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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대역병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정태남의 클래식 여행] 오스트리아/빈(Wien)

2020.03.25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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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 강은 독일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를 지나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 루마니아 등 여러 동유럽 국가들을 거쳐 흑해로 흘러가는 아주 긴 강이다. 옛날 이 강은 방대한 로마제국의 북동쪽 국경선이었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은 도나우 강변에 병영도시 빈도보나(Vindobona)를 세웠는데 이것이 빈의 기원이 된다. 빈(Wien)은 라틴어와 이탈리아명칭인 비엔나(Vienna)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빈의 외곽 언덕에서 내려다 본 도나우 강과 빈 시가지.
빈의 외곽 언덕에서 내려다 본 도나우 강과 빈 시가지.

오늘날 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러한 빈을 대표하는 음악이라면 단연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일 것이다. 이 왈츠곡은 매년 1월 1일 전 세계에 방영되는 빈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이 곡을 듣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세련되고 귀족적인 기품이 흐르는 빈을 동경한다.

이와 같은 빈의 시가지 중심에는 그라벤이라는 장소가 있다. 이곳은 원래 로마군 요새를 둘러싼 해자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명품매장이 몰려 있는 널찍하고 우아한 길이자 광장이다. 날씨가 따뜻할 때 사람들은 이곳에서 카페에 앉아 담소하며 햇살을 즐긴다.

빈의 번화가 그라벤.
빈의 번화가 그라벤.

또 이곳은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쇼핑인파가 넘쳐난다. 그런가 하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12월 31일 저녁과 밤에는 이곳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서로 엉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같은 왈츠 음악에 맞추어 흥겨운 춤판도 벌인다. 그러니까 그라벤은 도시 속의 응접실이자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번화가에서 초점을 이루는 것은 길 한가운데에 높이 솟아 있는 하얀 기념비인데 금빛 장식 때문에 더욱더 시선을 이끈다. 이 기념비는 ‘삼위일체 기둥’ 또는 ‘페스트 기둥’이란 뜻으로 독일어로 페스트조일레(Pestsäule)라고도 한다.
흑사병이 물러난 것을 감사하여 세운 삼위일체 기둥(또는 페스트 기둥).
흑사병이 물러난 것을 감사하여 세운 삼위일체 기둥(또는 페스트 기둥).
이 기둥은 독일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엇보다도 17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관련이 있다. 

흑사병은 1679년에 빈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더니 자그마치 7만 6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도시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렸다.

이때 거리 곳곳에 널린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도시 외곽에 파놓은 구덩이에 집단으로 던져진 다음 화장되었다.

이런 참혹한 상황에 처했던 당시 황제 레오폴트 1세는 흑사병이 물러나면 성모의 은총에 감사하는 기둥을 세우겠다고 기도했다.

마침내 공포의 그림자가 걷히자 황제는 건축가 피셔 폰 에를라흐에게 이 일을 위임했다. 이리하여 이 기둥은 1682년에 착공, 10년 후인 1692년에 완성되었다. 

이 기둥을 장식하는 조각상들은 신앙의 힘으로 역병을 이기는 것을 은유한다. 그리고 이 조각상들 중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황제 레오폴트 1세의 모습이 보이는데 아무리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제국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신 앞에서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비엔나 대역병’이 창궐하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도나우 강 때문이기도 하다. 도나우 강가에 자리 잡은 빈은 동서교역의 중심으로 수많은 상품들이 들어오고 나가던 요충지였다.

하지만 문제는 로마시대와는 달리 전염병이 창궐하기 아주 쉬웠다는 것이다. 특히 수출입 상품을 보관하는 물류창고에는 수많은 쥐들의 서식하며 돌아다녔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빈은 로마 시대와는 달리 하수도조차 없었던 데다 인구밀도도 아주 높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려 놓은 오물과 쓰레기들이 나뒹굴었고 곳곳에 악취가 풍기는 등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렇다면 황제 레오폴트 1세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라는 왈츠곡이 약 200년 후에 등장하여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을 빈으로 유혹하게 될 것을 조금이라도 상상이나 했을까?

무릎 꿇은 황제 레오폴트 1세
무릎 꿇은 황제 레오폴트 1세.

그런데 이 왈츠 곡은 활기 넘치는 분위기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1866년 6월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에 전쟁이 발발했는데, 오스트리아는 수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내고 참패당하고 말았다. 그 결과 빈의 거리는 부상병으로 넘쳐났고 도시 분위기는 암울하고 침울해졌다. 

그러자 당시 빈 남성합창단 지휘자 요한 헤르벡이 나섰다. 그는 음악을 통하여 빈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바꾸고 또 시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이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다.

정태남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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