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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생물·태백 산물이 만나 “한뚝배기 하드레요~”

[기차 타고 가는 음식여행] 동해 북평오일장

2014.04.11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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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건져 갓 떠낸 싱싱한 세꼬시회 한 소쿠리가 1만원.
방금 건져 갓 떠낸 싱싱한 세꼬시회 한 소쿠리가 1만원.

동해 북평오일장은 제대로 5일장이다. 3일과 8일에 서는 오일장날이 되면 동해시의 이 작은 마을은 난리라도 난 듯 한바탕 떠들썩한 판이 벌어진다. 장터로 진입하는 초입인 북평오거리는 차들로 꽉꽉 들어차고 골목마다 거나한 난전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북평장날을 우연히 만난 여행자에게는 큰 행운이다.

제대로 5일장, 200년 전보다 지금이 더 흥겨운 북평장은 오래된 장이다. 기록만 살펴봐도 200년이 넘었다. 바다를 낀 지역답게 어시장은 기본이요, 소를 팔던 우시장과 정선에서 길러 만든 삼베를 팔던 장으로도 유명했다.

삼척과 강릉 사이에 위치한 동해시에서 열리는 큰 장인 북평 오일장은 삼척과 묵호항에서 넘어온 갯것들은 물론 태백과 정선 등지에서 올라온 산나물과 약초로도 장거리가 넘쳐났다. 인근 바다와 산에서 나는 온갖 산물들이 5일에 한 번씩 이곳 북평장으로 몰려들었다. 영동지방에서 가장 큰 장이었고 전국 3대 장에도 꼽히는 대단한 장, 그 북평장이 현재에도 여전히 사람들과 물산으로 넘실대는 흥겨운 장터로 살아남아 있다.

아니 살아남았다는 것보다는 점점 더 번성하고 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만큼 북평오일장의 흥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고 혹은 점점 더 흥겨워지고 있다. 동해시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적어도 장이 서는 한 달에 엿새는 그야말로 신명나게 살맛나는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다. 질투가 날 정도다.

봄철 원기 돋우는 각종 봄나물을 다듬는 상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봄철 원기 돋우는 각종 봄나물을 다듬는 상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종일 다녀도 끝이 없는 드넓은 장터

북평동과 구미동에 걸쳐 펼쳐져 있는 북평오일장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장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포진해 있다. 하루 온종일 돌아다녀도 다 돌아보지 못할 만큼 장은 크고 일행을 잃어버렸다가는 휴대폰이 있어도 찾기 어려울 만큼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일대의 골목골목이 시장 아닌 곳이 없고 난전을 펼치지 않은 거리가 없을 정도다.

“한 뚝배기 하드레요~, 아니믄 한 젓가락 거들레이~.”

하나 둘 난전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북평동주민자치센터에서부터 시장 구경에 나선다. 북평오일장에서 구경꾼의 오감은 한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작은 골목 좌우로 펼쳐진 난전의 기세가 대단하다.

시장 입구, 묘목과 각종 씨앗들이 봄이 왔음을 대번에 알리며 서서히 시장의 서막을 알린다. 시나브로 펼쳐지는 난전과 함께 어느새 시장으로 발길을 두면 과일전과 곡물전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이내 갖은 제철 채소와 약초가 좌판을 가득 채운다.

보는 것도 처음인 굼벵이와 지네를 비롯해 신기한 약초에 마음을 빼앗길 즈음 대왕문어와 오징어를 비롯한 각종 생선들이 판을 친다. 구둑구둑하게 말려 매달린 커다란 가오리에 넋을 잃고 있자니 갓 튀겨낸 어묵이며 호떡, 번데기가 코와 입을 유혹한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즉석어묵을 튀겨내는 어묵 아저씨의 노련함도 시장의 구경거리.
현란한 손놀림으로 즉석어묵을 튀겨내는 어묵 아저씨의 노련함도 시장의 구경거리.

북평오일장엔 먹을거리도 다채롭다. 출출한 무렵이면 메밀전병과 메밀부치기를 막걸리와 함께 파는 천막들이 늘어서 있다.

강원도 시장 어딜 가나 있는 단골 메뉴, 강원도다운 주전부리다. 팥소를 안에 넣지 않고 통팥을 반죽에 섞은 이색적인 수수부꾸미도 있다.

잔치국수와 묵사발도 함께 판다. 장날이면 이런 주전부리 천막이 아무리 많아도 어딜 가나 문전성시고 때때로 줄까지 선다. 운이 좋아 자리를 잡고 앉아도 함흥차사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장날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다 출출한 김에 먹는 막걸리 한 사발과 주전부리는 누구나의 옹골진 간식이므로.

메밀부치기는 강원도 시장의 단골 주전부리.
메밀부치기는 강원도 시장의 단골 주전부리.

정식으로 밥을 먹고 싶다면 시장 안쪽의 국밥 거리도 ‘오케이’다. 예전 우시장이 있던 무렵부터 성업했던 4~5개의 소머리국밥집이 여전히 그 구수하고 칼칼한 맛으로 시장통 한 끼 식사를 재빠르게 책임진다.

몇 집 없지만 그 중에서도 ‘대성집’, ‘두꺼비집’ 등을 알아준다. 소머리국밥뿐 아니라 선짓국밥도 일품이고 수육은 물론 순댓국밥과 돼지국밥도 먹을 수 있다.

