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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추억 소환한 미륵사지 석탑 복원

20년간의 복원 마치고 웅장한 자태 드러낸 익산 미륵사지 석탑

2019.05.08 정책기자 최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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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찾았다. 당시는 석탑 안까지 들어가는데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석탑을 둘러보다 탑 주위에 홀로 앉아 있는 소녀를 보았다. 17살 소년의 가슴이 기적 소리보다 크게 쿵쾅거렸다. 소녀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어떤 말을 건넸는지는 40년이 지나 가물가물하지만 한동안 소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밤새 편지를 읽고 썼던 기억이 난다.

복원 전 미륵사지 석탑.(출처=문화재청)
복원 전 미륵사지 석탑.(출처=문화재청)
 
20년만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미륵사지 석탑은 심장을 멎을 정도의 감동을 준다.(출처=뉴스1)
20년만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미륵사지 석탑은 심장을 멎을 정도의 감동을 준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해체보수 20년만에 다시 그 자리에 섰다. 지난 4월 30일 준공식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익산으로 추억을 찾아 내달렸다.

미륵사지를 찾아 제일 처음 만나는 곳은 연못이다. 사찰에서는 극락세계의 상징으로 연못을 만드는데 미륵사지 입구의 동·서편에 있는 2개의 연못은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졌다.

연못에 반영된 미륵사지 석탑과 미륵산의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연못에 반영된 미륵사지 석탑과 미륵산의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서쪽 연못에서 미륵사지를 바라보면 연못에 미륵산과 석탑이 비치는데 그 반영의 아름다움은 가히 극락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두 번째로 만난 건 보물 236호인 당간지주다. 2개의 당간지주가 약 90m 간격을 두고 서 있는데, 높이는 4.5m에 달한다.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는 단순한 돌인데 그 형태가 단정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게 신기하다.

이토록 기품있는 자태를 뽐내는 당간지주를 처음 봤다.
이토록 기품있는 자태를 뽐내는 당간지주를 처음 봤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매달았던 깃대(당간)를 지탱하기 위해 당간 옆에 세운 돌기둥이다.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는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람들이 미륵사지 동탑을 관람하고 있다.
사람들이 미륵사지에 있는 동탑을 관람하고 있다.
 

미륵사지에는 나무로 만든 탑을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에 있는 동탑은 미륵사지 석탑의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1990년 초에 복원한 석탑으로 온전한 미륵사지 9층 석탑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웅장한 모습이다. 동탑은 자유롭게 내부까지 관람하며 미륵사지 석탑의 구조를 알아볼 수 있다.

20년간의 복원수리 과정을 마치고 공개된 미륵사지 석탑의 웅장한 모습.
20년간의 복원수리 과정을 마치고 공개된 미륵사지 석탑의 웅장한 모습.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미륵사지를 찾아 감동을 만끽하고 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미륵사지를 찾아 감동을 만끽하고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멎을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먼저 탑을 한 바퀴 돌며 백제인들의 숨결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다.

닳아서 흔적을 알아보기 어려운 석인상(石人像)은 1400여 년 세월의 흔적을 머금었고, 하늘거리는 여인의 치마폭을 상상케 하는 석탑 처마의 곡선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닳아서 흔적을 알아보기 힘든 석인상이지만 온화한 백제인의 얼굴이 보여진다
닳아서 흔적을 알아보기 힘든 석인상이지만 온화한 백제인의 얼굴이 보여진다.
 
하늘거리는 여인의 치마폭 만큼 아름다운 미륵사지석탑의 처마.
하늘거리는 여인의 치마폭 만큼 아름다운 미륵사지 석탑의 처마.
 

전국 각지에서 많은 국민들이 미륵사지 석탑을 찾아 탑돌이를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장엄한 미륵사지 석탑을 보며 감격에 겨워 미소를 짓거나, 탑을 올려다보며 백제인들의 석탑 기술에 경외심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아이 둘을 데리고 찾은 젊은 부부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백제 문화의 우수함을 어릴 때부터 느끼게 해주려고 서울에서 휴가를 내 왔다. 백제의 혼을 느낄 수 있어 정말 가슴이 벅차다” 라고 말했다.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미륵사지를 찾은 군산 제일고 학생은 “백제 시대 조상들의 우수한 석탑 건축 기술을 직접 보니 자긍심이 느껴진다” 라고 전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 모습.(출처=문화재청)
미륵사지 석탑 복원 모습.(출처=문화재청)
 

국내에서 가장 크고(9층 높이 추정), 가장 오래된 석탑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은 지난 1999년 해체보수가 결정된 후 무려 20년 만인 지난 4월 30일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특히 올해는 석탑이 건립된 지 1380주년이 되는 해라 더 의미가 크단다. 단일 문화재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체계적인 수리를 진행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이번 해체보수는 일제의 잔재를 씻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15년, 벼락에 맞아 무너져 내린 미륵사지 석탑을 조선총독부가 시멘트로 대충 덧씌운 채 이어져왔다.  

이번에 복원된 석탑의 높이는 14.5m, 너비 12.5m, 사용된 부재는 총 1627개로 무게가 약 1830톤에 이른다. 석탑 1, 2층은 옛 모습 그대로, 3층부터 6층까지는 시멘트를 뜯어내고 원재료의 81%를 사용해 남아있던 모습 그대로 복원해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미륵사지가 온전히 복원되어 백제문화를 꽃피우는 심장부가 되길 기대한다. 미륵사지 조형도.(출처=문화재청)
미륵사지가 온전히 복원되어 백제문화를 꽃피우는 심장부가 되길 기대한다. 미륵사지 모형도.(출처=문화재청)
 

백제시대 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는 7세기 무왕(639년) 때 창건됐다. 미륵사는 3개의 탑과 금당으로 구성된 3탑 3금당의 독특한 배치형식인데 이번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이다.

석재 2800여 개를 목탑처럼 짜 맞춘 형태로 백제 목조건축 기법이 반영된 독특한 양식이다. 석탑의 1층 내부는 ‘十’자형 공간이 조성되어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출입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

2009년 석탑 1층의 기둥돌(심주석)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사리봉영기가 발견됐다. 사리봉영기에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모시고 절을 세워 무왕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기록이 있어 석탑 건립 연대가 명확하다.

한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20년, 문화재 수리의 현황과 과제’ 포럼을 5월 10일 오후 1시,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개최한다.



최병용
정책기자단|최병용softman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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