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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각 “日 수출규제, 韓 경제에 의미있는 영향 없을 것”
“정치외교적 해결 문제를 경제적으로 보복…자유무역 규범 위배” 지적
최성락 국제금융센터 종합분석실 부장 |
지난 7월 1일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소재에 대해 수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7월 중 코스피 지수는 5.0% 하락해 전 세계 주가가 0.8% 오른 것에 비해 크게 부진했는데, 일본의 수출규제로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탓이다.
현재 당면한 문제는 일본이 8월 28일 시행할 예정인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이다. 이 조치가 시행되면 전략물자에 대해 일반포괄허가가 불허되면서 반도체 소재, 특수목적용 기계, 정밀화학제품 등 대일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의 수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전략물자 중 어떤 품목을 어느 수준으로 규제할 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시장의 전망도 막연한 낙관에서부터 극단적 비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 유수의 연구기관과 주요 언론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들은 한국과 일본 중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으며 제3자로서 비교적 중립적이고 냉정한 의견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글로벌 투자은행, 국제신용평가사 및 주요 외신들의 시각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해외기관들이 이번 수출규제의 본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정리하고 한국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수출규제의 본질
주요 외신과 연구기관들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우리나라 수출관리의 미비 또는 안보 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 또는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적어도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경제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현대 자유무역 규범에 반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우세하다. FT와 블룸버그(Bloomberg)는 한일 분쟁을 ‘미중 무역분쟁보다 훨씬 더 이해가 되지 않는 의미 없는 분쟁’으로 평가하는 등 일본 정부의 ‘무역 무기화’는 국제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는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을 훼손시켜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JP 모건(Morgan)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중간재를 사용해 한국이 생산한 최종재 중 42%가 다시 해외로 수출됨에 따라 중국, 미국, 아시아 신흥국, EU 등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세계 D램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국가로, 전미반도체산업협회(SIA) 등 미국 정보통신산업의 6개 경제단체들이 일본의 조치가 세계경제에 미칠 피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등 미국의 전자산업계가 한국과 일본측에 보낸 공동서한 전문. 사진=미국반도체산업협회 |
수출규제의 영향은 일본 기업들도 피해가기 어렵다. 일본의 소재·부품 기업에 있어 한국의 제조업은 오랜 기간 우수한 고객이었다. 씨티그룹(Citigroup)은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이 소재·부품 조달처를 다변화하면서 일본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일간의 무역갈등이 동북아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미국 씽크탱크인 CFR(미국외교협회)은 일본의 조치가 아시아 2위, 4위 경제대국 간 갈등을 야기하여 미국이 지난 수십년 간 아시아에 구축한 안보체제가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그렇다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얼마나 클 것인가? 아직까지는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실제로 어떻게 운용할 지 확인된 바 없기 때문에 많은 투자은행(IB)들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기장 비관적 시나리오는 일본이 금수에 가까운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씨티그룹(Citigroup)은 한일 갈등 심화로 대일 수입이 크게 지연될 경우 우리나라 2019~20년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았다.
다만 이는 ‘최악(worst)’의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대부분 해외 IB들의 ‘기본(base)’ 시나리오는 일부 품목의 수입이 다소 지체되는 정도로 보고 있다. 그 근거로는 일본 정부가 글로벌 공급망 훼손 책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 한일 모두 자국 경제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유인이 크며, 일본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전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 JP 모건(Morgan),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 등은 일본의 대한국 수출이 실제 큰 폭으로 감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한국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BoA-메릴린치(Merrill Lynch)는 일본 수출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자구책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면서 수출입 차질이 관리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UBS도 최근 일본 정부의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수출 승인을 근거로 대규모 무역분쟁 시나리오보다 긴장 수준이 이어지는 시나리오에 가까워졌다고 진단했다. BNP 파리바(Paribas)도 한일간 맞대응이 양국뿐 아니라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서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을 확률이 85%라고 평가하고 있다.
종합하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우리 경제에 다소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나 ‘위기’로 이끌 것이라는 의견은 찾기 어렵다. 심지어 앞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언급했던 씨티그룹(Citigroup)도 한국 업체가 앞으로도 반도체 업계에서 기술적 리더십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해서는 대규모 무역분쟁 우려가 주가에 상당부분 반영되어 밸류에이션 매력이 커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UBS, 씨티그룹 Cigroup).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국제신용평가사들에게서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S&P는 한일 무역갈등의 부정적 파급영향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 강등 요인은 아니라고 밝혔으며, 피치(Fitch)는 ▲수출규제의 강도 ▲한국 기업들의 수입품 다변화 능력 ▲갈등 지속기간 등의 변수를 거론하면서도 신용등급 ‘AA-‘와 ‘안정적’ 전망을 유지했다. 무디스(Moody’s)는 ‘한국의 견고한 경제·재정 펀더멘털이 불확실한 대외무역 전망에 대한 완충력을 제공하고 있다’며 2015년 12월 이후 유지해온 ‘Aa2’ 등급과 ‘안정적’ 전망을 그대로 유지했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때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리 기업과 경제에 어느 정도 부정적 영향이 있겠으나 향후 한일 양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정부·기업의 대응에 따라 피해를 최소화할 여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 중소기업의 성장을 통해 산업구조의 개선과 무역불균형 시정을 달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은 과도한 비관이나 감정적 대응을 넘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냉철한 접근이 더 필요한 때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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