마트도 아닌데 시식 코너는 왜 이리 많은지

시장통에서 먹는 국밥은 일명 장국밥이다. 장터에서 말아주는 국밥이란 뜻으로 밥과 국을 따로 주지 않고 밥 위에 뜨거운 국물을 올려 말아내는 국밥이다. 사람 많은 장터에서 시간 없는 상인과 손님에게 두루 반가운 음식이다. 내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한 그릇에 뚝딱’ 할 수 있고 밥에 국과 건더기가 한번에 올려지니 더 푸짐하게 느껴진다. 겨울에는 김이 폴폴 올라오며 더 뜨끈하게 속을 데운다.

북평장 장터국밥 거리의 소머리국밥 나이도 불혹을 넘겼다.
북평장 장터국밥 거리의 소머리국밥 나이도 불혹을 넘겼다.

장국밥은 뚝배기에 숟가락 하나만 꽂으면 끝이다. 문득 “한 뚝배기 하실래예~” 하는 광고 속 카피가 떠오른다. 어려운 시절 허겁지겁 입속으로 국밥을 밀어 넣으면서도 자기만의 배고픔이 아닌 서로의 뱃속 사정을 살폈을 것만 같은 정겨운 국밥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로 뜨거운 가슴과 입속을 식힌다.

북평오일장에서는 굳이 돈을 내고 사먹지 않아도 거저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많다. 마트도 아닌데 이처럼 시식이 많은 장도 드물 테다. 사실 인심이야 규격의 마트보다는 비정형의 시장이 한수 위다.

한 소쿠리에 1만원 하는 비싼 표고버섯도 듬성듬성 썰어 기름장에 맛을 보여주고 미역부각이니 방금 터진 뻥튀기도 무료시식이다. 짭조름하게 말린 문어도 한웅큼 씹어보고 향긋한 사과도 한쪽 베어문다. 콩고물 가득 묻은 인절미 한 덩이, 상큼한 딸기 한 알도 맛본다.

생선전이 열린 큰 길가에선 커다란 간이 수조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물고기들이 바글댄다. 소쿠리로 건져 올려 곧바로 세꼬시로 뜬다.

이미 체에 건져진 전갱이, 도미, 놀래미 등의 횟감들은 세꼬시로 떠지기 전까지는 더 생을 잇고픈 처절한 팔딱임으로 안간힘을 쓰며 상인과 뻔한 힘겨루기를 한다. 팔딱이던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떠진 횟감들은 한 소쿠리에 1만~2만원이다.

시장통 한 쪽, 간이수조에서 막 건져내 바로바로 회로 떠지는 싱싱한 횟감들.
시장통 한 쪽, 간이수조에서 막 건져내 바로바로 회로 떠지는 싱싱한 횟감들.

바다 옆에서 열리는 동해 북평장에는 말린 생선이 종류별로 그득그득, 가오리가 주렁주렁.
바다 옆에서 열리는 동해 북평장에는 말린 생선이 종류별로 그득그득, 가오리가 주렁주렁.

세꼬시 한 소쿠리 포장하고 소주 한 병 사서 금세 바닷가로 달려간다. 횟감들이 소주와 함께 혀에 닿으면 철썩철썩 푸른 파도가 입안으로 한꺼번에 몰아쳐 들어오는 듯하다.

작은 생선들의 안간힘이 세꼬시의 가시가시마다 여즉 살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꼬시는 이 맛에 먹는다. 여행자에게는 익숙하고도 새삼스러운 맛이다. 콕콕 찌르면서도 달달한 세꼬시 맛에 더해 잔가시와 함께 쌉싸래하게 넘어가는 소주 맛이 참 잘도 어울린다. 꼭 사는 맛과 닮았다.

북평오일장에서는 1년에 네다섯 번, 흔히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놀이도 펼쳐진다. 옛날부터 삼척에 비해 작은 행정구역이었던 탓에 따로 원님이 없었던 동해지방에서는 가짜로 원님을 세워 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엄마 따라 장에 놀러 나온 아이는 저만한 대왕문어가 무섭고도 신기하다.
엄마 따라 장에 놀러 나온 아이는 저만한 대왕문어가 무섭고도 신기하다.

길놀이하기 좋은 날엔 전통 ‘원님놀이’ 한마당

정월대보름 전날 마을 사람들이 원님이 될 사람을 정해 가마에 태우고 섶다리였던 북평다리를 건너며 길놀이를 하면 백성들이 그 뒤를 따르는 놀이로 일종의 다리밟기이기도 한 동해만의 민속놀이다. 이 놀이를 일명 ‘원님놀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길놀이를 하며 다리를 건너면 1년 내내 다릿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었다.

그 해의 원님으로 추대된 ‘가짜 원님’은 큰 잔치를 벌이고 마을사람들은 잔치를 즐기며 자신들의 고을에 원님을 모시지 못한 한을 풀어놓는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오던 놀이였으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맥이 끊어졌던 것을 1970년대부터 할아버지들의 기억을 더듬어 현재까지 재현해 오고 있다.

‘원님놀이’는 4월부터 10월 중 길놀이하기 좋은 날을 정해 북평 오일장에서 펼쳐지곤 하는데 이 또한 북평오일장의 큰 볼거리다. 오래된 시장이란 오래된 것들을 가득 품고 있는 법. 마을 사람들은 시장통 안에서 오래된 풍습을 이어내려가기도 하고 평소처럼 장도 보고 잔치가 있는 양 한바탕 어울려 놀기도 한다. 그러면서 장은 무르익고 사람 사이에도 정이 쌓인다. 시장 구경은 그래서 여행의 큰 재미다.

글과 사진·이송이(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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