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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GDP 규모 60년간 523배 증가

[숫자로 보는 광복 60년] 연평균 성장률 6.9%…외환위기 이후 둔화

2005.08.12 취재: 선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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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후 60년 동안 우리 경제는 그 어느 국가들도 엄두를 못 낼만큼 빠르게 성장해 왔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953년을 기점으로 작년까지 무려 523배 증가한 반면, 이 기간 일본은 239배 증가하는 데 그친 점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 준다.

광복 직후의 혼란과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었으면서도 허허벌판이었던 불모지를 옥토로 일궈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지난해 세계 11위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스페인, 캐나다, 인도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산업구조 역시 1,2차 산업 중심에서 글로벌 시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갈 IT, BT 등 차세대 성장산업과 서비스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숫자로 보는 광복 60년'을 그래픽으로 정리했다.

◇ GDP 520배이상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작년에 6801억달러로 1953년의 13억달러에 비해 약 520배(미달러 기준)로 확대됐다.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6.9%였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 이후의 구조개혁기를 거치면서 성장률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둔화됐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63년에 고작 100달러였으나 1977년에는 1000달러로 올라섰고 1995년에는 1만달러를 돌파했으며 작년에는 1만4162달러를 기록하며 2만달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1인당 GNI는 1953년에 67달러(2000원)에 불과하며, 이 수준을 그간의 소비자물가 변동(213배)을 감안해 2004년 가치로 환산하면 42만6000원이다. 이는 작년 1인당 소득(1621만원)과 비교할 때 약 10일간 소득에 해당한다.

◇ 98년 이후 흑자 지속

국제수지는 1950년 이후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까지는 기조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나타냈으나 1998년 이후에는 상품수지 흑자와 함께 흑자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1998년 경상수지 흑자는 404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에는 상품수지 382억달러, 경상수지 276억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1986~89년중에는 달러화 약세와 저유가, 저금리 등 이른바 3저현상에 힘입어 상품수지가 흑자를 보이면서 경상수지도 흑자를 기록했다.

다만 1950년대초에는 상품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이전수지 흑자로 경상수지가 흑자를 나타냈다.

자본수지는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경상수지의 보전 또는 조정적 성격을 보였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유입초를 나타내는 등 자율적 거래가 크게 늘어났다.

외환보유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올해 6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약 2050억달러로 1960년말의 1억6000만달러에 비해 약 1300배로 증가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말의 204억달러와 비교해도 약 10배로 늘어났다.

작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은 달러당 1144.67원으로 1964년의 255.77원에 비해 4.5배로 상승해 원화가치가 77.7% 절하됐다.

◇ 경제구조, 선진수준 접근

산업구조는 농립어업비중이 크게 하락하고 광공업과 서비스업은 꾸준히 증가하면서 선진국 구조로 접근했다.

1953년 중에는 농림어업의 부가가치액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7.3%나 돼 중심적 역할을 했으나 산업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하락, 작년에는 3.7%에 그쳤다.

반면 광공업 비중은 1953년중 10.1%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3배 가까이 증가한 29.1%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 올림픽때인 1988년에는 광공업 비중이 31.7%로 나타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비스업의 비중은 전 기간에 걸쳐 계속 상승했으며, 특히 1980년대부터 정보화 등에 따른 경제의 서비스화가 가세화되면서 상승속도가 빨라졌다.

서비스업 비중은 1992년부터 절반을 넘어서기 시작해 작년에는 55.5%에 달했다.

수출은 1952~2004년간 약 9200배(2770만달러→2538억달러)로 증가했다. 주요 수출상품을 보면 1970년에는 섬유, 가발, 합판 등 경공업 제품이 70%를 차지했으나 작년에는 전기전자제품, 석유화학제품, 반도체, 승용차 등 중화학공업 제품이 82%에 이를 정도로 크게 변모했다.

수출 상대국도 미국과 일본 위주에서 벗어나 다변화했다. 전체 수출액중 미국과 일본의 비중은 1970년 75.4%에서 작년에는 25.4%로 낮아진 반면, 중국수출 비중은 작년 19.6%로 미국(16.9%), 일본(8.5%)을 크게 상회했다.

