려 인터넷 친구가 더 많을 때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종종 맥도날드를 배달시켜 미국 영화를 보면서 내가 미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즐겼다는 그의 발언 역시 흥미롭다.
그리고 그의 이 말들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것을 인터넷이 어떻게 가능하게 만드는지, 또 미국과 인도네시아의 역학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해 알려준다.
리치 브라이언은 올해 두 번째 정규앨범 The Sailor를 발표했다. 또 한국 가수 청하와의 콜라보 트랙 These Nights을 공개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의 10대 청년 래퍼가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의 성공은 단순한 우연이나 예외적 사례가 아니다. 대신에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2016년 5월 베트남 호찌민 시 GEM센터에서 열린 젊은 동남아 리더십 이니셔티브(YSEALI)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에게 예술과 문화를 홍보하는 정부의 중요성에 대해 랩으로 묻고 있는 수보이.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Photo via Pool Video,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베트남 : 수보이(Suboi)
수보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수보이에 대해 설명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전 대통령을 소환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2016년 베트남 호치민에서 베트남의 젊은 인재들과 대화할 때 수보이도 그 자리에 있었다.
수보이 : 안녕하세요, 저는 래퍼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베트남의 환경과 정치, 그리고 경제성장에 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한 나라의 미래를 위해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촉진하고 장려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통령께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바마 : 좋아요. 그런데 그 질문에 제가 대답하기 전에 랩을 한 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계속 진행을 해야 하니 좀 짧게요
수보이 : 왕처럼 사는 걸 상상해 / 깨어난 후 내 삶은 끔찍하다는 걸 깨달아 / 하지만 그게 바로 현실이지, 끔찍한 하루였어
곧바로 수보이가 세계에 알려졌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오바마 앞에서 랩을 한 베트남의 여성 래퍼로서 말이다. 그러나 수보이는 그 전부터 이미 커리어를 성실하게 쌓아왔다.
오바마를 만나기 전에 그는 이미 두 장의 정규앨범을 가진 래퍼였고, 텍사스의 유명한 음악페스티벌 SXSW에도 초청받은 적이 있었다. 사실 그는 14살 때부터 랩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에미넴(Eminem)의 랩을 들으면서.
수보이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래퍼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랩 가사 안에 담는다. 그가 오바마 앞에서 랩을 한 이유도 베트남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방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동시에 사람의 진솔함을 이끌어내는 랩이라는 도구는 이렇듯 베트남 젊은이의 정체성이자 무기가 됐다.
또한 수보이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여성 래퍼이기도 하다. 그는 여성래퍼는 랩 기술이 약할 것이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실제로 그의 랩은 수준급이다.
굳이 그의 이름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수보이는 좋은 랩 솜씨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그의 별명은 이것이다.
베트남의 힙합 여왕(Vietnams Queen of Hip-Hop)
필리핀의 선구적인 힙합 그룹 데쓰 쓰릿의 리더 오지 비웨어(오른쪽 세 번째)와 멤버들. (사진=저작권자(c) Death Threat/주필리핀 한국문화원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필리핀 : 데쓰 쓰릿(Death Threat)
데쓰 쓰릿은 필리핀의 선구적인 힙합 그룹이다.
팀 이름이 풍기는 이미지에서 이미 감을 잡은 사람도 있겠지만, 데쓰 쓰릿은 요즘의 팝-랩과는 상반된 음악을 추구하는 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팀 이름에 죽음이란 단어가 들어가는데 달콤한 사랑노래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데쓰 쓰릿의 역사에 대해 말하려면 1990년대 초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데쓰 쓰릿의 리더 오지 비웨어(O.G Beware)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도중 N.W.A.의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N.W.A.의 멤버 닥터드레(Dr. Dre), 아이스 큐브(Ice Cube), 이지-이(Eazy-E) 등의 영향을 받아 필리핀에서 자신이 직접 N.W.A. 같은 힙합 그룹을 결성하기로 한다.
그 후 지금까지 데쓰 쓰릿은 10장이 넘는 그룹/솔로/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했다. 또 필리핀 힙합 그룹으로는 최초로 100만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데쓰 쓰릿의 가장 큰 의의는 그들의 메시지에 있다. N.W.A. 같은 미국의 힙합 그룹이 자신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듯 데쓰 쓰릿 역시 필리핀에서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필리핀 빈민가의 현실을 고발하거나 필리핀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며 랩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애썼다.
