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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한국경제 디플레이션 우려가 기우인 이유

손종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부교수 2019.10.10

손종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부교수
손종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부교수

지난 두 달 연속 국내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최근 디플레이션 논의가 나오고 있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의 지속 등 대외환경의 악화와 더불어 국내의 경기둔화 국면이 이어지면서 우리나라도 디플레이션에 따른 경기후퇴가 장기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대두되고 있다.

흔히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면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럼 물가가 하락하는 것이 나쁜 것일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 하락이 반가울 수 있다. 자신의 소득이 가지는 실질 구매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즉, 물가가 하락하는 경우 동일한 소득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늘어나게 된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 가계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이는 기업의 매출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디플레이션이 나쁘다고 하는 걸까? 경제는 소비의 주체인 가계와 함께 생산과 투자의 주체인 기업이 있다. 물가 수준의 하락이란 기업에게는 다름 아닌 자신이 생산한 상품의 평균적인 판매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매출액의 감소 및 이윤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의 투자 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 즉, 명목이자율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을 차감한 것으로 정의되는 실질이자율이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오히려 상승하게 되면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신규 일자리의 창출 및 가계의 소득 흐름이 약해지고 결국 경제 전체의 총수요가 둔화하면서 다시 물가를 하락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을 필자는 단순한 물가 하락을 지칭하는 디플레이션과 대비해 디플레이션 악순환으로 다르게 명명하고자 한다. 실제로 193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세계대공황(Great Depession)을 살펴보면, 물가 하락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디플레이션 악순환으로 인해 기업의 투자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실질이자율이 크게 상승했으며 실업률의 급등 등 총수요의 위축은 결국 길고도 고통스러운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기간에도 부동산 가격 버블의 붕괴와 인구고령화 현상이 겹치면서 일본은 상당 기간의 디플레이션과 함께 경기후퇴를 경험했다.

그럼 최근 두 달간의 물가 하락 현상을 가지고 우리나라도 그러한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진입하는 디플레이션 악순환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악순환 국면이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섣부르다고 판단된다.

우선, 디플레이션 악순환을 유발시키는 요인으로서의 실업률의 급상승 또는 자산가격의 급락 등의 현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둘째, 기업의 투자는 최근 두 달간의 물가 하락 이전의 경기후퇴 국면에서 이미 둔화돼 왔다. 따라서 이러한 투자 둔화가 디플레이션 악순환에 따른 것인지 판단하기에는 시계가 너무 짧다. 마지막으로, 물가 안정을 주요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의 향후 물가 전망을 살펴보면, 최근의 물가 하락은 전년 동월의 높은 물가 수준에 따른 기저효과, 복지정책 강화에 따른 사회서비스 물가의 하락 등 정책적 요인, 그리고 수요측 물가 압력의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제로(0) 금리' 통화정책 가능성에 관한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의 질의에 "현재로선 디플레이션 발생 징후가 크지 않다"고 답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제로(0) 금리’ 통화정책 가능성에 관한 의원의 질의에 “현재로선 디플레이션 발생 징후가 크지 않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금년 하반기 및 내년에는 다시 1% 내외의 인플레이션으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다만 최근 두 달간의 물가 하락이 아니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특히 2015년 이후의 인플레이션 추이를 살펴보면, 연평균 1% 내외의 저물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로지역(0.93%), 미국(1.49%), 일본(0.53%), 독일(1.06%) 등 2015년 이후의 주요국의 연평균 인플레이션을 살펴봐도 모두 1% 내외의 수준을 기록하며 여전히 2%의 인플레이션 목표 수준을 밑돌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 이전 세계는 어떻게 하면 물가 수준을 낮출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장기간의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아왔다면, 이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 주요국들이 모두 물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펼치고 있다. 주요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에 대해서는 향후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구조적 저물가 현상에 기여하는 중장기적인 요인을 아래와 같이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급속한 저출생 및 인구고령화 현상을 들 수 있다. 고령화로 수명이 연장되면서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가 보다 지속되는 측면도 있지만 저출생에 따른 전반적인 수요의 감축을 상쇄시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겪으면서 장기불황과 함께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을 경험했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겪었던 인구고령화 속도보다도 더 빠르며 출생률은 현재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다.

둘째는 산업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물가 하락 압력이 강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인 제조업의 경우 새로운 기술 혁신이 요구되고 또한 미래의 신산업 창출을 위해서 혁신이 필요한 과도기를 보내고 있다. 구산업에서의 투자 위축 및 일자리 축소가 신산업에서의 신규 일자리 창출 등으로 충분히 상쇄되지 못한다면 이는 기조적인 총수요의 둔화로 전반적인 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AI 등 정보통신기술을 기초로 온라인 전자상거래가 확산되면서 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명 아마존 효과(Amazon effect 또는 Amazon pricing)로서 온라인 상거래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소비자의 비교 쇼핑을 통해서 경쟁 상품가격이 낮아지는 현상이다. Gloolsbee 및 Klenow(2018)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온라인 상거래를 기초로 구축한 디지털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에 비해 1~2.5%p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물가 하락 기조는 대다수 소비자에게는 유익한 것이며 기업으로서도 신규 사업의 창출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업투자 유발과 함께 소비자의 체감물가에도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2%의 균형 인플레이션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책당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적극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 기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통화정책의 경우 가계부채 및 자산가격의 변동 등 금융안정 요소와 함께 외환시장 등 대외불균형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우리나라에서는 다소간의 제약이 있다.

그렇다면 재정정책은 어떠한가? 국가부채 비율의 상승에 따른 위험 요인은 있지만, 현재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자면 우리나라는 아직 충분한 여력이 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해 저출생 및 급속한 인구고령화에 대비한 사회적 돌봄 체계를 확충하고 사회 서비스업의 질적 도약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 생태계 전환을 위해서 신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초 R&D 투자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투자는 일개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야말로 공공부문이 과감하게 위험 부담을 안고 이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감당해 나갈 수 있다.

저출생·고령화 및 신산업의 기초 R&D에 대한 공공부문의 선도적인 투자는 향후 이어질 민간 기업의 투자 리스크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전반적인 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고, 괜찮은 신규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된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구조적인 저물가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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