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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독트린, 한·일관계

"개과천선 못하면 일본은 영원히 외부통제 받아야"

이안 부루마의 저서 '속죄'속에 비친 일·독 과거사 반성

[기고] 박원화 주 스위스대사

200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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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년간 간헐적으로 제기됐던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지난 4월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제정으로 부각된 독도문제와 맞물리면서 한일관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더욱이 중국에서 반일데모가 수주간 계속되면서 한ㆍ중ㆍ일간 과거사는 전세계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사회문제 연구소장으로 체재하면서 일본을 잘 아는 IMD(스위스 로잔느 소재 국제경영대학원) 소속 레만(Lehmann) 교수는 국제정치ㆍ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한ㆍ중ㆍ일 3국간 과거사를 둘러싼 긴장을 이미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일본의 철저한 과거반성을 통한 극동지역에서의 평화구축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독일이 제2차대전때 과오를 저지른 대상인 프랑스와 폴란드에게 했듯이 일본도 중국과 한국에 대해 철저히 반성, 사과함으로써 오늘날 유럽의 독ㆍ불ㆍ폴간의 선린관계가 극동에서 한ㆍ중ㆍ일 간에도 성립되어 또 하나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에게 수차 충고해 왔다.
그러면서 일본의 지금까지 행태를 변명하는 사람들에게는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기술한 이안 브루마(Ian Buruma)의 ‘속죄(The Wages of Guilty)’를 필독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안 브루마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중국문학을 전공한 후 동경에서는 일본영화를 공부하고 홍콩 소재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Far Eastern Economic Review)잡지 기자, 영국 런던 소재 Spectator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특히 독일문화권과 아시아문화권을 비교 분석하는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거울’(A Japanese Mirror) 등의 저서를 발간했다.

1994년 첫 출판된 ‘속죄’를 통해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반성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이안 브루마는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발발시킨 조국의 역사와 조상에 대해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철저하고 적나라하게 역사 교육하는 독일과 죄를 회피할 뿐 아니라 전쟁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일본은 그야말로 천양지차”라며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대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난쟁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브루마는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사과를 수치로 여기는 문화적 배경 △일본을 피해자라고 여기도록 하는 역사교육 △전범에 대한 확실치 못한 처벌 등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일본이 진정 개과천선할 수 없다면 일본의 군사력은 영원히 평화헌법과 외부세력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독일인은 죄를 벗어나서 용서받기 위해 죄를 고백하지만 일본인은 이웃과 함께 침묵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는 신이 보기에 죄악이라는 의식보다는 전체사회의 수치, 당황, 체면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며 “독일에서는 죄의 고백을 간략히 하는 것은 독일문화에 어긋나는 행동인 반면 일본에서는 죄의 고백을 장황하게 하는 것이 이단적인 행동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2차대전 후 독일에서는 나치 지도자들이 전멸하고 나치시대 법관과 검사 등 관리 약 20만명이 해고됐지만 일본에서는 해군제독과 육군장성급만 제거되고 1945-1946년 사이 제거됐던 모든 파시스트의 관리들은 미ㆍ소 냉전으로 인한 미측의 전략적 고려하에 즉시 업무에 복귀했으며 대동아전쟁의 주범인 우익타도에 앞장섰던 좌익이 1949-1950년 사이에 숙청된 것도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이어 “독일에는 사죄의 뜻으로 도처에 나치 피해자 관련 기념관, 박물관, 관련 유적이 보관되고 지금도 조성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수개소에 불과하고 대표적인 장소인 히로시마의 공원 한구석에는 1970년 강제 징용됐다가 사망한 2만명의 한국인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는 정도”라며“히로시마 당국자는 추모소(cenotaph)가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추모소에 한국인 명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전범에 대한 처벌과 역사교육에서도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극명하다.
독일에서는 뉴렘버그 전범재판 후에 1950년대 중반까지 독일 법정에서 나치시대 독일인에 대한 독일인 범죄만을 취급토록 한정했으나 이스라엘에서의 아히만 재판에 영향을 받고 1979년 돌풍을 일으켰던 홀로코스트(Holocaust: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텔레비전 시리즈가 방영된 후 나치시대의 인류에 대한 범죄는 영원히 처벌토록 법을 개정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동경전범재판소가 엄격치 못해 전범의 범죄를 사해준 결과를 초래했고 일본인들은 전범재판이 승자의 패자에 대한 일방적인 재판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됐다. 여기에 더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연합국의 원폭투하로 인한 피해 때문에 일본인들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식을 가지면서 이 피해가 자신들의 전쟁 발발과 남경학살 및 정신대 등 반인류 범죄결과라는 인과관계에 관한 교육을 철저히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 학교에서는 매년 나치역사에 대하여 60시간의 교육을 받도록 하고 역사를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다루면서 학생들이 국가의 계속성을 위한 정체성을 국기, 노래, 영웅 등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유민주질서에 기초한 개념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이를 헌법적 애국주의로 부르는데, 이는 국가의식을 배격하는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에나가 사부로 역사교수가 1952년 고등학교 교과서를 저작해 널리 사용됐으나 4년 후 일본 문부성이 너무 일방적으로 일본을 부정적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를 함으로써 문제가 제기된 후 정부로부터 다시 집필하도록 요청받았다. 이에나가 교수는 이에 저항해 1964년 정부의 위헌을 문제삼아 제소한 후 두차례 추가 제소(1967, 1984년) 했지만 정부는 1980년대 교과서 내용 중 남경학살 등을 삭제토록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가운데 1993년 3월16일 일본법원은 이에나가 교수의 패소를 판결했다.

이안 브루마는 결론에서 일본이 진정 개과천선할 수 없다면 일본의 군사력은 영원히 평화헌법과 외부세력에 의해 통제돼야 하며 반대로 개과천선할 수 있다면 일본이 기존 태도를 바꾸어 과거를 직시해 진정으로 과거 적대국에게 충분히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은 이안 부루마의 지적처럼 정치적 책임 즉 전쟁과 평화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계속 과거를 도외시 할 뿐 아니라 왜곡하면서 거꾸로 가고 있다. 일본을 돌이킬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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