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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개도국 지위 포기 아닌 특혜주장 중단 결정인 이유

‘지위 포기’-‘특혜 주장 중단’ 의미 엄연히 달라…현재 확보한 특혜 아무런 변화 없어

2019.10.28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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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주말 정부는 미래의 WTO협상에서 더 이상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는 우리나라의 개도국지위 포기는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우리 농업을 파탄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도 정부가 WTO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도국지위 포기와 개도국특혜 주장 중단은 표현뿐만 아니라 의미상로도 차이가 있다. 개도국지위 포기는 WTO에서 더 이상 개도국으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WTO에서 국가분류는 개도국 아니면 선진국 둘 밖에 없기 때문에 개도국지위 포기는 곧 선진국임을 선언한 것과 동일하다.

개도국특혜 주장 중단은 말 그대로 개도국에게 부여된 특혜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개도국지위 자체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 개도국지위를 유지하면서 개도국특혜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가능하다. 물론 개도국특혜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면 개도국으로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개도국특혜 중단과 개도국지위 포기는 내용상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민감성 반영을 위한 협상전략 차원에서 보면 전혀 다르다. 선진국이나 개도국 모두 국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소수 품목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품목의 개방은 대개 일반원칙을 따르지 않고 민감성을 고려해 일정한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 지금까지 다자협상의 관례였다.

그런데 선진국으로서 이러한 민감성을 반영해 예외를 주장하는 경우와 개도국으로서 주어진 개도국특혜를 이용하지 않은 채 소수 일부품목의 민감성 반영을 위해 예외를 주장하는 경우를 비교할 때 어떤 경우가 예외확보에 보다 수월할까?

당연히 선진국보단 개도국으로서 민감성을 주장하는 것이 추가 예외확보에 훨씬 용이하다. 우리나라가 향후 WTO협상에서 개도국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쌀 등 민감품목의 경우 대폭적인 관세감축이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이들 소수 민감품목에 대해서는 협상을 통해 추가적인 예외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해 개도국지위 포기가 아닌 개도국 특혜만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즉, 향후 WTO협상에서 쌀 등 민감품목에 대한 예외확보가 선진국보다 개도국으로서 수월하기 때문에 결코 개도국지위 포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WTO 개도국 특혜 관련 정부입장 및 대응방향을 밝히고 있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WTO 개도국 특혜 관련 정부입장 및 대응방향을 밝히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우리 스스로 개도국지위를 포기했다고 하면 이는 미래의 WTO협상에서 우리의 협상력을 손상시키는 것이 될 수 있다. 개도국지위 포기가 아닌 개도국특혜 주장 중단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농업계도 과도한 피해주장은 설득력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의 결정은 분명 미래의 WTO협상에서 개도국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래 WTO협상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확보한 개도국특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현재의 농산물 관세나 농업보조금 지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당장 농업부문에 어떤 피해가 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개도국지위는 WTO 다자협상에서의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여타 농업선진국이 이번 우리의 자발적 중단 선언을 계기로 양자적으로 추가적인 개방요구를 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상당기간은 이번 결정으로 인한 농업부문의 피해는 없으며, 추가적인 양자개방 역시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렇다고 우리 농업에 피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WTO 농업협상이 타결돼 우리나라가 개도국특혜를 이용하지 않고 선진국 의무를 이행함에 따라 농업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많은 FTA 이행으로 관세가 상당히 낮아진 품목은 그나마 피해가 제한적일 수 있으나 다양한 FTA에서 시장개방의 예외를 받거나 부분적인 관세감축만 한 품목은 대폭적인 관세감축으로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쌀이다. 쌀은 513%라는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어 선진국 의무이행시 대폭적인 관세감축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향후 WTO협상에서 쌀 등 민감품목은 추가적인 예외를 확보해야 한다.

추가적인 예외를 인정받더라도 부분적인 관세감축이 불가피할 경우에 대비해 가격급락에 대응한 가격대응 직불제도의 도입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관세감축 뿐만 아니라 농업생산 및 농산물 가격에 연계된 농업보조금도 대폭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WTO에서 허용하고 있는 직접보조정책으로의 국내 농정의 일대 개혁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와 함께 향후 농업인을 대상으로 이번 개도국특혜 주장 중단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 이 때 지역의 농업기술센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농업기술센터는 농업현장에서 농업인을 직접 대하는 최일선 조직으로 농업인과의 관계가 끈끈하다는 장점이 있다.

중장기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식량안보를 위한 주곡의 안정적 생산은 허용보조정책을 근간으로 하고 그 외 농산물의 경우 수입농산물과의 차별화와 함께 소비자 요구를 생산에 연결시켜 소비자 주도형 맞춤형 농업생산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이 농업에 접목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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