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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제대로 된 ‘콘셉트’ 힙합 앨범

[한국힙합의 결정적 노래들] ⑮이그니토 ‘Rhapsody Of The Devil’

2019.05.07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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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중반의 한국힙합을 논할 때 ‘빅딜레코드(Big Deal Records)’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빅딜은 홍대를 거점으로 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신흥 세력으로 빠르게 주목받았다. 당시 빅딜의 뮤지션들은 1990년대 중반 미국 힙합의 황금기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음악으로 리스너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둔탁하고 어두운 비트와 남성성을 강조한 가사. 그것은 반가운 놀라움인 동시에 로망의 구현이었다.

이그니토는 특유의 중저음과 엇박 플로우, 무겁고 철학적인 가사 등의 스타일로 ‘악마의 래퍼’라는 별명이 있다. (사진=이그니토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그니토는 특유의 중저음과 엇박 플로우, 무겁고 철학적인 가사 등의 스타일로 ‘악마의 래퍼’라는 별명이 있다. (사진=이그니토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그니토(Ignito)는 빅딜의 일원이었다. 빅딜의 또 다른 멤버 데드피(Dead P)가 <Undisputed>(2004)라는 명작을 남겼다면 이그니토에게는 <Demolish>라는 마스터피스가 있다. 그리고 <Demolish>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일관된 키워드로 허구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해낸 최초의 제대로 된 ‘콘셉트’ 힙합 앨범”

<Demolish>는 여러 가지를 성취했다. 먼저 이 앨범은 기념비적인 ‘붐뱁(Boom Bap)’ 프로덕션으로 채워져 있다.

이 앨범은 1990년대 미국 동부 힙합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Demolish>에는 프로듀서 랍티미스트와 마일드비츠가 빚어낸 절정의 프로덕션으로 가득 차 있다.

<Demolish>는 ‘앨범’의 미덕을 모범적으로 드러냈다. 싱글로는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 싱글이 아니라 앨범이어야 할 때가 있다. <Demolish>를 들으면 ‘앨범’이라는 형식의 소중함이 새삼 절감된다.

프로듀서들은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일관된 사운드의 결을 만들어냈고, 이그니토의 서사는 굴곡과 동요를 거쳐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악마를 탄생시킨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서대로 들어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되는 앨범. 앨범다운 앨범. 그것이 <Demolish>다.

<Demolish>는 독자적인 (허구의) 세계를 구축했다. 묵시록적 정서가 지배하는 이 앨범은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스/로마 신화 따위를 연상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허구의 세계를 구축한 이 앨범의 특징이 힙합의 장르적 특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자기’ 관점에서 스스로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기를 미덕으로 삼는 힙합의 ‘1인칭’ 성향에 비추어볼 때, 이 앨범은 힙합의 규칙(?)을 어긴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Demolish>는 한국힙합을 통틀어 처음으로 등장한 듯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한 제대로 된 콘셉트 앨범’이었다.

2006년 솔로 데뷔 앨범 <Demolish>를 발표한 이그니토. (사진=이그니토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06년 솔로 데뷔 앨범 <Demolish>를 발표한 이그니토. (사진=이그니토 제공,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emolish>에는 (한국어) 랩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이그니토의 랩은 일상의 발화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랩의 핵심인 리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동시에 하고 있다.

또 문장의 의미적 호흡과 음악의 리듬적 호흡을 같게 만든 것도 인상적이다. 듣는 이가 랩을 들으면서 가사의 의미도 실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고려하여 랩의 리듬을 짠 것이다. 인상적인 철학이다.

‘Rhapsody Of The Devil’은 상기한 <Demolish>의 모든 특징이 집약돼 있는 노래였다. 앨범을 다 들을 시간이 없다면 이 노래만이라도 들어보자.

결국 앨범을 다 듣게 되겠지만.

김봉현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작가

대중음악, 특히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영화제를 만들고 가끔 방송에 나간다. 시인 및 래퍼,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포에틱저스티스’로도 활동하고 있다. 랩은 하지 않는다. 주요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한국힙합 에볼루션>,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나를 찾아가는 힙합 수업> 등이 있고, 역서로는 <힙합의 시학>,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스트리트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murdamuzi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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