유튜브에서 데쓰 쓰릿의 음악을 검색하면 아직도 댓글이 달린다. 그리고 댓글을 단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9년에도 나는 이 음악을 듣고 있어. (그리고) 이들의 메시지를 잊을 수 없어
지금까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을 언급했지만 다른 아세안 국가에도 힙합뮤지션은 (당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에는 크메르랩보이즈가 있고, 태국에는 1998년생 신예 YOUNGOHM이 있다. 뿐만 아니라 라오스와 말레이시아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래퍼들이 있다.
동남아시아에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힙합이 살고 있다.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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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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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재정분권 통한 균형발전,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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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채기 정책기획위원회 분관발전 분과위원
1991년 지방자치 실시 이후 아직까지 우리는 국세 위주로 형성된 국세와 지방세 배분체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현재 국민이 내는 세금 중에서 지방세 몫은 25%에 불과하고 나머지 75%는 국세로 배분된다.
문재인정부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재정분권을 통한 균형발전 지원을 목표로 향후 2022년까지 지방세 비율을 30%로 상향 조정하기 위한 재정분권 추진 방안을 지난해 발표했다.
우선 1단계(2019~2020)로 지방소비세 세율을 10%p 인상하고, 소방안전교부세의 교부율을 25%p 인상하는 한편 2020년에 3.6조원 상당의 중앙정부 기능의 지방이양을 추진한다.
또 지방세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격차 완화를 위해 수도권 자치단체로 하여금 지방소비세 세율 추가 인상분에 대한 지역상생발전기금 출연 등을 추진한다. 이어서 2단계(2012~2022)로 지방재정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여 2022년까지 현재 77% 대 22% 수준인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7:3으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현재 2020년까지 추진하기로 한 1단계 재정분권 추진 방안은 계획대로 차질 없이 이행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지방소비세율 10%p 상향 조정에 따라 2020년 기준으로 지방소비세 수입은 8.5조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과정에서 지방교부세 산정의 모수가 되는 내국세 수입의 감소에 따라 1.0조원 정도의 지방교부세 재원 규모가 감소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지방소비세 확충 재원 배분 방안에 따라 지방교육청에 0.1조원 규모의 재정보전이 이루어지는 한편, 지역별 가중치에 따라 배분되는 4.0조원(지방소비세의 4.7%p)에 대해서는 지방교육자치단체 전출금으로 0.19조원 정도가 이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지방소비세 확충과 연계하여 지방에 이양된 국고보조사업비 3.6조원을 차감하게 되면 지방소비세 확충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순재정수입 확충 효과는 3.64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계산된다.
지난해 10월 30일 당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의 재정 분권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즉, 지방소비세 신규 증가액 8.5조원-지방교부세 감소액 1.0조원-국고보조금 지방이양액 3.57조원-지방교육자치단체 전출금 및 보전금 0.29조원=3.64조원으로 산정된다. 지방소비세 확충에 따른 순지방세입 확충 효과에 소방안전교부세율 25%p 인상에 따라 확보되는 0.5조원을 가산하게 되면 1단계 재정분권 방안에 따른 순지방세입 확충 효과는 총 4.14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 제1단계 재정분권 추진 방안에 따른 긍정적 효과이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이러한 재정분권 추진방안은 1단계 계획만 구체화되어 있고 2단계는 아직까지 구체화되어 있지 않은 채 2단계 재정분권추진TF를 구성하여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1단계 재정분권 추진 계획은 광역자치단체 중심의 지방세 확충 방안만 제시하고 있을 뿐 기초자치단체를 위한 재정분권 추진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기초자치단체는 조정교부금제도를 통한 재원 이전 경로를 확충되는 지방소비세 수입의 일부를 배분받는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방소비세 확충에 따른 지방교부세 교부 재원의 감소로 인해 지방교부세 배분 규모도 감소하게 된다.
