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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우리 이야기를 찾아갑니다”

[문화, 개인을 변화시키다] 길 위의 인문학

보고 만지며 온몸으로 익히는 인문학

2015.0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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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가야 역사탐방에 나선 경남 함안 지역 교사와 학생들은 현장탐방을 통해 어렵고 딱딱한 인문학버을리 고 대신 유쾌한 인문학을 찾았다.
2014년 10월, 가야 역사탐방에 나선 경남 함안 지역 교사와 학생들은 현장탐방을 통해 어렵고 딱딱한 인문학을 버리고 대신 유쾌한 인문학을 찾았다.

일단 인정. 인문학에 대한 정의는 어렵고도 다양하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여 ‘인문학’ 하면 무겁고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길 위의 인문학’을 만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인문학도 유쾌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잊혀진 1,500년 아라가야를 만나다

만추를 향해 가던 10월의 문턱. 열매를 떨어뜨린 은행나무는 초록에서 노랑으로 옷을 갈아입으려 분주하고, 마치 가로수처럼 골목마다 자리한 감나무는 주렁주렁 붉은 자태를 자랑한다. 길바닥 곳곳에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유낙하한 녀석들’도 제법 보인다. 그야말로 한껏 무르익은 가을날의 농촌 풍경. 그 풍경 속에 ‘길위의 인문학’이 함께했다.

“어머, 여기 억새 좀 보세요. 함안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이런 멋진 곳을 이제야 만나다니. 공부하러 와서 눈부터 호강하네요.”

경남 함안군 칠성중학교 김민주 교사는 시종일관 눈앞에 펼쳐진 가을 풍경에 감탄한다. 함안도서관과 칠성중학교, 그리고 칠원중학교 학생과 교사가 함께한 ‘길 위의 인문학’의 이번 주제는 ‘가야 역사탐방’. 지난주에 진행된 1차 강의에 이어 오늘은 현장탐방 수업이다.

가야 유적은 경상도 지역에 다수 분포한다. 특히 경남 김해시 대성동고분군과 함안군 말이산고분군은 가야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잘 보존·관리돼 문화적 가치가 빼어난 유적이다. 현재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 잠정 등재 목록에 올라 있다.

탐방의 시작은 성산산성. 이는 함안면 괴산리와 가야읍 광정리 사이의 조남산(성산)에 축조된 석축산성으로 둘레가 약 1,400미터이다. 북서쪽으로 이어진 말산과 신음리 등에 고분군이 밀집 분포한다.

“성산산성은 아라가야의 1,500년 역사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역사까지 훑어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이곳은 240여 점의 목간이 출토돼 목간의 보고로 불리며 말이산고분군과 함께 고대함안의 위상을 보여주지요.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67호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유적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는 이곳이 산성 터 입니다. 그럼 여기서 퀴즈 하나 낼게요. 성을 관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겠습니까?”

발굴 현장에 도착하자 해설을 맡은 고고학자 겸 경남발전연구원 하성철 선생이 돌발퀴즈를 냈다.

“성벽이요.” “망루?” “성문 아닐까요?” “아니야 먹을 게 있어야 하니 식량일거야.” 여기저기서 의견이 분분하다. “대충 성에 필요한 것들이 다 나오고 있네요.” 그 즈음 어디선가 “물”이라는 답이 나온다.

“네, 물입니다. 여러분이 말한 모든 것들이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동국여지승람> 등 고서를 보면 성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성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입니다. 물이 그곳에서 살 수 있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저 부분이 성의 우물터입니다. 저 앞으로 수로도 보이죠?”

“선생님,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되죠?”

“물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전쟁에 성으로 피신했는데 밥도 먹을 수 없고, 성에 갇혀 굶어 죽겠죠? 그래서 유사시를 대비해 저수지나 우물을 관리했던 겁니다.”