◇ 고용 3배, 임금 126배 증가

40년 전보다 취업자수는 3배 늘어난 반면, 실업자수는 29%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해 경제활동인구는 1963년의 2.8배로 늘어난 약 2340만명으로서 총인구의 약 49%를 차지했다. 1963년에는 총인구의 30% 였다.

작년 취업자수는 2260만명으로 1963년에 비해 2.8배로 늘어난 반면 실업자수는 86만명으로 29% 증가에 그쳤다. 실업률은 1963~2004년 연평균 4.2%를 기록했다.

임금의 경우 지난해 상용근로자 월 평균임금은 약 225만원으로서 1970년의 126배에 달했다. 이 기간중 소비자물가는 약 16배 상승함으로써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을 훨씬 웃돌았다.

산업별로는 금융.보험업이 약 354만원에 달해 전산업 평균(225만원)을 상회한 반면, 제조업 및 건설업은 각각 221만원, 213만원으로 평균을 넘지 못했다. 1970년에 비해 증가한 정도에 있어서는 제조업 154배, 금융.보험업 95배, 건설업 88배 순이었다.

◇ 예금금리 1949년 이후 최저

올해 상반기 은행의 예금금리는 연 3.46%로 194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광복을 맞은 1945년의 예금금리는 연 3.4%, 1946~48년에는 연 3.2%였다.

예금금리가 가장 높았던 때는 1965∼67년(연 26.4%)으로, 당시는 금리현실화 조치로 인해 예금금리가 대출금리보다 높은 '역금리' 상태였다.

올해 상반기 대출금리는 연 5.56%로 광복후 역시 최저치다. 1944년 당시 대출금리는 6.6% 수준이었다. 가장 높았던 때는 1965~67년의 26.0%.

회사채수익률은 올해 상반기 연 4.30%로, 1975년 통계작성 이후 최저치다.

◇ 투자재원 자립 달성

총저축률이 1953년 13.1%에서 1980년 후반까지 꾸준히 상승해 1988년 40.4%까지 높아졌으나 이후 하락세로 반전돼 지난해 34.9%를 기록했다.

국내총투자율 역시 1953년 14.7%에서 꾸준히 상승해 1991년 39.7%까지 상승했다가 이후 계속 낮아져 지난해 30.3%로 하락했다.

투자재원자립도(총저축률/국내총투자율×100)는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총저축률이 국내총투자율을 밑돌아 100%에 못미쳤지만 1998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면서 100%를 넘어서면서 투자재원은 국내재원만으로도 조달이 가능하게 됐다. 1953년 89.1%에서 작년에는 115.2%로 높아졌다.

GNI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무역의존도는 1953년 13.0%에서 작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86.3%를 기록했다.

◇ 인구 도시집중 심화, 주거비 지출도 도시가 많아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7월1일 현재 4829만4000명으로서 1945년의 약 3배로 늘어났다. 특히 서울시 인구는 총인구의 20.8%인 약 1000만명에 이르러 총인구의 5.6%에 불과했던 1945년에 비해 11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인천.경기를 포함할 경우 수도권인구 비중은 무려 48.3%에 달해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이 매우 심화되고 있음을 나타냈다.

반면 농가인구는 1949년 총인구의 74.4%였으나 산업화과정을 거치며 계속 감소해 2005년 현재 총인구의 6.9%인 334만명 정도로 줄었다.

인구밀도는 7월1일 현재 1㎢당 485명으로 방글라데시(985명), 대만(632명)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에 이르렀다.

그동안 주택건설촉진정책으로 지난해 말 주택수는 1300만 가구에 달해 1962년(362만 가구)에 비해 약 3.6배 늘었다.

주택보급률은 총인구 증가 및 핵가족화에 따른 가구수 증가로 1962년 82.4%에 이르던 것이 1987년에는 69.2%까지 떨어졌다가 그후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서 2000년부터 100%를 넘어섰다.

연간 주거비지출은 도시 175만명, 농가 123만원으로 1963년에 비해 각각 584배, 411배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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