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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이 없어서 아직 ‘극한직업’ 못 봤네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 75세 권석현 수어통역사의 ‘손짓으로 통하는 세상'

정책기자 박하나 2019.04.19

# 북미 정상회담 때 방송사들이 이례적으로 수어통역을 하면서 청각 장애인들의 방송 참여도가 높았다. 하지만 오후부터 일부 방송사들이 수어통역을 멈춰 자막으로만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어통역이 없어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쇼트트랙 경기를 남은 바퀴수를 보고 상황을 짐작해야만 했다.

청각장애인들이 겪는 단편적인 일상 중 하나다. 한국수화언어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수어통역 제공에 대한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 3사는 방송통신위원회 ‘장애인 방송 접근권 보장 고시’에 따라 방송시간 중 5%만 수어통역을 제공한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정상회담 당시 방송사의 수어통역이 중단되는 바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급하게 미국으로 돌아간 영문을 알 수 없었다는 장애인들이 많았다.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법정기념일이다. 1981년부터 정부행사로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를 극복하고 수어통역사로 전국을 누비며 맹활약하는 청각장애인 권석현(75) 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대구수성구수어통역센터 김원숙 수어통역사(비장애인)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대구광역시 장애부분 수상을 한 권석현(오른쪽)씨가 김원숙 수어통역사와 대화하고 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대구광역시 장애부분 수상을 한 권석현(오른쪽) 씨가 김원숙 수어통역사와 대화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갑작스럽게 청각 장애를 갖게 됐다고 말문을 연 권 씨는 “자괴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며 “이왕 갖게 된 장애를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고민했다. 장애를 갖지 않았다면 그냥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수화로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한글도 알고 말도 가능했던 상태에서 장애가 찾아왔기 때문에 구화(입모양)로 일상생활이 가능했다”며 “다니던 학교를 포기하고 곧장 공장취업을 했다. 어느 날 청각장애를 앓던 노동자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면서 수어통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필담과 구화로 일상생활에 한계를 느껴 수화를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권 씨는 “당시에는 전문교육기관이 없었다. 수화가 가능한 청각장애인을 따라다니며, 수화를 글로 적으면서 배웠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컸다”고 전했다. 

청각장애인이지만 우수 근로자 표창을 받을 정도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던 그가 수어통역사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우연한 기회에 경찰서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린 청각장애인을 돕게 되면서부터라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비장애인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맡았지만 청각장애인이 수화를 몰라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단다. 당시에는 배움의 기회가 적어 청각장애인들이 따로 수화를 배우거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대구수성구수어통역센터장을 맡고 있는 권석현(75)씨는 27년 째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어통역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대구수성구수어통역센터장을 맡고 있는 권석현(75, 청각장애 2급) 씨는 27년 째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어통역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같은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손짓을 해도 통하는 게 있었다”며 “특히 살인 사건의 경우 중간에서 정확하게 통역해 전달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청각장애를 가진 수어통역사 없었다. 살인 사건에 휘말린 청각장애인의 억울함을 통역해주면서 사건을 해결했다”고 표현했다.

경찰서에 가서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억울함을 풀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서 그는 청각장애인의 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단다. 그렇게 1992년 경북농아인협회 상담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수어통역사의 길을 걷게 됐다.

청각장애인으로서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기차에 안내 모니터가 설치되는 등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적 지원이 점차 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현실”이라며 “수어통역사도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운 상황도 많다”고 토로했다.

“다른 지역에 교육을 갈 일이 있어 기차를 탔는데, 열차 고장으로 지연된 일이 있었다. 화면으로 글자 안내방송이 나올 줄 알고 기다렸다. 내용을 전혀 몰라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통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역무원실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나니 이미 대체편 기차는 떠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누구나 살면서 갑자기 장애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할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준다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하루도 빼지 않고 신문과 책을 읽는다는 권석현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청각장애인의 귀가 되어주고 싶다고 한다.
하루도 빼지 않고 신문과 책을 읽는다는 권석현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청각장애인의 귀가 되어주고 싶다고 한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권 씨는 “영화관에 가면 선택권이 많지 않다”며 “외국 영화의 경우 자막이 있지만 한국 영화는 자막이 없어 화면으로만 이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영화 ‘극한직업’을 보고 싶었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어통역 전문가로 활동 중인 그는 27년간 통역뿐만 아니라 국립국어원 한국표준수화규범제정 추진위원, 17년간 수화통역사 양성 등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권익 증진에 헌신해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장애인의 날을 맞아 대구광역시에서 장애부분 표창장을 받았다.

축하인사를 건네자 그는 부끄러운 듯 손사레를 쳤다. 인터뷰 통역을 돕던 수어통역사 김원숙 씨는 “75세의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며 “항상 청각장애인의 애로사항을 어떻게 해결해줄까를 고민한다. 20대 못지않은 열정으로 함께 일하는 비장애 수어통역사에 자극이 된다”고 귀띔했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어통역전문가로 활동 중인 권석현씨는 27년간 통역뿐만 아니라 국립국어원 한국표준수화규범제정 추진위원, 17년간 수화통역사 양성 등 청각 언어장애인들의 인식개선과 권익증진에 헌신해왔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어통역 전문가로 활동 중인 권석현 씨는 27년간 통역뿐만 아니라 국립국어원 한국표준수화규범제정 추진위원, 17년간 수화통역사 양성 등 청각장애인들의 인식 개선과 권익 증진에 헌신해왔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수어통역사를 교육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유를 묻자 “내가 배우고 알아야 청각장애인의 시선에서 도울 수 있다”며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억울함을 풀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다. 누구나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는 것이니 편견 없이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박하나
정책기자단|박하나hanay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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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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