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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최초로 키스신이 나온 작품은?

[가보니]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단성사 영화역사관 현장 취재기

정책기자 최병용 2019.12.10

취미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라고 대답한다. 영화처럼 적은 비용으로 긴 시간을 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없는 탓이다. 내가 가진 영화의 추억도 무려 50년이나 된다.

충청도 산골짜기에 살던 시절, 교회에서 작은 영사기로 영화를 보던 기억, 면사무소, 리사무소 앞에서 단체로 영화를 상영하던 기억, 고교 시절 선생님 눈을 피해 19세 이상 영화를 보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단성사 영화역사관.
단성사 영화역사관.


대한민국 영화 역사가 올해로 100주년이 됐다. 이를 기념이라도 하듯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의미 있는 성과도 거뒀다.

한국영화 100년사를 알아보기 위해 단성사 영화역사관을 찾았다. 이곳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0월 개관한 곳으로, 한국영화의 역사와 각종 영화 제작 도구들을 둘러볼 수 있다.

예전 영화 촬영 물품.
예전 영화 촬영 물품.

 

한국영화는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서울에 상설극장이 설립되기 시작, 1912년에 단성사·장안사 등이 종로에 개관하며 무성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무성영화는 변사 1인의 연기로 영화의 줄거리를 전달해 관객을 웃기고 울리고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상영된 영화는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상영된 김도산의 ‘의리적 구토’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을 한국영화의 출발로 여겨 1963년부터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923년 윤백남 감독과 한국 최초의 여배우인 이월하가 출연한 ‘월하의 맹서’가 완전한 필름에 의한 극영화로 기록된다. 1926년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된 나운규의 ‘아리랑’은 한국영화가 도약하는 전환점이 됐다. ‘아리랑’은 대학을 다니다 3.1운동의 충격으로 정신 이상자가 된 영진을 주인공으로, 당시 농촌의 실상을 리얼하게 묘사해 칭송을 받았다.

영화역사관 내부.
영화역사관 내부.

 

일제 강점기였던 1930~1940년대 한국영화는 친일 감독들이 득세하던 암울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탄압을 견디며 한국영화의 명맥을 이어온 초창기 영화감독들의 작품 활동이 한국영화 100년사의 큰 뿌리가 되었다.

6.25전쟁을 겪으며 4년여의 시간이 멈춰야 했지만, 50~60년대 들어 최은희, 조미령, 김지미, 신성일, 허장강, 최무룡, 남궁원 등 은막의 스타들이 화려하게 등장해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감독과 명배우들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내며 한국영화가 약진한 시기였다.

각종 영화 제작 물품.
각종 영화 제작 도구들.

 

70년대 들어 TV 시대의 등장과 함께 한국영화는 침체기를 겪다가 1980년대 들어서는 긴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이 시절에 안성기, 이영하가 등장했고 강수연이 ‘씨받이’란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다.

90년대 들어 ‘장군의 아들’ 시리즈, ‘남부군’ 등으로 부활을 모색하다 당대 최고의 흥행작인 ‘서편제’로 기사회생하게 된다. 영화 인구가 별로 없던 시대에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금의 1000만 관객 이상의 성과로, 2000년대 한국영화 흥행기의 기초가 된다.  

임권택 감독에 대한 설명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한국영화 100년사의 특이한 기록을 보면 최초의 유성영화는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1935년)이고, 최초의 컬러영화는 홍성기 감독의 ‘여성일기’(1949년)로 원로배우인 고(故) 황정순의 데뷔작이기도 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키스신이 등장한 영화는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년)으로 배우 이향과 윤인자의 키스신이 장안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역사관 내부
영화역사관 내부.

 

2000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영화는 한국 고유의 색을 지닌 영화로도 외국영화에 뒤지지 않는 작품성을 지니게 된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해운대’가 연달아 1000만 관객을 넘었다.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그린 ‘명량’은 1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의 최고봉에 올라섰고 영화 ‘기생충’은 전 세계에 한국영화의 우수성과 작품성을 입증하게 된다.

청춘극장 입구.
청춘극장 입구.

 

젊은 세대에게 홍대나 강남역이 있다면 청춘극장은 어르신들의 쉼터와 문화의 공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무대이자 한국영화와 역사를 함께 한 동양극장이 노년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영화비가 2000원으로 55세 이상 어르신 및 동반자만 이용할 수 있다. 마릴린 먼로나 오드리 햅번이 주인공인 오래된 추억의 영화를 상영하고 유랑극단쇼나 음악교실(오카리나, 하모니카 교육)이 열리기도 한다.  

2000원으로 하루 3편의 영화를 다 볼 수 있다. 커피 한잔에 100원, 구운 가래떡이 200원으로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청춘극장 내부.
청춘극장 내부.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종로 거리를 거닐며 옛 영화의 추억도 되살려보고, ‘청춘극장’에서 오래된 영화도 한 편 보면서 한국영화 100년의 해를 함께 기념하면 좋을 것 같다.



최병용
정책기자단|최병용softma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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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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