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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존엄’ 대한제국 국새, 60년 만에 귀환

한국전쟁 시 이탈된 국새 반환…국립고궁박물관서 국새 등 인장 9과 공개 특별전

2014.05.30 정책기자 천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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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5만6천 점’, 세계 20개국에 흩어져있는 대략적인 우리 문화재의 수다. 1910년 대한제국이 한일 강제병합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어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며 수많은 문화재가 국외로 불법 반출됐다. 국내외 민간단체는 문화재 반환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가며 문화재 환수에 앞장섰고, 문화재청 등 정부기관 또한 타협과 협상을 통해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 문화재청과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의 공조 끝에 지난 4월 25일, 대한제국의 국새를 포함한 인장 9과(顆, 인장을 세는 단위)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계됐다. 5월 13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과 공개 특별전을 개최한다. 60년 만에 돌아온 이 인장들은 1950년 6.25전쟁 와중에 미군이 덕수궁에서 훔쳐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립고궁박물관 내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과 특별전 입구
5월 13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대한제국 국새 등 인장 9과가 공개 특별전을 개최한다.

조선왕조 500여 년, 그 후 대한제국의 13년간 왕과 황제를 위해 수많은 인장이 만들어졌다. 대한제국 시기 황제국으로서의 위엄을 알리고 자주적인 국가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당시의 노력이 담긴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이들 인장은 왕권과 국가적 존엄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제작에서 관리까지 엄격한 법식에 따랐다.

이번에 공개되는 인장은 국새 3점, 어보 1점, 보소당의 인장 5점이다. 국새는 국왕이 국가를 통치하는 데 사용했던 인장이다. 과거엔 왕위를 물려줄 때, 외교 실무 등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문서에 날인했던 것으로,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표상이었다. 현재 국새는 헌법 개정 공포문 전문, 대통령 명의의 비준서, 훈장, 고위 공무원의 임명장 등에 쓰인다.

<황제지보 皇帝之寶> 황제국임을 천명한 대한제국 선포 이후부터 국새로 사용되었다.
‘황제지보(皇帝之寶)’, 황제국임을 천명한 대한제국 선포 이후부터 국새로 사용됐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중국 황제로부터 국왕이 책봉을 받을 때 국새도 함께 수여받아 사용했지만,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자주국으로서 ‘황제지보(皇帝之寶)’ 등의 국새를 직접 제작해 사용했다. 이러한 국새는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손잡이를 용 모양으로 제작했다. 황제지보는 1897년 대한제국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왕비·왕세자·왕세자빈·왕세제·왕세제빈·왕세손을 책봉할 때 내리는 문서(교명敎命), 국왕이 관원에게 내리는 각종 문서(교지敎旨), 국왕이 발표하는 문서(교서敎書)에 사용됐다.

<유서지보 諭書之寶>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서인 유서에 날인하여 사용한 인장이다.
‘유서지보(諭書之寶)’,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서인 유서에 날인해 사용한 인장이다.

유서지보는 조선시대 국왕의 명령서인 유서에 날인해 사용한 인장이다. 세종 대부터 고종 대까지 사용됐으며, 대한제국 시대에 ‘칙명지보’로 이름이 바뀌었다.

<준명지보 濬明之寶> 조선시대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에 사용한 국새이다.
‘준명지보(濬明之寶)’, 조선시대 세자시강원 관원의 교지에 사용한 국새이다.

어보는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 존호를 올릴 때 사용하던, 왕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을 말한다. 임금의 집무용·대외적으로 사용되는 도장인 국새와 달리, 어보는 각종 행정문서가 아닌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 궁중의식에서 시호·존호·휘호를 올릴 때 제작돼 일종의 상징물로 보관하던 것이다. 또한 어보는 왕의 공덕을 찬양하거나 그 통치를 종합·재평가 하는 의식에도 사용됐다. 왕과 왕비의 어보는 사후 왕실 사당인 종묘에 안치했다.

<수강태황제보 壽康太皇帝寶> 1907년 순종황제가 고종황제에게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 1907년 순종황제가 고종황제에게 ‘수강’이란 존호를 올리면서 제작한 어보다.

수강태황제보는 1907년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어가던 시기, 순종이 아버지 고종에게 ‘수강’이란 존호를 올리면서 만든 어보다. 그동안의 어보와는 달리 8각으로 만들어진 희귀한 형식으로 화려함이 특징이다. 어보는 최상 품질의 옥이나 금으로 만들고 아름다운 용이나 거북 모양 손잡이를 갖춤으로써 단순한 인장을 넘어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왼쪽부터 <향천심정서화지기>, <우천하사>, <춘화>, <연향>, <쌍리>
왼쪽부터 ‘향천심정서화지기’, ‘우천하사’, ‘춘화’, ‘연향’, ‘쌍리’

이번에 환수된 인장 중에는 헌종이 인장 수집 및 감상 활동을 즐겼을 때 사용한 보소당의 인장 5점도 포함돼 있다. (우천하사) ‘세상의 선비들과 벗함’이라는 뜻이다. (쌍리) 원형의 두 마리의 용을 단순화해 도드라지게 조각했다. (춘화) ‘봄의 꽃’이라는 뜻이다. (연향) ‘벼루의 향기’라는 뜻이다. (향천심정서화지기) 헌종이 그림을 감상하며 서화작품에 찍었던 인장으로 ‘향천’은 헌종의 호다.

전시회를 찾은 양지은(22) 씨는 “60년 만에 국새가 돌아왔다고 해서 전시기간이 끝나기 전에 빨리 보러왔어요. 사극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국새를 실제로 보게 되니 새로웠고, 자주독립의 대한제국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어요.”라고 말했다.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특별전이 격동의 시기에 불행하게도 불법 반출됐지만 한·미 양국 정부의 공조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길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재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방식을 비춰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있는 문화재들을 되찾는 과정은 잃어버리거나 짓밟힌 민족의 정신, 얼을 되찾는 과정이다. 반환되지 않은 문화재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요구해야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며, 후세에 전해주기 위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정책기자 천지수(대학생) jisoo06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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