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가 될 것이란 예측이 무색하게 며칠째 전국적으로 폭우가 이어졌다. 하지만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는 폭우도,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강하게 불어대는 해풍도 국립수산과학원 뱀장어연구팀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는 듯했다. 7월 4일(월요일) 오전 9시. 부산 기장군 해안가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뱀장어연구동을 기자가 찾았을 때, 김대중(51) 선임연구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새벽부터 출근해 대기하다 이제 막 뱀장어 배란작업을 마쳤다고 했다.
“뱀장어가 언제 배란을 시작할지 예측이 힘들어요. 평소엔 소식이 없다가 휴일이나 명절 때 더 잘 낳아요(웃음).”
산란을 마친 뱀장어가 축 늘어진 채 수조 위에 떠 있었다.
“자연에서 뱀장어는 알을 낳으면 곧 죽어요. 평생 딱 한 번 낳는 거죠. 자기 몸에 지닌 모든 영양분을 알들에게 나눠주죠. 그래서 산란 후 뼈와 가죽만 남은 뱀장어에서 태어난 알이 가장 좋아요.”
뱀장어는 민물에 살지만 산란기가 되면 우리나라에서 약 3000km 떨어진 태평양 괌섬 마리아나 해구까지 가서 수심 300m 바닷속에 알을 낳는다. 알은 부화해 6개월 동안 유생(幼生)으로 자라다 실뱀장어로 변태되어 우리나라 강으로 회귀해 성어(成魚)로 성장한다. 인공종묘 생산이 매우 어려운 어종인 셈이다.
우리가 먹는 양식 뱀장어는 강으로 회귀한 실뱀장어를 잡아 양식한 것이다. 하지만 자연산 실뱀장어 확보가 어려워 양식에 사용되는 실뱀장어의30~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뱀장어 성어도 연간1500톤 정도를 수입하고 있다.
뱀장어는 해마다 그 수가 급감하고 있는 상태다. 유럽산 뱀장어는 이미 2007년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재되어 2013년부터 상업적 거래가 금지됐다. 우리가 즐겨 먹는 극동산 뱀장어도 등재를 논의 중이다. 그렇게 되면 실뱀장어 거래가 금지돼 더 이상 뱀장어를 먹을 수 없게 된다.
국립수산과학원 뱀장어연구팀이 최근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뱀장어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2012년 뱀장어 알을 부화시켜 실뱀장어로 키우는 데 성공한 것에 이어, 그 실뱀장어를 4년 동안 뱀장어 성어로 길러낸 후 거기서 다시 알을 배란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일본이 연구를 시작한 지 36년 만인 2010년에 성공한 것을 우리는 8년 만에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
뱀장어 완전양식 실험 성공 뒤엔 김대중 선임연구사의 열정이 있었다. |
36년 일본 연구 성과 8년 만에 따라잡아
연 4조 원 실뱀장어 시장 선점 기대
뱀장어 완전양식 실험 성공 뒤엔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김대중 선임연구사의 열정이 있었다. 일본 도쿄대에서 어류 성 성숙 유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7년 국립수산과학원에 입사한 그는 다른 업무를 하면서도 뱀장어 종묘 생산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뱀장어 성 성숙 유도를 전공하던 일본인 친구의 연구를 도와주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책과 학술 논문을 보면서 혼자 뱀장어 성 성숙 유도와 종묘 생산 연구에 대해 공부했죠.”
그의 뱀장어 종묘 생산 연구에 대한 열정을 알게 된 국립수산과학원은 2005년부터 예비실험을 하도록 했고, 2008년부터 예산을 편성해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행하게 했다.
“혼자 연구할 때는 수정란이 부화 후 20일이면 다 죽었어요. 그러다 2010년 사료 전문가와 사육 시스템 전문가가 연구팀에 합류하면서 생존기간이70일까지 늘어났고, 2012년 마침내 실뱀장어로 키우는 데 성공했죠.”
일본의 견제도 많았다. 일본에서 뱀장어 완전양식 기술을 개발한 박사를 국립수산과학원의 심포지엄에 초청하자 뱀장어 인공종묘 생산에 관한 내용을 국외에서 발표하는 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했다.
“힘들게 일본인 연구자가 방한했는데, 변태를 어떻게 유도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말을 안 해주더군요. 뱀장어 유생 3마리를 새 수조에 넣고 밥을 주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어요. 그 말대로 했더니 며칠 뒤 3마리 중 2마리가 변태를 하기 시작했어요. 완전히 자란 유생에서 실뱀장어가 되는 데 7~10일이 걸리더군요. 그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했죠.”
이렇게 하나하나 연구를 통해 배란, 사료, 사육 기술을 터득하면서 뱀장어와 관련한 7~8개의 국내외 특허를 획득하고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
세계 두 번째로 뱀장어 완전양식에 성공한 국립수산과학원 뱀장어연구팀. |
|
뱀장어 유생을 관리하는 연구원들. |
일본보다 기술 선점에 최선
대용량 양식시설 확보 바람
해양수산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세부과제인 수산업 미래산업화의 하나로 뱀장어 완전양식을 지원하기 위해 그동안 연구개발(R&D)에만 60억 원을 투입했다. 연구팀도 처음 혼자에서 3명으로, 지금은 인턴과 보조연구원을 합쳐 11명으로 늘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부분도 남아 있다. 자연에선 알이 부화해 실뱀장어가 되기까지 6개월(180일) 정도 걸리는데, 현재 양식 기술은 257일 걸린다. 성장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생존율이 떨어진다.
대량양식 실험이 가능한 최소 1톤 이상의 수조시설을 확보하는 것도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실험실 규모로 일 년에 생산되는 실뱀장어는 50~70마리 정도다. 아무리 늘린다 해도 500마리가 한계다. 김 선임연구사의 다음 목표는 인공종묘의 대량생산이다. 일본도 아직 대량양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완전양식이 이뤄지면 연간 수천억 원의 실뱀장어와 성어 뱀장어 수입 대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더욱이 뱀장어 주요 소비국인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연 4조 원에 달하는 실뱀장어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된다.
“2020년까지 대량생산 기술을 확보해 이를 종묘 생산 어업인들에게 전수하고, 그들과 협업을 통해 대량생산을 현실화할 계획입니다. 완전양식 성공은 일본보다 뒤졌지만 대량양식 기술은 우리가 선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어민들의 소득 증대도 돕고, 국민들도 지금보다 더 저렴하게 뱀장어를 먹을 수 있고, 수출을 통해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