특히 지방소비세 확충에 따른 기능이양이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의 지역자율계정의 포괄보조사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기능이양(세출분권)과 세입분권 간의 괴리(decoupling) 현상으로 인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및 지역 상호간, 그리고 광역-기초자치단체 간 재정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지방소비세 확충 10%p 재원 중 3.6조원을 우선 할애하여 지역상생발전기금에 기능이양계정(3.6조원)을 신설하여 균특회계 지역자율계정 사업의 지방이양에 따른 사업비를 전액 보전하고, 기초자치단체 및 교육청 재원변동분(0.9조원)을 정액으로 보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로써지방소비세 확충 10%p 중 4.7%만이 기존 지방소비세 배분비율(1:2:3)에 따라 광역자치단체에 배분하고, 수도권 광역자치단체는 배분받은 재원의 35%를 지역상생발전기금으로 향후 10년 간 출연하는 것으로 확정한 것이다.
그러나 1단계 재정분권 추진방안은 수도권 자치단체와 대도시 자치단체에 유리한 재정분권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단계 재정분권계획 추진 과정에서 기존 지방소비세 5%p에 적용되어 온 지역상생발전기금 출연이 2019년 일몰시한에 맞춰 폐지되고, 지역상생발전기금의 기능이양보전분(3.6조원)과 기초자치단체 및 교육청 재원변동분(0.9조원)에 대한 정액 보전이 3년 시한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지방소비세 확충 10%p(3년 보전기간 중에는 4.7%, 그 이후에는 10%p)에 적용되는 지역상생기금 출연 기한도 10년으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방소비세 확충에 따른 세입분권 효과에서 국고보조사업 기능이양에 따른 사업비 부담을 차감한 실질적인 재정확충 효과는 수도권과 대도시 자치단체에 더 유리한 결과를 가쳐올 수밖에 없다.
그 결과 1단계 재정분권 추진 방안은 지역 간, 자치단체 간, 자치단체 계층 간 재정형평화 기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특히 비수도권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상대적인 재정력 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재정분권의 역설을 초래할 위험성이 현재화되고 있다.
따라서 1단계 재정분권 추진 방안이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2단계 재정분권TF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2단계 재정분권 추진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과 방향에 따라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문재인정부의 재정분권 추진 핵심 목표인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7:3으로 조정하는 것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정책목표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증세 없는 재정분권 추진을 견지하는 조건하에서 지방세 비율 상향 조정을 통해 지방정부가 사용하는 재원 규모를 증대하는 지방재원 확충을 지향할 경우, 중앙정부의 역할과 기능의 축소가 불가피하게 요청된다는 점에서 국세 대 지방세 비율 상향 조정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재정분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간 균형 있는 재정분권 추진 및 재원 확충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1단계 재정분권 추진방안은 광역자치단체의 지방세 확충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2단계 재정분권 추진방안에서는 기초자치단체의 지방세 확충을 중심으로 한 재정분권 추진 방안이 집중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셋째, 재정분권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과 기능 배분 체계, 재원배분체계, 정부간 재정관계 및 재정조정제도 등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재정분권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지방재정시스템은 협조적 분권모델을 지향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지방재정 모델을 전제로 지방세-지방교부세-국고보조금을 상호 연계한 패키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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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채기 정책기획위원회 분관발전 분과위원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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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계절관리제가 정착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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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수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어느 듯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을 지나 첫 눈이 내리는 시기를 알리는 소설(小雪)이 다가온다. 추위가 한층 더해감으로서 겨울철 고농도 미세먼지 경험을 되살려본다. 올해 초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수도권에 걸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사례가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흔히 연말연시를 맞이해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내년을 꿈꾸는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재난인 미세먼지 공포에서 마무리보다는 새롭게 대비해야 하는 송구영신의 아이러니다.
