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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
국가채무 수준을 잘 관리하는 것은 한 국가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자본이 전 세계를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채무가 많다면 심각하지 않은 경제적 충격에서도 그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져 자본유출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국가채무 규모가 매우 작고, 대외채무도 적기 때문에 그러한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상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경험한 만큼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재의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도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기 위해 정부가 소극적 재정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인가?
국가채무를 안정적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론은 인정하지만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며 과감한 지출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일부의 의견에는 반대한다. 일단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수준이 매우 낮아 웬만한 국가채무 규모의 증가는 경제안정성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국가채무 급증을 막기 위한 소극적 재정정책은 현재의 경제 위기를 악화시켜 성장잠재력 자체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장잠재력이 훼손된다면 장기적으로 GDP 위축현상이 발생해 GDP 대비 국가채무 증가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국가채무 급증에 대해 재정건전성 우려를 앞세우는 이들은 재정정책의 경기부양 능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제학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으로 ‘리카도 대등정리(Ricardian equivalence theorem)’가 있다. 이에 따르면 국채를 발행해서 실시하는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기대와는 다르게 경기부양 효과가 없다고 한다. 재정지출이 증가하지만 정부가 언젠가 늘어난 부채를 갚기 위해 세금을 올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기 때문에 증가한 재정지출과 감소한 소비지출이 서로를 상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론이 실제 데이터를 통해 증명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의 재정정책은 1980년대 이후 이 이론에 의해 크게 지배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경기침체 시기에는 재정정책의 경기부양효과가 크다는 것이 2008년 국제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드러났다. 국제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선진국들의 경제는 음의 성장률을 보였고, 이에 이들 정부는 동시에 과감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실시해 경기가 V자형으로 빠르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과감한 재정확대는 국채 발행에 뒷받침된 것으로서 국채 급증을 야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해 8월 확장적·적극적 재정운용 기조를 강화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사진=기획재정부) |
이에 위기를 극복했다고 생각한 선진국들이 긴축적 재정정책으로 선회하게 됐는데 기대와 다르게 경기는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할 때도 국가채무가 급증했으나 이번에는 경기가 가라앉음에 따라 GDP 증가세가 둔화돼 재정지출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GDP대비 국가채무는 증가했다. 경기 하강은 재정정책의 부양효과에 대한 경제학자들이 판단을 재고하는 계기가 됐다.
2013년에 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경기침체기에 재정건전화 정책을 펴는 것은 심각한 위축을 가져오며, 반대로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의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가 크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이 시기에 비슷한 분석결과를 제시한 다른 연구들도 발표됐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를 제외한 G7 국가들을 대상으로 바움·포플라우스키-리베로·웨버(Baum , Poplawski-Ribeiro and Weber)가 2012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경기 호황 시에는 평균 0.72의 승수효과를 보였으나 불황기에는 1.22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즉 불황기 재정지출 확대 정책은 경기 부양효과가 1을 넘을 정도로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그만큼 불황기 재정의 경기부양효과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민간경제가 마비된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정책이 아니면 경제를 살아나게 할 묘수가 있는가? 일부에서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 법인세 인하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러한 정책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이후 한국경제는 심각한 양극화와 저성장에 시달렸다.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최선의 정책은 적극적 재정정책이다. 국가채무가 설사 GDP 40% 중후반까지 증가하더라도 재정확대를 통해 성장의 기반을 유지한다면 코로나19 종식 이후 우리 경제는 빠르게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규모는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다. 2018년 OECD 국가들의 일반 정부부채는 GDP대비 109.2%였으나 우리는 40.1%에 불과하다.
또 IMF에 따르면 코로나 대응으로 선진국의 경우 전년 대비 올해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17.2%p 증가할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 국가채무가 GDP대비 40% 중후반 정도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으므로 선진국의 증가폭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만큼 경제안정성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국채를 늘릴 여력이 있다. 만일 이 정도도 재정건전성이 우려돼 실시하지 않는다면 과도한 재정건전성 우려가 경제를 망치는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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