아이들의 질문에 하성철 선생이 유쾌하게 답변한다. 산성에 대한 설명과 질의응답이 끝나자 일행은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셔터를 누르는 바쁜 손들. 성산산성 정상에 오르자 발 아래로 가야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셔터를 누르는 바쁜 손들. 성산산성 정상에 오르자 발 아래로 가야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업인 듯 아닌 듯 소풍인 듯 아닌 듯

정상에 오르자 하성철 선생을 비롯한 몇몇 일행이 나뭇가지를 헤치고 언덕에 오른다. 이어 대여섯 명씩 차례로 올라오라 이른다. 안 보면 후회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호기심에 올라보니 산 아래
가야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기 보이는 커다란 구릉이 말이산고분입니다. 점심 후에 우리가 답사할 곳이에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아이들의 눈도 함께 움직인다.

금강산도 식후경. 배꼽시계가 튀어나온 지 오래다. 점심은 함안이 자랑하는 명소 무진정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무진정은 함안 3대 연못인 이수정 위에 자리한 정자다. 도시락을 비운 아이들은 삼삼오오 연못가를 산책하거나 무진정에 올라 휴대전화 카메라로 풍경을 담기에 바쁘다.

오후가 되니 볕이 한층 강해져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오전과 달리 그늘이 거의 없는 말이산고분을 찾은 아이들은 더위에 지칠만도 하건만 별 내색이 없다.

“아이들이 본인 의사로 참가하니 더 열심히 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역사 전공이라 학생들에게도 좀 더 쉽게 역사, 이왕이면 우리 지역 역사를 가르쳐주고 싶어 참가했는데 재미있네요.”

김민주 교사의 추천으로 함께한 고재희 교사(칠원중학교)는 아이들보다 본인이 오히려 더 많이 배우고 있단다. 김민주 교사는 작년 ‘서원 탐방’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했다.

“함안 지역의 문화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수업이라 의미가 남달라요. 학생들은 함안에 이런 문화재가 있었다는 사실도 잘 모르거든요. 문화가 우리 일상과 떨어져 있지 않고 어우러지는 것임을 알아가는 좋은 기회입니다. 지난주 실내 수업 이후 아이들이 아라가야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고고학도 궁금해하더라고요.”

김민주 교사는 이런 느린 여행을 통해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기고 호연지기도 기를 수 있다며 만족해한다. 무엇보다 해설자의 설명이 쉽고 재미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란다.

“우리 지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는지 몰랐어요. 학생들뿐 아니라 함안의 가야문화를 알릴 좋은 기회입니다. 지역 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키고 싶네요. 경주에는 ‘경주를 사랑하는 지역모임’이 있더라고요. 함안에도 그런 자원봉사 모임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고 선생님 생각은 어때요?”

“좋지요. 우리도 ‘함사모’ 만들어볼까요?”

고재희 교사는 한술 더 떠 모임 이름까지 짓자고 한다.

말이산고분군 탐방에서는 직접 고분에 들어가 발굴을 해보는 체험 시간도 가졌다. 오늘 하루는 마치 고고학자가 된 듯 호미를 든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말이산고분군 탐방에서는 직접 고분에 들어가 발굴을 해보는 체험 시간도 가졌다. 오늘 하루는 마치 고고학자가 된 듯 호미를 든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보고, 만지고, 느끼고, 배우다

오후에 진행된 말이산고분군 탐방에서는 직접 고분에 들어가 발굴을 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호미를 든 아이들은 벽의 흙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천천히, 가볍게 흙을 벗겨보세요. 층의 결이 다르죠? 색깔도 달라요. 이런 작업들로 고분에 남아 있는 역사를 해석하는 게 고고학자들의 역할입니다.”

책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수업. 스스로 휴일 하루를 할 애한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이 품은 1,500년 아라가야의 흔적을 직접 보고 만지며 온몸으로 익히고 있다. 지금 이 순간만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도 고고학자로 빙의한 아이들의 열기에 비할 게 못되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길 위의 인문학’이 만들어진 까닭이며, 가장 큰 매력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인문학이 시나브로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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