이런 사정을 헤아려 정부는 환경적 포용국가 실현을 위해 미세먼지 걱정 없는 대기환경 조성이라는 최우선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자치단체는 국민 건강피해 예방과 삶의 질 개선이라는 풀뿌리 시정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와 자치단체는 모두 미세먼지 안심관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 국내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책 수립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최근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제안을 내놓았다. 환경부도 미세먼지 특별법 개정안에 맞춰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논란을 보완하고자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도입규정을 예정하고 있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는 겨울철 집중관리의 구체성 및 추진과제의 과학적 신뢰성을 모두 확보하여 대의명분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국민들의 추진과정에서 수용성, 시행효과에 대한 설득력이 확보하지 못하면 제도 도입의 가치가 훼손당하기 쉽다. 많은 논란에도 정부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하는 것은 이러한 응급조치가 국민이 안심하게 숨 쉴 수 있게 보장해주는 국민건강 기초보험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를 확장하면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는 비상저감조치 시행을 업데이트한 국민건강 할증보험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올해 12월부터 처음으로 시작되는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지혜롭게 꼼꼼하게 풀어가는 연착륙이 필요하다. 다만 계절관리제 시행에 앞서 다양한 논의를 거쳤고 정부와 국민 간 공감대 형성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하나, 정책과제의 실제 전개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갈등 내지는 소극적 참여 등으로 기대만큼 성과가 거두긴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에 시위 떠나 계절관리제가 과녁에 명중하기 위해서는 시작단계부터 정부와 국민 간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 운영의 묘미를 살려야 한다. 이에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데 따라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도입, 강력한 배출저감 조치에 나설 계획이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첫째, 고농도 미세먼지 계절(12월~3월)에 시행되는 계절관리제는 마치 의사가 환자의 용태를 진단하고 처방전을 발행하는 것과 비유된다. 다만 환자에 따라 복용하는 약 효능은 시간차이를 놓고 일률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실제 미세먼지 발생패턴은 대기권역,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계절관리제 처방은 지역에 따라 구분해 시행돼야 한다. 계절관리제 정책과제 선택은 미세먼지 발생특성에 따라 지역 맞춤형으로 탄력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
둘째, 계절관리제가 비록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응급처방이지만, 정부와 자치단체가 수립하는 미세먼지 법정계획에 반영돼 시행돼야 한다. 예컨대 현재 대기관리권역에 따라 미세먼지 개선 기본계획과 자치단체가 이를 바탕으로 수립하는 시행계획, 그리고 대기환경 종합계획 등 각종 법정계획 수립과정에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정책과제가 반영돼야 한다. 만약 각종 법정계획 수립과정에서 계절관리제 제안들이 적극 반영되지 않으면 국민건강 할증보험으로서 계절관리제 가치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낳게 될 것이다.
셋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내놓은 계절관리제 국민정책제안은 이제 시작단계며,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의도치 않게 나타나게 된다. 국민 공론화를 거쳐 어렵게 만든 미세먼지 문제 해결방안이 항로를 순항하려면 스케줄에 맞춘 행동계획이 필요하다. 단지 계절관리제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의 일정표뿐만 아니라 대책들의 선,후 관계 정립, 수단 간 통합, 컨트롤타위 역할 등을 포함하여 톱니바퀴 마냥 꼼꼼한 스케줄 관리를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정착을 위해 사회적 학습과정 기회를 활용해 제도 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단기 핵심과제의 추진과정에서 자치단체와 이해관계자에 따라 분쟁소지가 다분히 있다. 예컨대 수송부문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수도권과 인구 50만 이상 도시를 대상으로 고농도 계절에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고, 고농도 미세먼지 주간에는 차량 2부제를 병행해 시행한다는 점이다.
이는 올해 12월부터 일률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은 현실 여건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마침 서울시는 올 상반기 한양도성 내 녹색교통지역 내 5등급 차량 운행제한을 예비실험하고, 12월부터 5등급 차량 대상으로 상시 운행 제한할 예정이다. 수도권과 인구 50만 이상 도시들이 사회적 학습과정으로 서울시 사례의 눈 여겨 봐야 할 것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최근 제안한 계절관리제는 겨울철 고농도 미세먼지로부터 국민 건강보호의 자구책이자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자치단체,산업계로 구성된 협의체, 전문가뿐 아니라 국민정책참여단들이 가지는 대동소이한 인식이다. 어렵사리 제안된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는 추진과정에서 돌발변수가 맞닥칠 수 있으나, 국민 삶의 질 개선이라는 대의명분과 실익을 위해 미래지향적 자세로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절관리제 시행에 앞서 국민의 미세먼지 공포를 벗어나 호흡 공동체 형성을 위한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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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수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
2019.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