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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싫어하는 우리 아이, 서원에 데리고 가볼까?

[가보니] 우리나라 서원 9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영주 소수서원 탐방기

2019.07.29 정책기자 윤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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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공부에 전념해야 할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 있다.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면 서원에 데리고 가란다. 서원에서 공부했던 유학자들의 기를 받으면 공부에 열중하지 않을까 하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에서다. 그런 서원이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한국의 서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출처=KTV
한국의 서원 9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출처=KTV)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지난 7월 초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을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

서원은 조선시대 핵심 이념인 성리학을 보급하고 구현한 장소였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때부터 서원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땐 지방에 국립교육기관으로 향교가 있었다.

조선시대 연산군에서 명종에 이르면서 4번의 사화가 일어난다. 사화(士禍)는 ‘선비가 화를 입었다’ 라는 뜻이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입문한 젊고 유능한 사림파는 공신으로 관직을 받은 훈구파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9곳.


그런 와중에 사림파가 훈구파에게 밀려나 관직에서 쫓겨났다. 사림파는 선현의 제사를 지내면서 유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서원을 세웠다. 그래서 서원에는 선현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과 유생들을 교육하던 강학당, 그들이 머물던 기숙사 등이 있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서원을 거점으로 농사를 짓느라 천자문도 익힐 수 없었던 일반 백성들에게 성리학의 사상을 확산시킬 수 있었다. 삼강오륜과 같은 윤리가 백성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또한 서원에서 배출한 유생들이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직에 진출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붕당정치의 온상이라며 서원을 철폐했을 때 살아남은 서원들 중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소수서원
나라로부터 사액받은 소수서원 현판이 걸려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 서원의 어떤 점에 주목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최초의 사액서원, 지금으로 말하면 최초의 사립교육기관이었던 영주 소수서원을 방문했다.

주세붕 선생이 고려 말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들여온 안향 선생의 사묘를 세우고 위패를 봉안한 뒤 건물을 지었다. 이름을 백운동서원이라고 했다. 나중에 퇴계 이황 선생의 건의로 나라에서 소수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소수서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솔밭길
소수서원으로 가는 길목에 솔밭길이 있다.


서원으로 가는 길목에 학자수림이라고 부르는 솔밭이 있다.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 선비가 되라는 뜻에서 이 소나무들을 학자수라고 불렀다. 

서원 바깥에 자리한 정자
서원 바깥에 자리한 정자.


서원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에 정자가 있다. 이름도 경렴정이다. 정자 뒤편으로 개천이 있다. 건너편에 ‘백운동’과 ‘경’자를 새긴 바위와 또 다른 정자, 취한대가 보인다.

선비들이 서원에서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힐 때면 정자를 찾았다. 지금처럼 TV, 컴퓨터, 스마트폰과 같은 문명의 이기가 없었던 시절이다. 그들은 주변 경치를 바라보면서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그래서 정자가 자리 잡은 곳은 전망이 좋다. 공부만 파고들었을 것 같은 선비들도 진정한 멋을 알았던 게다.

백운동이라 이름 붙여진 강학당
백운동이라 이름 붙여진 강학당.


소수서원은 크게 강학 영역과 제향 영역으로 나뉜다. 강학 영역은 학문을 닦고 배우던 공간이다. 백운동이라 이름 붙여진 강학당은 사방에 툇마루가 있다. 유생들이 앉아서 강의를 듣던 곳이다. 강학당 내 소수서원을 알리는 현판이 걸려 있다. 

유생들이 기거하던 기숙사
유생들이 기거하던 기숙사.


강학당 뒤편에 유생들이 기거하던 기숙사가 있다.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하려는 유생들은 집을 떠나 서원에 모여서 생활했다. 유생들이 기거하던 학구재와 지락재에는 마루가 있다. 무더운 여름이면 탁 트인 마루에 앉아 글공부를 하면서 더위를 이겨냈을 것이다. 

문성공묘는 선현들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으로 평상시 문이 닫혀 있다.
문성공묘는 선현들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으로 평상시 문이 닫혀 있다.


제향 영역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문성공묘와 영정각 등이 있다. 문성공묘는 안향 선생, 안보, 안축, 주세붕의 위패를 모셔둔 곳이다.

고려 말 안향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서 국내로 성리학을 들여왔다. 그래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생들은 그를 선현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매년 음력 3월, 9월 초정일에 제향을 할 때만 굳게 닫힌 문이 열린다. 

영정각에는 선현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영정각에는 선현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영정각에는 안향 선생을 비롯한 여섯 분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초상화 인물들은 하나같이 근엄해 보인다. 공부를 많이 해서 학문에 일가견을 이룬 유학자다운 날카로운 풍모가 느껴진다.

사료관에는 서원의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사료관에는 서원의 사료가 전시되어 있다.


사료관은 소수서원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자료를 전시해 두었다. 소수서원의 경관을 둘러본 관람객들이 이곳에서 소수서원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전국에 산재한 서원 9곳의 위치도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만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알리는 안내문이 추가될 것이다.

소수서원 인근에는 현대식 건물이나 상가가 없다. 소수서원을 보전하려는 지역민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소수서원이 자리한 곳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듯하다. 자연을 벗 삼아 동문수학하던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소수서원과 인접한 선비촌에 선비들이 기거했다.
소수서원과 인접한 선비촌에 선비들이 기거했다.


조선의 성리학 사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른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타협하지 않은 풍습은 자취를 감췄지만, 서원에서 유학자들이 행했던 제향과 교육은 오늘날에도 전통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이어오면서 조상들의 지혜가 축적된 전통문화유산이다. 오래되고 낡았다고 버릴 게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간직하고 보전해 왔기에 유네스코도 서원의 가치를 인정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전국에 있는 서원 9곳을 순례하면서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윤혜숙
정책기자단|윤혜숙geowins1@naver.com
책으로 세상을 만나고 글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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